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들 창비세계문학 2
리처드 라이트 지음, 김영희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 자기가 왜 죽였는지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할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 이유를 말하려면 자신의 삶 전부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메리와 베시를 죽인 행위 자체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게 무엇인지 결코 누구도 이해시킬 수 없다는 바로 그 생각과 느낌이었다. 그의 범죄는 밝혀졌지만, 그것을 저지르기 전에 그가 느꼈던 느낌은 결코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죄를 인정함으로써, 그의 삶이었던 그 깊고 숨막히는 증오를, 원치 않아도 품을 수밖에 없던 증오의 느낌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죄를 인정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전달할 수 있을까? (pp.431-432)

 

 

 

 

내가 만약 이 한 권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뉴스에서 범죄자를 다룰때 그 범죄자에 대한 분노를 가졌을 것이다. 잔인한 범죄에는 그에 맞는 형벌을 가해야한다고 당연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한 사람의 범죄자가 저지른 범죄가 사회적 문제때문일수도 있다고 말했던 사람들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어떤 '죄'를 저지르기까지는 그 사람의 삶이 형성된 과정과 시간이 있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축적된 경험과 쌓였던 분노.

 

 

이 책 속의 흑인 청년 비거는 마음 속 깊이 분노를품고 있었다. 그 분노가 언제고 폭발할 것 같아서 자신이 두려웠다. 자신 안에 분노가 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런 분노로 인해 백인 여자를 죽이려고 계획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방 하나에서 네 가족이 함께 살았고 하루하루 먹고 사는것도 힘겨웠다. 그가 그 자체로서의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동네 친구들과 모여서 거리를 방황해야했다. 물론 그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비행기를 몰아 보고도 싶었고 군인이 되고도 싶었다. 사업을 하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흑인에겐 이 모두가 허락되지 않았다. 백인들은 그들에게 교육을 받으라고 했으며 자유롭게 살라고 했다. 단, 그들-백인들-이 정해놓은 구역 안에서만.

 

 

 

물론 그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주는 백인들이 있었다. 비거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했던 돌턴 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흑인들의 청년 회관에 탁구대를 기증하고 거액의 기부금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가진 경계선 바깥의 땅에서만 흑인을 거주하게하고, 그들로부터 높은 임대료를 받는다. 그것이 관습이었으니까. 그것이 그의 이득이었으니까. 임차인과 집주인으로서 흑인은 더 가난해지고 돌턴씨는 더 부자가 됐다. 그런 그가 일자리를 주고 기부금을 냈다고해서 흑인의 삶을 이해했다고 보여질 수 있을까? 그를 마냥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비거의 변호를 맡은 맥스 변호사는 돌턴을 향해 '점잖은 돌턴 씨는 돈을 기부함으로써 자신의 기분은 달래보려 했다(p.552)' 고 말한다. 나는 돌턴을 보면서 작년 연말에 보았던 뉴스를 떠올렸다. 뉴스에서는 삼성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얼마냈는지 말하고 있었다. 감히 내가 만져볼 수 없는 큰 금액이었고 그 금액은 재작년보다 더 늘어난 금액이라고 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것, 힘이 센 쪽이 약한 쪽을 억압하는 것, 차별을 하고 언론을 장악하는 것. 이 모두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일이었다. 나는 내가 만약 오래전의 미국에서 태어난 백인이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당연한 듯 흑인을 노예로 삼지 않았을까. 나는 그 때 세상이 내게 보여주던 신문 기사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았을까. 그 때 신문의 이런 기사가 실렸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을까.

 

 

이곳 남부에서 우리는 흑인이 분수를 지키게끔 단호히 조치하며, 좋은 뜻으로건 나쁜 뜻으로건 백인 여자 몸에 손이라도 닿을 시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만든다.

흑인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상상하고 불만을 품을때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은 시민들이 직접 법을 대신해 말썽을 부리는 검둥이 한명을 본보기로 삼는 것이다. (p.393)

 

 

지금 보면 이렇게 무섭다고 느껴지는데, 내가 그 당시에 이 기사를 봤더라도 이것이 선동적이고 편견을 조장하는 무서운 기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내가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난 흑인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매일매일의 고된 일상을 당연하다 여기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을까? 나는 비거처럼 분노를 간직한 채 그것을 터뜨리는 것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원망하기는 했을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그랬던것처럼.

 

 

"신문에서 매일 사람들에게 증오를 불어넣는 판국에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 마음을 바꾸겠다는 겁니까?" 잰이 물었다.

"하느님께선 바꾸어놓으실 수 있지요!" 목사가 열을내며 말했다. (p.405)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펜을 들었다. 그리고 밑줄을 긋고 그 밑에 이렇게 낙서했다. '그렇다면 그동안엔 왜?' 이 세상을, 흑인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하느님이 바꾸어놓을 수 있다면 대체 왜 그동안엔 바꾸지 않았던 것일까? 어떻게 하느님을 원망하기 보다 믿을 수 있을까? 백인도 믿는 하느님을, 백인과 흑인을 만들어 둔 하느님을, 죽으면 우리 모두가 같은 곳에 갈 거라는 하느님을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왜 죽어서는 같은 곳에 갈 수 있는데 살아서는 같은 곳에서 살면 안되는걸까? 하느님말고는 전혀 의지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감히 하느님을 원망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걸까?

 

 

 

책은 처음부터 조마조마하게 읽힌다. 그러다 결국 이글이글 분노가 타오른다. 흥분하고 수치심을 느끼고. 특히나 흑인들도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비거에게 다가가고 악수를 하고 같이 밥을 먹자고 청하는 메리와 잰을 볼때는 그들의 그런 서투른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미 삶 전체를 억압 받으며 살아온 사람에게 갑자기 손을 내밀어 우리는 달라, 너도 같다고 생각해, 라고 말하며 그런 행동을 부담스러워하는 비거로 하여금 자신들과 동석하게 만들다니. 그들의 의도가 선했다한들, 그 순간의 비거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은게 아닌가. 그들이 생각한 건 그들 자신의 기분이나 만족감이 아니었던가,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해서. 비거는 훗날 그때의 자신이 '비굴한 개가 된 기분(p.489)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마지막 맥스 변호사의 변호에 대해서는 할 말도 많고 의욕도 충만해져서 오히려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것 같아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다. 나는 그가 최선을 다해 싸웠다는 것을 안다.

