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월요일. 양재에서 근무하는 남동생과 시간이 맞아 떨어지면 남동생은 차를 끌고 우리 회사 앞으로 온다. 나도 약속이 없고 녀석도 약속이 없으면 나는 남동생 차를 타고 집으로 슝- 간다. 내가 대중교통을 타고 집에 도착하는 것보다 무려 한 시간이나 빠르게 집에 도착할 수 있다. 게다가 남동생 차를 타고 가면 그간 집에 가져가지 못했던 책들을 한꺼번에 가져갈 수도 있다. 마침 지난주에 도착한 책이 여러권이라 가방에 쑤셔넣고 남동생 차에 탔다. 집에 도착하니 역시나 일곱 시가 안 된 시간, 배고프니까 밥 달라고 엄마한테 꽥꽥거리며 가방에서 가져온 책들을 꺼내 방바닥에 두었다. 그런데 아뿔싸, 가방 안에 당연히 있어야 할 지갑이 없다!! 읭? 곰곰 생각해봤다. 사무실 책상에 지갑이 있던가? 눈을 감고 장면을 떠올려 보았지만 책상 위의 지갑은 떠올려지지 않았다. 아 이게 뭐지. 분명 오후 어느때, 지갑을 열고 돈을 꺼내고 넣는 일이 있었는데. 그러니 회사에 있기는 있을텐데.....
저녁을 먹으며 이런 나의 초조함을 얘기하니 엄마도 남동생도 모두 회사 책상 서랍에 넣어둔 게 아니냐고 했고, '나는 서랍에 지갑을 넣어두지 않아' 라고 대꾸하며 자꾸 마지막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했다. 기억나지 않았다. 젠장.
사무실에 있다는 것만 확실하면 괜찮다. 그 다음날 출근이야 식구들중 누구의 카드를 빌리거나 돈을 빌려서 가면 되니까. 문제는 사무실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쉬바. 그럼 많은게 복잡해지잖아? 안되겠다. 나는 저녁을 먹고 회사를 다시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교통카드를 빌려달라 말했다. 엄마도 엄마의 것을 아빠도 아빠의 것을 빌려주려고 했는데 나는 남동생이 빌려주는 걸 받았다. 굳이 왜 자신의 것을 가져가려느냐는 남동생의 말에 '니 건 신용카드 잖아' 라고 말했다. 근데 왜? 어, 올 때 이걸로 닭(치킨)좀 긁을게. 그러자 남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긁기만 해봐. 아주 그냥 닭다리로 맞을 줄 알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통통한 닭다리로 볼을 맞는 장면 상상하고 혼자 키득거리다가 어쨌든, 결국,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하아- 엄마가 같이가줄까? 하는데 됐다고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가, 다시 들어가 뒷부분이 조금 남은 책,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꺼내들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 책을 다 읽고 꾸벅꾸벅 졸다가 양재역에서 내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늘상 내가 타던 버스들은 9분, 11분을 기다려야 한단다. 마침 한 번도 타 보진 않았지만 보기는 많이 봤던 버스가 도착해서 그 버스에 무조건 탔다. 지가 가봤자 울 회사 근처 말고 어디를 가겠어? 그러나 그 버스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갔고, 단 한 정거장만 가서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멀고도 먼 길을 나는 돌아서 회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야했다. 택시를 타려면 반대쪽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제기랄, 횡단보도도 안보여서...이 버스를 왜 탔을까. 난 병신인가...대학때도 길음역에서였나..회기역에서였나...아무 버스나 집어타고 지가 가면 어딜가겠어 우리 학교 가겠지, 했다가 낯설게도 서울여대 앞에서 내린 기억이 나면서....내 스스로가 무척이나 힘들어졌다.
여튼 결국 회사에 도착했는데 이미 빌딩 자체의 불이 다 꺼지고 문도 잠긴 상황. 지문을 대고 어두컴컴한 나의 사무실을 향해 가는데 어흑 무서웠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불을 있는대로 다 켜고, 내 자리로 와서 책상 위를 보았는데 지갑은
없. 었. 다.
하아- 혹시나 싶어 내가 서랍에 넣어두었나, 서랍을 열어 보았지만, 나는 지갑을 서랍에 넣어두는 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게 뭐든 죄다 책상위에 꺼내놓고 쓰는 스타일. 그래서 책상 위가 쓰레기통 처럼 느껴지는, 그런 사람인데, 아니나다를까, 서랍 속에도 지갑은 없었다. 내 지갑아, 너는 어디로 갔니.
