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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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탄생으로써의 복수, 삶으로써의 응징!!
책장을 덮고 한템포 쉰 다음에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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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7-08-2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오늘부터 100자평도 하시는 겁니까?? 저처럼 치매방지용으로??ㅎ

다락방 2017-08-22 10:59   좋아요 1 | URL
그니까요. 이거 필요해요. 안그러면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읽었다면 어땠었는지 기억이 1도 안나서 말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줄리아 차일드'는 남편의 직장이 파리가 되면서 덩달아 파리로 오게 된다. 남편이 직장에 간 사이 자신은 무엇을 할까 고민해서 모자만들기라든가 하는 일거리에 도전해보지만 영 재미가 없다. 그러다 요리 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달걀 삶는 것 같은 걸 가르치는 게 아닌가. 이에 줄리아는 교장선생님께 '그보다 더 고급진 수업을 듣고싶다'고 말한다. 교장은 더 어려운 수업이 있긴 하지만 학생이 전체 다 남자라며, 그런데 들을 수 있겠냐고 묻는다. 줄리아는 듣겠다고 한다.


줄리아가 그 수업에 들어가보니 학생들이 죄다 남자이고, 게다가 그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게 느껴진다. 양파를 썰어야 하는데 줄리아가 잘 썰지 못하고, 그때 자신이 느낀 기분이 싫었던 줄리아는, 집에 가서 온종일 양파 써는 연습을 한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온 남편 역시도 오자마자 눈물을 흘린다. 양파가 매워서. 줄리아는 '남자들이 나를 무시하는 그 눈빛이 싫다'면서 열심히 양파를 썰고, 그 후의 수업에서 줄리아는 다른 어떤 남자들보다 양파를 잘 썰게 된다. 이 성격은 물론 양파썰기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서, 무얼 해도 줄리아는 우수한 학생이 되는 것이다.





줄리아의 남편은 집에 돌아와서 양파냄새가 자신을 반겨도 신경질을 내지 않는 남자였다. 이들 사이엔 아이가 없고, 아이가 없는 현실에 줄리아는 가끔 마음 아파하지만, 그런 그녀를 남편은 안고 토닥토닥 '알아 알아' 하면서 다독여준다. 그녀가 요리에 흥미를 갖게 되고 열심히 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리고 그 요리를 책으로 출판하는 그 긴긴 시간동안, 남편은 충실한 지원자가 되어준다. 줄리아가 절망할 때 다독여주고, 줄리아의 책이 8년여의 노력 끝에 드디어 출판된다고 했을 때는 함께 환호성을 질러준다. 진심으로 '함께' 기뻐한다. 그가 온화한 성품이기도 하지만 줄리아를 무척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간에 사람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남편은 아내와 어떻게 결혼하게 됐는지를 얘기한다. 이전부터 알아온 친구였는데, 어느날 '내가 결혼할 사람은 이 여자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그때 줄리아의 나이는 마흔이었다고 한다. 마흔의 줄리아는 폴을 만나 결혼하고 그 뒤로 아주 사이좋은 부부가 되어서 그 누구보다 뜨겁게 서로를 사랑하고 위한다. 이렇게 남편이 아내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여러 사람에게 드러내는 순간, 아내 줄리아는 자신의 가슴에 달았던 하트를 남편을 향해 움직인다.






'줄리'는 그런 줄리아 차일드를 무척 존경하고, 무료한 일상에서 블로그를 시작하며 그녀의 모든 요리에 도전하기로 한다. 그녀의 요리책에 나온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어 매일 포스팅을 한다. 줄리아에게 그랬듯, 줄리에게도 요리는 자신이 무척 좋아하는, 자신을 위로하는 과정이었다. 현재의 줄리가 오래전의 줄리아와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줄리는 요리를 실패했을 때 절망한다는 것. 닭 요리를 하려고 싱크대 위에 올려두고 준비하다가 통째로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그녀는 숫제 바닥에 그냥 누워버리고 만다. 난 안돼, 난 안될거야, 이런 제기랄... 그녀의 절망은, 나에게까지도 전해져서, 아아 이것은 스트레스가 크다...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줄리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자신이 요리를 만든 과정을 올릴 때, 그녀에게는 독자가 아무도 없었다. 남편과 친구들만이 응원을 보탤 뿐, 줄리의 엄마조차도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거다. 게다가 아무도 내 블로그를 보지 않는다는 절망하에, 혹시 누가 내 글을 읽고 있나요? 물었을 때, 마침 그때 기쁘게 딩동- 하고 달린 댓글이 엄마였어....'너 아직도 글 쓰고 있니?'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요리에 계속 도전한다. 이 과정에서도 역시 그녀에게는 그녀를 응원하고,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감상을 얘기하고, 그녀가 절망할 때 달래주는 좋은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그녀에게 서운해하기도 한다. 그녀가 퇴근 후에 요리를 만들고 블로그를 하느라 결혼 생활에는 충실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과의 섹스가 줄었기 때문에. 그래서 어느 한 날엔 남편도 폭발하고 만다. '나는 천사가 아니야!' 그렇게 남편이 집을 나가 버리는데, 줄리는 하룻밤을 그 없이 보내고난 후, 남편이 그리워진다. 자신은 이기적이고,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 좋은 남편을 가질 자격이 있을까, 에 대해서 포스팅을 한다. 그리고 남편 직장의 자동응답기에 메세지를 남긴다.



