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한 《제2의 성》 2권은 여성의 결혼과 가사노동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1권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보부아르는 진짜 세상 모든 책을 다 읽고 생각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머릿속에 지식이 꽉꽉 차있는 것 같다. 이정도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항상 책을 읽던가 생각을 하면서 메모를 해야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경우야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 거니 어려울 게 없지만, 이 책의 경우라면 '자 이러이러한 책을 이러이러하게 쓰자'가 되어서 나온 책일텐데, 그랬을 경우, '자 이 주제엔 어느 작가의 어떤 글이 있었지'가 머릿속에 팍팍 떠올라야 할테니까. 진짜 천재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많은 것들을 다 알고 썼다는 게 너무 존경스러워.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나에게 있는 한계.
왜, 학교 때도 그런 아이들이 있지 않았나. 조금만 공부해도 전교1등하는 아이. 그렇지만 아무리 코피 터지게 공부해도 1등은 결코 못하는 아이. 나 중학교때도 쉬는 시간에도 문제집 쌓아두고 차분히 앉아 꾸준히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 성적은 항상 5,6등 정도였다. 반면에,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엠씨 '김연주'가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 나와서 말하기를, 고등학교때 공부 잘했었는데 연극에 빠지니까 성적이 자꾸 떨어지더라,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다시 공부했다, 라는 말을 했더랬다. 그러자 이문세가 '그렇게 다시 공부해서 몇등했냐' 라고 하니까 '전교1등' 이라고 하는 거다. 그랬더니 이문세가 웃으면서 '무슨 잠깐 바짝 공부해서 사람이 서울대를 가냐'는 말을 했던 거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만 공부도 그런 어떤 특정한 한 분야인 것 같다. 많이 앉아있고 오래 앉아있고 열심히 한다고 했을 경우 남들보다 잘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재능까지 타고난 사람을 이겨버릴 수는 없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나의 경우, 내가 운동을 아무리 열심히 했다고 해도 내가 국가대표가 됐을 리가 없을 테고 내가 공부를 아무리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박사학위를 딸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나는 어릴 때 한동안 교수가 그렇게나 되고 싶었는데, 공부 못해서 중도에 '아, 나 공부 못하는구나~ 눈누난나~ '하고 얼른 눈을 돌리긴 했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이제는 할 수 있다!'하고 미친듯이 파고들어가 공부를 해봤자, 내가 박사가 될 순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쪽으로는 나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 모든 게 다 나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글을 아무리 열심히 쓴다고 해서 내가 스티븐 킹 같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노력을 아무리 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내가 페미니즘 열심히 책 읽고 발언하고 공부하고 글 쓴다고 보부아르의 《제2의 성》같은 작품을 쓸 수 있을까? 말도 안되는 소리인거다. 나는 뭐든 그렇게 한계가 있는 그런 사람인 거다.
이 한계가 있음이 슬퍼서, 그렇다면 나는 그냥 특출나게 잘나지 않은 채로, 그냥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건데, 사실 거기에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내 자리는 여기고 내 역할이 여기까지라면,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느 부분에 한계가 없는 걸까. 어느 부분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걸까? 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운동도 아니고 공부도 아니고 예체능도 아니고 요리도 아니면.............나는 대체 어디에 무엇을 한계 없이 가지고 있나. 한없이 오를 수 있나?
아!!
찾았다!!
나는 내 능력이 한없이 발휘되는 분야를 찾았어! 하하. 역시 답을 구하면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안가르쳐줄거지롱~ 빔! 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또라이같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아, 근데 내가 진짜로 이런 얘기 할라 그런 게 아닌데 왜 페이퍼 창을 열면 항상 이렇게 딴소리를 하고 있나..참...이것도 참.... 내 다른 자아가 시키고 있구먼.... 내 자아야, 돌아와, 나에게 돌아와.
자, 원래 했던 얘기로 돌아가자면,
우리가 익히 아는 작가, 천재적인 작가 '톨스토이' 에게는 어린 아내가 있었다. 보부아르는 톨스토이의 아내인 '소피아 톨스토이'의 얘기를 이 책의 결혼과 가사노동부분에서 계속 인용한다. 결혼과 가사노동이라고 내가 쓰긴 했지만, 이 장의 제목은 <상황>이다.
새로운 가정의 고독 속에서 다소 낯선 남자와 맺어져 그녀는 아이에서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될 운명에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는다. 어머니의 품에서 떨어져나와 아무 목적도 없이 세상 한가운데의 냉혹한 현실 속에 버려진 그녀는, 순수한 사실성이라는 것의 권태와 단조로움을 발견한다. 이런 비탄이, 젊은 톨스토이 백작부인의 일기에서 살을 에는 듯이 서술되어 있다. 그녀는 동경하던 위대한 작가와 흔쾌히 약혼했다. 그녀는 야스나야 폴랴나의 목조 발코니에서 격렬한 포옹을 받은 뒤에 육체적인 사랑에 욕지기를 느낀다. 그녀는 가족과 헤어져 과거를 끊고, 1주일 전에 약혼한 17세나 연상이며 자기와는 전혀 다른 과거와 흥미를 가진 남자 옆에 있다. 모든 긋이 그녀에게는 공허하고 냉혹하게 보인다. 그녀의 생활은 잠자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 그녀가 결혼 초기에 한 이야기와 처음 몇 해 동안의 일기 가운데 몇 페이지를 인용한다.
