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트윗에서는 이상한 글을 봤다. 그러니까 페미니즘 교사라니 세상말세다, 라는 글이 있었고, 그 글에 누군가가 '외국에서 이런 페미들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고 받아친거다. 그러자 핀란드에 사는 한 사람이 '난 핀란드에 사는데 이정도 페미니즘은 기본 장착이어야 해' 라고 하자 또다른 누군가가 '핀란드가 외국 전체는 아니지' 라는 거다. 이건 뭐 말이야 방구야. 그러면 핀란드 말고 어디를 가져와야 되냐. 누군가 난 영국이야, 난 미국이야, 난 스페인이야, 라고 나온다고 하면, 영국이 외국 전체는 아니지, 미국이 외국 전체는 아니지 하겠네. ㅋㅋㅋ 그러면 님들, 뭐가 남아요? 너 밖에 안남아, 새꺄...
참.. 대부분의 남자들은 본인이 논리적인 걸 아주 대단하게 생각하고 뭣보다 본인이 논리적이라고 강하게 확신하고 있으며, 그래서 자기들하고 싸우려는 여자들한테 항상 '님 논리좀 가져오삼' 이라고 말하는데, 보면 세상 논리 없는게 그렇게 주장하는 바로 그 남자들인 것 같다. 자기가 하는 말이 말인지 방구인지 모르는채로 개소리들을 해... 논리 엄청 따져들고 '논리', '근거', '이성', '팩트' 하고 부르짖는 남자일수록 자기 고집에 빠져 좁은 시야로 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유연한 사고, 확장된 사고를 하지 못한다.
저렇게 '핀란드가 외국 전체는 아니지' 하는 놈들이 바로 강간 사건이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 '여자가 꽃뱀일 수도 있어'라고 말하는 바로 그런 놈들 아닐까. 글쎄, 얼마나 알고 말들을 해대는지 모르겠지만, 강간을 당한 것도 고통스럽지만, 그 후에 그것을 신고하는 것은 더한 고통을 준다. 강간당한 피해자의 말을 자꾸 의심하며(니가 꼬신 거 아니야? 합의한 거 아니야? 너는 그 남자의 집에 왜갔어? 등등), 일단 꽃뱀 부터 의심하고 본다. 참, 걱정할 게 꽃뱀이어서 좋겠수다.
이 책, '조디 래피얼'의 《강간은 강간이다》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드는 의문은 그거였다. 아주 많은 여자들이 강간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데, '강간은 알려진것보다 거짓 신고가 많다'고 말하는 강간 당하지 않는 남자들이 왜그렇게 많지? 그건 마치 가정폭력과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 여성이 많다는 말에, '남자도 여자한테 맞아!' 같은 말로 받아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물론 남자도 여자한테 데이트하다 맞는 경우가 있다. 안다. 남자가 남자한테 맞는 경우도 있고 여자가 여자한테 맞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뭐? 대체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은 있어서는 안된다!! 폭력을 멈춰!! 얘기하고 있는데
님, 남자도 맞아요
님, 여자가 여자 때리기도 해요
이러는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우리 모두 맞고 사니까 괜찮다는거냐? 저걸 반박이라고 하는 걸까 아니면 변명이라고 하는걸까?? 위 아더 월드라는 거야??
강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하는데 '그것은 거짓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라니. 무슨 생각임??? 자, 보자. 강간당할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남자들이, 강간 피해자를 향해 어떤 말들을 하는지를.
2012년에도 논란은 계속되었다. 미주리 주 공화당 대표이자 당시 미 상원의원 후보였던 토드 아킨은 강간에 의한 임신일지라도 임신중절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밝히며 "진정한 강간"이 일어나면 여성의 몸이 원치 않는 임신을 막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강간에 의한 임신으로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은 강간당했다고 거짓말하는 꼴이 된다. 인디애나 주 재무관이자 상원의원에 출마 중이던 리처드 머독은 강간에 의한 임신중절도 예외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강간의 끔찍함을 경시하는 발언을 했다. "강간이라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생명이 잉태됐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그렇게 의도하셨기 때문입니다." (p.8-9)
도대체 뭘 알고 저딴 소리를 해대는건지. '진정한' 강간이라니, 뭔 개소리를 하는거야. 게다가 그것이 '진정한 강간'이라면 원치 않는 임신을 막게 되어 있다니... 네? 뭐라고요? 게다가 강간에서 임신하면 신이 의도한거라고?? 님, 신이 뭡니까? 왜 강간피해와 가장 거리가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발언을 막 해대고 있지? 남자들 진짜 아무데서나 시도 때도 없이 너무 막말하고 다니는 거 아니니?? 입 닫아라...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읽을 때마다, 인류애가 사라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인류애 사라지는 거 너무 느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이건 인류애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남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 즉 남자애가 떨어지는 거였다. 분명 내 주변에는 좋은 남자사람들이 있고, 나와 즐겁게 대화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건강한 남자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아주 많이, 자신이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채로 입을 다물어야 할 때를 알지 못하며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늘어놓는 남자들이 있다. 자, 보자.
