검은 빛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래 전, 설까치 선생은 엄지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사람은 남을 도우며 쾌감을 느끼기도 하는 동물이다.

내가 한 일로 인해 누군가가 기뻐한다면 기분이 좋지 않은가?

그 누군가가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기분이 더더욱 좋을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웃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혼자 흐뭇해하는 것,

이런 게 진정한 사랑이다.


이 반대쪽에 집착이 있다.

미모의 여인이 어려운 지경에 빠졌을 때, 그를 도와주고 대가를 받으려는 그런 행태를 난 집착이라고 한다.

그녀를 위해 마약을 운반해줬는데, 볼에다 뽀뽀 한번 해달라는 게 뭐 그리 나쁘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짝사랑한다면, 그녀가 볼에다 해주는 뽀뽀는 내가 마약을 나르며 감수해야 할 위험보다 몇 배 더 가치가 있다.

그러니 “위험한 일을 해줬는데 그깟 뽀뽀 가지고 왜 그래?”라고 항변할 일은 아니다.

그러니 도움을 줬다고 뽀뽀를 해달라는 사람과는 오래 관계를 맺어선 안된다.


<검은 빛>은 사랑과 집착에 관한 얘기다.

인구가 얼마 안되는 조그만 섬에 사는 노부유키는 같은 섬에 사는 미카를 사랑하며,

둘이 결혼해 같이 사는 꿈을 꾼다.

어린이들의 꿈이 흔히 그렇듯 그 후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은 그 둘을 다른 세계로 떨어뜨려 놓고,

둘은 그냥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노부유키는 여전히 미카를 사랑한다고 믿으며,

그녀가 도움을 청했을 때 기꺼이 그 부름에 응한다.

미카가 볼에 뽀뽀를 해줄 것을 기대하며.

노부유키는 미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생각했지만,

그는 미카에 집착했을 뿐, 사랑한 건 아니었다.

책의 후반부에서 노부유키가 더없이 찌질해 보였던 건 그런 이유였다.


이 책에서 느낀 점 몇 가지 더.

하나. 어릴 때 예쁘면 연예인이 될 수 있다.

둘째, 만으로 열세살 짜리를 어떻게 해보려는 변태 아저씨는 세상에 많다.

셋째,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엔 쉽다. 아, 이건 범죄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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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9-11-04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과 집착의 차이는 결과적으로는 찌질함이였군요. 참, 앰비네이터 잘 읽었습니다.
 
이웃집 소녀
잭 케첨 지음, 전행선 옮김 / 크롭써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대학평가를 위해 부산에 내려갔을 때, 난 그전 주의 경험을 떠올렸다.

평가를 하면서 평가 보고서까지 같이 쓰려니 시간이 빠듯했던 기억.

그래서 난 부산에 가기 전날, 해당 대학에서 준비한 책자에 기초해 보고서를 거의 다 써 놓았다.

현지에 가서 몇 가지를 확인하고 나자, 난 정말이지 할 일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평가보고서를 쓰려고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난 D 대학 캠퍼스의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햇살은 따사롭고 캠퍼스 정원은 아름다웠지만,

책을 읽는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데 혼자 놀아서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내가 읽던 책이 <이웃집 소녀>(이하 ‘소녀’)였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1960년대 미국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토대로 만든 소설로

헐리우드에서 두차례나 영화화된 바 있다고 한다.

그랬다면 한번쯤 들어봤을텐데 왜 기억이 없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당연했다.

내용상의 잔혹성 때문에 영화가 우리나라에 수입되지 못했으니까.

소설의 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이런 소설을 창착해내는 인간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들어있는 것일까?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앉아 소설의 잔혹성과 비도덕성에 대해 비난했다.”

이 사건이 실화라는 걸 아는 순간, 역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소설이 실화를 “의도적으로 순화시킨 결과물”이란 작가의 말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난 무거운 마음으로 잔디밭을 서성였다.

그 동안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상념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인간이 어떻게 저리도 잔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그 잔혹한 게임에 동참했던 아이들의 악마성에 대한 분노,

사태를 수수방관했던 주인공에 대한 더 큰 분노.

