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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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사람을 아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한 사람을 아는 데 그 사람이 쓴 책은 몇 권이나 필요할까?

그 사람이 쓴 책은 그 사람을 아는 데 필요한 시간을 얼마나 줄여줄까?

 

 

 

2

 

그녀는 크다고 한다. 아무리 잠든 여자 둘을 양 옆구리에 끼워 들고도 가뿐히 걸을 수 있는 괴력의 잭 리처라도, 만약 자기가 그 여자중 하나라면 그래도 잭 리처가 여유를 부릴 수 있을지 그녀는 확신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녀는 옹졸하다고 한다. 출근길 버스 기사와 왠 청년이 시비가 붙자 제일 먼저 지각 걱정을 하는 스스로를 보며 이반 일리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녀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적도 있는데, 후자를 더 후회한다고 전한다.

 

그녀와 결혼하려면 일이 많다. 채식을 그만둬야 한다. 설거지를 도맡아야 한다. 둘 사이에 유지해야 할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거리는 얼마만큼인지 꾸준히 체크해야 한다. 단지 특별한 먹거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훌쩍 다른 나라로 떠나거나 이국의 도시에 깊은 환상을 품는 그녀를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그곳으로 데려갈 줄도 알아야 한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서재에서 "대체 왜! 그건 아냐! 제발 그러지 마!" 하는 식의 비명이 들리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신속하게 서재로 들어가 그녀의 손을 확인할 줄 알아야 한다. 손에 책이 들려있다면 그녀는 미친 것이 아니니 따뜻하게 한 번 안아주고 다시 TV를 보러 가도 될 듯하다. 

 

설사 그 모든 관문을 통과해 그녀를 얻었더라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매력적인 남자들과 격전을 벌이고 끝내 쓰러뜨릴 수 있어야 틈만 나면 그들과 사랑에 빠지는 그녀를 되찾아 올 수 있다. 그녀는 끝없이 읽고, 소설은 끝없이 쏟아지므로 전쟁도 끝이 없다. 그럼에도 소설을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소설을 사랑해야 한다.

 

비결이 궁금하다면 그것마저도 친절한 그녀가 알려준다.

 

큰따옴표 안의 글은 정말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느낌표가 있는 문장은 정말 감탄하거나 놀라듯이, 쉼표에서는 꼭 쉬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44)

 

 

 

전부 단 한 권의 책을 통해 알아낸 것들이다. 심지어 일부다.

 

내가 저자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이유다. 웃기거나, 슬프거나, 다정하거나, 혹은 냉정하거나한 그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읽는 사람을 글쓴이의 진심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믿음직한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이유경 작가의 글은 그렇다. 내가 이 글을 읽고 웃었다면 반드시 그녀도 웃었을 것이라는, 내가 이 글을 읽고 화가 났다면 반드시 그녀도 화가 났을 것이라는(아직도 화가 나 있을 수도 있다. 그녀는 분노에 능하다), 그러므로 내가 진심이기만 하면 반드시 우리 둘 다 진심일 것이라는 믿음, 그런 믿음을 주는 글이 그녀의 손에서 나온다. 이 엄혹한 인터넷 시대에, 일기조차 남들이 볼 걸 예상해 한껏 꾸미고 포장하여 올리는 무시무시한 시대에, 아직도 저렇게 제 내장을 훌훌 다 끄집어내 보여주는 글을 쓰다니.

 

어쩌면 우리에겐 책에 대한 더 이상의 해석은 필요없을 수도 있다. 서평도 그럴 수 있다. 로쟈님과 cyrus님이 있으면 대단히 많은 부분이 해결되지 않나.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느낌일 수 있다. 같은 책을 읽은 타인의 마음일 수 있다. 책의 역할이 한 사람의 내부를 채우는 것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채우는 데에도 있다면, 우리에게는 누군가의 "책 읽은 책"이 한없이 필요하다. 책 읽은 마음이 예쁘든 모났든,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보여주는 책이 소중하다.     

 

 

 

4

 

나는 예쁘지 않아요. 내 친구들은 어느 정도는 예뻐요. 내가 전화했을 때 반갑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나한테 연락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좋아요. 나는 함께 있을 떄 당신이 아주 많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을 웃게 해주고 싶다는 아주 강한 욕망이 내 안에 있죠. 그것은 거의 나의 식욕과 맞먹어요. (170)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문제의 그 식욕이 어느정도인지는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밑줄 긋는 남자』의 여주인공이 쓴 편지를 흉내낸 글의 일부다. 여주인공은 벌써 답장을 받았고, 그녀도 답장을 기다린다고. 지금쯤 답장을 받았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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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8-17 2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너무 근사한 글이예요~~~

˝설사 그 모든 관문을 통과해 그녀를 얻었더라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매력적인 남자들과 격전을 벌이고 끝내 쓰러뜨릴 수 있어야 틈만 나면 그들과 사랑에 빠지는 그녀를 되찾아 올 수 있다.˝

특히 이 부분 좋아요.
그녀를 얻게 될 남자가 소설 속 매력적인 남자들과 벌이게 될 경쟁과 경합의 시간들. 격투와 격전들.

syo 2017-08-18 05:50   좋아요 1 | URL
가끔씩 보면 와, 저 자식은 이길 수 없겠는걸? 싶은 남자들도 있는 바, 누가 될지(혹은 된지) 모르지만 그들과 싸워야 할 그 분께 격려의 말을 전합니다....

cyrus 2017-08-18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글은 다정다감해요. syo님은 책에 친근하게 다가가서 책에서 표현하지 못한 저자의 진심까지 읽어내요. 그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syo님 글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따뜻한 글이라면 문장력, 수사, 이런 거 없어도 됩니다.

syo 2017-08-18 23:16   좋아요 0 | URL
읽어주시는 분들이 따뜻해서 따뜻하게 읽히는 걸 겁니다. 제가 하는 게 뭐가 있겠어요 ㅎㅎ

AgalmA 2017-08-21 11:04   좋아요 0 | URL
동감ㅎ

2017-08-18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9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