 

 

 

 

책에 실린 작가연보를 보면

1926년 멤피스 도서관은 흑인에게 책을 대출해주지 않아 백인 동료의 이름을 빌려 책을 봄. (p.658)

 

 

라고 되어있다. 작가인 리처드 라이트는 실제로 그 삶을 살았다. 그리고 책을 읽었고, 어쩌면 그래서 이 소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나왔을 당시에 백인에게 또 흑인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 상상만 해볼 뿐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소설이 왜 쓰여져야 하는지를 알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내가 처음 소설이란 걸 읽게 됐을 때, 그 때 소설은 내게 그저 재미를 주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게 소설은 다르다. 재미와 이야기를 주고 감동을 준다. 세상에 일어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말해준다.

 

무엇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하나의 눈에 보이는 사건 뒤로 길고 긴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하나의 범죄는 한 인간이 저지르는게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가 저지른 것일 수 있다는 것도.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reamout 2013-01-13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 읽기 시작한 소설이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인데, 그 소설 속 현재가 1928년이고 멤피스와 멀지 않은 남부예요. 흑인에 대한 일상적 차별, 유대인에 대한 미움, 공산주의자에 대한 무조건적 증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부자들의 조소. 20세기 소설의 4분의 3은 여기에서 나온 듯 해서.. 마음이 쓸쓸하네요.

다락방 2013-01-14 09:50   좋아요 0 | URL
오, 드림아웃님, 이 책도 그래요. 흑인에 대한 일상적 차별과 유대인에 대한 미움, 그리고 공산주의자에 대한 증오까지 이 책에 다 나와요. 언론에서는 전 국민이 공산당을 미워해야 한다고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내죠. 물론 흑인에 대해서도 그렇구요. 어휴, 읽으면서 어찌나 답답하고 무섭던지요. 그 시대를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견디며 살아온걸까요..

다락방 2013-01-1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

오늘 100, 총 285596 방문

다락방 2013-01-1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글에 추천이 (이것밖에)없다니 이상하군.

moonnight 2013-01-16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네번째 추천은 저예요. ㅠ_ㅠ

얼마전에 영화 '헬프'를 봤어요.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저 시대에 살았더라면 대다수의 백인들과 다르게 흑인들을 동등하게 대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다들 그러니까,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 자체가 마비된 사람들을 보니, 영화라도 너무 무섭게 느껴졌어요. 이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맞아요. 정말 좋은 리뷰입니다. ^^

다락방 2013-01-18 12:18   좋아요 0 | URL
저 역시도 마찬가지에요, 문나잇님. 제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들을 대할수 있었을까, 를 생각해보면 도무지 자신이 없더라구요. 그러면서 그 시대에 그 사람들이 정의롭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지요.

문나잇님, 이 책이 좋은 책입니다. 읽어보세요. 우리는 하나의 사건뒤로 숨겨져있는 길고 긴 사연이 존재함을 알 수 있어요. 제게는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이었어요.

이진 2013-01-1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글에 추천이 없다니 이상하군요.

차별은, 그 자체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것이죠. 아픈 것이기도 하구요. 굳이 흑인뿐만이 아니라도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보이는 것이 차별아니겠습니까. ㅠㅠ 저는 조선시대만 생각하면 울컥해요. 핍박받은 여성들을 떠올리면 더욱요. <채홍>을 읽어서 그런 걸까요.

다락방 2013-01-18 12:2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사실 저는 추천이 별로 없다니 이상하군, 하고 제가 댓글 단 게 나름 유머였는데 아무도 웃어주지 않아서 뭔가 자뻑에 빠진 여자사람이 된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네, 차별은 흑인에게만 가해진건 아니죠. 여자에게도 성소수자에게도 유대인에게도 가해졌었죠. 그것이 폭력적이란 것을 가하는 당시에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것이 주는 폭력성에 다들 취하는 것 같아요. 한참 시간이 지난후에야 알 수 있으려나요. 당시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흐음.
 
인물과 사상 2013.1 - Vol.177
인물과사상 편집부 엮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앗. 서민님의 리뷰만 재밌을줄 알았는데 다른 글들도 좋구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금꽃 2013-01-11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 다락방님 인물과 사상도 보시네요. 서민님 리뷰가 실려있나요?
예전에 인물과 사상 구독했었는데..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서민님 글도 보고싶네요. 서민님 홈페이지에 가봐야겠다.
생각난 김에. 희희.

다락방 2013-01-13 20:26   좋아요 0 | URL
인물과 사상에 서민님이 매달 책 리뷰를 쓰셔요. 재미있더군요, 소금꽃님. 제가 [인물과 사상]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노란곰 2013-01-1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인물과 사상이 올라오니 반가운 맘에 댓글^^ 정기구독중인데, 처음에 아무런 기대없이 따분한 제목에 괜히 신청했나란 생각을 했지만 왠걸요, 가끔 무릎을 치는 내용도 들어있고 또 지식인코스프레? 분위기도 낼 수있어 요즘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있어요. 작년엔 강신주 샘과 정지영 감독님의 글이 너무 좋았어요^^

다락방 2013-01-14 09:28   좋아요 0 | URL
저도 정기구독할까 생각중이에요. 아니면 가끔 이렇게 살까 싶기도 하고요. 이번에는 서민님의 글과 링컨에 대한 글이 특히 좋았어요. 링컨에 대해 우리나라 위인전에서 과장되게 좋게 묘사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인줄은 몰랐었거든요. 충격적이었달까요. 저도 기대이상으로 좋았습니다. 헤헷
 
마음이 아플까봐 꿈공작소 5
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이승숙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는 29개월을 살고 있는 조카가 있다. 아직 소녀라고 부르기엔 어린 나이. 집 밖을 벗어나면 그곳이 어디든 소리지르며 뛰어다닐 만큼 순수하다. 말을 할 수 있게 되고부터는 이 아이는 아주 궁금한 게 많다. 수시로 묻는다. 이모 왜? 할머니 왜? 엄마 왜? 작년 가을, 온 가족이 기차를 타고 부산을 가고 있는중에 자기 아버지의 무릎 위를 밟고 서서 뒤를 돌아 나에게 쫑알쫑알 대는데, 지나던 승무원이 위험하니 자리에 앉으라고 얘기했다. 아이 아버지는 앉으라고 아이를 달래는데, 아이는 승무원을 향해 또 묻는다.