(강간의)허위 신고를 가장 강경하게 주장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언론이 매일 여자들에게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하도록 부채질한다"고 생각하는 블로거 앵그리 해리일 것이다. 또, 여성이 허위 신고를 하는 목적은 남자들을 악마 취그하고, "헐뜯고, 차별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타락해 어처구니 없을 만큼 부당한 재판 절차에 밀어넣고, 여자가 단지 그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남자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해리에게는 자신만의 허위 강간 신고 통계가 있다. 그는 대략 5퍼센트의 여성이 경계성 인격장애 또는 그에 준하는 장애를 지니고 있어 상습적으로 허위 고발을 하는 증세를 보인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영국에서는 100만 명, 미국에서는 500만 명의 여성이 이런 장애를 지니고 있음을 생각하면, 매년 신고되는 다양한 '학대', 즉 성폭행, 가정폭력 등은 거의 모두 이런 여자들이 피해자인 척하려고 애쓴 결과임이 틀림없다." 다음으로 해리는 모든 여성이 매달 생리전 증후군을 겪는다며 "강간 신고는 대부분 그런 것들 탓이라고 여겨진다"고 덧붙였으며, 대다수 강간 신고는 허위이며 진짜 강간 사건은 거의 신고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p.169)
이런 인용문 올려놓으면 또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님, 강간 신고 허위로 하는 여자들 있는데요?' 하겠지.
네, 있습니다. 그래서요?????
연구자 잰 조던은 자신의 책 『여자가 한 말: 경찰, 강간, 그리고 믿음』에서 흥미로운 모순을 지적했다. "여자가 남자의 범죄를 고발하면 사람들은 여자를 의심하지만, 고발을 철회하면 그녀를 믿어준다. 학대를 당했다는 여성의 말은 의심스럽지만, 학대 신고를 철회하면 갑자기 여성의 말은 신뢰도가 높아진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여성의 말은 남성을 여성에 대한 폭력의 책임에서 면제하고 사면해줄 때만 믿을 만한 것이 되는가?" (p.170)
다른 인용문들은 아래 밑줄긋기로 올릴건데, 아동 성 학대 사건에 대해서는 본문에 인용을 좀 해야겠다. 마침 캐나다 가서 아동 성학대 관련된 짓을 저지를 사람은 조심하세요~ 거기는 처벌 심해요~ 혹시 무슨일 생기면 우리한테 얘기하세요~ 하고 친절하게 알려준 대한민국과 너무 비교가 돼서.
아동 성 학대 사건에서 대중의 무관심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사용한 검사들도 있다. 이들은 가해자뿐 아니라 연방법에 따라 범죄를 사법 당국에 보고할 의무를 게을리했다는 혐의로 교회나 학교 관리자까지 기소했다. 일례로 2011년 10월 잭슨 카운티 검사는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 교구의 로버트 핀 주교를 경범죄로 기소했다. 자신의 교구에서 한 사제가 노트북에 아동 포르노 사진 수백 장을 저장해두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동학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혐의였다. 2012년 9월 법원은 핀주교의 경범죄 혐의에 유죄 판결을 내리고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p.286-287)
나이들면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멈춤이 아니라 퇴보라고 생각한다. 아니, 여실히 그렇게 느낀다.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왜 저들이 저렇게 말하는걸까'를 궁금해하고 공부하는 대신, '세상 말세'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뒤로 가고 있는 거다. 뒤로 가면 어떻게 되느냐, 세상 무식해지고 고집만 세진다. 가장 무서운 건,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른다는 거다.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몰라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귀에 닿지도 않는다. '이 세상은 내가 왕이다' 하며, 뒤로 걷는다.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 강한 인류애가 장착되어 있었고, 그러므로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의견이 다르다면 얘기해보고 싶었더랬다. 그렇지만 꼴페미 내 친구의 말대로, 버릴 건 버리면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그나마 내게 남은 인류애를 유지하는 길인 것 같다.
아, 오랜만의 페이퍼에 인류애 잃은 얘기라니, 슬프네.
이 책을 접고 소설을 펴들었으니, 다음번엔 다른 페이퍼를 쓸 수 있겠지.
인류애를 찾으러 가자, 소설속으로!
(인류애를 현실에선 찾을 수 없는걸까...)
카린 마도로시안 교수는 이 주제를 명료하게 설명했다.
