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소녀
잭 케첨 지음, 전행선 옮김 / 크롭써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대학평가를 위해 부산에 내려갔을 때, 난 그전 주의 경험을 떠올렸다.

평가를 하면서 평가 보고서까지 같이 쓰려니 시간이 빠듯했던 기억.

그래서 난 부산에 가기 전날, 해당 대학에서 준비한 책자에 기초해 보고서를 거의 다 써 놓았다.

현지에 가서 몇 가지를 확인하고 나자, 난 정말이지 할 일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평가보고서를 쓰려고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난 D 대학 캠퍼스의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햇살은 따사롭고 캠퍼스 정원은 아름다웠지만,

책을 읽는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데 혼자 놀아서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내가 읽던 책이 <이웃집 소녀>(이하 ‘소녀’)였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1960년대 미국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토대로 만든 소설로

헐리우드에서 두차례나 영화화된 바 있다고 한다.

그랬다면 한번쯤 들어봤을텐데 왜 기억이 없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당연했다.

내용상의 잔혹성 때문에 영화가 우리나라에 수입되지 못했으니까.

소설의 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이런 소설을 창착해내는 인간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들어있는 것일까?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앉아 소설의 잔혹성과 비도덕성에 대해 비난했다.”

이 사건이 실화라는 걸 아는 순간, 역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소설이 실화를 “의도적으로 순화시킨 결과물”이란 작가의 말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난 무거운 마음으로 잔디밭을 서성였다.

그 동안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상념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인간이 어떻게 저리도 잔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그 잔혹한 게임에 동참했던 아이들의 악마성에 대한 분노,

사태를 수수방관했던 주인공에 대한 더 큰 분노.

당연하게도 얼마 전 벌어졌던 조두순 사건이 머릿속에 오버랩됐다.

하지만 그 사건보다 이 책에 기술된 사건이 더 끔찍하게 다가온 이유는

한명이 아닌, 여러 명이 같이 벌인 잔혹극이라는 것과

그 주체가 혈연으로 맺어진 친척과 그 아이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읽는 이에게 충격을 던지는 능력 면에서 이 소설은 단연 최고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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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9-11-04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물을 좋아하는 저도 이 책은 쉽게 집어들지 못하겠던걸요..
대충 줄거리를 봤을 때.. 아이들이.. 순수한 악의 단면을 갖고 있는 애들이기에 못 보겠더라구요..ㅠㅠ
결국 딴 책 샀어요~~

수퍼겜보이 2011-01-10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까지 이렇게 말씀하시니 도저히 못 읽겠네요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