"왜?"


자주 우리 집에 놀러오는 조카는 퇴근후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내가 내 방에 들어가기 무섭게 쪼르르 나를 따라온다. 그리고는 내게 이모 뭐해? 하고 묻는다. 나는 옷갈아 입어, 라고 대답한다. 내 책장에서 책을 꺼내고는 이모 책읽자, 라고 한다. 그렇게 침대위에 책을 꺼내두고는 곧 안아달라고 한다. 저기 위에, 자신의 팔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책을 꺼내려고. 내가 번쩍 조카를 안아주면 조카는 책장 맨 위의 책을 어김없이 꺼내고서는 또 보자고 한다. 아직 글자를 익히지도 못한 아이인데. 키우는 열대어 어항 앞에 가서는 물고기 밥 줬냐고 묻고 삼촌 방에 들어가서는 이것저것 다 만져가며 이건 뭐냐고 묻는다. 내가 하품이라도 할라치면 이모 졸려? 라고 묻고 할아버지가 등산복을 꺼내 입으면 할아버지 어디가? 라고 묻는다. 불분명한 발음으로 조카가 물어댈때마다 우리는 즐겁게 웃으며 대답해준다.


이 책의 호기심 많은 소녀를 만날 때, 딱 나의 조카를 보는 것 같았다. 너는 누구 조카야? 라고 물으면 이모 조카야, 라고 대답하는 나의 조카.







조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할머니다. 참 이상도하지, 할머니가 키워준 것도 아닌데, 가끔 우리집에 놀러올 때 보는게 전부인데, 그런데 왜그렇게 할머니를 좋아할까. 조카가 보고싶은 마음에 영상전화를 하면 이모, 하고 부르고서는 이내 할머니 보여줘, 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투덜대면서 할머니를 바꿔줘야 한다. 내가 걸었는데!!!!! 부산 여행중에는 차 안에서 조카가 낮잠이 든 터라 아이 엄마와 잠든 조카를 두고 다른 식구들끼리 잠깐 나갔다 왔다. 자갈치 시장에 갔다 다시 차로 돌아갔는데, 고새 일어난 조카는 할머니와 이모를 찾으며 울었단다. 차 문을 열고 우리가 타기 무섭게 조카는 자기 할머니에게 얼굴을 들이밀고는


할머니 보고싶었어


라고 말한다. 아, 이 어린 아이가 보고싶다는 말을 아는구나, 그게 뭔지 아는구나.




소녀에게는 할아버지가 그런 존재였다. 소녀가 세상의 모든걸 궁금해하고 호기심 가득한 채 신나게 지낼 수 있었던 건 언제나 자신의 옆에 할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호기심에 답을 해주고 또 그 모든 말들을 들어주었던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가 어느날 자리를 비운다. 소녀는 텅 빈 의자를 발견하게 된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나는 그림책을 읽다가 울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소녀가 이 텅 빈 의자를 발견하는 순간, 텅 빈 의자 앞에 놓여있는 소녀를 마주하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이 아이에게 처음 닥쳐온 이별, 이 소녀는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할까. 소녀는 이 아픈 마음을 어쩔줄몰라 자신의 마음을 꺼내어 병에 넣고 목에 건다. 마음을 꺼내고 나니 더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다.






아이에게 죽음을 가르쳐줘야 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얼마전 영화 『아무르』를 보면서도 나는 어른이라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만약 나였더라도, 그러니까 이만큼이나 자란 나이지만, 소녀와는 거리가 멀지만, 나 역시도 그런 상황에서 마음을 꺼내어둘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어할 것 같다. 네, 내 마음을 꺼내어 병에 넣어둘게요, 그럴게요. 그런데 아이가 이걸 어떻게 감당할까. 이 소녀가 어떻게 감당할까. 네가 울고 소리지르고 슬퍼하고 힘들어해도 그 의자에 다시 할아버지가 와서 앉는 일은 없어, 이 잔인하고 모진 말을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



소녀는 이제 더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은대신, 세상에 무엇도 재미있는게 없다고 느낀다.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고 아무것도 신나지 않아.






그리고 소녀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어릴적의 자신과 닮은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 소녀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 나도 저런 적이 있었지.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들어가있는 병을 깨뜨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던지고 때려봐도 그 병은 깨지지 않고 그 안의 마음은 자신에게 돌아오질 않는다. 그 때, 자신의 어린시절과 닮은 소녀가 그 병을 건네받는다. 그리고 그 병안에 있는 마음을 꺼내준다.







마음을 꺼낸 후에 그 마음은 제자리를 찾는다.





빈 의자를 발견 했을 때도, 그리고 마침내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도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고인다. 양철나무꾼님의 리뷰를 보았을 때만해도 나는 이 책을 조카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다. 언제고 이 어린 아이도 누군가를 잃는 아픔을 경험하게 될텐데 그때 이 책을 보았던 것이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데 조카를 주기 전에 내가 펼쳐보고 내가 눈물을 흘렸다. 내가 봐도 이런데 이걸 아이들이 어떻게 읽는담, 나는 도무지 이걸 보여줄 자신이 없다. 이걸 읽게 할 자신이 없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 그걸 내가 할 자신이 없으니 나는 그것을 아이의 엄마에게 맡겨야겠다. 이 책을 보여주렴, 그러나 언제 보여주는게 좋을지는 너에게 맡길게, 라고. 이 책을 아이에게 보여주기 전에 읽어보게 될 내 여동생도 코끝이 찡해지겠지. 여동생도 아마 한동안은 보여주지 않고 책장에 꽂아두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소녀가 어른이 되었는데도 그 마음을 꺼내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소녀는 어떤 삶을 살게됐을까. 소녀일때도 혹은 어른일때도 누구나 마음 다치는 것이 싫어 마음을 닫아두려고 할 때가 있다. 사람이 혼자 살지 않고 여럿이 더불어 사는 까닭은, 그러니까 내가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애인을 만나면서 사는 까닭은, 내가 빈 병에 마음을 넣어뒀을 때를 위해서인걸까. 그럴때 내 마음을 꺼내어 제자리에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서, 반드시 누군가가 필요한 일이라서. 




