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자평]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
















몇해전에 본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이 기억난다. 드라마속에서 김현주와 이유리는 병원에서 부모가 바뀌었다. 스무해 이상을 자라온 집이 나의 친부모가 있는 집이 아니었다. 가정의 경제적 형편은 아주 달라서, 김현주는 출판사 사장의 집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라왔으며 그 출판사에 취직해 능력을 인정받고 잘 다니고 있었고, 이유리는 밥집을 하는 엄마와 백수인 아빠 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서점에 취직을 해 책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 둘이 병원에서 바뀌게 되었다는 걸 이유리가 알게되었고, 이유리는 '김현주가 누리고 있던 것은 모두 내 것' 이라고 생각하며 김현주와 이제 자신의 자리를 바꾸고자 아니, 원래의 자리를 찾고자 한다. 


김현주는 누구에게든 사랑받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긍정적이고 밝아서 직장내에서 동료들에게도 인기가 좋았고, 나이 어린 외삼촌과도 다정한 사이었으며, 직장의 팀장으로부터도 이성애적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런 한편 이유리는 고집이 세고 이기적인 성격이었으며,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었는데, 그 성격을 보면서 한동안, 만약 이유리가 부잣집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라왔다면 이유리가 지금의 김현주 성격이 되었을까? 를 생각했더랬다. 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부족한 것 없이 누렸다해도 반드시 성격이 다정하고 밝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에서 자라났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성격이 모난 것도 아니다. 


나는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이 그 사람의 인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환경이 그 사람에게 미치는 '유일한' 영향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 사람의 내재된 성향, 성격 이라는 것은 그 사람을 형성하는데 어쩌면 가장 큰 축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같은 환경,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고 같은 교육을 받아도 전혀 다른 성격의 형제 자매가 있는 거 아닐까. 그 뭐냐, 덱스터였나, 어느 책에서 보면, 부모가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형제중에 한 명은 살인자가 되고 한 명은 경찰이 되는, 그런 게 있었는데...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환경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 사람 본연의 기질도 중요할 것이다. 나는 요즘, 어쩌면 기질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그 사람에게 내재된 본성이란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그 본성이야말로 나를 이루는 축이 아닐까. 환경과 본성이 50:50 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환경과 본성은 30:70 정도의 비율이 아닐까? 아니면 37:63 ???




나로 말하자면 충분히 사랑을 받고 자라 충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다. 그러나, 내 안에는 분노도 많이 잠재되어 있다. 화딱지가 나면 참지 못하고 말하는 것은 엄마를 닮았다. 술을 좋아하는 것은 아빠를 닮았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아빠와 엄마가 가진 그것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나는 결국 아빠 엄마를 닮았지만 전혀 다른 어떤 사람이 되어 있다. 나는 아빠와 많이 싸우고 엄마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만약 내가 아빠,엄마가 바라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으로 자랐다면, 혼전순결을 지키고 새누리당에 투표하며 이미 결혼해 아이가 셋 쯤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빠 엄마가 자식에게 바랐던 것은, 결혼전의 섹스가 왜 남자에게만 허락되어야 하느냐며 으르렁 거리는 내가 아니었고, 광화문에 나가서 촛불을 드는 내가 아니었고, 혼자 여행다니면서 살거야, 라고 부르짖는 내가 결코 아니었으니까. 헬페미가 되어 매일 빡침에 맞서는 내가 될줄은, 아빠 엄마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친구들은 내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너처럼 다정한 아빠를 가진(주변의 어느 아빠들보다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다정한 아빠다) 아이가 어떻게 꼴페미가 되었을까?' 라고 궁금해하며 묻는다. 나도 모른다.



자, 이야기가 길었는데, 참... 나도 참.... 의식의 흐름 어쩔거야. 인용문 하나만 띡- 쓰려고 했다가 또 여기까지 오고 말았어. 인생..글.. 의식의 흐름...그리고 나여....



위의 얘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책,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를 링크해놓고 참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도 늘어놨다,


지만, 사실 그렇게 또 쓸데없는 얘기는 아니다.