당신 없이 자려니까 이상해, 당신이 그리워.



그 날, 자신이 이기적이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남편을 그리워 한 날, 그녀는 자신의 블로그에 저녁을 요거트로 먹었다고 쓴다. 


yogurt for dinner.




잠이 오지 않았던 줄리는 벌떡 일어나 마트로 가 다시 요리할 재료를 산다. 그렇게 장바구니를 채워 터벅터벅 집에 돌아오는데, 집 앞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을 만난다. 그들은 다투었고 그렇게 남편은 화가 나서 집을 나갔지만, 그렇게 다시 돌아왔고, 서로를 웃으며 반겨준다. 


싸우고 화해하고,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 이게 오래된,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수순 아닐까. 싸우고 어색하지기 보다는 자연스레 화해할 수 있는 바로 이것.




줄리는 줄리아의 책에 있는 모든 요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블로그는 인기가 많아졌고, 그녀에게 음식의 재료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책을 내자는 제안도 여러차례 들어왔고(실제로 책을 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에는 그녀와 그녀의 블로그에 대한 글도 실렸다. 이 모든 과정들이 내게는 낯설지 않았는데, 그녀가 요리로 블로그 활동을 유지했다면, 나는 책읽는 것으로 그것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줄리와 줄리아는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열심히 해서 그것에 대한 성과를 냈다. 그것으로 기쁨을 찾았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인정 받았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그게 가장 훌륭한 것이여..


줄리아는 책을 내기까지 8년이 걸렸다. 그녀의 원고는 출판사에서 거절당하기도 했는데, 또다른 출판사의 여자 편집자는 직접 그 레시피대로 요리를 만들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그 책을 출판하기로 한다. 자신이 직접 검증을 거친 것. 그때 만들었던 대표 요리가 소고기찜이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요리! 줄리는 한 번 실패했던 그 요리!




이때 편집자가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보면서 맛있다고 감탄하는 장면은 정말 좋은데, 나는 사람들이 맛있는 걸 먹으면서 실제로 감탄하고 맛있어하고 신음소리를 내는 그 반응들, 리액션을 정말 좋아한다. 특히나 좋아하는 사람이 그러면 너무나 좋은데,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제대로 맛있어 하는 사람들, 진짜 너무 소중해... 맛있는 표정과 신음소리, 정말 좋지 않은가!



그리고 요리 바보인 나도, 계속계속 요리가 하고 싶어졌다. 내가 정성스레 만든,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내놓고 싶어졌어...

(안돼, 그러지마, 그러지마...)






영화 너무 좋다. 펜팔친구 얘기도 나오고, 블로그 얘기 나오는 것도 좋다. 너무나 잘나가는 친구들 앞에서 위축됐던 줄리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낸 것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에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도 좋고. 기쁨도 슬픔도 우울함도 성공도 함께 나눌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인생의 참된 축복인 것 같다. 



에이미 아담스 나온 영화 많이 봤는데,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았다.

이 영화의 원서가 있던데(이게 줄리가 쓴 책인듯), 사고 싶은 마음 따위, 눌러버렸!!

포기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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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2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하신 요리 먹으러 가는 상상을 한 번 해 봅니다. 아마도 메뉴는 ˝눈물없인 똠양꿍˝이랄지 ˝지옥에서 건져온 불닭발˝이랄지 ˝쫄면 돼지시든지˝랄지, 뭐 그런 게 나올 것 같아요.

다락방 2017-08-21 11:52   좋아요 2 | URL
아니 이 분이 지금 뭐라시는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쫄면 돼지시든지 좋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부하고 싶은 게 많아서 큰일이에요. 요리도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데, 제일 먼저 포기해야 한다면 요리를 포기해야 할듯. 요리를 못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런거 저런거 다 해보고 싶지만 현실은 구몬 밀리고!! 시사인 밀리고!! 다 밀린다 밀린다 밀려!!!