내가 본 그림책들 중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은 내 책장에 꽂아두고 조카를 위해서는 한 권을 다시 사야겠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3-01-1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은 제게 힐링의 수단이 된답니다. 이 책도 봐야겠어요.

다락방 2013-01-11 18:43   좋아요 0 | URL
나인님, 저는 그림책을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잘 볼 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분명 이 책은 좋았어요. 참 좋았습니다. 힐링의 수단이라면 이 책은 제 몫을 다 할거에요.

M의서재 2013-01-10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 좋네요~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는 빈 병에 마음을 넣어뒀을 때를 위해서였네요. 찡한 마음 안고 추천 누릅니다

다락방 2013-01-11 18:44   좋아요 0 | URL
네, 불량주부님. 꺼내고 싶다고 해도 스스로는 꺼내는 방법을 알지 못하더라구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옆에서 도와준다면 정말 쉽게 꺼낼 수 있었어요. 좋은 책입니다, 불량주부님. 헤헷.
:)

2013-01-10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1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3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4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3-01-11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ㅠ_ㅠ

다락방 2013-01-11 18:45   좋아요 0 | URL
좋다 레와님, 좋아.

미녀 2013-01-1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엉엉 ㅠㅠ

다락방 2013-01-11 18:46   좋아요 0 | URL
우앙 미녀다!! 꺅 >.<

moonnight 2013-01-11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아해요. 마음은 아프지만요. ㅠ_ㅠ 조카랑 침대에 누워 읽다가 찔끔찔끔 울었어요. ;

다락방 2013-01-11 18:4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아마 제가 가진 그림책중 이 책을 가장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자꾸만 코끝이 시큰- 빈 의자를 보는 장면은 가슴이 휑해요.

꽃핑키 2013-01-11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조카에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글이네요 ㅠㅠ 내 조카도 아닌데 너무 귀엽고 예뻐서 마음까지 짠해지는 느낌들어요ㅋㅋ 그런데 저는 왜 ?? 저의 진짜 조카는 하나도 예쁜줄 모르겠는지;;ㅋㅋㅋㅋㅋㅋㅋ
친오빠네랑 멀리 떨어져 살아서 볼기회도 잘 없지만, 카톡으로 보내주는 사진도 덤덤할뿐이고;;
우리 조카도 저렇게 쫑알쫑알 이야기 할 때 되면 좀 귀여우려나(?)싶네요 ㅋㅋㅋㅋ
저 동화책 나중에 조카한테 사줘야겠어요 ㅋㅋ

다락방 2013-01-14 09:43   좋아요 0 | URL
저는 조카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제가 조카를 이뻐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순간 정신 차려보니 전 이미 조카의 노예. 조카에 대한 사랑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한 번도 누군가를 이렇게 보고싶어한적도 없는 것 같아요. 조카가 오면 저는 칼퇴를 하고 집으로 달려가고 조카랑 놀 때 다른 사람들이 연락해오면 막 짜증나고 귀찮고. ㅋㅋㅋㅋㅋ 게다가 요즘엔 이모, 이모 하는 통에 정신줄 놓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하하핫.

핑키님, 저 책은 핑키님의 조카보다는 핑키님이 본다면 더 좋을 책이에요. 어른을 위한 그림책 같아요.
:)

마노아 2013-01-1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만큼이나 다락방님의 리뷰도 아름다와요. 힐링 북이에요.^^

다락방 2013-01-14 09:43   좋아요 0 | URL
어휴, 코끝이 찡해지잖아요 글쎄. 눈물이 핑- 돌고. 아름다운 책이에요, 마노아님.

저기요.. 2013-01-1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돈까스 이후로 세계명시가 중단됐다고 문단이 술렁이고 있어요 얼릉 쓰시세요 -_-으르렁 해줄게요 으르렁////

다락방 2013-01-15 13:1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죄송합니다. 요즘엔 영감이 떠오르질 않아서..쿨럭. 조만간 스테이크라도 한 번 먹으면 제 안에 숨겨진 모든 창작력을 동원하여 시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ㅎㅎㅎㅎㅎ
 














이 책을 절반쯤 읽었는데 절반만큼 오는 동안에도 이미 감정이 격해졌다. 화가 나고 초조했다. 그래서 페이퍼를 쓰려고 키보드를 다다다닥 두드렸는데, 고작 화난 것에 대해 얘기하는데도 말이 너무 많아졌다. 아, 안되겠어. 다 읽고, 다 읽고 쓰자. 묘한 일이다. 미국 작가가 쓴 『미국의 아들』을 읽는데,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도 생각나고,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생각난다. 음악도 틀어주지 않는 아주 조용한 카페의 구석에 앉아 혼자서 뜨거운 커피를 시켜두고 이 책을 마저 읽고 싶다. 내가 이 책의 책장을 덮을때까지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이 책은 [창비세계문학]의 두번째 책이다. 그리고 짜잔~ 나는 이 책의 시리즈를 가지고 있다.



으하하하. 이 책들을 박스에서 꺼내어 나란히 꽂아두니 어찌나 근사한지. 나는 책장 한 칸을 창비에게 모두 내주었다. 그 모습은 이렇다.