당연하게도 얼마 전 벌어졌던 조두순 사건이 머릿속에 오버랩됐다.

하지만 그 사건보다 이 책에 기술된 사건이 더 끔찍하게 다가온 이유는

한명이 아닌, 여러 명이 같이 벌인 잔혹극이라는 것과

그 주체가 혈연으로 맺어진 친척과 그 아이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읽는 이에게 충격을 던지는 능력 면에서 이 소설은 단연 최고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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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9-11-04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물을 좋아하는 저도 이 책은 쉽게 집어들지 못하겠던걸요..
대충 줄거리를 봤을 때.. 아이들이.. 순수한 악의 단면을 갖고 있는 애들이기에 못 보겠더라구요..ㅠㅠ
결국 딴 책 샀어요~~

수퍼겜보이 2011-01-10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까지 이렇게 말씀하시니 도저히 못 읽겠네요 ㅠㅠㅠ
 

 


 

 

 

 

 

사회: 안녕하세요. '책을 해부한다'의 사회자 서민입니다. 오늘 디벼볼 책은 <밑줄 긋는 여자>입니다. 성수선 씨가 쓴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면서 사회 전역에 '성수선 신드롬'이 일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 책이 잘 팔리는지 토론자리를 마련해 봤습니다. 전문가 두분을 모셨습니다. 먼저 몇권의 저서를 쓴 바 있으며 미녀를 유난히 밝히는 마태우스 씨입니다.

마태우스: 안녕하세요?

사회: 그 다음으론 특별한 직업이 없이 두문불출하며 세상사의 이치에 대해 연구하고 계시는 부리 씨입니다.

부리: 반갑습니다. 부립니다. 




 

 

 

 

 

 사회: 먼저 마태우스 씨에게 질문을 드리지요. 이 책의 어떤 부분이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걸까요?

마태: 지금 이 책이 나오자마자 2쇄를 찍었다고 합니다. 전 책이라는 건 한번 찍으면 다 팔릴 때까지 팔다가 남은 건 저자가 다 사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엔 제 저서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허허.

사회: 여기에 대해 부리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부리: 저도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가 성수선 씨 블로그에 출근도장을 찍었었거든요. 전 독서 에세이를 낸다기에 거기 실린 것들을 추려서 내는 줄 알았는데, 주제별로 거의 다시 쓰다시피 했더군요. 저같은 백수야 일년에 두세권 분량도 너끈히 쓰지만, 회사에서 과장의 중책을 맡고 있고, 밤에 대학원도 다니고, 또 미녀고, 이런 상황에서 책을 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마침 부리씨가 말씀을 해주셔서 말인데요, 이 책이 잘 나가는 데는 저자가 미녀라는 점도 있지 않을까요?

마태: 그건 단견이지요. 짧을 단, 견해 견. 이 책을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책 날개를 포함해 어디에도 저자가 미녀라는 얘기가 없어요. 전 그 점을 높이 평가해요. 미녀 마케팅을 하는 대신 책의 내용으로 승부하겠다는 거지요.

부리: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책엔 사진이 없지만 저자의 첫 책인 <나는 오늘도 유럽출장간다>를 보면 성수선 씨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어요. 그리고 한국경제 7월 24일자를 보면 성수선 씨가 책을 들고 웃는 사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같이 인터넷 주문의 비중이 높아진 시대에는 저자의 미모를 알아채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단 얘기지요.

사회: 듣고보니 그렇네요.
 


 

 

 

 

 

부리: 그뿐만이 아닙니다. 231쪽을 보면 "같은 과 동기 C에게 장미꽃 스무 송이를 선물받았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장미꽃 스무송이 받아본 적 있습니까? 이거 아무나 받는 거 아니죠. 미녀만이 누리는 특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지요. 249쪽을 보면 "회사 송년회 때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1위로 뽑혔다"라고 되어 있지요? 주목해야 하는 건 그 다음 구절입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데이트하고 싶은 사람 1위였는데!" 그 사람 많은 회사에서 데이트하고 싶은 사람 1위라니, 이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어요?