아무도 없어 무섭고, 지갑은 없고...등 뒤로 식은땀이 나고 지쳐갈즈음, 나는 그럴 리는 없지만, 하며 서류들을 넣어두는 캐비넷을 슬쩍 열어보았다. 거기는 내가 평소에 잘 여는 캐비넷도 아니고, 그러니 당연히 그래, 여긴 없지, 하며 문을 닫을거라 생각했는데, 어쩔? 거기에 지갑이 있네????????????????왜????????????????????왜 거기있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갑을 찾아들고는 다 읽은 책을 사무실에 두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면서 치킨을 사가고 싶었는데 집에 도착하면 열시가 될텐데, 치킨은 언제 먹나 싶어 관두고, 집에 돌아가 샤워를 했다. 열 시가 넘었고, 오, 나는 진짜 완전 지쳐서 곧 쓰러질 것만 같은거다. 오늘 하루 나는 무얼 했는가? 회사에 갔다왔다 갔다왔다..이것의 나의 전부인가?? 그런차에 남동생은 집에 누나책 있냐? 고 물었다. 독서공감을 말하는 것인데, 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두 권을 사야겠다며 지마켓에도 팔겠지? 란다. 회사 동료 두 명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거다. 아니..책을..지마켓에서 산다고?????
야, 내가 사줄게 나한테 돈 줘.
나는 그렇게 말했고 남동생은 뭐 그러라고 했다. 인터넷서점 아이디가 없는 동생은 책을 다른 물건 사듯 똑같이 사는데, 나는 교보에서 사면 포인트를 쓸 수 있고 알라딘에서 사면 땡투도 할 수 있고..여튼 내가 사는 게 훨씬 유리하지 않은가. 교보에서 내 책 잘 팔린다는 걸 보여주자 싶어 나는 일단 스맛폰으로 교보에 들어갔다. 그리고 두 권을 주문하려다가 퍼뜩, 아, 신한카드 사이트 통하면 할인되겠지? 싶어 굳이 피씨 앞에 앉았다. 그리고 신한카드 사이트를 들어갔는데, 오오, 지금 8월 한 달 행사라고 <반디앤루니스>는 7프로를 즉시 할인 해준다는 거다. 좋다, 반디앤루니스에서 사자! 그렇지만 회원가입이 필요해. 회원가입을 열심히 하다가, 아 조낸 피곤하다, 쓰러질 것 같아, 4프로의 차이로 내 정보를 반디에 넘기는 게 과연 이득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회원가입 창을 닫고, 다시 교보로 들어갔다. 그리고 교보에서 두 권을 주문했는데, 1권을 주문할 땐 12일 배송으로 뜨던것이 2권을 결제하고 나니 14일 배송으로 뜨는 게 아닌가! 이게 뭐야. 니네 재고 한 권 밖에 안가지고 있어? 부르르- 살이 떨렸다. 이 고약한 것들. 괘씸하다. 흥, 알라딘에서 해주겠어!! 나는 교보를 취소하고 알라딘으로 갔다. 14일에 집으로 배송되면 남동생이 다음주에 주게 될텐데, 12일에 배송되면 이번주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동료들에게 줄 수 있잖아? 흥. 역시 알라딘이 짱이군. 그렇게 나는 알라딘으로 갔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결제를 마치고 나니 얼라리여, 여기도 14일 배송으로 뜨는거다. 분명 결제전에 '내일배송'으로 봤는데?????
