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요."
티파니의 말에 내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이제 음악을 틀 건데 우리가 맞춰서 춤을 추게 될 노래예요. 당신이 이 노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느 느낌을 갖는 게 아주 중요해요. 당신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노래가 당신을 움직이게 해야 돼요. 이 노래를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당신도 곧 알게 되겠지만 우리 둘 다에게 완벽한 노래거든요. 내가 당신에게 헤드폰을 씌워 주면 니키의 눈(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도록 해요. 당신이 노래를 느끼기를 바랄게요. 알았죠?"
(중략)
헤드폰을 쓰고 있으니 마치 이 넓은 연습실 안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티파니가 함께 있는게 보일 테니까 나는 두 손으로 액자를 든 채 니키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pp.272-273)
책 속에서의 이 부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함께 춤추게 될 음악을 일단 춤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들어보게 하는 장면. 그리고 이 장면을 영화에서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영화는 책과 아주 많이 달랐다.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캐릭터와 둘 다 모두 사랑을 잃었고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설정 외에는 같은게 없었다. 그러다보니 책이 살려내는 장면이 있고 영화가 살려내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가 훨씬 더 좋을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그렇다고 책이 더 좋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 둘 다 좋긴 좋았는데 미치고 팔짝 뛰게 좋진 않았다는 말이다.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게 하는건 역시 책이 더 뛰어났다. 그러나 저 장면, 둘이 함께 음악을 듣는 장면만큼은 영화가 훨씬 더 강한 말을 해줬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내가 선택한 곡을 함께 듣는다는 것. 그것은 꽤 내밀한 행위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음악이란 것은 내게 있어서는 꽤 고집스러운 취향을 가진 것으로서, 누군가 내게 음악을 권해도 나는 쉽게 그 곡을 들으려고 하질 않는다. 상대가 내게 권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대부분, 꽤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음악을 권하는 일도 조심스럽다. 나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권하는 음악이 반갑지 않을 터, 외려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영화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음악을 함께 듣는다, 한 공간에서, 단 둘이서. 책에서는 남자가 그리워하는 전아내의 사진을 보며 음악을 함께 들었지만, 고개를 들면 앞에 있는 여자를 의식하게 될 것 같다는 걸 알기 때문에 뚫어져라 사진만 바라본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사진이 없었다. 이 둘은 사진 없이, 같은 공간에서 음악을 함께 들었다. 여자가 선택한 곡을. 하아- 그 내밀한 순간의 긴장감이라니. 갑자기 그 장면에서 내 스물다섯이 생각났다. 풋- 하고 웃음도 나는데, 그 해 겨울에 나는 한 남자와 그의 차 안에서 여행스케치의 「운명」을 함께 들었었다. 그 테입은 내가 그에게 선물한 것이었는데, 집 앞까지 나를 바래다줬던 그는 차에서 내리려던 나에게 '이 곡 다 듣고 들어가' 라고 말했고, 나는 얌전히 그의 말대로 했다. 그즈음의 그는 거의 매일 나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또 한번의 음악을 함께 듣는 내밀함은 어느해 여름으로 넘어간다. 그 해 여름의 새벽, 모니터를 앞에 두고 그는 자신의 공간에서 나는 내 공간에서 음악을 들었던 일. 그 날의 나는 아마도 터질듯한 행복함을 안고 잠이 들었던것 같다. 음악을 함께 듣기 전날에는 그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바로 그 다음날에는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만나서,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좋아하는 음악을 링크해주며 감상을 이야기했던 기억들. 그 순간 모니터를 앞에 두고 이야기했던 상대가 그가 아니었다면, 그런 음악을 내게 주었던 상대가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렇게까지 행복해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길고도 지긋지긋한 애착도 이제는 끝을 냈다. 너무 오래였고 너무 질척거렸는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책으로 읽으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달까. 모든것들에는 끝을 내는 순간이 온다. 아무리 오래 걸린다해도 결국은 온다. 다행한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여자와 남자는 각자의 애인과 동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각자의 이메일 친구에게 이메일을 띄우고 상대로부터 온 답장을 읽는다. 그들에게 이메일 친구는 꽤 커다란 의지가 되고 있다. 자꾸만 모니터를 통해 상대를 만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가 메일 친구임을 모르는채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친구가 된다. 시간이 흘러 남자는 자신의 이메일 상대가 그녀임을 알고있고, 여자는 자신의 이메일 상대가 그임을 알지 못하지만 그에게 끌리고 있다. 이메일 상대를 만나러 간다는 설레임을 안고 있는 그녀에게 그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그녀는 거기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채로 약속장소로 나가 이메일 상대를 기다리고, 자신의 앞에 나온 상대가 자신이 그려왔던 상대임을 알면서 행복해한다.
