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라이즈]는 약 이십여년쯤 전에 보았던 영화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자취하는 선배가 외박할 예정이라 집이 빈다는 말에, 다른 친구와 함께 그 빈 방에 가 이 영화를 비디오테입으로 보았었다. 그러나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그 당시에 '친구와 둘이 술을 마시며 빈 집에서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는다. 깔깔대고 친구랑 웃던 순간들과. 나는 대학생이었고, 술을 마셔도 되었으며, 그런 것들에서 어떤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할까. 그래서 이 영화를 '봤다'는 기억만 존재할 뿐 이 영화의 내용에 대한 어떤 것도 생각나질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 시리즈인 비포 선셋과 비포 미드나잇에도 무덤덤했다. 다만,
언젠가 한 번은 이 영화를 다시봐야겠다는 생각은 했더랬다. 전(前)연애에서, '이 영화 시리즈를 언제고 함께 다시보자' 하고 얘기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러나 대체적으로 무언가 함께 하자는 약속들이 불발되는 것처럼, 그 약속 역시 그랬다. 뭐, 이래저래 구질구질하게 여기까지 썼는데,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싶은거냐, 하면, 나는 이걸 그래서 어제 봤다는 거다!!! 혼자서!!! 크- 와인을 마시면서!!! 굿 다운로더로!!!!
보면서 생각했다. 아, 이 영화가 괜히 시리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구나, 충분히 사랑받을 영화로구나, 하고.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조차도 아마 이 영화의 줄거리만큼은 알텐데, 간단하다. 여행하는 기차 안에서 만난 프랑스 여자와 미국 남자가 다음날이 될때까지 하루를 온통 같이 보내며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지는 당시의 여자와 남자의 나이는 이십대 초반이며, 학생이다. 남자는 마드리드에 있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헤어지고 오는 길이고, 여자는 할머니랑 여행하고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들은 기차안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시작하게 되고, 충동적으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 내려 하루를 온통 같이 보낸다.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와 연애에 대한 이야기 가정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주 다양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며 웃고 키스한다.
특히 여자가 매력적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할 줄 알며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도 안다. 게다가 열정적이고 똑똑하다. 남자주인공은 그런 여자에게 아마도 'super smart'라고 했던 것 같다. 이 여자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잔뜩 기대하게 되더라. 여자는 자신을 '노파'에 비유하는데 남자는 자신을 '아직도 어린 꼬맹이'에 비유하는 게 인상깊다. 여자는 미래지향적인데 남자는 미래를 두려워한달까. 이렇게 서로 많이 다른데도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얼마나 근사한가!
중간에 전시회 포스터를 보며 여자가 화가와 그림에 대해 감상을 얘기할 때, 내가 남자라면 아마도 그때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불가인 그림을 보며 나직하게 자신의 감상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도 끌리지만, 자신과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도 끌리니까. 내가 볼 줄 모르는 그림에 대해 내게 멋지게 감상을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쩐지 흔들흔들, 흔들리다 훅- 넘어가버릴 것만 같다.
잔디밭에서 같이 와인을 마시고 나란히 누워 여전히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까페에서의 전화 씬이 아닌가 싶다. 서로를 앞에 두고 서로에 대한 얘기를 자신의 친구에게 이야기한다는 설정인데, 오글거리면서도 정답다. 이 젊은이들의 솔직함에 자꾸 웃게된다. 그래, 이런 사랑은 바로 지금이 아니라면 할 수 없어! 설사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해도, 이 감정은 충분히 지금 즐겨야해!!