1862년 9월 23일, 소피아는 결혼하여 친정을 떠났다. (p.589)
이어지는 소피아의 일기에서 소피아는 톨스토이를 따라 가는 것, 엄마와 헤어지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는지를 얘기한다. 그리고 열일곱살이나 많은 남편의 이름을 친숙하게 부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육체관계를 지겨워하고, 남편이 있어도 외로워하는 감정을 토로한다. 톨스토이는 시간이 갈수록 냉정해지고 아내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반면 아내는 점점 더 그를 사랑하게 되어가는 것도. 그러나 이것이 사랑이었을까? 의지할 데가 없고 할 것도 없는 갇혀 있는 공간안에서, 소피아가 잡고 있어야 할 건 무엇이었을까.
이 여섯 달 동안 어린 아내는 가족과의 이별, 고독, 자기 운명이 받아들인 결정적인 변화에 괴로워한다. 그녀는 남편과의 육체관게를 혐오하고 우울증에 빠진다. (p.592)
유명한 귀족과 결혼해서 여유롭게 사는 삶이라고 보여질테니, 만약 그녀가 우울증을 앓는다고 하면 세상은 그녀에게 뭐라 햇을까. 그 여자의 나이가 몇 살이든 '아내'라는 타이틀을 붙여버리고나면 아주 많은 것들을 기대하게 되는게 아닌가. 그리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또 그 여자를 얼마나 후려칠 것인가. 이 세상의 '철없는 아내'는 정말 철없는 사람이었을까? 아내라는 타이틀이 철없다는 수식어를 불러온 건 아닐까?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젊은 처녀들은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부부의 틈새가 그토록 넓지는 않다. 젊은 처녀는 삶에 대한 지식도 있고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러나 대개는 여자가 남편보다 훨씬 더 나이가 적다. 사람들은 이 점의 중요성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는 불평등한 성숙의 결과임에도 성별의 차이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대개 아내가 어린아이 같은 것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남편보다 어리기 때문이다. 남편과 남편 친구들의 엄숙한 태도는 아내에게 중압감을 준다. (p.596)
세상은 여자 후려치기를 너무나 좋아한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사마시면 곧바로 김치녀라는 멸칭이 생겨버리는 것처럼, 실제로 어린 여자를 좋아해서 달려들면서도 그 어린 여자의 미성숙함에 대해서는 손가락질을 한다. 어린 여자는 육체적으로는 충분히 섹스를 즐길 수 있는 성적 대상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충분히 어른이어야 하는 것인가? 아, 쓰다 보니 너무나 빡이 친다....
그는 나이가 많고, 일에 너무 몰두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아주 젊다고 느낀다. 장난이라도 한번 치고 싶다! 잠도 자지 않고 빙빙 돌며 춤을 추고 싶다. 그러나 누구와 춘담?
노인 같은 분위기가 나를 에워싸고 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늙은이들이다. 나는 젊음의 충동을 억누느려고 애쓴다. 그것은 이 분별 넘치는 환경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p.596)
나는 소피아 톨스토이의 일기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알라딘에 검색했더니 아무것도 검색되질 않는다. 문학에 대해 관심이 많고 깊은 친구에게 혹시 소피아 톨스토이의 일기가 (다른 제목으로) 나온 게 있는지, 아는지 물었더니, 외국도서로는 좌르륵 검색되는 것을 알려준다. 크- 나는... 원서를 읽을 수 없는 새럼... 패쓰...... 친구와 오늘 아침 소피아 톨스토이의 얘기를 나누다가,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가 그의 아내 소피아를 저격한 소설이란 걸 알게 됐다. 나 이 책 사놓고 아직 안읽었는데.... 대체 이 소설은 어떤 소설일까..
친구가 보내준 이 책에 대한 기사 링크가 영어라서 ... 첫줄만 봤는데.... 소피아는 이 책에 대해 반박하는 소설을 냈다고 되어 있더라. 그런데 국내에는 소피아 톨스토이의 일기도, 소설도 아무것도 나와있질 않네. 자, 새로운 시장이 열려야 한다.
출판사들! 이제는 톨스토이가 아니라 소피아 의 글을 출판해야 할 때입니다.
소피아의 일기와 전기 그리고 그녀의 소설을 번역해 내주시기 바랍니다!! 네?!
아, 크로이체르 소나타 읽고 싶어서 좀이 쑤시네.. 그렇지만 나는 일도 해야 하고, 일단 붙잡았으니 어떻게든 제2의 성을 끝내고 싶다. 크- 연휴동안 제2의 성을 다 읽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보지만, 아마도 안될거야...안되겠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보부아르 만세!! 만세!!!!!
그런데 ..
이런 글 쓸 수 있는 사람이란 거.... 너무 멋지지 않나?
나 말이다..
쓰다 보니까 나 멋지네.....
그럼 이만..
그대여 이젠 안녕~
어제 회사직원 한 명이 자기 동네 초밥집에서 시켜 먹으면 초밥이 그렇게나 맛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다음날도 또 시켜 먹었다고. 정말 너무 맛있다는 거다. 아아, 그 말 듣는데 나 너무 드립치고 싶었어.
"초밥이야, 나야? 초밥이 좋아 내가 좋아?"
너무 드립치고 싶었지만, 아직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된 직원이라 닥치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