뭐,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이 다락방이!! 제가!! 근사한 음식을 준비하고 쇼님을 초대하는 날이요. 있겠지요. 있기를 바라봅니다.

심술 2017-08-2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숨어서 읽기만 하다 첨 댓글 달아봅니다.

저도 이 영화 좋아해요. 두 번 봤는데 첨 봤을 땐 언제였는지 잊었고,
다만 극장이 아니라 집에서 TV로 본 것만은 기억나네요,
둘째로 본 게 바로 지난달인가 지지난달인가 EBS였나 OBS에서 주말밤영화로 해 주는 걸 봤죠.

영화에서 줄리아 차일드 남편 연기한 배우가 스탠리 투치였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줄리아 차일드 아니 미란다 프리쓸리에게 시달리는
앤 해써웨이에게 패션잡지사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던 게이로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선 아내 브리짓 폰다를 못살게 굴던 찌질한 남편으로 기억해요.
이 영화에선 맥카시즘에 시달리고 극우꼴통스런 장인에게 시달리는 양심적인 시민이자 이해심 많고 착한 남편이더군요.

메릴 스트립이랑 에이미 아담스는 워낙 유명해서 더 할 말이 없고요.

구몬이랑 시사IN이랑 요리랑 다 잘 하시기를.

다락방 2017-08-21 13:13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줄리아 차일드의 남편은 양심적인 시민이자 이해심 많고 착한 남편이었죠. 아내를 위로하는 것도 그렇지만, 아내의 성공에 함께 진심으로 기뻐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파트너의 자세란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고요. 줄리의 남편 ‘크리스 메시나‘도 좋았어요. 역시나 다정한 남편이었고요. 영화속 여자들이 똑똑하고 멋져서 좋았는데, 그녀들의 남편들 모두 다정한 사람들이어서 또 좋았어요.

저는 굿다운로드로 이 영화 다운 받아놓았는데, 참 잘했다 싶어요. 친구가 이 영화 좋다고 엄청 얘기해서 진작 다운 받아놓고 이제야 보았는데, 보면서 아 이래서 보라 그랬구나 싶더라고요. 참 재미있게 봤고 좋은 영화였어요. 에이미 아담스는 이 영화에서 제일 예뻤어요. 흣.

구몬이랑 시사인은... 아, 모르겠어요. 하기 싫어요...Orz

지나 2017-08-21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줄리앤 줄리아 책으로 보고 있는데 잘 읽어져요ㅠㅠ 벌써 며칠째 잡고 있는건지

다락방 2017-08-21 15:41   좋아요 0 | URL
앗. 원서를 읽고 계신건가요? 책은 잘 안넘어가나 보군요. 세상에 읽을 책이 아주아주아주아주 많으니, 다른 책 읽으세요, 쥴리님. 그리고 이건 그냥 영화로 보시는 게 어떠세요? 영화 무척 좋아요!

지나 2017-08-21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원서라니요 지금은 절판 됬지만 한글판이 있답니다.먹는거 좋아해서 술술 읽힐줄 알았는데ㅠㅠ

다락방 2017-08-21 15:56   좋아요 0 | URL
아 한글판이 있었군요! 검색했을 때 원서만 나오길래 원서 읽으시는 건줄 알았어요.
먹는 거 좋아해서 저도 이 영화 보는 게 즐거웠던 것 같아요. 소고기찜 만든 거 보니까 막 먹고싶고 ㅋㅋㅋㅋㅋ

transient-guest 2017-08-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괜찮지요. 사실 이거 보고서 저 옛날 파리에서 지독한 편견을 이겨낸 아주머니의 책을 구했나 구하려다 말았나..아무튼 좋았습니다.ㅎㅎ 근데 메일 스트립 남편으로 나온 배우의 러브-러브 연기가 좀 질척했던 기억이..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분이 게이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키스가 너무 연기스럽게 질척하더라구요..ㅎㅎ

다락방 2017-08-22 11:30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남편분이 너무 다정해서 좋았거든요. 다정하고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주고 늘 옆에 있어주고 이러는 거 너무 좋아가지고 질척했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메릴 스트립의 억양이 좀 어색했지만, 그건 역할을 위해서 그런 것 같고요. 줄리와 줄리아의 남편 둘 다 너무 다정하고 애정뿜뿜해서 이영화가 더 좋더라고요! 긍정적 남편의 모습을 보여준 몇 안되는 영화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11:00-18:00 까지 강의 들어요!! 짱이죠!!!!! (씐남 ㅋㅋㅋ 그런데 이렇게 딴짓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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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19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라톤..... 들뢰즈.......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락방 2017-08-19 13:50   좋아요 0 | URL
아오 ㅋㅋㅋㅋㅋㅋㅋㅋ 방금 점심 먹었어요. 헤헷

비연 2017-08-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이에요!