왼쪽은 [창비세계문학단편선] 이고, 오른쪽은 [창비세계문학] 이다. 아, 완전 뽀대난다. 사실 겉모습도 그렇고 제목들도 그렇고 단편쪽에 마음이 끌려서 세계문학 시리즈는 꽂아두고 아직 읽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세계문학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서부터 읽고 싶었던 『미국의 아들』이 무척 재미있어서 오, 막 기대가 되는거다. 책등을 보면 새 책 같지 않고 뭔가 낡은 필름같은 느낌을 주는데, 저건 내가 책을 험하게 다룬게 절대 아니라, 원래 저렇다. 세계문학의 설정이랄까. 박스에서 꺼냈을때도 그리고 셋트로도 저렇게 꽂아두었을 때도 예쁘긴 하지만 아무래도 옆의 하드커버가 너무 근사해서인지 살짝 위축되어 있는 듯하다.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려니 좀 거창한데, 사실 나는 전집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정말이다. 그런건 민음사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민음사 고전에 대해서는 이미 책장의 세 칸이나 내어줬던 바, 문학동네나 펭귄 또 창비에 대해서도 나는 집착하지 않으려고 굳게 마음 먹었다. 그러나 창비도 저렇듯 한 칸을 내어주게 됐고, 펭귄과 문학동네에도 하아- 한 칸을 내어주게 됐다.





문학동네도 펭귄도, 집착하지 않으려고 다 읽은 책을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이만큼이...한 칸을 만들어두고나니 나는 집착하게 될 것 같다. 흑흑. 물론 저 사이로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꽂혀있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사이사이 책장에 꽂아두기도 했고 따로 쌓아두기도 했는데, 따로 쌓아둔 데에는 민음사의 책들도 몇 권 있어서 아마 민음사에게는 책장을 한 칸 더 내어주게 될 것 같다. 게다가 이젠 민음사 모던클래식에게도 한 칸을 내어줘야 할지도...orz



나름 열심히 책을 방출하고 있는데도(알라딘 중고샵에 수시로 팔고 매입불가 책은 아름다운 가게에 보내기도 했다) 책장이 조금 비었다 싶으면 어김없이 다시 찬다. 아직 내 방의 책장을 넘어가는 일은 없지만-넘어가도 갈 데도 없다-, 오늘이나 내일 또 나는 열 권쯤 질러버릴 결심을 했는데, 대체 이를 어쩐담. 할 수 없다 또 열 권쯤 팔아야지.


며칠전에는 친구를 만나서 내가 가지고 있던 김이듬의 시집을 선물해주었는데, 요 며칠 김이듬의 시가 자꾸만 생각이 난다. 안되겠다, 나는 김이듬의 시집도 다시 사야겠다.



















내가 요며칠 계속 생각난 시는 바로 겨울 휴관.



겨울 휴관

 

 

무대에서 내려왔어 꽃을 내미네 빨간 장미 한 송이

참 예쁜 애구나 뒤에서 웃고 있는 남자 한때 무지 좋

아했던 사람 목사가 되었다 하네 이주 노동자들 모이

는 교회라지 하도 괴롭혀서 도망치더니 이렇게 되었

구나 하하하 그가 웃네 감격적인 해후야 비록 내가

낭송한 시라는 게 성직자에게 들려주긴 참 뭐한 거였

지만

 

 

우린 조금 걸었어 슬며시 그의 딸 손을 잡았네 뭐

가 이리 작고 부드러울까 장갑을 빼려다 그만두네 노

란 코트에 반짝거리는 머리띠 큰 눈동자는 내 눈을

닮았구나 이 애 엄마는 아마 모를 거야 근처 미술관

까지 차가운 저녁 바람 속을 걸어가네 휴관이라 적혀

있네 우리는 마주 보고 웃다가 헤어지려네 전화번호

라도 물어볼까 그가 나를 위해 기도할 거라 하네

 

서로를 등지고 뛰어갔던 그 길에서 여기까지밖에

못 왔구나 서로 뜻밖의 사람이 되었어 넌 내 곁을 떠

나 붉게 물든 침대보 같은 석양으로 걸어가네 다른

여자랑 잠자겠지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



아, 이 시가 왜이렇게 생각나지.  일단『미국의 아들』을 다 읽고, 그런 다음엔 이 시를 한 번 마음먹고 외워볼까?





아파트 옆 동의 아주머니께서 손수 만든 유자차를 주셨다. 나는 엄마에게 그 중 조금만 그릇에 덜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가져와서 오늘 사무실에서 뜨거운 물을 끓여 부었다. 향도 좋고 맛도 좋았다. 좀처럼 기침이 떨어지질 않아 짜증스러운데, 유자차를 마시노라니 저절로 눈을 감게 된다.



오전에 타부서에 갔는데 다들 업무를 시작한 시간, 부장님이 코트를 벗고 옷걸이에 걸고 계신다. 나는 혹시 지금 오시는거냐 여쭸다. 부장님은 멋적게 웃으시며 그렇다고 했다. 나는 마주 웃으며


왜왜왜왜왜?


라고 다시 물으니 부장님은 늦잠자서- 라고 답하셨다. 푸핫- 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주먹 하나를 쥐고 팔을 들어올려 "화이팅!!" 이라고 말했다. 부장님도 같이 웃었다.





나물이 가득 들어간 돌솥비빔밥을 먹고 싶다. 평소에 비빔밥은 내가 좋아하는 메뉴가 아니긴한데, 날이 차서 그런가 생각나네. 돌솥비빔밥은 점심 메뉴였으면 좋겠다. 한시에서 두시 사이의 점심. 그리고 반드시 소주 반 병을 함께 먹었으면 좋겠다. 아, 생각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돌아버릴 것 같다. 돌솥비빔밥과 소주 반 병. 그리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세상은 아직 환하고 여전히 찬바람이 분다면, 아, 뭐든 다 괜찮아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나는, 토요일에 그리 해볼테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13-01-10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장을 정리하느라 알라딘 중고에 책을 팔았어요. 하지만 적립금 기다렸다 바로 책을 또 사버리니, 읽지 못한 책들이 쌓여갑니다. 창비 전집 생각보다 약간 빈티지 느낌이 나는 표지네요? 다른데서 본 사진으론 너무 튀는 표지라 주저했는데....돈끼호테 때문에요.

