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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다카세 준코 지음, 허하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평점 :
남편을 위로하고 남편 말에 귀기울이며 이쓰미는 혼잣말 한다. 혹시 정말로 계속 목욕을 안 할 거야? 놀라웠다. 이 온화한 사람과 결혼하고 삼십대도 중반을 넘기면서 이제 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일 따위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를 가지려는 것도 그만뒀고, 부부 둘이 그런대로 즐기면서 나이를 먹어가리라 생각했다. 나이를 먹는 상상 속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몹시 빨라서 마치 징검다리 같았다. 서른다섯 살인 지금, 쉰 살 무렵, 일흔 살 무렵, 그리고 죽음. -p.22
다른 사람과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평생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데 타인에 대해서는 오죽할까. 나만해도 족발의 뼈까지 뜯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젠 뼈에 붙은 고기까지 먹는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샐러드 좋아해서 뷔페에 가면 샐러드 먼저 먹고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야채가 싫어져 샐러드를 잘 먹지 않는다. 야채를 좋아하는 건 변함없지만 익힌 야채쪽을 선호한다. 어린 시절 그리고 좀 더 젊은 시절의 나는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6년부터 페미니즘 책을 읽고 강의를 부지런히 따라 다녔으며 2018년 부터는 숫제 페미니즘 책 읽기를 같이 하고 있다.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깨달을 때면 어김없이 '내가 이럴 줄은 몰랐어!' 하게 된다.
그래서 어렵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살아간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따라와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상대의 수많은 장점도 그렇지만 단점을 알면서도 그 사람 옆에 있고 싶은거. 사랑하지 않는다면 단점 하나에도 돌아설 수 있고 손을 놓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사람 옆에 있고 싶은것, 그게 사랑이 아닐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차 허락할 수 없는 치명적인 조건 혹은 한계가 있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결혼하기로 결심한 남자는 결혼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알고 지낸 남자다. 이런 남자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함께할 미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다. 이 남자와 나의 수입으로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떨지 예측할 수 있고 이 남자와 나의 식성으로 우리의 식생활이 어떨지도 예측할 수 있다. 이 남자와 나의 성격으로 우리가 더불어 함께하는 삶이 어떨지 예측할 수 있다. 그건, 지금까지의 나와 지금까지의 당신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지금의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게 되고 지금의 이 남자가 다른 남자가 된다면 그 때의 나는 어떻게 될까? 이를테면 나랑 감자탕을 맛있게 먹던 남자였는데 결혼후 몇 년이 지난 시점에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면? 나와 함께 환경운동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일회용품에 중독되어 버린다면? 나와 함께 여성의당을 지지하다가 결혼 후에 이준석을 지지하게 된다면? 이런 변화들 속에서 어떤 것들은 비록 '그럴 줄 몰랐지만'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랑 감자탕에 소주 먹는 시간 너무 좋아했지만 채식주의자가 된다니,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다른 음식을 차려두고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글쎄, 일회용품을 생각없이 사용한다면 그러지 말라고 말하겠지만, 그렇다고 이 새끼랑 못살겠다 하게 되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준석을 지지한다면..... 그만 두자, 이런 쓸데없는 상상은.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의 기준에서 남편(혹은 연인)의 어떤 변화들은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일 수 있겟지만, 그러나 아무리 '당신이어도' 도저히 안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폭력일 수도 있고 포르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냄새도 그렇다. 나는 냄새 진짜 참을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언제나 그런것처럼,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된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더, 구체적인 대상을 넣고 생각해보았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 누군가를 대입해놓고, 그 사람이 어느날 목욕을 거부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면,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이건 뭐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아니, 아니다. 나는 사랑할 수 없다.
