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실이가 어찌되는지 궁금해 미치겠는데, 지금 읽고 있는 [혼불9] 권에서도 강실이 얘기가 아닌 '사천왕' 얘기로 시간을(아니, 지면을) 다 보낸다. 사천왕 얘기는 궁금하지도 않은데.. 혼불8권에서도 어찌나 다른 얘기가 많은지, 아주 그냥 읽지 말고 그냥 넘겨버릴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강실이, 강실이 어찌되었냐고, 강실이 궁금하다고! 강실이 잘 살게 해달라고!! 버럭 소리지르는 심정으로 혼불9권을 읽고 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페미니즘은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라고만 생각해왔다. 내가 페미니스트가 될 줄도 몰랐다. 그러다 관심을 가지게 된게 이 [혼불] 때문이었다. 강실이를 비롯한 책 속의 여성등장인물들의 삶이 지나치게 부조리하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이건 대단히 잘못되었는데, 아, 너무 화가나는데, 하면서 페미니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을 읽을수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내 삶이 그간 페미니즘과 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살아오면서 불공평하다,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아주 많았고, 그에 맞서 짜증내고 화를 내고 표현을 하기도 했던 거다.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페미니즘은, 사실 내 삶의 중심 축이었던 거다.
강실이는 양반 가문의 딸이다. 그런데 큰집 아들인 오래비 강모한테 강간을 당한다. 당시로서 강간을 '당한' 여자는 집안 망신 시키는 여자가 되어 부모로부터도 대단히 욕을 먹는데, 그런 강간을 강실이가 당했다. 아니, 강모가 강간을 '했다'. 게다가 강모는 미친놈이, 이미 결혼해서 아내도 있었던 터다. 종손이었고 그 위치에 대한 부담감으로 시달렸던 나약한 강모는, -어찌되었든 아내에게도 못할짓인- 사촌 여동생을 강간했다. 그래놓고 지는 아내도 두고, 강실이도 두고 훌쩍 일본으로 떠나버린다. 개새끼.. 강실이가 강간을 당했다는 건 마을에서 어찌어찌 조용하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건이 되었고, 그런 강실이에게 혼사가 성사될 리가 없으므로 강실이는 강모 생각만 하다가, 강모 아내 효연의 눈치만 보다가 시름시름 앓고 몸은 허약해진다. 그렇게 기운 없는 강실이를, 이번에는 노비 춘복이가 강간한다. 춘복이는 자신의 처지가, 이 계급사회가 부조리하다고 생각했고, 엄마의 신분을 따라가는 이상 양반 아이를 낳고 싶다는 아주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던 터다. 그러나 자신으로서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다가 혼사가 들어오지 않는 강실이에게 연정 아닌 연정을 품고 '내 아이를 낳아주오' 라고 생각하며, 강실이를 강간하고, 그렇게 임신시킨다.
강실이가 이대로 아이를 낳는다면 이건 매안 이씨 가문의 수치가 된다. 그 가문에 먹칠을 하는 짓이다. 강실이의 부모는 강실이를 일단 멀리 보내버리려 하는데 그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강실이는 중간에 옹구네한테 납치당한다. 옹구네가 자신을 '납치'한거란 사실을 모르는 강실이는 이대로 여기 머무를 수도 없어 떠나고자 하지만, 그간 살아오면서 집밖으로 나가본 일이 없어 자신이 애초에 가기로 하려고 했던 데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차표를 끊고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그것조차 혼자 할 수가 없다.
