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이유에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그중에 절실한 한가지를 꼽아보라면 '살아야 하기 때문에' 가 되겠다. 바꿔말하면 생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에, 가 되겠고. 그러니까 나는 길고 지루한 소설, '미야베 미유키'의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만난 것이다.
마에노가 울어서 부은 눈을 하고 있었다. 진압대원을 붙들고 있는 데도 서 있지 못한다. 달려운 구급대원이 모포로 감싸고, 진압대원이 모포째 그녀를 안아 올렸다. 그녀는 모포 속에 파묻혀 내 옆을 지나쳐 갔다. (p.175)
승객이 몇 명 타지 않은 버스가 한 노인에 의해 납치되고, 그 버스안의 승객들은 인질로 잡힌다. 납치법은 요구하는 바가 있었고, 납치범의 요구를 듣고 또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진입대원들이 출동한다. 여차저차하여 진입대원들은 버스 안에 인질로 잡힌 승객들을 무사히 구해내는데, 그중에는 젊은 여자승객 '마에노'가 있었던 거다. 구출과정에서 '스턴 그레네이드(음향섬광수류탄)'이 사용되었기에 구출된 마에노는 제대로 서있지 못하는데, 진압대원은 그녀를 모포로 감싸고 또 모포째 그녀를 안아올리는 게 아닌가. 아...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모포로 감싸주기는 하되 모포째 들어올리지는 못했을텐데...어떻게든 내 두발로 단단히 서있어야 하는데, 음향섬광수류탄..같은 어쩌고 한것의 가스를 맡고 순간적으로 시각과 청각이 마비된 뒤에, 무슨 수로 내가 두 발로 단단히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역시 모포째 들어올릴 수 있을만한 무게가 되는 게 답인걸까...다이어트는 이런 식으로 절실하게 다가오는걸까?
이십대 중반에 다니던 직장에서 겨울에 바쁜일이 끝났다고 스키장에 다같이 놀러갔던 적이 있다. 그때가 내 스키장 경험의 첫번째이자 유일한 경험이었는데, 여튼 우라지게 많이 넘어졌던 기억이 난다. 스키장에는 패트럴 이라는 안전요원들이 돌아다니면서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곤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내가 쾅- 하고 엉덩방아를 찧자 어딘가에서 바람같이 달려와가지고는 엉덩방아 찧은 내 뒤로 가서는 내 양 어깨 사이로 자신의 팔을 넣어 나를 일으키려고 한다. 조심하셔야 한다면서. 그런데 나는 좀처럼 들리질 않아........그는 내가 좀처럼 들리지 않고 여전히 엉덩이가 눈바닥에서 조금밖에 떨어지지 않는 걸 보고는 내 옆에 사람들에게 '친구분들이세요?' 물었다. 나의 직장 동료였던 그들은 그렇다고 답했는데, 그러자 그 패트럴은 내게서 손을 떼더니 '친구분들이 좀 일으켜 주세요' 하고는 슝- 가버렸다...................................
마에노의 저 장면을 읽는데 갑자기 스키장에서의 내가 오버랩되었어....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하아-
이런 잡스런 생각에 몰두하다가 나는 뜻밖의 장면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버스 안의 운전사였던 '시바노 기사'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그 기사는 먼저 풀려난다. 기사는 풀려나면서도 '자신이 버스에 남겠다'고 했었다. 자신이 버스의 운전사이므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며, 자신이 혼자 여기에서 풀려날 수 없다고 하는 거다. 그러나 여차저차 그 기사는 풀려나게 되고, 이 일에 대해 주인공은 아내와 대화를 나눈다.
"당신이 기다리는 동안 경찰 쪽에서 뭔가 설명은 해 줬어?"
"꼭 무사히 구출하겠습니다, 라고."
그렇게 말하고 아내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먼저 풀려난 기사님이, 자신이 범인을 설득할 테니까 버스로 돌려보내 달라고 난리를 치셨던 모양이야."
나는 마음이 아팠다. "여자 기사님인데, 책임감이 강한 분이었어. 훌륭한 태도였지. 어린 딸이 있는 모양이던데."