다락방 2013-01-11 18:48   좋아요 0 | URL
돈끼호테가 아무래도 빨간색이다보니까. ㅎㅎ
저도 박스 뜯고 나서는 깜짝 놀랐었어요. 어엇, 이건 뭔가 닳은 듯한 느낌? 네, 빈티지 느낌이 나요. 그런데 아무래도 창비 단편쪽이 표지며 제목이 확- 끌리죠? 너무 잘빠졌어요. ㅎㅎ
그나저나 저 아직도 [미국의 아들]을 다 못읽었네요. 이를 어쩌면 좋아요. [파리의 노트르담]은 주문 완료!

다다 2013-01-10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이듬 기억할게요 이 시의 마음을 헤아릴 것 같아 눈물이 나네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돌아버리지는 마시고 저 누구게요?

다락방 2013-01-11 18:48   좋아요 0 | URL
누군지 알지롱요~ 제가 떡갈비 안좋아한다고 해서 마음 상했던 분 아니십니까! ㅎㅎㅎㅎㅎ

하루 2013-01-10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문학은 모으고 있는지도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보면 꽤 모이더라구요.

다락방 2013-01-11 18:4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저도 민음사 전집보고 깜짝 놀랐어요. 우앗, 언제 이렇게 모였지? 모으게 됐다는 걸 인식한 순간 고전 살 때 저절로 민음사에 손이 가게 되더라구요. 하핫

이진 2013-01-1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문학전집은 ... 왜 다들 그렇게 예쁘게 낼까요? ㅠㅠ
저는 펭귄클래식이 좋아요. 외양도 예쁠 뿐더러 남들이 다 싫다하는 페이퍼도 좋거든요.
민음사도 여러권 꽂아두니 까리하고... 문학동네는 말할것도 없이 뽀대나고 ㅋㅋ
저는 김이듬의... 시집 제목이 끌리는데요?
그 시도 올려주셔요!!

다락방 2013-01-11 18:51   좋아요 0 | URL
저는 문학동네 하드커버가 꽂아두면 참 예쁘더라구요. 그렇지만 이미 많은 정을 민음사에 줘버리고 말았어요. 정이란건 그런거니까요. 하하.

소이진님, 김이듬의 다른 시 두 편은 여기에. 감상해보세요!

http://blog.aladin.co.kr/fallen77/6016120

레와 2013-01-1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솥비빔밥이 먹고 싶은걸 보니, 내가 보고싶은거죠?! 응?!!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이 남긴 소주 반병은 내가 마셔야지.

다락방 2013-01-11 18:51   좋아요 0 | URL
으응? 돌솥비빔밥과 레와님은 어떤 연관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소주 반 병씩 먹고 취해버리자. 낄낄.

moonnight 2013-01-10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집에 집착하고 있어요. ㅠ_ㅠ 다른 책들은 읽고 중고로 팔고 하지만 전집은 완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답니다. 근데 책장이 빈 곳이 없어서 옆으로 막 쌓아놨어요. 다락방님의 창비시리즈에, 또 활활 불타오릅니다. 갖고 싶어욧 >.<

다락방 2013-01-11 18:52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그러고보면 저 민음사 전집중에 읽다가 포기한 것도 팔게 되질 않더라는. 하하하핫. 저도 집착..이란걸 하고 있나봐요? 희희.

Mephistopheles 2013-01-10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그럼 창비가 분명할텐데..

왜 페이퍼의 마지막에 돌솥비빔밥을 아구아구 먹으며 소주(그것도 낮술)을 반병 비우고
크아~~~ 하는 다락방님을 상상하니..

더 이상 창비가 아닌 "장비"로 보이는거 있죠.(장비문학전집??)

다락방 2013-01-11 18:53   좋아요 0 | URL
꽥!! 메피스토님!! 저는 조자룡을 좋아합니다!! (뭐래 ㅎㅎ)

겨울엔 역시 소주에요, 메피스토님. 뭔가 인생의 맛이 나지 않습니까. 후훗.

비연 2013-01-11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제 책을 좀 정리해야 할 듯. 근데 시리즈물은 왠지모를 마력이 있어요. 모으고 싶은..ㅜㅜㅜ

다락방 2013-01-11 18:54   좋아요 0 | URL
전집에 욕심 내면 돈이...돈이..... ㅎㅎㅎㅎ
새해에는 책을 좀 안 사야 될텐데요, 비연님. 사두고 안 읽은 책만 다 읽어도 올해로 모자란데. 훌쩍.

비로그인 2013-01-12 0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다락방님 책장이닷! 다락방님도 혹시 삼나무 책장??ㅋㅋ
전 세계문학전집은 아빠의 오래된 책들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많지가 않네요
문학동네는 염소의 축제와 영문판 준대서 산 노인과 바다 뿐이고
펭귄은 only 레미제라블ㅠㅠ
민음사는 지금 세어보니 13권...ㅠㅠ
그래도 창비세계단편문학은 다 있어요^^
다락방님 페이퍼를 보니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창비세계문학 지름신이~~ㅎㅎ
저도 요즘 겨울휴관을 틈틈이 소리내어 읽고 있답니다
폰을 바꾸며 좋아하는 분의 문자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글쎄 그 분께서 새 폰의 첫 문자로 시를 보내주셨지 뭐에요!!!

다락방 2013-01-14 09:46   좋아요 0 | URL
아, 전 저희 엄마가 사주신 책장이라 무슨 책장인지는 모르겠네요. 삼나무 책장이 아니라 아마도 저렴한 책장이 아닐까..쿨럭.
저는 제가 사기 전에는 집에 책이라곤 없었어요. 하핫. 저 책들은 모두 제가 사 모은 책들이에요. 그러고보면 돈 벌고나서 참 부지런히 책을 사다 날랐네요. 집에 책이없는 환경에서 저 혼자만 책을 읽는 돌연변이었어요, 저는. 어쩌면 식구들이 그렇게 아무도 책을 안읽는지. -0-

창비세계문학이 12권까지 나왔네요. 12권이 바로 [패니와 애니] 꺅 >.<

그런데 새 폰의 첫 문자로 시라니, 오, 좋으네요!! 낭만적이야...그쵸? 희희.