책 속에서 콥자매는 엄하고 까다로운 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어머니에게 세상은 별로 살아갈 만한 곳이 못되었고, 그래서 자녀들을 집안에서만 키우고자 한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그래서 괜히 말나는 것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때는 아직 여성에게 투표권도 없을만큼 여성의 인권이 낮은 시기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항상 바깥에는 문제가 많다고 했다.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고 안전하지 못하다고. 어릴때부터 이런 가르침 속에 자란 콥자매인데, 콘스턴스는 어느 순간 제 스스로 깨닫는다. 엄마가 틀렸다, 엄마가 보는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지 않다, 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 돕고 싶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콘스턴스에게, 둘째 '노마'는 신경 끄라고 일갈하지만, 콘스턴스는 그럴 수가 없다. 나쁜 짓을 한 놈을 어떻게든 벌을 줘야겠고, 억울한 사람을 어떻게든 돕고 싶다. 그리고 아직 많이 어린 셋째가 이제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되기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당시에 여자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는 결혼해서 남편에게 의지해 살며 가사노동을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래서 콥자매의 오빠는 '내가 너희들을 보살펴줄테니 나와 함께 살아!' 끈질기게 얘기하지만, 콥자매는, 콘스턴스는 '우리 힘으로 살것이다'를 끊임없이 주장한다. 사회가 여자에게 요구하는 바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고자 한다. 엄마가 요구했던 바와 다른 방식으로, 오빠가 요구했던 바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응당 그래야 하는 줄로만 알았던 길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가고자 한다. 이 부분이 너무 좋아서, 길지만 옮겨보겠다. 




오빠는 허리를 숙이고 속삭였다. "모름지기 엄마라면 애들 안전에 더욱 신경써야 하는 거 아냐?"

나도 똑같이 맞서 오빠를 노려봤다. "내가 여태 해온 일이 바로 그거라면?"

프랜시스는 문을 향해 걸어갔고, 나는 오빠의 코트 등판에 길게 자리잡은, 베시의 손길로 새로 박은 솔기를 바라봤다. 오빠는 벌써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진 남자의 약간 구부정한 자세가 몸에 뱄다.

"길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머니가 어떤 식이었는지 기억나?"

오빠는 걸음을 멈추고 여전히 화난 얼굴로 돌아보았다.

"한번은 오빠랑 내가 어머니하고 같이 외출했을 때," 내가 말을 이었다. "어떤 남자애가 우리 앞을 뛰어갔어. 그애가 발을 헛디뎌 길에 양파 한 자루를 다 쏟았지. 그때 기억나?"

프랜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가다 말고 양파를 주워주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내 팔을 잡아당기며 손대지 말랬어. 마치 무슨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투로."

"어머니는 그런 식이셨지." 프랜시스는 문에 기대며 말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어."

"맞아." 나는 말했다. "그리고 십수 년 동안 나는, 물건을 흘리면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그걸 주워 돌려줄 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어떤 사람들은-플러렛이 부서진 마차에 깔렸을 때 그걸 치워준 사람들처럼- 재난을 보면 곧장 달려가. 그 사람들이 위험에 부주의해서가 아니라, 뭐라도 도움을 줄 각오가 되어 있기 때문에."

프랜시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머니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어. 시대가 달랐으니까."

"바로 그거야." 내가 말했다. "시대가 달랐지. 우린 더이상 숨어 지내지 않아도 되고, 도망치지 않아도 돼."

프랜시스는 항복한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그럼 관둬. 하지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언제라도……"

"언제라도 오빠네 문간에 나타나도 된다는 거 알아." 내가 말했다. "오빠와 베시한테는 늘 고마워. 하지만 우린 자립해서 지금까지 잘 지내왔고, 그 사실이 나는 기뻐."

오빠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나섰다. 나는 눈을 감고 부엌에 앉아 빅터 축음기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지글거리는 음악과 고르지 않은 거실 바닥에 스치는 플러렛의 구두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프랜시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그날 루시가 패터슨 길거리에서 나를 붙잡았을 때, 어떻게 모르는 사람을 부여잡고 자신의 문제를 쏟아낼 수 있는지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은 원래 늘 그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의무감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소속감으로 그 부름에 응한다. 그게 바로 히스 보안관과 그의 부하들이 한 일이었다. 우리를 노리는 자들을 잡기 위해 총을 뽑아들고, 얼어죽을 듯 추운 우리집 헛간에 엎드려 대기하는 것.