세계일보 7.24

사회: 마태우스 씨가 지금 십분째 말씀을 안하고 계신데, 마태님은 이 책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마태: 저는 이 책의 제목을 참 잘 지었다 싶습니다. 카롤린 봉그랑이 쓴 <밑줄 긋는 남자>가 별 반응없이 사라진 것에서 보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뭐하는 여자'란 제목에 신비감을 갖습니다. 한젬마 씨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가 그 대표적인 예지요. 만약 <밑줄 긋는 할아버지>라는 책이 나왔다면, 이 책이 그렇게 대박이 났을까요?

부리: 제목도 제목이지만, 내용도 참 공감이 갑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를 읽고 자기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어머니들이 더 이상 싫지가 않더라고요. 거기 보며 저자가 어린 시절에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는 대목이 있는데요, 애를 그렇게 잡는다고 무조건 강한 아이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어릴 적 맞고 자랐지만, 그렇게 강하지 않잖아요? 표범은 오냐오냐 하며 키워도 표범이고, 방목을 해도 표범인 거죠.
 

표범사진은 무단복제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회: 표범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니 공감이 가네요. 마태우스님은 달리 하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마태: 이 책이 술술 읽혔던 이유는 한 주제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적절히 배치한 저자의 연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책들이 우리가 듣도보도 못한 어려운 책도 아니고, <모모>나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같이 친근한 책들이거든요. 그 책들에서 한 구절씩을 따서 결론으로 이끌어가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회: 이제 정리할 시간인데요, 간결하게 한마디씩 해주시죠. 먼저 부리님부터.

부리: 취미를 물으면 보통 독서라고 대답하잖아요? 그게 "독서를 해야 하는데 못한다"는 미안함에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독서는 정말 좋은 취미라고 생각해요. 성수선 씨가 해외영업을 그렇게 열심히 다니는데, 책이 없었다면 비행기 안에서, 출장지에 가서, 얼마나 심심했겠어요? 맞고가 취미면 비행기에서 할 수 없는데, 책은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잖아요? 그렇게 책을 읽다보면 성수선 씨처럼 멋진 책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 네, 저도 앞으로 책을 좀 열심히 읽겠습니다. 마태님은 하실 말씀이...?

마태: 공포영화를 보면 관객은 하나도 안무서운데 배우들만 무섭다고 소리지르는 그런 영화가 있잖아요? 이 책을 보니까 그간의 제 삶이 부끄럽더군요. 남들은 하나도 재미없는데, 저 혼자만 재밌어하는 책만 낸 거 아닌가 싶어서요. 저서가 딱 두권이지만, 성수선 씨는 정말 책다운 책을 냈다는 게 저와 틀린 점이죠. 물론 속이 꽉 찬 저서를 스무권이나 낸 지승호 님도 계시지만, 아무튼 전업작가도 아닌데 시간을 아껴가며 이렇듯 훌륭한 책을 쓴 성수선 씨에게 찬사를 보내겠습니다. 짝짝짝. 제가 보기엔 장정일보다 훨씬 훌륭한 독서일기라고 생각해요. 짝짝짝.

사회: 사자는 굶어도 풀을 뜯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완벽한 책이 아니면 내지 말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되는데요, 여러 가지로 감사했습니다. 다음 토론 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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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7-29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치요. 관심만 가지면 [밑줄 긋는 여자]의 저자가 미녀라는 사실은 금세 알 수 있지요. 그런데도 미녀마케팅을 하지 않다니, 대단해요. 저도 어제 그부분 읽었거든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 많이 공감했습니다.

그나저나 부리님,
표범사진 무단복제는 안되요. 표범한테 혼나요.


마늘빵 2009-07-29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ㅋㅋ 혼나요.