단발머리 2014-01-07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진~짜 좋아요. 사생활 공개 페이퍼~
이 시집과 연관된 우산 에피소드도 좋아요.

난, 왜 이렇게 느려요? 그래서 아직 철이 안 들었나봐요....

다락방 2014-01-07 09:49   좋아요 0 | URL
헤헷. 느려도 이렇게 닿았으면 충분하지요, 단발머리님. 그리고 지금 읽어서 더 좋은걸지도 몰라요.
:)
 
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황순원'의 「소나기」때분에 보조개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됐다면 죽음에 대한 낭만도 갖게 됐다. 그당시 나는 국어선생님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내가 시한부 인생이라면 국어 선생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거다. 뿐만 아니다. 영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를 보고서는 펑펑 울었었다. 그 영화의 여자주인공처럼(아마 하희라였을거다), 죽기 전날 반 아이들 모두에게 편지를 써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싶었다. 그러면 아무도 나를 잊지 못하겠지. 영화 『라스트 콘서트』는 그중 압권이었다. 죽어가는 여자를 관객석 앞에 앉혀놓고 남자는 마지막 연주를 들려준다. 그녀는 그 연주를 들으면서 숨을 거둔다. 당시 그 영화의 여주인공은 백혈병 환자였는데, 그 때부터 백혈명은 뭔가 낭만적인걸로 느껴진거다. 참 철없던 때의 얘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랑 매일 하교를 같이 하던 친구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마 그말은 고등학교 3학년이라면 누구나 가끔은 내뱉었던 말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친구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된다고. 너, 죽으면 니 영혼이 스르르 빠져나와서 니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주변에 머무를 것 같지? 절대 아냐, 끝이야, 끝. 너는 그냥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고. 너라는 존재가 무(無)가 돼. 죽음에 대한 환상따위 갖지 말고 살어. 죽음에 대해서 결코 낭만을 갖지마, 라고 말했다. 대체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 나는 왜이렇게 변한것일까.


나는 여전히 귀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에게 귀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죽었을' 때 그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천국으로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육체가 죽는 순간 몸의 모든 기능이 정지하듯 정신적인 기능도 정지하고 그상태로 끝. 암흑. 그 뒤는 더이상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다. 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가서 그 사람을 지켜보는 일 같은건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죽음이 두려웠다. 죽고나서 모든것이 끝나는 상황이 두려웠다. 더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아무것도 경험할 수도 없다는 게, 누구의 옆에도 있을 수도 만날 수도 없다는 게 두려웠다. 이 두려움을 24시간 365일 가지고 사는건 아니지만 간혹 후려칠 때가 있다. 누군가 이 불안을 좀 해소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서 죽음을 원할때도 있었다. 끝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내가 고통스러울 때 그랬다. 불안하거나 두렵거나 슬픔이 극에 달해있을 때면, 내가 죽어 없어진다면 이런 생각을 혹은 이런 고통을 멈출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내게 대체적으로 무서웠지만 그보다는 드물게 해결책이 되는 듯도 보였다.



그래서 이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표지를 보고 읽고 싶어지면서 동시에 망설였다. 이 책이 나의 두려움을 해소해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만나고 싶다가도 그 순간은 내가 가장 두려울 때로 미뤄둬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했다. 무엇보다 표지에 쓰인 말이 잊혀지질 않았다.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문장이 거기 쓰여있었다. 나는 반드시 죽을 거라는 말. 알면서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말. 그런데 정말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 내가 가진 두려움은 위로로 탈바꿈하게 될까? 나는 평안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될까?



그러나 책의 절반까지 셸리 케이건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해 얘기한다. 실제적으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철학적으로 주장하고 또는 반박한다.무엇보다 셀리 케이건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셸리 케이건은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죽으면 모든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죽음에 대한 정의가 나와 같은데, 이 사람이 하고자 하는 얘기는 대체 무엇일까.



내가 죽고 나서 내 몸이 부활하거나 내 인격이 이식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이 나의 진정한 종말이라 생각한다. 죽음은 나의 끝이자 내 인격의 끝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다.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이다. (p.245)



물론 과학적 시선으로 더 많은 세부적인 사항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의 시선으로 볼 때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봤던 죽음이라는 개념에 더 이상 신비로운 것은 없다. 인간의 육체는 살아서 움직이다가 파괴된다. 결국 이것이 죽음에 관한 전부다. (p.266)



내가 죽음을 두려워할때, 그것을 입밖으로 내어 말할 때 나는 당연한 듯 영생에 대해 생각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바라왔다. 그러나 셸리 케이건은 영생이 지루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조금 더 길게 사는게 아니라 죽지 않고 살아간다면 모든것들이 지겨워질 거라는 거다. 하고 싶어서 선택한 공부도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는것도 계속해서 할 수는 없고, 수학이 지겨워져서 과학을 해도 다른 음악을 찾아듣고 다른 그림을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거다. 나는 영생이 반복되는 일상들로 인해 지루해질 수도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럴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수긍하며 다소 놀랐다. 아, 그래, 나는 막연하게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삶이 어떻게 유지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그러면서 반발심이 들었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게 가능하다면 이미 존재하는 학문외의 다른것을, 이미 존재하는 예술외에 다른 것을 우리 인간들은 만들어내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루하거나 지겹지 않을수도 있지 않나? 물론 영생은 이제 내게 다른 식으로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결국 아무도 죽지 않고 모두가 영원히 산다면, 그렇게 계속해서 자손을 번식한다면, 그때 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늘까지 닿는 집을 짓는다 해도 거기엔 분명 한계가 존재하지 않을까.