이래서 어렵다. 만약 이 남자가 애초에 목욕을 싫어하는 남자고 냄새나는 남자였다면, 이 남자를 사랑하는 단계까지 오지 않았을 거다. 애초에 나는 냄새 나는 사람 정말 싫어하니까. 연인들이 섹스하기 전에 손도 안씻고 덤벼들면 너무 짜증이 나서 손씻고 오라고 말을 해야 하는게 나다. 내가 특별히 남들보다 더 강박적이거나 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씻지 않은 손으로 나를 만지는 거 너무 끔찍하다. 너무 더럽다. 나는 요즘도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쓰곤 하는데, 그건 지하철 안에서 어떤 남자들로부터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냄새들이 너무 힘들고 그래서 마스크를 쓴다. 더 강박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냄새에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기는 하다. 비온 후의 숲냄새를 좋아하고 값비싼 캔들의 향도 좋아한다. 요가센터의 인센스 스틱 향도 좋아하고 갓 내린 커피의 향도 좋아한다. 땀냄새보다 향수를 좋아하고 땀냄새보다 차라리 진한 향수를 뿌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사랑해서 내가 선택한 사람,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고 함께 잠드는 사람이 어느 순간 목욕하기를 그만둔다?
와- 대환장...
책속 남편은 성실하게 직장생활 잘 하고 아내와도 사이가 좋았는데 어느날 목욕을 하지 않기로 결심을 한다. 어쩌면 얼마전에 회사 후배가 장난으로 물을 뿌린 뒤에 충격을 받고 그렇게된 건 아닐까, 어쩌면 우울증인걸까 추측해봐도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남편은 수돗물의 냄새를 견딜 수 없고 그래서 목욕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가끔 생수로 얼굴만 닦는다.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서 냄새가 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내는 남편이 회사에서는 괜찮은건지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는 괜찮은지 걱정된다. 게다가 냄새가 점점 더 심해져서 생수를 잔뜩 사와 머리라도 감으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감으면서는 비누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로부터 냄새가 가실 일이 없다. 그의 냄새는 더 진해지고 더 지독해진다. 그런 그가 참을 수 있어하는 물 좋아하는 물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다. 비가 오면 그걸로 자신의 몸을 흠뻑 적시고 들어와 마른 수건으로 닦는다. 아내는 혹여라도 남편에게 상처를 줄까봐 냄새가 지독하다는 말을 하지도 않고 제발 씻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울면서 애원하거나 하지도 않고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랄까. 씻지 않는 남편도 짜증났지만 나는 이 아내는 뭐 이렇게 착해가지고 이런 남편을 받아들이려는걸까 수십번 생각했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에게는 남편이 있고 나에게는 남편이 없는걸까? 그런데 책 속에서 이런 구절을 보게 된다.
용서하고 싶어서 괴롭다. 유약한 남편을 용서하고 싶다. 미쳐가는 남편을 용서하고 싶다. 하지만 나를 혼자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p.133
수돗물에서 냄새가 나 목욕할 수 없다는 남편을 이해한다. 나는 종이컵에서 냄새 나서 종이컵의 음료는 마실 수 없다는 사람을 만나보기도 했다. 나의 경우 햇반을 전자렌지에 돌리고난 후에 나는 그 특유의 냄새를 너무 싫어해서 햇반을 가급적 먹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무심히 넘기지만 나는 도저히 넘겨버릴 수 없는 냄새가 누구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편은 그 수돗물의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내는 처음에 같이 목욕을 안해보기도 하면서 어쨌든 남편과 계속 함께하는 삶을 택했고. 남편은 회사에서 영업직이었는데 당연히 남편의 냄새는 회사에서도 문제가 된다. 대중교통 안에서는 남편 주변에 사람이 없다. 그런 남편이 어느날 아내의 친정 근처에 강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거기에 가 강가에 몸을 담그면서 기뻐한다. 그래, 남편과 함께 사는 삶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도시가 아니라면 가능해진다. 도시가 아니라면 한적한 시골에서, 다른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매일 강물에 몸을 담그면서, 어쩐지 고독하지만 자유로우면서 둘이 함께하는 삶이 가능해질것이다. 아내는 남편과 함께할 방법을 찾고 자신의 현재 상황에서 중요한 것들을 바꿔나간다.