하늘바람 2009-07-29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넘 재미나네요. 점점 이 책궁금하네요

2009-07-29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리 2009-07-30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하핫 네. 여전하답니다
하늘바람님/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아프님/혼..나는군요^^
다락방님/표범한테 물리면 많이 아플까요?^^

wings 2009-08-0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부리님, 위트가 넘치는 이 포스트
저희 웅진윙스 블로그로 담아가도 될까요?^_^

부리 2009-08-12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답이 늦었네요 괜찮습니다 얼마든지요^^ 제가 웅진에 빚이 좀 많은데 다행입니다^^

치타 2011-06-24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사진은 표범이 아니라 치타인..

치타네요 2011-09-28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비슷하게 생겼긴한데 저건 치타..
표범은 좀더 호랑이같은 그런느낌?
 

요 아래 '사건'이란 글에서 

내 딴엔 풍자를 한답시고 버킹검대 운운했는데 

많은 분들이 그걸 진짜로 믿으셔서 당황스러웠다. 

이전 페이퍼에서 내가 언급한 대학은 버킹검대가 아닌, 동숭동에 있는 모 대학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그 사건은, 대학의 교수-ㅅ교수-가 조작을 지시했고, 

막상 탄로나자 조교에게 뒤집어씌우고 조교만 자른, 

힘있는 조직에서 이따금씩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언론에다 알리겠다는 날 주임교수는 "4년간 승진을 안시켜서 자르겠다"고 만류했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ㅅ 교수는 부교수 승진이 확정됐다. 

 

그 사건이 외부로 흘러나가 KBS 기자가 알게 되었을 때, 

그 집단에서 보인 행동은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한 반성이 아닌, 

어떤 놈이 일러바쳤는지 알아내는 거였다.

작년의 일이 있는지라 난 제일 먼저 용의선상에 올랐고, 

내가 아니라고 하자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너니?" "혹시 너야?"라며 

범인을 알아내느라 바빴다.  

한가지는 확실하다. 

이번 사건을 제보한 건 내가 아니지만, 

앞으로 그 대학을 기자가 조사한다면 그 제보자는 무조건 나라는 것.  

사제지간이고, 이번 사건으로 내가 얻는 건 하나도 없다해도 

부도덕한 집단에 대한 응징이 반드시 요하다고 믿는 까닭이다. 

핵심증인인 조교가 증언을 거부하고, 그 대학 측이 조직적으로 조사를 방해한 탓에  

기자는 결국 취재를 그만두고 말았지만,  

난 내가 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들과 싸울 생각이다. 

 

지금 내겐 그 교수가 조작한 연구결과 보고서가 있다. 

그리고 그 조교가 데이터를 베꼈던 원 논문이 있다. 

그 논문에 있는 그림과 결과보고서의 그림은 정확히 일치한다. 

그 교수는 답변서에서 "실수로 참고문헌의 자료가 들어갔다. copy & paste의 실수다"라고 썼지만 

뒤에 붙은 참고문헌의 목록을 보면 일본사람이 쓴 그 논문이 나와있지 않다. 왜? 

그 논문에서 데이터를 베꼈는데 그걸 참고문헌에 쓸 수는 없었으니까. 

ㅅ교수는 그 데이터를 연구결과 발표회 때 그대로 발표했고, 

그 슬라이드를 보면 그 그림은 물론이고 거기 대한 설명까지 붙어 있다. 

그럼에도 그게 copy & paste의 실수일까? 

그 데이터를 빼면, ㅅ교수의 발표 중에서 남는 데이터는 거의 없는데? 

 

기자의 질문에 내 주례를 맡으셨던 지도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교수간의 알력에서 비롯된 음해다.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명백한 조작을 음해로 단정짓는 선생님의 현실인식이 안타깝다. 

그분의 말씀이 맞다면, 조교는 도대체 왜 잘렸는가? 

그리고 작년에 지도교수가 내게 전화해 "네가 제보하면 나까지 다친다"고 떠셨던 이유는 뭘까? 

내가 기자에게 자료를 넘겨줬다고 인정하자 주임교수님은 말한다. 

"그렇게하면 안되지. 요 며칠간 우리 아무일도 못하고 있어. 거의 마비상태야." 