다락방 2017-08-19 16:29   좋아요 0 | URL
들뢰즈 어려워요... ㅠㅠ
 

















어젯밤에 자기전에 이 책에 대한 근사한 리뷰를 읽었다. 그 리뷰는 퍽 낭만적이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독서공감이 낭만적이기 때문이겠지? 낭만적인 책을 읽으니까 낭만적인 리뷰 나오고 뭐 그러는 거 아니야? 어쨌든 그 리뷰는 나를 추억에 잠기게 했다. 일단 어떤 리뷰였는지 링크를 걸도록 하겠다.



http://blog.aladin.co.kr/syo8kirins/9533769



그러니까 나는 아마 가끔 y 의 이야기를 이 공간을 통해 했을 것이다. 그는 나의 직장 동료였다. 과거형으로 말한 건, 그가 몇 해전에 퇴사하고 지금은 이 회사에 없기 때문인데, 퇴사 전에 그는 나와 간혹 술을 마시곤 했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마시기도 했고 나와 둘이 마시기도 했다. 내가 롤카베츠 먹고 싶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 일본 출장 갔다가 슈퍼에서 파는 롤카베츠 사진을 찍어와 보여주기도 하고, 롤카베츠 하는 식당을 알아냈다고 주말에 롤카베츠 먹으러 가자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 일요일에는 그를 만나서 롤카베츠를 하는 식당을 가기로 했는데, 막상 가보았더니 그 날은 영업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하는수없이 고기를 구워먹고 2차로 와인을 마시러 갔더랬다. 와인을 마시러 간 곳은 저렴한 bar 였는데, 거기에서 그는 맥주를 마시고 나는 와인을 마셨더랬다. 와인을 따라주는 바텐더에게 많이 주세요, 했더니 한 잔 가득 따라주어 내가 얼마나 씐났었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신청곡을 받아 음악도 재생시켜주길래 harlem blues 를 신청했는데, 우앙, 옆에 남자 앉아있고(응?), 앞에 와인 놓여있고, 그리고 할렘 블루스 나오고 그러니까 세상 좋아서 내가 으악 어떡해~~ 했더랬고, 내가 어쩔 줄 몰라하자 그는 옆에서 '울어도 돼요' 했더랬다. 내가 너무 좋아서 진짜 딱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그래서 그날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던 기억... 


이건 독서공감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 그를 떠올리면 이 날이 가장 먼저 생각나서 이 얘기가 나왔네. 어쨌든. 그 후에 그는 퇴사를 했고, 퇴사를 한 후에 가끔 나와 연락을 했었는데, 뜸한 연락 사이로 내가 독서공감 책이 나오자 띡- 하고 그에게 아무 말도 없이 링크를 보냈던 거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는 가끔 책을 읽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랑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던 터라 링크를 보내면 어쩌면 그가 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어쨌든. 그 후에 연락하면서 그가 종로에 맛있는 닭볶음탕집을 알고 있다며 함께 먹으러 가자고 해서 퇴근 후에 그를 만나러 종로로 갔는데, 그 집은 정말 맛집이었는지 줄을 서 있더라. 줄을 서 기다리는 동안 그는, 나를 만나러 오기 전의 예의 같은 거라며, 밤새 독서공감을 다 읽었다고 했다. 아 뻘쭘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더니, 감상을 아이폰 메모장에 적어왔다는 거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우리 차례가 되었고, 테이블에서 닭볶음탕이 막 끓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아이폰을 꺼내더니 자신이 쓴 감상을 읽어주겠다는 게 아닌가. 아니, 안읽어줘도 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걸 나한테 왜읽어줘 뻘쭘하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어주기 전에 그는, 자신이 아는 사람중에 책을 낸 사람이 또 있고 그래서 그 책도 읽었었는데, 내 책이 훨씬 재미있다고 했다. 어쨌든 그는, 끓고 있는 빨간 닭볶음탕을 앞에 두고, 내 앞에 마주 앉아, 자신이 메모장에 기록해온 독서공감의 리뷰를 읽어줬다. 아 듣는 동안 부끄럽고 뻘쭘해서 빨리 끝나기를 바랐었지. 그치만 내 글에 대한 감상을 듣는 건 즐거웠어. 결론적으로 그가 쓴 감상의 주제는 그거였다. '이 여자랑 사귀고 싶다면 이 책 먼저 읽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얼마나 부끄럽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우리는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가며 소주를 마시고 닭볶음탕을 먹었다. 닭볶음탕은 그런데, 내가 좋아할만한 딱 그런 타입은 아니어서, 내가 다시 찾을 곳은 아니긴 했다. 