나는 목욕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하기 싫다. 목욕을 거부하는 사람과 특히나 함께 살아가는 건 싫다.
책에서도 아주 오래전의 인간에겐 목욕이란 게 없었을 것이라고, 이렇게 가끔 강물에나 몸을 담갔을 거라고 얘기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그 오래전의 삶을 굳이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 삶을 선택한 사람을 '그래 그 땐 그랬겠지' 하면서 받아들일 생각도 없다. 무엇보다 나는 '나를 혼자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의 감정이 절실하지 않다. 사실 그런 감정이 별로 없고, 그게 왜 어떤 사람들에겐 이렇게나 절실한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감정, '나를 혼자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감정이 상대의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게 만들것이다. 그런 감정이 결국은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유지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는, 이렇게 냄새를 풍기다니 나는 혼자인 편을 택하겠어! 쪽인 것이다. 인생이여..
나는 백화점에 들어섰을 때 백화점 특유의 1층 향수 냄새 화장품 냄새를 좋아한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방문할 때면 그 냄새를 한껏 들이키며 '나는 세속적이야, 백화점 1층 냄새 너무 좋아!' 한다. 백화점 쇼핑하다가 나눠주는 캔들이나 향수 시향지는 받아서 향을 맡곤한다. 좋으면 그 매장에 찾아가 이거 뭐에요? 묻고 사들고 들어올 때도 여러번이다. 일전에 추운 겨울 나에게 자켓을 벗어주었던 남자에게 그 자켓을 돌려주었을 때, 그가 집에 가는 길에 '내 자켓에서 니 향수냄새가 난다'고 말했던 순간 같은 것을 나는 좋아한다. 이런 나는 그래서 어떤 인간 본연의 체취가 싫다. 향수를 뿌리지 않거나 화장품을 잘 바르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간혹 은은한 그 사람 고유의 체취가 난다. 싫어서 도망갈 정도는 아니지만 '아 체취난다..' 속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술에 떡이 되어 들어가도 샤워를 하고 자는 이유는 하루만 안씻어도 몸의 구석구석에서 지독한 냄새들이 풍기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냄새역시 나에게는 상상 가능한 지점이기 때문에 그래서 씻지 않는다는 행위에 대해 이미 지독한 냄새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에서 갑자기 부츠 벗고 섹스하는 씬이 나온다거나, 하루종일 일하고 그대로 만났는데 상대의 다리 위에 앉아버린다든가 하는 씬이 나오면 증맬루 너무나 괴롭다. 아직 씻지 않았는데 겨드랑이와 똥꼬에서 얼마나 냄새가 날까 ㅠㅠ 이런 것 때문에 나는 너무나 괴롭다. 그런데,
지독한 외로움, 지독한 혼자 되기 싫음, 어쩌면 지독한 사랑, 어쩌면 지독한 받아들임은, 씻지 않은 채로 한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는 남자와 같이 밥을 먹고 한 침대에서 잠들게 한다. 어쩌면 책 속 아내에게 냄새는 그렇게까지 예민한 지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랑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보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책 속 아내에게는 인류애가 더 크게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만 돌아서버리는 건,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틀린 사람 취급하는 건 인간에게 권장되는 건 아니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 나와 다른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을 지지하지만, 그러면서 이게 뭐야, 아니 목욕하지 않는 사람은 못받아들여 하는 이 나는 뭐란 말인가... 바람직한 인간, 피씨한 사람은 나같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아, 그렇지만
안돼, 나는 안되겠다 정말 안되겠어.
갑자기 변해버린 게 목욕이라면, 아, 나는 안되겠어. 어떻게든 함께할 방법을 찾느니 나는 혼자를 선택하겠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책은 냄새 얘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냄새에 집중한 건 이 책을 읽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