교수님, ㅅ교수를 절대로 승진시키지 않을 것이며, 그럼으로써 자르겠다는 작년의 공언은 

전혀 기억나지 않으신지요? 

우리 동문들은 그 말이 담긴 메일을 다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책임을 통감하고 사건을 바로잡으려는 대신 

은폐만 하려고 하는 조직에서 내일은 없다.  

그 사건이 기사화될때까지 싸워야 하는 이유다.

* 기사화가 되면 뭐가 달라지냐고요? 달라질 건 없어 보입니다.  

제가 죽일놈이 되는 걸 뺀다면요.  

하지만 전 ㅅ교수가 며칠이라도 발뻗고 잠을 못잔다면, 그걸로 만족할래요.  

그 조교가 겪었던, 지금도 겪고 있는 고통을 ㅅ교수가 맛보는 것만으로도  

이 일은 의미가 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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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리님 대단하시네요
    from 하늘 받든 곳 2009-02-13 23:34 
    힘 내시고 꼭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계가 사회보다는 깨끗하다고들 하는데   그것도 아닌 거 같아요.   그래도 부리님 같은 분들이 계시니 다행입니다.   알라딘의 양심 부리님, 화이팅! ^^
 
 
2009-02-13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9-02-13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동숭동에 있는 성대는 아니겠죠?

마늘빵 2009-02-1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숭동이라면 서울대 의대를 말씀하시는거 같은데요? ^^ 저는 버킹검대가 거기일거라고 짐작은 했어요. 이건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네요. 그 기자분은 왜 멈추셔서는... -_- 이런건 피디수첩 감인데. 피디수첩이나 W같은데서 한번 다뤄주면 좋을텐데 말여요. 아니면 시사인이나 한겨레21 이런데도 좋을 듯 하고.

2009-02-13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리 2009-02-13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어..제가 존경스러울 것까지야.. 제 사익이 그다지 걸려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밖에 있어서 자유롭기 때문에 이럴 수 있는 거죠. 물론 많은 불편함, 예를 들어 학회를 더이상 못나간다는 등의 일이 있긴 하지만, 그건 먹고사는 문제는 아닌지라... 있잖아요, 누구나 가끔은 정의롭고 싶을 때가 있어요. 지금 제가 그럴 때일 뿐이고요. 님도 돌이켜보면 정의로운 적이 있지 않았어요?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해도 말입니다
아프님/그 조교가 끝까지 증언을 안하니, 자칫하다간 명예훼손이 될 수 있으니깐요. 글구 님이 말씀하신 매체들, 하나하나씩 해볼 생각입니다
메피님/어...이런 쪽집게!!! 어케 아셨죠?^^
속삭님/뒷감당은 당근 자신없지요. 제가 남한테 싫은소리하고나면 오래도록 피해다니는데, 제 은사님들한테 저런 일을 벌이면, 어휴...

기인 2009-02-13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저도 '버킹검대'의 의미를 알아들었는데, 몇몇 분들 오해하시는 것 보고 신기^^; 했어요. 부리님 힘내세요. 마음 속으로부터 지원합니다.

새초롬너구리 2009-02-13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저 중학교때 무슨 캠페인만화 그리기 대회를 했는데 (뭐 아시죠? 담임인지 미술샘인지 몇몇학생 찍어서 "제출해." 하면 그중에서 뽑혀서 또 높은데 올리고 하는거), 제가 구청장상인가 교육감상인가 탔어요 (일부러 어디에서 수상한지 물흐리고 있음). 전 베꼈는데. ㅡ.ㅡ

그때 정말 며칠동안 잠도 못자고. 상받으러 가는날까지 고민고민해지요. '자수하자', '아니다. 나중에 밝혀지면 말하자', '아니다. 밝혀질일 없다. 사실 그건 니가 공부잘해서 선생님이 좋게 봐준걸로 괜히 이런 상을 빗댄거다. 너만 입다물면 된다' 등등.