물론 이 이십대 초반의 이국의 젊은이들의 사랑을 보며 이제 그보다 스무살쯤 더 많아져버린 나는, 여러가지로 '지금의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밤을 새며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때의 너희들에게나 가능한 일, 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야, 나는 요즘 열시만 되면 졸려...자야 돼... 낯선 도시를 호감이 가는 이성과 함께 걷는다는 건 나의 로망이지만, 크, 야, 그렇게 하루종일 걸으면 쌍코피 터져...나는 어서 빨리 이들이 안정적인 호텔로 들어가 깨끗이 씻고 자기를 원하더라. 하루종일 니네 양치도 안했잖아. 그런 상태로 먹고 마시고 키스하고 먹고 마시고 키스하고...게다가 이십대 초반이라면 얼마나 개기름이 좔좔 흐르겠어, 머리는 떡지고 얼굴은 번들거리고, 날은 더운데 계속 걷고, 겨드랑이에 땀찰테고...아...안돼. 그냥 잔디밭에서 뒹굴지마, 호텔로 들어가. 섹스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따뜻한 물로 깨끗이 씻고 쉬어. 자다 일어나서 다시 얘기하면 되잖아, 졸린데 자꾸 얘기하면..피곤해 ㅠㅠ
아아, 이런걸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또한,
6개월뒤 여기에서, 라는 만남이 참으로 호기롭다. 그것 역시 아직 낭만을 아는 사람들의 약속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take this waltz 에서도, 먼 훗날의 언젠가를 엽서에 적어 남자는 여자의 집 우편함에 넣었지만. 전화번호를 줘, 이메일 주소를 줘, 집 주소를 줘. 우리가 닿고 싶다면 우연에 기대지 마, 액션을 취하자. 라고, 이제 한참 늙어버린 나는 무언가 확실한 것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의 이 낭만적인 만남이 부럽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부럽다. 다만, 저기말이야, 니네, 확 깬게 있어...잔디밭에서 와인을 마시고나서, 그 잔디밭에 와인병과 와인잔 두 개를 그냥 두고 떠났어....어쩌라고. 그거 수습하고 갔어야지. 쓰레기통에 넣었어야지. 만약 그 잔디밭에 아이들이 뛰놀다 넘어져서 잔이라도 깨지면, 그 애들은 너희 낭만적인 사랑의 희생자가 되어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릴 거 아냐. 그 깨진 잔을 줍다가 어느 노파가 손을 베일지도 모르고, 깨진지도 모르고 킁킁대다가 지나가던 강아지가 코를 다칠지도 몰라. 미국에서 온 남자와 프랑스에서 온 여자야, 오스트리아 잔디밭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지 마. 그렇게 가는 거 아니야.
그러다보니 일전에 길을 걷다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던 여자가 생각난다. 그 여자는 남자친구와 함께였는데, 암수 서로 정다웁게 길을 가면서 여자쪽이 쓰레기를 버렸는데, 남자는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둘다 엔지라는 생각을, 나는 했다. 남자는 최소한 여자에게 '야, 쓰레기를 길에다 버리면 어떡해' 라고 말을 하던가, 쓰레기를 곱게 주워 들고 다니다 쓰레기통에 버렸어야 했던 게 아닐까.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싫고, 그런 사람과 함께 다니면서 그걸 지적해주지 않는 사람도 별로다. 그건그거고,
그래서 이 멜랑콜리한 영화에 대해 그 다음 시리즈를 봐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이 생긴다. 이십대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듯이 그들 역시 많이 달라졌을텐데. 그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하면서도, 그걸 알고 싶지 않아지는 거다. 어차피, 사랑, 그런거, 뻔하지 않나? 하는 심정이랄까. 그 뻔해지는 걸 보고싶지 않아. 그런데 궁금하다. 이들은, 재회하는지. 물론 재회하는 걸 전제로 영화가 만들어진거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들의 서로에게 모두 낯선 도시에서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좋아서, 나는 잠깐 화면을 멈추고 책장으로 가, '이광호'의 [사랑의 미래]를 펼쳐 들었다.
사랑은 무거운 생을 송두리째 들어 올리는 축제의 시간을 만나는 것이다. 상투적이고 지리멸렬한 시간으로부터 전속력으로 도주하는 에너지 가은 것. 세상의 모든 축제는 일시적이고, 얼마간의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축제는 그 안에 방탕과 폭력을 포함하고 있으며, 때로 그것은 죽음과 맞먹는 삶의 폭발적인 낭비를 의미한다.
그들에게 구체적인 미래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으나, 이국의 땅으로 함께 여행하는 상상은 로맨틱한 것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떠들썩한 축제가 열리는 낯선 땅에서 이방의 리듬에 맞추어 손ㅇ르 잡고 축제의 행렬을 따라가거나, 그 행렬이 지나는 호텔의 2층 창에서 다른 별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영원히 취기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술을 마시며 서로의 상기된 눈빛을 어루만지고 싶었다.