아무튼 오늘 저 링크된 리뷰를 읽다보니 이 y 생각이 나는 거다. 리뷰의 느낌이 비슷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그와 동동주 마시러 갔던 일도 생각나고, 둘이 갈비 먹으러 갔던 것도 생각난다. 화장실 좋은 갈비집이었는데, 자신은 술집을 차린다면 반드시 화장실을 좋게 만들고 안에다 만들거라는 얘기를 했던 것도 기억난다. 오래전이었는데, 술집 화장실은 여자들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가자는대로 따르게 되어 있다며, 결국은 손님을 많이 끌기 위해서라도 좋은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다. 우리가 둘이 따로 만난 횟수가 별로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기억을 떠올려보니 함께 순대국도 먹으러 갔었네. 물론 소주랑. 또 을지로 노가리집에 갔었다. 내 입에 계란말이 넣어주겠다는 걸 내가 한사코 거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정말 맛있는 보쌈집이라며 같이 가자고 해서 종로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찾아갔던 보쌈집도 생각나고, 이자까야에 갔던 적도 있다. 야, 양재에서는 맛있다고 소문난 족발집을 가기로 해서 둘이 함께 가는데, 퇴근 후라 그가 양복을 차려입고 있어서, 함께 걷는 동안 그냥 양복 쫙 빼입은 남자랑 걷는 것도 혼자 흐뭇해했던 기억도 있다. 아, 우리 되게 뭔가 많이 먹으러 다녔구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한번은, 그가 퇴사하기 전이었는데, 여름 휴가 끝나자마자 그가 메신저로 다정하게 말을 걸어 휴가 잘 다녀왔냐 묻는데, 어, 뭔가 평소랑 느낌이 달라, 내게 요구하는 게 있는 듯한 느낌이야? 그래서 뭐냐, 너 할 말있지, 했더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모방범2권 좀 빨리 빌려달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휴가 가기 전에 1권 빌려줬었는데, 이 친구가 그걸 읽고는 다음권이 궁금해서 이제나저제나 나 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그와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가 취직은 했는지, 어떻게 사는지 소식을 전혀 모른다. 아마 그도 내 두번째 책이 나온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어쩌면 우리가 여태 알고 지냈다고 하더라도, 내가 헬페미가 되는 순간.... 멀어지게 됐을지도 모른다. 사람일은 알 수 없지.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나는 워낙에 책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책읽고 글 쓰는 일은 진짜 좋은 것 같다. 하면 할수록, 반복될수록 즐거움이 크다. 오래전에 써둔 글을 읽는 것은 오글거릴 확률이 더 크지만, 그 때의 기억과 느낌을 확 불러내주는데, 그게 또 그렇게나 좋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한 남자 때문에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아아 어쩌지 사귈까 말까-, 지난 일기를 읽다보니 과거의 어떤 연애를 앞에 두고 내가 똑같은!! 고민을 한 기록이 있더라. 오오. 내가 이랬었구나, 오오 지금이랑 똑같은 갈등을 하고 있네.... 그때는 '한 번 해보자' 를 선택했었고 이번에는 '하지말자'를 선택했다. 뭐가됐든 어떤 선택을 했다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남는 법. 

나에게 기록은 의미있다. 이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더 큰 의미로 다가올 터.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자고, 열심히 읽고 쓰면서 또 생각한다. 내가 이것을 좋아한다면, 내가 좋아할만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크다. 그리고 정말 좋다. 읽고 쓰는 게.


책 읽는 게 너무 좋은데, 진짜 너무 좋은데, 정말 너무 좋은데, 그래서 이 기쁨을 다른 사람들도 다 알았으면 좋겠는데, 오만년전에 남자아이들하고 술 마시다가 '책 좀 읽어라' 고 말해서 대판 싸운 적이 있다. 감자탕 집이었지... 하하하하하. 나한테 아무리 좋은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순간 강요가 되어버리니 이제는 책 좀 읽어라, 하고 서투르게 말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게 뭐든, 공부든 운동이든 독서든, 다 자기가 깨달아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여..