여하간 멋진 만년필을 부상으로 탔지만, 전 다시는 꿀릴짓 하지 말자고 결심했지요. 그 만년필은 볼때마다 찔려서 아마 어디론가 제 머리 몰래 제 손이 어딘가로 숨겼습니다.

양심을 속이지 말자!!! 잘못한거 결국은 다 죄값치른다!!!!

전 무슨 죄값을 치렀냐면...ㅡ.ㅜ

2009-02-14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9-02-16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밝히시니 비밀 댓글을 했던 보람이 없지 않습니까. 으흐흐흐

2009-05-29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건 외국의 버킹검대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버킹검대 의대에 근무하는 ㅅ모 교수가 4년짜리 연구비를 받았다. 

하지만 ㅅ모교수에겐 그 연구를 수행할 능력이 없었고, 

그렇다고 배워서 연구를 할 의지도 없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안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 어느덧 4년이 지났다. 

이젠 연구결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시기. 

ㅅ모 교수는 조교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이건 들은 얘기다. ㅅ교수는 이 사실을 부인했다)

" 뭔가 좀 만들어 봐라. 이건 논문도 아니고, 결과보고서는 아무도 안본다." 

하지만 아무도 안보는 건 아니었고, 

워낙 조작을 허술하게 한 탓에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조작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게 문제가 되자 ㅅ교수는 조교에게 말한다. 

"니가 다 뒤집어 써라." 

조교는 조교직에 사표를 냈고, 대학원 박사과정도 자퇴를 한다.  

그 다음부터 ㅅ교수는 "그 조교가 원래 좀 이상한 애였다. 걔 때문에 내가 큰 피해를 봤다"고 떠들고 다녔다.

사건이 그렇게 마무리되었을 무렵, 평소부터 버킹검 대학에 관심이 많았던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흥분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우리나라도 아닌 외국에서 말이다.

그 구성원 모두가 그런 결말에 동의한 것도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다. 

난 연구비의 책임자를 찾아가 문제의 결과보고서를 얻었고, 

"인터넷과 언론에 알리겠다"고 했다. 

담당자는 내 눈빛을 보고 '진짜구나' 싶었고, 

버킹검대학에 연락을 했다. 

 

내가 인터넷 악플을 다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라  

사람들은 내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버킹검대는 난리가 났다.

ㅅ교수는 "쟤 좀 말려달라"고 여기저기 전화를 넣었고, 

내가 버킹검 유학 시절 날 지도했던 ㅊ교수는 "내가 다친다"며 날 만류했다. 

하지만 내가 거기서 멈춘 건 버킹검대의 주임교수 때문이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ㅅ교수가 그랬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나도 ㅅ교수를 자르고 싶다. 

하지만 내 권한은 아니다. 약속한다. ㅅ교수를 앞으로 승진시키지 않겠다. 

4년간 승진을 못하면 잘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주임교수는 버킹검대 동문들에게 메일을 보내 이 사건을 더이상 언급하지 말 것과 더불어 

ㅅ교수에 대해 책임지고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2009년 1월, 난 ㅅ 교수가 부교수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식을 듣고 놀란 친구가 말한다.  

"세상이 다 그렇지 뭐."  

난 결심했다.

세상이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만은 그렇지 않게 만들어 보겠다고.  

하지만 내가 가진 건 너무도 미약했다.  

당사자인 조교는-지금 어머니 일을 돕고 있단다-죽어도 증언을 해줄 수 없다고 버텼고, 

더이상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녀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내가 아는 기자라곤 한겨레와 오마이가 전부였다. 

인터넷에 올려봤자 얼마나 파장이 있을 것인가. 

아는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명예훼손 당하기 십상이다"란 말만 돌아온다. 

그래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결과보고서를 조사하고 있을 무렵, 

지원군이 도착했다. 

KBS 기자가 어디서 들었는지 이 사건을 취재 중이었고, 

어떤 경로로 해서 나한테까지 연락이 된 거였다. 

그가 웬만한 건 다 알고 있었기에 내가 추가로 해줄 말은 별로 없었다. 

 

그 기자는 어제 버킹검대에 전화를 걸었다. 