그 순간, 어떤 미래의 약속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가장 아름답게 생을 탕진하는 장면이었다. (p.107)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을 때의 나는 종종 세계지도 앞에 가 섰더랬다. 내가 있는 곳을 손으로 짚고, 그가 있는 곳을 손으로 짚었다. 어디쯤에서 만나야할까, 어디가 우리의 중간쯤일까. 아니, 중간이 아니어도 좋다, 나도 날아가고 그도 날아가, 아주 엉뚱한 곳, 지금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아주 멀리에서, 모두가 낯설고 서로가 서로에게만 익숙한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렇게 나는 그가 있는 곳을 짚고, 내가 있는 곳을 짚고, 곡선으로 슈우우웅 날아가, 포르투갈을, 미국을 그리고 콸라룸푸르를 짚었더랬다. 얼마만큼 날아가야 할까. 어쩌면 중간에 한번쯤, 또다른 어떤 곳에서 쉬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훌쩍 늙어버린 나는 그를 만났다는 반가움을 한가득 흡수하고서도, 그럼에도불구하고, 밤에는 잠을 잘 것이다. 샤워를 할 것이고, 양치를 할 것이고, 머리를 감을 것이고, 푹, 잘것이다. 꿈을 꿀 것이고, 잠꼬대를 할 것이며, 코를 골겠지만, 어쨌든 잘 것이다.
오늘은 먼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생각했고, 그런 노래를 들었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시차>와 <이제, 여기에서>를 들었다. 서로 각자 이사를 와 1년간 벨기에에서 함께 생활하는 '에릭 오르세나'의 《오래오래》를 떠올렸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사고》도 떠올렸다. 내가, 당신에게, 낯선곳으로 가 며칠간 함께 있자고 제안한다면, 그건 에로틱한 뜻으로 받아들여질까요?
이를테면 어느 저녁 모임 식사 자리에서 알게 된 지 일주일 만에 중부유럽 어느 도시로 사흘 동안 여행을 가자는 그의 제안만 해도 그랬다.
(중략)
잠을 통 이루지 못하던 그 기나긴 밤에, 똑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초대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의 초대를 에로틱한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그럴 거야. 그게 아니라면 다른 뭐가 있겠어? 호텔에서 단둘이만 지내자는 거야. 사흘 그러니까 사흘 밤. 아직키스도 해보지 않은 남자와 단둘이서. 하느님 맙소사,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어.
그러다 로베나는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같은 방을 쓰는 게 아니라면? 아냐, 그럴 리 없어. 방은 하나만 잡을 게 분명해. 침대도 마찬가지고. (p.80)
어제는 월급날이었다. 그러나 카드값을 제외하고나면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더라. 빡빡해. 회사 동료 e양과 점심을 먹으며 돌아오던 길, 우리는 월급날마다 하는 얘기를 또 했다. 월급을 받았는데 왜 돈이 없지? 하는 얘기.
-월급을 받았는데 빡빡하다.
-빡빡하면 그나마 낫죠, 전 늘 적자에요.
-뭔가 방법을 마련해야 해.
-무슨 방법이요?
-우린 월급쟁이라 한달에 들어오는 돈이 뻔하잖아. 더 들어올 수가 없잖아.
-그렇죠.
-월급 말고 더 들어올 돈이 있어야 하니, 그걸 마련할 방법을 찾아야지.
-뭐가 있을까요?
-.................오목? 난 오목으로 돈을 마련하겠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이렇다. 지난 토요일, 나는 중학교때 반 아이들 모두를 제치고 선생님과도 대결하여 오목에서 이겼다는, 자칭 오목챔피언인 칠봉이와 오목을 두기로 한 것. 오목이라고 하면 네가 이겼다 내가 이겼다 하는거지, 특별히 잘한다는 게뭐냐, 내가 네 코를 납작 눌러주겠다, 라며 도전장을 내민것이다. 칠봉이는 내 도전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우리는 오목을 시작하며 외쳤다.
만원빵!!
신났다. 가욋돈이 막 들어올 생각을 하니 어깨가 으쓱. 이렇게 돈을 마련하는거구나. 이것은 도박? 끌끌대며 오목을 뒀는데,
졌다.
응?
그래서 다시 뒀다.
졌다.
또 다시 뒀다.
졌다.
야...이거 왜 계속 지냐....어처구니가 없어. 단숨에 3만원이 날아가버리는 거다. 아..속이 너무 쓰려. 그래서 한 판 더 뒀다. 이겼다. 그런데 찜찜해. 여태 둔 걸로 봤을 때 내가 이렇게 이길 수가 없는데? 칠봉이에게 말하니 "니가 잘둬서 이긴거야" 란다. 구라치지마...아놔. 이싸람이..져줬네. 아놔. 나는 나한테 져주지 말라고, 나는 그게 더 싫다고, 정정당당해야 한다고 발끈하며 그렇지만 어쨌든 이겼으니 2만원을 주겠다, 고 했다.