이 영화속의 여자와 남자는 이메일로 만나 친구가 되었고 결국 사랑을 나누는 연인 사이가 되었지만, 사실 나는 그와 그녀가 포옹하기전의, 키스하기전의 사이가 가장 완벽해 보였다. 그들은 지척에 살고 그래서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는 것에 크게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편안하게 대화했으며 상대를 만나서 어디든 함께 걸을 수 있었지만 복장에 크게 신경쓸 필요도 없었다. 함께 만나 웃고 이야기하고 걷다가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사이라니, 얼마나 근사한지. 남자와 여자가 오래 함께 좋은 감정을 가질 수있는 이상적인 방향으로 보였다. 내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곳에서 내가 혼자 머물게 되든 혹은 다른 이성과 몸을 섞게되든 그런것과는 전혀 별개로, 바깥에서의 일상을 함께 공유하고 안에서의 일상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상대라니, 아, 정말 멋지다. 오히려 그런 관계가 내 가슴을 더 뛰게한다. 지금도 영화속의 남자와 여자가 함께 샌드위치를 먹고 산책을 하고 했던 일들을 떠올리니 두근두근한다.
나는 베스트 프렌드, 라는 말도 또 절친이란 말도 크게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그런 타이틀로 나에게 깊은 관계를 강요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고 나를 파고들려고 하면 가차없이 가혹해져버리게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니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성관계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감정이 더 커지고 함께 있고 싶은 시간이 늘어나는건 당연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일상을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보면 결국은 그 전의 다른관계들처럼 서로에게 질려버리는 시기가 찾아오게 될지도 모르는데, 집 밖으로 나가 오후를 혹은 저녁을, 햇살을 그리고 눈과 비를 함께 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꽤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런 친구가 있다면 늘 행복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것 같다. 어쩌면 내 욕심이 너무 큰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내가 되고 싶은건 '뜨거운 연인' 보다는 '잃고 싶지 않은 친구' 쪽인가 보다.
영화속에서 맥 라이언이 침대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며 이메일친구와 대화를 하는걸 보노라니 당장이라도 노트북을 사야할 것 같다. 그러나 작년에 산 데스크탑의 할부가 2개월 남아있는 상황....하아- 노트북을 사야 침대에 앉아 두드리고, 침대에 앉아 두드릴 수 있어야 이메일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이메일 친구를 사귀어야 삶이 완벽해질 수 있으니, 어쨌든 노트북을 사야되는데, 내게는 아직 고장나지 않은 넷북이 있..................orz 넷북 있어도 톰행크스 같은 친구는 없................orz 넷북이라 없는걸지도 몰라, 노트북을 사면 당장 생길지도...........................( ")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미 아주 많이 좋아하고 있어서 이 책도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지나치게 가볍다. 100자평에도 썼듯이, 이 책으로 처음 하루키를 만났다면 나는 지금처럼 하루키 빠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하루키를 한 번 시작해볼까, 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책이랄까. 어쨌든 하루키가 이 에세이에서 저울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 당연히 몸무게 얘기도 하고. 아침과 저녁의 몸무게가 다르고 가벼운 조깅을 계속하면 살을 조금 뺄 수 있다등의 이야기를 하는데, 하루키도 역시 싫어하는 사람과 밥 먹는 것을 싫어하는가 보다.
또 한 가지, 시내에 나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일 때문에 만나거나 하면 1킬로그램 빠진다. 꽤나 미묘하다. (p.91)
나는 이 문장을 읽고서는 나도 진짜 그럴때 완전 짜증나고 신경질나고 스트레스 받기 때문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불쑥 저울 위로 올라갔다. 요 며칠간 나 역시 지긋지긋한 관계를 마음속으로 정리해내느라 나름 고통의 시간을 보냈으므로. 그런데 웬걸, 저울의 숫자는 나에게 고통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게는 힘든 시간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힘들었다는 것을 어떻게도 증명해 보일 수 없었다.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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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I could take you away
Pretend I was queen
What would you say
Would you think I'm unreal
Cause everybody's got their way I should feel
Everybody's talking how I can't be your love
But I want want wanna be your love
Want to be your love, for real
Everybody's talking how I can't be your love
But I want to be your love
Want to be your love for real
Want to be your everything
Everything's falling, and I am included in that
Oh, how I try to be just okay
Yeah, but all I ever really wanted
Was a little piece of you
Everybody's talking how I can't be your love
But I want want wanna be your love
Want to be your love for real
Everything will be alright
If you just stay the night
Please, sir, don't you walk away
Everybody's talking how I can't be your love
But I want want wanna be your love
Want to be your love for 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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