하아
지금 내가 읽은 부분이 여기까지인데, 아, 씨발 너무 엿같아서 짜증이 샘솟았다. 애초에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제약해놓으니, 위기의 순간에, 도망가고 싶은 순간에 도망갈 수도 없게 된 게 아닌가. 집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했고 차를 타보지도 못했으니 도망이야 어디 쉽단 말인가. 게다가 강실이가 대한 사람이라고 해봤자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집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전부인데, 이 사람을 믿어도 좋을지 아닐지에 대한 생각 자체를 아예 못하고 자신을 납치한 사람의 말만 믿고 그 사람에게 차표를 끊어달라 부탁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니, 강실아, 그 사람은 니가 해달란대로 해주지 않아... 하아-
강실이의 인생이 왜이렇게 가혹한가. 왜이렇게 나약하게 앉은 자리에서 휘두르는 매를 다 맞아야만 하는가.. 왜 강간을 한 강모는 일본에도 가고 자기 발길 닿는대로 움직이고 다른 여자를 만나기도 하고 돈도 쓰는데, 왜 강간을 당한 강실이는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하는가... 왜 강모가 아이를 낳으면 대를 이을 아이를 낳은 게 되고 강실이가 애를 낳으면 모두에게 숨겨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걸까.. 세상... 아....인생...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애초에 계급 사회가 아니었다면? 양반과 노비로 구분되지 않았었다면? 그랬다면 춘복이는 어떻게든 양반의 딸과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이를 악물지도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여자들을 집안에서 얌전하게 가둬두지 않았다면, 강실이는 제 발로 어디로든 떠났을 것이다. 애초에 강간을 '한' 놈이 개놈이다 라고 교육되었다면, 강모와 춘복이가 천벌받을 놈이지 강실이가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 자살을 생각하는 게 강실이가 되어야 하는가. 왜 시름시름 앓고 누워야 하는 게 강실이가 되어야 하는가. 이미 두 차례나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는데, 왜 그걸 혼자 감춰야하고 혼자 아파야 하고 혼자 신세 조져야 해... 세상........
하아, 이제 9권을 읽고 있고 10권으로 넘어간다. 초반에 언급했듯이 사천왕 히스토리가 계속계속 나와서 내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강실과 효연이 뭔가 우뚝 서는 그런 이야기를 읽고 싶다. ㅠㅠ 과한 바람인가, 욕심인가... 인생.. ㅠㅠ
어제 잠깐 심규선 콘서트 얘기 하면서, 심규선이 자기 좋다고 만든 노래를 내가 듣고 공감하며 눈물 짓기도 한다고 얘기했더랬다. 혼불 9권에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강호는 그제서야 비로소 이 천왕문의 사천왕들을 복원 불사하는데 도환이 실제 주관을 했으리라는 것을 깨달아, 깜짝 놀라며 새삼스럽게 도환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경탄과 존경이 어린다.
(스님이 절에 속한 일 한 가지를 제대로 잘 해 놓는다는 것이, 곧 불문과는 아무 연관도 없을 것 같은 나를 위하여 하는 일이 되는구나. 큰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 누구나, 제가 할 수 있는 일만 열심히, 꾸준히 해나간다면, 그것이 모여서 결국은 실한 세상을 이루는 것이다. 문화도, 학문도, 살림살이도.) (p.106)
사람은 각자 자기가 서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건강하게 자기 한 몸만 건사해도 큰 일을 해내는 것이다. 자기 몫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 이는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내가 부르짖는 바이기도 하다. 내가 내자리에서 잘 지내는 것. 그것만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도감을 주는 일이 어디있을까. 그것이 조금만 확장되도 이렇듯 나를 위한 게 전혀 연관없을 것 같은 다른 이를 위한 것이 된다. 심규선이 자신이 좋아서 만든 노래를 세상에 내놓고나서 나는 여기 이 자리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심규선이 자신의 감정을 담은 노래를 꾸준히 충실히 발표하길 바라고, 줌파 라히리와 앤 타일러는 자신들이 쓰고자 하는 글을 열심히 써주길 바란다. 그것이 곧,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은, 게다가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 먼 곳의 나에게도 좋은 일이 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열심히, 꾸준히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물론 꾸준히 해나가기 위하여서는 건강한 것이 필수 요소다.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건강하게 지내자.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일임과 동시에 큰일이다. 또한 모두를 위한 게 되는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내적 갈등의 여왕이다. 내적 갈등의 최고봉. 언제나 내적갈등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물론 내적갈등에 시달리는 사람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놓인다면 그 안에서 끊임없이 이렇게 할것인가 저렇게 할것인가 고민에 또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게 옳은 줄 알지만 다른 게 더 끌린다, 하는 상황이 세상엔 얼마나 많이 벌어지는가. 일례로, 다이어트만 해도 그렇다. 저녁에 삼겹살에 소주를 먹지 않는 게 다이어트에 더 도움이 된다는 건 '알지만', 나는 그것을 얼마나 먹고싶은가..... 아, 얼마전에 먹었던 목살의 육즙이 입 안에 살며시 퍼져나간다. 아아, 향기도 맛도 나는 내 앞에 있지 않아도 모두 느낄 수 있어, 떠올릴 수 있어.. 아아, 삼겹살, 아아, 다이어트...