-그런데 월요일에 줄게.
-왜 월요일에 줘?
-지금은 2만원이 없어.
-지금 없는 2만원이 월요일에 생겨?
-응. 월급 받아.
칠봉이는 그런 내가 불쌍하다고 말했....여튼 두고두고 분해서 일요일에 일자산 가는데도 오목 생각밖에 안나는 거다. 이 얘기를 e 양에게 하니, 차장님은 술마시고 해서 그런거 아닐까요? 맨정신에 하면 이기지 않을까요? 라는 게 아닌가! 좋다. 맨정신에 다시 도전하겠어!! 그래서 칠봉이에게, 야 내가 술취해서 졌던 것 같아, 맨정신에 도전한다!! 라고 하자 좋다 네 도전을 받아주마, 라고 해서 우린 또다시 오목을 뒀다.
나는 맨정신인만큼 곰곰 생각했다. 그가 앞으로 어떤 수를 두게 될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내가 여기에 두면 쟤가 여기에 둘거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두면... 하면서 결국은 내가 이길거라고 자신만만하게, 그러나 신중하게, 꼼꼼하고 디테일하게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해가며 하나씩 두었다. 그런데,
졌다.
쒸바....이게 뭐여...........오목을 ..........계속 질 수도 있는거야? 분하다고 이를 악물고 칠봉이와 대화했다. 칠봉이는 내 수를 다 예측한다고 했다. 나 역시도 네가 둘 수를 예측했는데. 하아- 문제는 그거였다. 나는 그가 예측한대로 두었고, 그는 내가 예측한대로 두지 않았어...그래서 나는 삼만원을....어제 월급 받자마자 그에게 줬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암튼 어제 월급 외에 어떤 방법으로 우리는 돈을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e양은, '오목'이라는 내 말에, 이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는 바,
차장님, 오목 두다가 패가망신 할 것 같은데요?
라고 했다. -_- 내 생각대로라면 오목을 두고 이기고 또 이겨서 한 백만원쯤 만들면 내 생활이 필 것 같은데. 그래도 상대도 사람인데, 먹고 살아야 되니까, 한꺼번에 다 이겨서 백만원 가져올 순 없고, 일주일에 한 삼만원쯤 쏠랑쏠랑 이겨서 가져오면 되지 않을까....
내 머릿속, 오목, 성공적.
둘 때마다 졌다는 게 함정..
오목, 책 사서 배울까?
자, 마지막은 다시 [비포 선라이즈]로.
여자가 프랑스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에 탔고, 남자는 배웅을 한다. 떠나려는 기차를, 그리고 떠나가는 기차에 남자는 가만 손을대었다. 남자는 플랫폼에서 그녀가 가는 걸 보았고, 그녀는 기차를 타고 떠났다.
남자는 공항으로 가기 위한 버스를 탔는데, 그녀가 탄 기차에 손을 대어보는 남자를 보는데,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생각이 났다. 떠나는 기차, 그리고 플랫폼. 당신과 나.
"아마데우는 기차를 좋아했어요. 기차는 그에게 삶의 상징이었어요. 난 같은 칸에 함께 타고 싶었지만, 그가 원하지 않았어요. 아마데우는 내가 플랫폼에 있기를, 그래서 창문을 열면 내가 언제든지 자기가 묻는 말에 대답해주길 원했어요. 그리고 그는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플랫폼도 함께 떠나길 바랐어요. 난 기차와 완벽하게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플랫폼에, 그 공중의 플랫폼에 천사처럼 서 있어야 하는 거였죠." (p.460-461)
내 포지션은,
플랫폼에 서서, 창문을 열고 그가 뭔가를 물을 때마다 대답해주는 걸까?
나는 떠나는 기차에 가만 손을 대고 그를 배웅해야 할까?
그냥, 확,
올라타면 안될까?
비포 선라이즈를 당분간은 스맛폰에서 지우지 않기로 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그저 틀어두고 일상을 보내기도 한다는 J 가 생각나, 나도 어떤날엔, 이 영화를 그냥 틀어놓고 대사를 듣기만 해야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