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읽은 책 《스틸 미싱》에서 '아주 이기적'인 엄마를 만났던 터라 마음이 지쳐 있었는데, 이 책 《과테말라의 염소들》에서는 그 엄마와는 정 반대되는 엄마가 나와서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아주 이기적'인 엄마는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는데, 이 책 속의 엄마는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웠다고 자식 앞에 당당하고 또한 자식의 친구들에게도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던 거다. '엄마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다' 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충분히 사랑을 주는 것을 보는 건 매우 안정된 기분을 줬다. 자식은 엄마의 등을 본 시간이 더 많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엄마'를 가진 자식을, 자식의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주인공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그래서 자꾸 자식자식 하네..쩝.
일전에 여동생 집에 갔다가 제부와 함꼐 술을 마셨었다. 식탁에 있는 술이며 안주를 먹고 있는 우리에게로 조카가 다가왔고, 어떻게 하다보니 조카는 내 다리에는 제 머리를, 내 남동생 다리에는 제 다리를 두고 눕게 되었다. 나는 조카의 이마를 한껏 쓰다듬으며 '우리 조카는 이마도 이뻐' 라고 말했고, 남동생은 조카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조카는 다리도 이뻐' 라고 했었는데, 조카는 그 순간이 좋았던지, 할 일이 있거나 가지러 갈 게 있으면 자리를 떴다가도 금세 다시 돌아와 전처럼 그렇게 눕는거다. 그러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조카를 한껏 쓰다듬어주었다. 이 사랑이 이 아이에게 고대로 다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조카도 그때 우리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했는가 보다. 지난주말에 와서 제 삼촌과 내 손을 한 손씩 잡고 마트를 가면서 "이모 기억나?" 하는거다. 그래서 나와 남동생이 뭐가? 하고 물으니, 그날밤을 얘기하는거다. 자신의 머리가 내게로 또 다리가 제 삼촌에게로 갔던 그날 밤을. 나는 아이가 그 날을 기억한다는 사실에 몹시 행복해져서는, 당연히 기억나지 이모가 타미 엄청 사랑했잖아, 라고 대꾸했다. 그리고는 물었다 그 날이 생각나? 라고. 조카는 응, 이라고 답했다. 아, 이 아이도 자신이 사랑받았던 순간을 기억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얼마나 좋았던지. 과테말라의 염소들을 읽는데 자꾸 조카와의 대화가 생각나는 거다. 조카가 보고싶고...이기적인 엄마 때문에 너무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 《스틸 미싱》 속의 주인공도 떠올랐다. 엄마가 아이에게 주어야 하는 건 사랑인데, 그 사랑은 자신의 이익에 앞서야 하는건데, 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일까. 《과테말라의 염소들》은 따뜻했다.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란 젊은이들이 사랑을 받고 살아왔으므로 사랑을 또 베풀 수도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따뜻했지만, 아, 그러나 이 책은 재미가 없다...유머가 없다는 그런 재미 없는 게 아니라, 한장을 넘기고 다른 장을 또 넘겨보게 하는 힘이 부족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책장은 물론 잘 넘어가지만, 그것은 다음 장에 쓰여진 이야기가 궁금해서라기 보다는 읽는 것이 어렵지 않아서 가능한 것이었다. 다음장으로 넘어가게 하는 힘이 부족해서 결과적으로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아, 작가의 다른 책을 반드시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연결되지를 않는 것이다. 따뜻한데,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고 싶긴 한데, 그런데 왜 재미가 없을까? 나는 책장을 덮고 '힘이 딸리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힘이 딸리는 지를 모르겠다. 뭔가 에너지 음료를 보충해줘야 할 것 같은데.....
이십대 중반에 내가 사귀었던 남자는, 그때 이미 삼십대로 나이가 많았는데, 장거리 운전을 해야할 때면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꼭 홍삼음료를 사마셨다. 장거리 운전에는 이걸 꼭 마셔줘야 해, 하면서. 나는 옆에서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니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 뒤로 만나는 남자들이 장거리운전을 되게 힘들어하는 걸 보고 아, 홍삼음료는 바로 이럴때 필요한 거였구나 싶어지는거다. 운전은 힘들고 장거리운전은 더 힘들고, 그러니 힘을 보충해줄 에너지가 필요했던 거구나. 그런데 그 남자 이후의 남자들은 장거리운전을 아예 안하고 혹은 하고나서 체력이 고갈되어버리는 걸 보니 아, 그남자만한 남자가 없었구나 싶었다. 어떻게 해야 힘이 나는지를 알고 자신에게 맞는 처방을 할 줄 알았던 사람. 언젠가 한번은 남자가 두시간인가 운전하고 조낸 힘들어하길래 홍삼음료 같은걸 먹어보는 건 어떻겠냐 권한적도 있었는데 먹어봤자 그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던 것 같다. 여튼 예나지금이나 약한 남자는 질색이야...아 근데 이얘길 왜했지? 아, 《과테말라의 염소들》! 이 책에 홍삼 음료가 필요한 것 같아서 그랬구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염소에게 홍삼을!
최근에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는구나, 하는. 친구고 연인이고간에 그 사이에 아무리 애정이 있다한들, 상대의 어떤 성향을 바꿀 수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우리는 그런걸 감수하고도 만나는 것뿐. 감수하면서 만나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바로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고 혹은 남남이 되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이 너무 싫고, 자기가 좋은걸 상대도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싫고, 퍼지거나 게으른 것도 싫고, 멘탈이 약한 것도 싫고, 음식을 조금 먹는 것도 싫다. 싫지만, 이런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다른 것들이 어떻게 어디서 치고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오전에 한 친구와 지금 우리의 멘탈이 얼마나 가여운지에 대해 얘기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 친구는 그 친구대로 나는 나대로, '내가 내가 아니야' 의 기분이 되어 일상을 버티고 있는데, 분명한 사실은, 우리를 흔들었던 사람이, 여전히 우리를 흔든다는 사실이다. 그건 왜 변하지를 않을까. 한번 정신 사납게 만든 사람은 두번 정신 사납게 만드는 게 너무나 쉽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는데, 아니 알것도 같은데, 아니 모르겠다. 내가 지금 뭔 말을 하는거야...여튼, 따뜻한 밥이 제일이란 얘기다. 정신을 단단히 붙들어매자. 나에게도 홍삼을, 지금 멘탈에 스크래치 난 모두에게 홍삼을!
시집이나 한 권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