유한한 삶이기 때문에 셀리 케이건은 우리가 세운 삶의 목표와 가치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고작해야 백년 정도를 살 수 있을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에 대해서 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 거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세운 몇 가지 삶의 목표-대단할 건 없는 목표라지만- 나는 그걸  마흔이 되기전에 하겠어, 쉰이 되기 전에 하겠어, 라고 결심하진 않았지만 죽기 전에는 이것들은 해보고 싶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이건 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되 가장 스트레스 받지 않는 방법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기를 바랐다. 이 인용문을 그래서 몇 번이나 읽어봤다. 에키푸로스가 쓴 글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가장 끔찍한 불행인 죽음은 사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한 죽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든 이미 죽었든 간에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p.306)



셸리 케이건은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까닭을 철학적으로 근거를 대며 얘기해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두려움이 없어진 건 아니다. 결국 셀리 케이건은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죽음을 대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이 긴 책을 한 권 읽었다고 해서 '그래, 죽음과 대면하자' 하고 내 생각이 바뀌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하는 말들이 가끔은 퉁 치고 넘어가려는 것도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알겠지만,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반드시 같지 않다. 이 책은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아이비리그의 명강의라고 하는데, 책으로 JUSTICE 와 DEATH를 둘 다 만난 나로서는 정의 쪽이 더 재미있었다. 잠깐 고개를 갸웃하며 그것은 죽음보다 살아가는 일이 더 재미있기 때문일까, 라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반드시 그래서만은 아닌듯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때문에 나는 별 넷을 줄 수 있었는데, 그건 누군가가 내가 두려워했던 바를 공개적으로 말해줬다는 데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니. 나는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책을 반드시 읽고야 말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그가 조목조목 '자신만의' 철학으로 죽음에 대해 얘기해주는 글들을 읽으니 이 세상에 나만 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건 아니라는 생각에 약간은 위안이 된다. 어쩌면 나는 이 세상의 보편적인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죽음과 대면할수는 없을것 같다. 책장을 덮고서도 여전히 두렵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셸리 케이건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생각들에 관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만족스럽다' (에필로그中)고 했다. 그렇다면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나는 만족스런 독자가 되긴했다.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3-01-08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도 관념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는 우리.
이 책 담아갈게요. 보관함에 있지만 진짜로 장바구니로.ㅎㅎ
새해부터 저는 '죽음'에 붙들려있어요, 다락방님.
아니 지난 12월부터요.

다락방 2013-01-09 15:06   좋아요 0 | URL
이상해요, 프레이야님. 영하 [아무르] 탓일까요. 최근에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꽤 자주 말하는 것 같아요. 현재 화제의 서재글에 올라있는 자노아님의 글도 죽음에 대해 얘기한 페이퍼구요. 지금은 다들 그런 생각을 하는 때인걸까요.

프레이야님, 제가 소설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예일대 교수의 명강의를 책으로 읽는 것보다는 죽음에 대하여 잘 쓰여진 소설을 읽는 쪽이 적어도 제게는 더 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셸리 케이건이 강의를 한다면 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요.

Mephistopheles 2013-01-08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 이건 절대 답이 없어요.-

다락방 2013-01-09 15:0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예일대 명강의 교수의 책을 읽는다고 해도 제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잘 모르겟어요, 메피스토님.

2013-01-09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9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9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9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9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0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0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1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3-01-1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철없던 시절에 자주 죽음을 생각했어요.
내가 지금 죽어버리면 누군가는 분명히 마음 아파하겠지.
죽음을 누군가에게 복수의 수단으로 사용하려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도 있었구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그냥 순간순간에 충실하면서 살아야하지 않을까요?
그건 어떤 대의나 가치에 충실하게 사는 것일수도 있고,
욕망이나 욕구에 충실한 삶일 수도 있겠지요.
그 선택이 각 개인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말해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대답은 정말 어렵지요!
좋은 책 소개 잘 읽었습니다! ^^

다락방 2013-01-14 09: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감은빛님, 복수의 수단. 어쩌면 그랬던것도 같아요.
물론 저는 복수의 수단보다는 낭만적인 수단이었지만 말이죠.

죽음에 대한 책을 읽었다고 해서 기본적으로 제가 가지고 있던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진 않는것 같아요. 전 언제나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일단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 충실하자고 생각했거든요. 아마도 그대로 계속 살게될 것 같아요. 감은빛님 말씀처럼 순간순간 충실하게 사는거, 그게 답인것 같아요. 적어도 지금은 말이죠. 앞으로 더 나이들면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요.

장분도 2013-05-22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책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매일 고민하고 연구하고 도구들을 계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두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바로 identity와 Destiny 인 것 같습니다. (저의 소견으로는요.)

모든 사람들 안에 talent 가 있고,
그 talent를 발견하면 vision이 되고,
비전은 꿈이되고,
꿈은 목표가 되고,
목표는 방향을 같게 하고,
그 방향으로 포기하지 않고 걸으면, 우리 삶에 passion이 생기게 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Passion은 영향력이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리더십이 있다고 부르고,
이 리더십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리더라고 부르며,
그 사람은 결국 자기의 identity와 destiny를 define하고 passion을 가지고 리더의 자리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아이러니하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결국 죽음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

저는 지금 뉴욕 LGA공항 라운지에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지금도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죽음을 생각할수록, 더 열심히 살아보고 싶어집니다.
10년 후 혹시라도 제가 이 글을 다시 우연히 보게 될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것에 얼마나 의미가 있고,
사람들이 어떻게 identity와 destiny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지, 전하는 행복 전도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장분도 2013-05-22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책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매일 고민하고 연구하고 도구들을 계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두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바로 identity와 Destiny 인 것 같습니다. (저의 소견으로는요.)

모든 사람들 안에 talent 가 있고,
그 talent를 발견하면 vision이 되고,
비전은 꿈이되고,
꿈은 목표가 되고,
목표는 방향을 같게 하고,
그 방향으로 포기하지 않고 걸으면, 우리 삶에 passion이 생기게 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Passion은 영향력이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리더십이 있다고 부르고,
이 리더십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리더라고 부르며,
그 사람은 결국 자기의 identity와 destiny를 define하고 passion을 가지고 리더의 자리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아이러니하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결국 죽음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

저는 지금 뉴욕 LGA공항 라운지에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지금도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죽음을 생각할수록, 더 열심히 살아보고 싶어집니다.
10년 후 혹시라도 제가 이 글을 다시 우연히 보게 될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것에 얼마나 의미가 있고,
사람들이 어떻게 identity와 destiny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지, 전하는 행복 전도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