작년에 이어 버킹검대에선 난리가 났는데, 

그 규모는 작년과 비교할 만한 성질은 아니었다. 

난 여러 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그들이 물은 건 이거였다. 

"Is it you?(그거 너니?)"  

내가 제보를 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어차피 할 일이었기에 나라고 오해받는 게 그리 억울하진 않다. 

그 댓가로 난 이제 버킹검대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할 것이고, 

밖에서도 그쪽 분들을 피해 다녀야 할 것이다. 

그런 정도의 손해 역시 내가 감수해야 할 몫인지라 역시 억울하진 않다. 

 

지금 버킹검대에서는 기자의 취재가 진행 중이란다.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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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2-1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이런 건 다 까발겨야 합니다. -_- 아니 그 조교는 왜... 그쪽에서 무슨 조치를 취했나요? 아 그냥 이 글만 읽어도 막 화나네요.

비연 2009-02-11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정의는 어디로 실종된건지. 심란한 글입니다..기자가 다 알리고 그 교수 매장되길.

Mephistopheles 2009-02-1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다른 대학도 아니고 버킹검대라면 국립이잖아요.
결국 국립대에서 나오는 연구비는 뻔할 뻔자 어디서 나오는지 뻔한데..
저런 저질들이 지성의 전당에 붙어있다니..!!

부리 2009-02-11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알고 게시군요 정확히 국립은 아니죠 영국 왕립 부설학교입니다.
비연님/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세상이 다 그렇기에...
아프님/그니깐요. 저도 얼마나 화가 났겠어요. 왜 저밖에 나서는 이가 없을까 원망도 많이 했어요. 영국만 해도 인구가 몇천만은 될텐데 말입니다

2009-02-11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02-1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다들 당연히 해야한다고 하면서도 그저 지나가는 일 중 하나인데, 짝짝짝.

hnine 2009-02-1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속의 ㅅ교수가 한국분이십니까?
영국까지 가서 나라 망신 시키는군요.

기인 2009-02-11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덕분에, 사회가 조금 더 좋아지겠지요. :)

부리 2009-02-11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힘이 센 분들 중 훈늉하신 분들이 워낙 많아서 사회가 좋아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저를 지도하신 츠바라카 교수님은 기자에게 "이 사건은 교수간 알력으로 빚어진 음해다"라고 주장하시네요.
hnine님/아 그 ㅅ교수는 일본인이어요 사요나라 사또꼬라고요...^^
주드님/사실 저도 하기 싫고 피곤했는데요, 마침 구세주가 나타난 거죠. 전 별로 한 거 없어요
속삭님/그럼요 호호.

hnine 2009-02-11 17:43   좋아요 0 | URL
휴, 다행이네요.

뷰리풀말미잘 2009-02-1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랑캐들이란..

BRINY 2009-02-11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도 그런데 다른 곳들은 오죽하겠어요...차라리, 있는 자들이 더 하는 거라면 좋겠습니다.

2009-02-11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9-02-1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또 승질나네. 우리나라나 남의 나라나 나쁜 일에 대범한 인간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요.

마노아 2009-02-1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댓글로밖에 지지를 못한다는 게 미안해집니다.ㅠ.ㅠ

부리 2009-02-12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아닙니다. 그렇게라도 해주시는 게 얼마나 고마운데요
깐따님/안녕하셨어요. 근데요 제가 은유적으로 표현하려 해서 그렇지, 버킹검대는 울나라에 있습니다. 동숭동에요.
속삭님/아앗 그떻게 프로포즈를 해버리시니, 전 어쩌라구요...
브리니님/가진 조직의 속성은 언제나 당장의 안전이더군요. 흐음..
말미잘님/그, 그게요.. 사실은 울나라 얘기랍니다.
hnine님/제가 님 서재에 댓글로 달께요. 죄송해요.

2009-02-13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리 2009-02-13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그래도 이 세상엔 미모의 님이 있으시잖아요. 미모의 님이 응원해주신다니, 무서울 게 없어용^^

balmas 2009-02-13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화이팅!^^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