아, 좋은 아침이다. 낭만적인 리뷰도 읽고(이건 어젯밤에 읽었지만), 그 리뷰로 인해 과거에 좀 만났던 남자 생각도 하고(응?), 내가 만들어온 샌드위치도 먹고(계란+살라미+치즈+딸기쨈), 좋구먼...
행복은 이렇듯 멀리 있지 않다. 내가 만든 샌드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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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7-08-18 1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에 뉴스란에 뜬 그분의 리뷰를 읽었어요.읽는 내가 다 설렐정도였는데 역시 다락방님은!!!^^
글이 주는 힘이란,
때론 그날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는걸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다락방 2017-08-18 10:3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책나무님, 정말 그래요!
글 너무 좋죠. 글 읽는 거 너무 좋아요. 글로 쓰여진 책이라니,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제가 읽고 쓰는 사람이라서 너무 좋아요. 헤헷.
우리 앞으로도 열심히 읽고 쓰고 살아요!!

syo 2017-08-18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롤카베츠 고기 와인 맥주 떡(?) 닭볶음탕 소주 동동주 갈비 순대국 노가리 계란말이 보싼 족발 샌드위치 계란 살라미 치즈 딸기잼.

이것이 이 한 편의 페이퍼에 언급된 음식들의 이름입니다.... ˝집밥 다선생˝이세요.

그나저나 저 링크의 글은 참 좋군요. 좋아요를 누르고 싶은데 아무리 눌러도 북플이 안된다고, 너는 그 글에 좋아요를 눌러서는 결코 안된다고 하네요.... 왤까요?ㅋ

다락방 2017-08-18 10:39   좋아요 1 | URL
저 링크의 글에 저는 좋아요를 눌렀습니다만 ㅋ

우리가 음식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무슨 얘기를 더하겠습니까. 음식만큼 중요한 게 어딨습니까. 연애는 하지 않고 살 수 있지만, 음식은 먹지 않고 살 수가 없지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100자평]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
















몇해전에 본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이 기억난다. 드라마속에서 김현주와 이유리는 병원에서 부모가 바뀌었다. 스무해 이상을 자라온 집이 나의 친부모가 있는 집이 아니었다. 가정의 경제적 형편은 아주 달라서, 김현주는 출판사 사장의 집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라왔으며 그 출판사에 취직해 능력을 인정받고 잘 다니고 있었고, 이유리는 밥집을 하는 엄마와 백수인 아빠 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서점에 취직을 해 책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 둘이 병원에서 바뀌게 되었다는 걸 이유리가 알게되었고, 이유리는 '김현주가 누리고 있던 것은 모두 내 것' 이라고 생각하며 김현주와 이제 자신의 자리를 바꾸고자 아니, 원래의 자리를 찾고자 한다. 


김현주는 누구에게든 사랑받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긍정적이고 밝아서 직장내에서 동료들에게도 인기가 좋았고, 나이 어린 외삼촌과도 다정한 사이었으며, 직장의 팀장으로부터도 이성애적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런 한편 이유리는 고집이 세고 이기적인 성격이었으며,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었는데, 그 성격을 보면서 한동안, 만약 이유리가 부잣집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라왔다면 이유리가 지금의 김현주 성격이 되었을까? 를 생각했더랬다. 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부족한 것 없이 누렸다해도 반드시 성격이 다정하고 밝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에서 자라났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성격이 모난 것도 아니다. 


나는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이 그 사람의 인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환경이 그 사람에게 미치는 '유일한' 영향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 사람의 내재된 성향, 성격 이라는 것은 그 사람을 형성하는데 어쩌면 가장 큰 축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같은 환경,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고 같은 교육을 받아도 전혀 다른 성격의 형제 자매가 있는 거 아닐까. 그 뭐냐, 덱스터였나, 어느 책에서 보면, 부모가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형제중에 한 명은 살인자가 되고 한 명은 경찰이 되는, 그런 게 있었는데...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환경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 사람 본연의 기질도 중요할 것이다. 나는 요즘, 어쩌면 기질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그 사람에게 내재된 본성이란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그 본성이야말로 나를 이루는 축이 아닐까. 환경과 본성이 50:50 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환경과 본성은 30:70 정도의 비율이 아닐까? 아니면 37:63 ???




나로 말하자면 충분히 사랑을 받고 자라 충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다. 그러나, 내 안에는 분노도 많이 잠재되어 있다. 화딱지가 나면 참지 못하고 말하는 것은 엄마를 닮았다. 술을 좋아하는 것은 아빠를 닮았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아빠와 엄마가 가진 그것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나는 결국 아빠 엄마를 닮았지만 전혀 다른 어떤 사람이 되어 있다. 나는 아빠와 많이 싸우고 엄마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만약 내가 아빠,엄마가 바라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으로 자랐다면, 혼전순결을 지키고 새누리당에 투표하며 이미 결혼해 아이가 셋 쯤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빠 엄마가 자식에게 바랐던 것은, 결혼전의 섹스가 왜 남자에게만 허락되어야 하느냐며 으르렁 거리는 내가 아니었고, 광화문에 나가서 촛불을 드는 내가 아니었고, 혼자 여행다니면서 살거야, 라고 부르짖는 내가 결코 아니었으니까. 헬페미가 되어 매일 빡침에 맞서는 내가 될줄은, 아빠 엄마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친구들은 내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너처럼 다정한 아빠를 가진(주변의 어느 아빠들보다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다정한 아빠다) 아이가 어떻게 꼴페미가 되었을까?' 라고 궁금해하며 묻는다. 나도 모른다.