책임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지워진다. 이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대중을 교육한 결과로 얻은 것이라곤 이제 여자들이 강간당하지 않도록 알아서 잘 처신하리라는 기대뿐이다. (…) 강간이나 가정폭력처럼 피해자를 비난하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범죄는 오로지 젠더 관련 범죄뿐이다. 도난 경보를 켜는 것을 잊어버렸든 ‘주민 방범대‘가 순찰했는데도 강도를 당했든 절도범이 무죄 방면될 리 없는 반면, 강간 사건에서는 항상 피해자가 사건에 책임이 있을 수도 있음을 전제하는 방식으로 수사가 이루어진다. 그릇된 판단이 사건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p.96-97)
임신중절 반대론자들의 강간 부정 전략은 성과를 거두는 듯 보인다. 2012년 하원의원이며 미주리 주 상원의원 자리에 도전하던 토드 아킨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진정한 간간이 일어날 때 여성의 몸은 문을 닫아버리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끔찍하게도 아킨의 주장은 나치의 실험 결과에 근거를 두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성들에게 가스실로 보내질 예정이라고 말한 다음 그들을 살려둔 실험에서 산부인과 의사는 여성들의 배란이 멈추었다고 보고했다.) 미국 산부인과의 협회는 이 엉터리 생명과학에 응수해 강간당하는 여성은 배란,수정,수정란의 착상과정에 전혀 개입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 또한 이에 대해 "그런 관점을 표명하다니 불쾌하군요. 강간은 강간입니다." 라고 말했다. (p.105)
하퍼 리가 1960년에 쓴 명작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위 이야기의 현대판으로, 이런 영향력 있고 상징적인 이야기들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에서 흑인 남성 톰 로빈슨은 젊은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혐의를 받고,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는 톰의 변호를 맡는다. 로빈슨은 고소인과 그녀의 아버지가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그 여성은 톰을 성적으로 유혹하려다 아버지에게 들켰고, 아버지는 그녀를 모질게 때렸다. 하퍼 리는 톰이 왼쪽 팔을 다쳐 쓰지 못하며 문제의 여성에게 그런 상처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제시해 독자들에게 톰의 무죄를 확실히 알려준다. 애티커스 핀치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톰은 유죄 판결을 받고 나중에 감옥에서 탈출하려다 죽임을 당한다. 남부에서 흑인들이 지독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가 굳이 허위 강간 신고라는 장리츨 사용했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이 이야기는 여성들이, 심지어 이미 폭력을 당하고 있는 여성들까지도 허위 강간 신고를 쉽게 이용한다는 생각을 널리 퍼뜨렸다. (p.185-186)
심리학자 파트리치아 로미토는 자신의 책에서 강간 부정이 용인되는 현실을 다루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친나치 성향의 홀로 코스트 부정과 반유대주의는 이제 사회에서 반대에 부딪히고 처벌받는(일례로 유럽 여러 국가에서 홀로코스트 부정은 위법이다) 반면, 여성과 아동을 향한 남성의 폭력을 사소한 문제로 취급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처벌은 존재하지 않는다. (p.190)
데이비드 리잭은 강간당했다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취약함은 우리를 마음 깊이 두렵게 한다. 자신의 몸이 다른 인간에 의해 강제로 궤뚫린다는 것은 끔찍할 만큼 철저히 취약하고 무력한 느낌을 주는 경험이기에 대다수 사람은 생각만으로도 움츠러들고 만다. 그런 거부감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그 경험에, 그리고 그 일을 겪은 사람에게 감정이입한다는 것은 깊은 공감 능력과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솔직히 그런 어려운 일을 기꺼이 감당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지원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 허위 신고 문제가 뿌리를 내린 것은 바로 이런 식으로 최적화된 토양 때문이다. 같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강간 피해자를 피하거나 한시바삐 치워버리고 싶다는 욕구를 느낄 때, 그 여성이 모든 것을 지어냈다는 억측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쉬운 방법은 없다. 허위 강간 신고에 대한 기존 연구를 잘못 인용하거나 무시함으로써 강간 부정론자들은 여성이 강간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는 해묵은 믿음에 불을 지피고, 강간 혐의 제기에 대한 뿌리 깊은 심리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p.193)
저 말고도 루크에게 폭행당한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유죄 판결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그들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저는 그 사건이 나를 망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리고 치유과정을 통해 조금씩 회복하는 중입니다. 상담을 받으며 상처를 극복하려 애쓰고, 자기계발에 관한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의 도움에 기대기도 합니다. 여기 모인 분들은 이제 이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을 인식하고 거기에 맞서 싸울 용기를 얻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복수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생존자로서 저와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p.274)
완곡어법을 쓰지 않는 것도 대중에게 강간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 강간은 "미성년자와 섹스를 하는 것" 또는 "합의되지 않은 섹스"가 아니다. 이런 에두른 표현은 강간에 관련된 폭력이나 모욕을 은폐한다. 강간은 강간일 뿐이다. (p.290)
"그 사람들은 전부 섹스와 문란함 얘기만 하네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강간은 섹스와 전혀 관계가 없어요."
강간은 나쁜 섹스가 아니에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죠? 강간은 아예 섹스가 아니에요. 섹스는 합의하에 이루어지고 강간은 그렇지 않죠. 그건 섹스가 아니에요. 강간범에게는 섹스일까요? 강간범은 섹스를 섹스로 이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강간은 섹스를 무기로 사용하는 행위죠. 누가 뭐래도 섹스는 무기가 될 수 있어요.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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