아내는 가볍게 눈을 부릅떴다. "그래도 버스로 돌아가려고 했구나." (p.182)
승객이 얼마 되지 않은 버스의 운전기사가, 버스 납치에 있어서 자신의 승객들보다 자신이 먼저 빠져나갈 수는 없다고 한다. 이 버스기사에게도 목숨은 하나뿐이고 또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딸이 있는데도, 그것이 자기의 책임임을 알고 또 책임을 다 하려고 한다. 게다가 경찰들은 인질의 가족에게 꼭 무사히 구출하겠다고 말해준다. 그 말을 듣는 인질의 가족은 그 말에 얼마나 많이 기대게 됐을까.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는 버스운전기사와 또 경찰들 때문에 눈물이 핑돌았다. 이 일이 소설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실제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그 일이 떠오르자 너무 마음이 아팠던 거다. 그냥 넘길 수 없는 장면이랄까. 잠시 멈춰야하는, 그런 부분이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량하고 건설적이야. 하지만 특정 상황에 놓이면, 그래도 여전히 선량하고 건설적일 수 있는 타입과 상황에 삼켜져서 양심을 잃어버리는 타입으로 나뉘네. 그 '특정 상황'의 전형적인 사례가 군대이고 전쟁일세." (p.385)
나 역시 기본적으로 인간이 선량하고 건설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많지만 그 대부분의 경우는 상황에 삼켜진 경우라고 본다.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양심에 걸리는 일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이 세상은 여전히 굴러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상황에 삼켜져 순간적으로 선량한 본성을 버렸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이 책의 납치범처럼, 회개하고 스스로 벌을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사람은 보고싶은대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선한 사람들이 더 눈에 많이 띄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 세상은 정말 똥이지만, (세상은 똥이야!!), 그 똥같은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에 대해 뉴스에서 보게되지만, 내 주변에는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뉴스에서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보다는 학대한 일들에 대해 언급하니까. 엊그제 토요일 오전 시청한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스웨덴' 편이었는데, 한 관광객이 점점 개채수가 줄어드는 북극여우를 언급하며 그 수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더 아름답고 더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그래서 그렇게 어딘가에서 작게나마 힘쓰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선량하고 건설적이라고 믿는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얘기를 계속해보자면, 나로서는 티븨시청을 거의 하지 않는데, 집에 있다면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 [걸어서 세계속으로] 이다. [무한도전]도 그런 편이었지만, 요즘엔 그 시간에 설사 집에 있어도 꼭 봐야지, 하는 생각은 들질 않더라. 어쨌든 엊그제는 스웨덴 편을 봤는데, 길고도 긴 트래킹 코스를 걷는 장면이 나왔다. 각자 20키로에 육박하는 커다란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는 걸으니 종아리에 무리가 오기도 하고 발이 다치기도 한다. 잘 때는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가 자고, 중간에 마련된 간이화장실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아, 나도 걷고싶다, 고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걷고싶다고. 하루든 이틀이든 걸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등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내게는 힘겹게 느껴진다. 배낭을, 짊어지고 싶지 않아.. 하아- 배낭 없이 걸을 순 없을까...그러나 배낭없이 걸으면 잠은? 밥은? 갈아입을 옷은? 물은? 발이 다쳤을 때 치료는????? 그 프로를 보다가 너무나 걷고 싶어진 나는 스웨덴에 가는 대신, 일자산엘 갔다.
스웨덴 트래킹을 하다 일정거리만큼을 지나면, 하하하하, 그 트래킹 길에서, 놀랍게도, 맙소사, '순록햄버거'를 맛볼 수 있단다! 뭐...뭐...뭐라고? 소는 울타리 안에서 주는 음식만 먹지만, 순록은 자신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양질의 음식을 섭취하기 때문에 순록고기가 소고기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있다고 한다. 실제로 순록햄버거를 줄서서 사먹는 트래킹하던 사람들은, 다들 맛있다고 한결같이 얘기한다. 아....난....글쎄....어쩐지... 나는 순록햄버거 대신, 일자산에셔 내려와서 비빔국수를 먹었다.....