자, 이야기가 길었는데, 참... 나도 참.... 의식의 흐름 어쩔거야. 인용문 하나만 띡- 쓰려고 했다가 또 여기까지 오고 말았어. 인생..글.. 의식의 흐름...그리고 나여....



위의 얘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책,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를 링크해놓고 참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도 늘어놨다,


지만, 사실 그렇게 또 쓸데없는 얘기는 아니다.




책 속에서 콥자매는 엄하고 까다로운 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어머니에게 세상은 별로 살아갈 만한 곳이 못되었고, 그래서 자녀들을 집안에서만 키우고자 한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그래서 괜히 말나는 것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때는 아직 여성에게 투표권도 없을만큼 여성의 인권이 낮은 시기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항상 바깥에는 문제가 많다고 했다.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고 안전하지 못하다고. 어릴때부터 이런 가르침 속에 자란 콥자매인데, 콘스턴스는 어느 순간 제 스스로 깨닫는다. 엄마가 틀렸다, 엄마가 보는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지 않다, 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 돕고 싶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콘스턴스에게, 둘째 '노마'는 신경 끄라고 일갈하지만, 콘스턴스는 그럴 수가 없다. 나쁜 짓을 한 놈을 어떻게든 벌을 줘야겠고, 억울한 사람을 어떻게든 돕고 싶다. 그리고 아직 많이 어린 셋째가 이제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되기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당시에 여자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는 결혼해서 남편에게 의지해 살며 가사노동을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래서 콥자매의 오빠는 '내가 너희들을 보살펴줄테니 나와 함께 살아!' 끈질기게 얘기하지만, 콥자매는, 콘스턴스는 '우리 힘으로 살것이다'를 끊임없이 주장한다. 사회가 여자에게 요구하는 바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고자 한다. 엄마가 요구했던 바와 다른 방식으로, 오빠가 요구했던 바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응당 그래야 하는 줄로만 알았던 길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가고자 한다. 이 부분이 너무 좋아서, 길지만 옮겨보겠다. 




오빠는 허리를 숙이고 속삭였다. "모름지기 엄마라면 애들 안전에 더욱 신경써야 하는 거 아냐?"

나도 똑같이 맞서 오빠를 노려봤다. "내가 여태 해온 일이 바로 그거라면?"

프랜시스는 문을 향해 걸어갔고, 나는 오빠의 코트 등판에 길게 자리잡은, 베시의 손길로 새로 박은 솔기를 바라봤다. 오빠는 벌써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진 남자의 약간 구부정한 자세가 몸에 뱄다.

"길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머니가 어떤 식이었는지 기억나?"

오빠는 걸음을 멈추고 여전히 화난 얼굴로 돌아보았다.

"한번은 오빠랑 내가 어머니하고 같이 외출했을 때," 내가 말을 이었다. "어떤 남자애가 우리 앞을 뛰어갔어. 그애가 발을 헛디뎌 길에 양파 한 자루를 다 쏟았지. 그때 기억나?"

프랜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가다 말고 양파를 주워주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내 팔을 잡아당기며 손대지 말랬어. 마치 무슨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투로."

"어머니는 그런 식이셨지." 프랜시스는 문에 기대며 말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어."

"맞아." 나는 말했다. "그리고 십수 년 동안 나는, 물건을 흘리면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그걸 주워 돌려줄 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어떤 사람들은-플러렛이 부서진 마차에 깔렸을 때 그걸 치워준 사람들처럼- 재난을 보면 곧장 달려가. 그 사람들이 위험에 부주의해서가 아니라, 뭐라도 도움을 줄 각오가 되어 있기 때문에."

프랜시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머니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어. 시대가 달랐으니까."

"바로 그거야." 내가 말했다. "시대가 달랐지. 우린 더이상 숨어 지내지 않아도 되고, 도망치지 않아도 돼."

프랜시스는 항복한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그럼 관둬. 하지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언제라도……"

"언제라도 오빠네 문간에 나타나도 된다는 거 알아." 내가 말했다. "오빠와 베시한테는 늘 고마워. 하지만 우린 자립해서 지금까지 잘 지내왔고, 그 사실이 나는 기뻐."