내가 플러렛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면-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엄마로서 내가 그애한테 무언의 선물을 줄 수 있다면-그 선물은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자각. 우리는 우리한테 혹은 다른 누군가한테 말썽이 생겼을 때 종종걸음으로 피하지 않는다. 우리는 달아나서 숨지 않는다.

플러렛은 어머니를 보아왔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의 방식을 배웠다. 나는 플러렛이 나 또한 봐주기를, 나를 통해 뭔가 다른 것을 배우기를 소망한다. (p.368-370)





콥자매가 끌고 가던 마차가 앞에서 오던 차량과 부딪쳤다. 그놈들은 사과를 하기는 커녕 꽁무니 빼기에 바쁘고, 마차 수리비를 요구하는 콥자매를 무시한다. '너 말고 니네 아빠랑 얘기할게' 라고 해서 아빠가 안계신다고 하자 그러면 남편이나 오빠 다른 남자 데려와라, 라고 하는 거다. 계속되는 무시와 무례에 우리의 콘스턴스는 그 큰 키와 덩치로 나쁜놈 헨리 코프먼을 들어올려 벽에 밀친다. 이에 챙피해진 나쁜놈 헨리 코프먼은 그 뒤로 콥자매에게 위협을 가한다. 콘스턴스는 이에 당당히 맞서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에 이르는데, 여자 작가가 쓴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에서, 이 여주인공들의 입을 빌어 명대사가 아주 많이 등장한다. 속시원해지는 대사들과 이야기에 씐나는 소설이다. 이야기가 요란한 건 아니지만 충분히 의미있고, 재미와 만족을 동시에 준다. 끊임없이 자립하려고 노력하고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콥자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라는 성경구절처럼, 콥자매가 자립할 수 있는 방법도-내가 원하는 바로 그 방법으로- 결국 콘스턴스에게 찾아온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책 읽자. 이 책이 앞으로 시리즈로 나온다는데, 나는 이 시리즈를 죄다 읽을 작정이다. 후훗.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조카가 크면 읽어보라 권해도 좋을 것 같다.




8월은 내게 몹시 분주하게 느껴진다. 여행을 다녀온 탓인지, 그 후가 무척 바쁘다. 며칠전에는 오랜만에 끙끙 앓아 누웠다. 밤새 열이났고, 아퍼, 아퍼를 입에 달고 있었다. 덕분에 하루 온종일 쉴 기회가 생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는 남은 8월에 대한 계획들이 꽉 차있다. 그 중에 가장 큰 건 구몬....구몬을 밀렸어.....밀렸는데.....어제 또 왔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왜 구몬을 시작하였는가, 우리는 왜 만났는가. 우리는 과연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정녕 잘못된 만남은 아닌것인가...구몬이여........................ 오, 구몬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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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17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몬, 너는 아느냐.....

다락방 2017-08-17 12:09   좋아요 0 | URL
구몬 doesn‘t know.....

단발머리 2017-08-1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경과 본성에 대한 이야기 읽다보니 갑자기 <알쓸신잡>에서.... 지능의 발현.
선천적 55 후천적 45. 이런 게 생각나네요. 인간은 하나의 조건만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한 생물...

구몬은 당신의 친구이며... ㅎㅎㅎㅎㅎㅎ
다락방님~~~ 아프지 마여~~~~

다락방 2017-08-17 17: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단발머리님. 인간은 이렇다 저렇다 단정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정말 복잡한 것 같아요. 이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구몬은 제 친구 .. 맞습니까?
아 저 비동사 과거형 하다가 지금 과거형 의문문 까지 왔는데 어렵네요 ㅠㅠ 전 역시 영어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ㅠㅠ

네, 방금전에 퇴근 시간 되기도 전에 제가 집에서 싸온 도시락 까먹었어요. 배불러요. 히히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