"나의 마음을 정관(靜觀)하여 들여다보며 이야개히 보시지요. 옳은 마음이 늘 이깁니까? 옳은 줄 알면서도 옳은 마음이 약하면, 그른 줄 알면서도 그른 마음의 세력에 휩쓸리니 경계선에서 회오리치는 것이 인간 아닌가요? 옳다고 해서 옳은 것이 곧 그만큼 힘이 세 그 무엇에도 끄떡없이 쓰러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옳은 것을 힘있게 하려면 늘 북돋우고, 그 옆에 모이고, 가꾸고, 기르고, 충전하여 자꾸만 튼튼하게 가축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 옳은 아믕을 외면하고, 따르지 않고, 버려두면 무너지지요. 그대로 폐허가 됩니다. 반면에 그른 것에다가는 있는 힘을 다 보태 주고, 꾀를 내고, 밤이나 낮이나 궁리를 하고, 부추기어 모색하고, 행동하여 힘을 기른다면, 자연히 그르고 악한 것이 강성해지지 않겠습니까? 내 마음의 제석천은 지키는 이 하나 없이, 힘없이 무너지고, 내 마음의 아수라는 벌떼같이 일어나 아우성치면 누가 이기고 누가 지겠습니까."
결국, 내 마음은 아수라에 점령당해 버리고 말 것이다.
선과 악은 숙명적으로 싸우게 되어 있으므로, 이기고 싶은 쪽은 늘 전열을 가다듬어 날을 세우고, 무리를 모으고, 힘을 길러 삼엄하게제 마음을 지켜야 하리라. (p.163-164)
아, 늘상 싸워대는 선과 악이여... 그런데, 삼겹살을 먹지 않는 것이 정말 선인가? 그런가? 아아, 그렇다면 나는 늘 선이 옳다고만은 말하지 않으리.......... 달콤한 것이 악이라면, 신은 인간을 너무나 시험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사.......
혼불9권을 다 읽으면 내처 10권까지 다 읽을 참이다. 다 읽고나면 고이 모아 셋트로 중고로 팔텐데, 그러면 목돈이 들어오겠....나? 아 기대돼... 혼불은 각 권이 11,000원 씩이다. 이건 일절 할인도 없다. 열 권이면 110,000원... 나 개끗하게 봤으니까 5-6만원 정도로 내놔야겠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돈으로 책 사야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 맞다. 얼마전에 [남성성과 젠더]를 중고로 팔았는데, 보내면서 알라딘 도라에몽 다이어리 데일리를 함께 포장했더니, 받는 분이 다이어리까지 챙겨주셔서 너무나 고맙다며 문자 보내셨더라. 우히히히히히히히히히. 혼불 셋트에는 머그컵을 하나 넣어야겠다. 움화화핫.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었다. 나는 식사로써 햄버거를 되게 싫어한다. 끔찍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햄버거를 먹고나니..우울하다. 울적해... 삼겹살이 눈앞에 둥둥- 떠다닌다.
소주도...
"그런데 묘한 일이지요. 선수들이란 자신의 재능롸 능력을 다하여 제 존재의 영역을 보다 넓고 높게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일 텐데, 그 재능을 부여받은 부분에 가장 극심하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단 말입니다. 꽃이 그 아름다움 때문에 꺾이기 쉬운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축구 선수는 다리뼈 성할 날이 없고, 공을 너무 세게 맞아서 금이 가거나, 삐거나 하니까요, 달리기 잘하는 사람은 무릎 성할 날이 없지요. 넘어지는 것이 곧 달리기 선수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위험한 일이지요.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선수는 훌륭한 것 아닐까요?" (p.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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