오빠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나섰다. 나는 눈을 감고 부엌에 앉아 빅터 축음기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지글거리는 음악과 고르지 않은 거실 바닥에 스치는 플러렛의 구두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프랜시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그날 루시가 패터슨 길거리에서 나를 붙잡았을 때, 어떻게 모르는 사람을 부여잡고 자신의 문제를 쏟아낼 수 있는지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은 원래 늘 그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의무감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소속감으로 그 부름에 응한다. 그게 바로 히스 보안관과 그의 부하들이 한 일이었다. 우리를 노리는 자들을 잡기 위해 총을 뽑아들고, 얼어죽을 듯 추운 우리집 헛간에 엎드려 대기하는 것.

내가 플러렛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면-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엄마로서 내가 그애한테 무언의 선물을 줄 수 있다면-그 선물은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자각. 우리는 우리한테 혹은 다른 누군가한테 말썽이 생겼을 때 종종걸음으로 피하지 않는다. 우리는 달아나서 숨지 않는다.

플러렛은 어머니를 보아왔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의 방식을 배웠다. 나는 플러렛이 나 또한 봐주기를, 나를 통해 뭔가 다른 것을 배우기를 소망한다. (p.368-370)





콥자매가 끌고 가던 마차가 앞에서 오던 차량과 부딪쳤다. 그놈들은 사과를 하기는 커녕 꽁무니 빼기에 바쁘고, 마차 수리비를 요구하는 콥자매를 무시한다. '너 말고 니네 아빠랑 얘기할게' 라고 해서 아빠가 안계신다고 하자 그러면 남편이나 오빠 다른 남자 데려와라, 라고 하는 거다. 계속되는 무시와 무례에 우리의 콘스턴스는 그 큰 키와 덩치로 나쁜놈 헨리 코프먼을 들어올려 벽에 밀친다. 이에 챙피해진 나쁜놈 헨리 코프먼은 그 뒤로 콥자매에게 위협을 가한다. 콘스턴스는 이에 당당히 맞서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에 이르는데, 여자 작가가 쓴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에서, 이 여주인공들의 입을 빌어 명대사가 아주 많이 등장한다. 속시원해지는 대사들과 이야기에 씐나는 소설이다. 이야기가 요란한 건 아니지만 충분히 의미있고, 재미와 만족을 동시에 준다. 끊임없이 자립하려고 노력하고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콥자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라는 성경구절처럼, 콥자매가 자립할 수 있는 방법도-내가 원하는 바로 그 방법으로- 결국 콘스턴스에게 찾아온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책 읽자. 이 책이 앞으로 시리즈로 나온다는데, 나는 이 시리즈를 죄다 읽을 작정이다. 후훗.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조카가 크면 읽어보라 권해도 좋을 것 같다.




8월은 내게 몹시 분주하게 느껴진다. 여행을 다녀온 탓인지, 그 후가 무척 바쁘다. 며칠전에는 오랜만에 끙끙 앓아 누웠다. 밤새 열이났고, 아퍼, 아퍼를 입에 달고 있었다. 덕분에 하루 온종일 쉴 기회가 생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는 남은 8월에 대한 계획들이 꽉 차있다. 그 중에 가장 큰 건 구몬....구몬을 밀렸어.....밀렸는데.....어제 또 왔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왜 구몬을 시작하였는가, 우리는 왜 만났는가. 우리는 과연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정녕 잘못된 만남은 아닌것인가...구몬이여........................ 오, 구몬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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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17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몬, 너는 아느냐.....

다락방 2017-08-17 12:09   좋아요 0 | URL
구몬 doesn‘t know.....

단발머리 2017-08-1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경과 본성에 대한 이야기 읽다보니 갑자기 <알쓸신잡>에서.... 지능의 발현.
선천적 55 후천적 45. 이런 게 생각나네요. 인간은 하나의 조건만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한 생물...

구몬은 당신의 친구이며... ㅎㅎㅎㅎㅎㅎ
다락방님~~~ 아프지 마여~~~~

다락방 2017-08-17 17: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단발머리님. 인간은 이렇다 저렇다 단정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정말 복잡한 것 같아요. 이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구몬은 제 친구 .. 맞습니까?
아 저 비동사 과거형 하다가 지금 과거형 의문문 까지 왔는데 어렵네요 ㅠㅠ 전 역시 영어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ㅠㅠ

네, 방금전에 퇴근 시간 되기도 전에 제가 집에서 싸온 도시락 까먹었어요. 배불러요. 히히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