아 괘씸하다 알라딘. 알라딘 네가 어떻게 ... 감히... 네가 나를.... Orz (혼불의 효원 버젼)
나는 다시 취소했다. 남동생은 14일에 받아도 괜찮다고 했는데, 나는 연휴전에 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취소를 했다. 결제하자마자 취소를 하고 다시 한 권을 결제했다. 그러자 12일 배송으로 떴다. 그리고 다시 교보로 가서 또 한 권을 주문했다. 12일로 배송 날짜가 떴다. 그리고 남동생에게 돈을 받아가지고 내 방으로 돌아간 시간은 열한 시가 다 된 무렵. 어휴...진짜 떡실신이 눈앞에 다가왔는데, 아빠가 창문 닫고 자라고 말씀하신다. 아빠가 닫아, 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하고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고, 아빠는 궁시렁궁시렁 거리시면서 내 방의 창문을 닫아주러 오셨다. 나는 기절해버렸다. 그런데,
밤새 꿈에 시달렸다. 꿈에서는 나와 내 가족을 제외한 세상 모두가 살인마였다. 서로가 서로를 토막내서 죽이곤 했다. 나는 그 장면을 눈 앞에서 봤다. 여자가 여자를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서로 쫓아가서 죽였다. 같이 밥먹다가도 죽였는데, 반드시 토막을 냈다. 사지가 잘리고 피가 튀기는데, 나랑 밥먹던 여자도 하얀 소복을 입은채 나를 죽이겠다고 쫓아와 한번은 가만 있기도 했다. 계속 도망다니느니 차라리 죽자, 하고. 그런데 어떤 일 때문인지 여튼 나는 다시 살았고, 우리 가족은 집에 콕 처박혀서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앞집도 옆집도 노숙자도 식당 주인도 개그맨도 모두 살인자였다. 그러다 잠깐 누군가 볼 일이 있어 나가야 했고, 문을 연 찰나 조카가 바깥으로 튀어나가 미친듯이 뛰어나가 소리지르며 조카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고, 나갔던 가족이 또 살인마에게 쫓겨 집으로 다시 피신시키고.....
깨보니 새벽 세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고, 몸은 자기전보다 훨씬 더 무거워져 있었다. 아 힘들어...아직 조금 더 잘 수 있으니 남은 시간이라도 좀 편하게 자자 싶어 다시 누웠는데, 이번엔 꿈에서 아빠랑 어마어마하게 싸웠다. 어휴..생각하니 또 지쳐..여하튼 결정적으로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나는 잠을 한 숨도 못잔것 같은 몸상태. 아 너무 힘들어. 엄마 한 번 끌어안고, 엄마가 갈아준 토마토 쥬스를 마시고, 돼지고기고추장 찌개에 밥을 먹고 회사를 향했는데, 아 너무 지쳐서 회사에 그냥 못가겠어. 쉬다갈테야!! 나는 회사 근처 스벅에 들렀다. 그리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켰다. 생일 선물로 무얼줄까, 묻는 친구들에게 스벅카드를 달라고 말해서 스벅 카드에 잔액도 짱짱하다!!
그렇지만 밥도 먹었고 토마토 쥬스도 먹었는데 샌드위치 까지 먹으니 배가 터질 것 같았다. ㅠㅠ 내가 왜그랬지. 숨도 못 쉬겠어...그리고 스벅 카드 잔액을 보노라니 너무 줄어있어...어제도 먹고 오늘도 먹어서 그런가봐. 이제는 매일 먹는 걸 자제해야지. 매주 월요일에만 스벅에 들러야지. 이러다 잔액 금세 사라지겠어. ㅠㅠ 그래도 헤밍웨이 보틀에다가 커피 받아 마시면 삼백원 할인................( ")
샌드위치를 다 먹고 숨도 잘 안 쉬어진다고 짜증내고 바깥으로 나오면서, 아, 나는 스르테스를 먹는 걸로 푸는 경향이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지치고 힘들면 먹는 걸로 나를 달래~~♪ 지난주 토요일에도 친구들과 술 잘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너무나 외로운 생각이 들어 기사식당으로 들어가 배가 터지도록 우동을 먹지 않았던가....아..이러지말자. 이게 나한테 좋을 게 하나 없지 않은가. 나는 대체 왜이러는가!!
어제 보건소에 갑상선 검사하러 갔다가 검사실이 2층이란 말을 듣고 으응, 계단으로 가면 되겠군, 했는데 계단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걸 보았다. 저걸 탈까? 하다 다시 계단을 보는데, 오, 계단 출입구에 저렇게 떡 하니 <비만탈출구>라고 붙여져있는 게 아닌가!!
그래, 비만을 탈출하자. 나는 비만탈출구로 가겠어! 그렇게 2층을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했고,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는 그 삘을 이어받아 5층을 계단으로 올라왔더랬다...여튼,
영혼이 지치거나 피폐해졌을 때, 악몽에 시달리고난 후에, 먹는 걸로 나를 달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좀 찾아봐야겠다. 그림을 본다든가...하는 그런 우아한 방법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