오, 내가 티븨에서 본 코스를 다녀오고 순록햄버거를 먹은 사람의 블로그가 있다!! 여기 ☞
http://blog.naver.com/rose0626/220472128210
지난주 금요일에는 청광차단안경이란 걸 주문했다. 트윗에서 이런 걸 봤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는 하루종일 컴퓨터를 보기 때문인지 퇴근무렵에는 눈이 피로해지고, 퇴근길 지하철안에서 책을 읽으려고 하면 이내 눈이 아파지는거다. 라식 수술을 했기 때문인가, 생각하다가 설사 라식수술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고 하루종일 컴퓨터를 보는 게 눈이 좋을 리가 없다. 해서 고민없이 주문해버렸다.
음...4만원이라지만, 눈의 피로를 멈출 수 있다는 데 무슨 고민을 하겠는가. 대신, 나는 다른 걸 사기를 포기했다. 이 안경을 선택한 덕분에 포기하게 된 건 바로 이것. 버터치킨카레!!
나는 사실 금요일에, 이걸 사서 쟁여놓으려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이주전쯤이었나, 무인양품에서 카레를 종류별로 시켰는데, 제일 처음 먹은 야채카레가 맛이 있었지만, 그래도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래서 다시는 안사먹어도 되겠다, 생각했는데, 금요일 아침에 버터치킨카레를 먹고 오오- 존맛! 하고는 이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이건 사야지. 꺅 >.< 이건 사서 쟁여놓고 가끔 저녁에 먹자. 와인 마시면서 카레 먹는 건 또 내가 좋아하는 거. 뭐 와인 마시면서 깍두기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0-
그래서 이 카레를 쟁여놓으려던 참이었는데, 크-, 눈을 보호하는 안경을 주문하는 바람에 이 카레를 포기하게 된거다. 사람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갖고 싶다고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어..
그러다 문득 몇해전에 좋아했던 남자 생각이 났다. 그는 당시에 씨제이를 다니고 있었는데, 내게 씨지븨 영화쿠폰을 보내주기도 했고 맥스봉 소세지를 박스째로 보내주기도 했다. 소세지 뿐만 아니라 젤리포? 뭐 그런 거랑 기타등등 다른 것도 커다란 박스에 잔뜩 넣어서는 동료들과 간식 먹으라며 보내주었던 거다. 크- 뭔가 멋지지 않은가. 나는 무인양품의 카레 주문하기를 포기하면서, 아, 무인양품에 다니는 남자를 좋아하면 내게 카레를 보내줬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정말, 쓸데없이 해봤다.........
아..씨제이 다니던 남자를 좋아하던 그 때가 그립다....너무나 먼, 먼 과거의 얘기.....
그나저나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서는, 제기랄, 외근 나갔다가 슈크림 잔뜩 들어간 빵을 사와서 쳐묵쳐묵했네. 나란 여자, 어쩔 수 없는건가봉가... -0-
이제 진짜 빵 끊어야지!!
아, 맞다 보슬비님이 보고싶어하신《하우스와이프 2.0》 원서 저자싸인은 아래 두번째 사진. ㅋㅋ 이 원서는 단발머리님께 가고 있음. ㅋㅋㅋ
무언가 곤란한 일이 있어서 시야가 협착해진 인간은 본인 또한 `곤란한 사람`이 되어 버릴 때가 있다는 경우의 견본이다. (p.275)
"사람을 가르치고 이끈다는 건 본래 아주 고귀한 기술일세. 어려운 기술이기도 하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교육자에 맞는 적성이라는 게 있을 걸세. 하지만 적성만으로는 길을 잘못 들 때가 있지. 교육의 목적의 정사正邪를 가려낼 양심을 잃어버리면." (p.406)
우리 세 사람은 잠시 동안 서로 침묵을 나누었다. 마치 묵도하는 것 같은 침묵을. 건실하고 게으름 피우지 않는 부지런한 여성이 늙은 어머니에게 인생 최후의 안락을 주고 싶다, 그 안락을 자신도 함께하고 싶다, 는 작은 꿈을, 욕심을 가졌다가 발이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모든 거슬 잃었다. 그 광경이 눈앞에 떠오른다. 그것은 작은 죽음이다. 꿈의 죽음. 그래서 우리는 묵도했다. (p.5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