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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님의 서재에서 이 시집을 알게 됐다. 쉼보르스카, 라면 그 이름만 들어 알고 있었지 그의 시를 본 적은 없었던것 같다. 이름에서 주는 난해함이 시에 가득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다가서지 못하게 했다. 나는 워낙 시라면 잘 읽지 못하는데 시인의 이름이 '쉼보르스카' 라니. 그런데 J 님이 서재에 올린 시는, 아 너무나 좋은 게 아닌가!
가장 이상한 세 단어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無)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나는 이 시집에 실린 다른 시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시가 주는 느낌이 참 좋아서, 다른 시들이 궁금해진거다. 그래, 나도 쉼보르스카, 그녀의 시를 한 번 읽어보자.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 시의 첫번째 연을 읽게 된다. 이 시가 주는 느낌은 대체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열쇠
열쇠가 갑자기 없어졌다.
어떻게 집으로 들어갈까?
누군가 내 잃어버린 열쇠를 주워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리라 - 아무짝에도 소용없을 텐데.
걸어가다 그 쓸모없는 쇠붙이를
휙 던져버리는 게 고작이겠지.
너를 향한 내 애타는 감정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이미 너와 나,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의 '사랑'이 줄어드는 것이니.
누군가의 낯선 손에 들어 올려져서는
아무런 대문도 열지 못한 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열쇠'의 형태를 지닌 유형물로 존재하게 될
내 잃어버린 열쇠처럼.
고철 덩어리에 덕지덕지 눌어붙은 녹(綠)들은 불같이 화를 내리라.
카드나 별자리, 공작새의 깃털 따위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이런 점괘는 종종 나온다.
내가 시의 해설을 유창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이 시에 대한 해설을 모두에게 뜨거운 마음으로 해줄 수 있을텐데. 그러나 해설은 커녕, 나는 이 시가 주는 느낌이 무엇이라 표현하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이다. 그런데 참 좋다. 나는 그것이 없어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누군가에게 그것은 쓸모없는 쇠붙이에 불과할 거라는, 저 시가. 그렇게 내 사랑이 누군가에게 쓸모없는 쇠붙이가 되어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저 시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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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은 노래를 잘하지 못했다. 극중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소울'이 담긴 노래로 든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였는데, 그렇게 해내기에 그녀의 목소리도 노래도 부족했다. 그녀가 감정을 담아 노래하는 동안,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에서도 눈물을 뽑아내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부득이하게 '과거 고생장면'을 넣을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관객들의 감정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그 장면장면들을 삽입하는 것이 필요했으리라고.
영화의 마지막. 젊은 시절로 되돌아갔던 그녀는 '내새끼' 를 위해 다시 현재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자신이 젊은 시절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 가수라는 꿈을 이뤄냈고, 두근두근- 심장이 떨리게 되는 남자를 만나 연정을 품게도 됐는데, 그 모든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 장면이 불편했다. 왜 그래야 하는가, 왜 그녀는 '새끼'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가. 새끼를 위해 과연 나라면, 젊고 풋풋한 시절을, 비록 그것이 '또한번' 살아내는 것이라고 해도 포기할 수 있을것인가, 저것은 '엄마' 라는 것에 대한 강요된 선택이 아닌가, 싶어진 것이다. 젊음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를 그 순간 앞에서 나는 흐느껴 울었다. 그거 포기하지 마요,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요, 하는 기분.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너라면 저 상황에서 어떨것 같냐, 젊음을 포기할 것 같냐, 라고 내가 물었다. 친구는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될거라고. 나는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그 젊음이 좋아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었잖아, 사랑도 느꼈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잖아, 그거 포기하기 너무 힘들지 않겠어? 친구는 맞다고, 다 맞는데,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과 관계된 일이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생명을 포기하고 젊음을 선택한다고 그 삶이 즐거울 수 있겠느냐고.
나는 그래도, 그래도, 젊음을 포기할 수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의 내가 사랑에 대해 갖는 생각에 희생은 없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있어요, 라는 건 누군가는 가질 수 있는 신념이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살아야지, 라는 마인드로 나는 여태 세상을 살아왔으니까. 난 진짜 저런 선택 못할 것 같아, 난 젊음 포기 못하겠어, 나를 선택할거야, 라고 말했다가 그 대상을 구체적으로 대입해보았다. 그러니까 관념적으로 혹은 추상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넣는게 아니라, 그 자리에, 나문희가 선택해야 했던 대상인 '내 새끼'에 '나의 조카'를 대입해본거다. 만약 내게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조카를 위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렇다면 그 때도 나를 위해 젊음을 선택할 것인가? 라고 구체적인 물음을 던졌더니 답이 나왔다. '아니다' 였다. 나는 '조카를 위한' 선택을 할거였다. 아, 나도 그런 선택을 하는구나, 영화속 여자와 같은 선택을 해! 이건 단순히 '모성' 이라 불리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인것 같았다. 누구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게 되는 구체적 상대, 그 구체적 상대를 그 입장에 넣으면 대답이 달라지는 거였다. 평소의 내 신념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거였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아' 라고 하지만 '그렇지만 상대가 그사람이라면 달라지지'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조카를 사랑하듯, 여자가 자신의 손자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자 영화의 결말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질 않았다. '엄마라고 그냥 쉽게 결론내린 거 아냐' 라고 생각했다가, 거듭거듭 나에게 질문을 하고보니 영화속의 선택이야말로 그녀가 최종적으로 내릴 수 있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거다. 그녀라고 그 선택을 쉽게 한 것이 아닐거라고. 누구보다도 자신의 젊음을 안타까워했을 거라고. 만약 그녀의 선택지가 '내 새끼' 가 아니라 다른 대상이었다면 그녀의 선택도 달랐을거라고, 그녀는 무조건적인 희생을 택한 건 아닌거라고 말이다.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나는 반전에 대해서도 m 님에게 물어 알고 있었는데, 아뿔싸, 이 영화를 보러 가게 될 줄이야. 게다가 보면서 내가 그렇게나 흐느낄줄 몰랐다. 어깨를 들썩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킁킁 -0-
영화속에서 이진욱이 여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있다. 여자는 집이 좋다며 '너의 집'이냐고 묻는다. 남자는 전세라고 말한다. 집은 넓고 깨끗했고 전망이 좋았다. 아, 나도 저렇게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굳이 집을 살 필요가 무어람, 살 돈으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좋은 원룸하나 전세 얻어 살면 되는거 아닌가, 그게 좋을것 같은거다. 그렇지만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원룸은 전세로라도 내가 얻기에 힘든...가격이겠지. ㅠㅠ
오후에 엄마와 외출을 하고 낮술을 했다. 엄마도 엄마대로 나는 또 나대로 스트레스와 고민을 안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는건 핑계고 낮술을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만두전골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니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졌다. 아우, 책 읽고 싶은데...나는 그냥 잠을 택했고, 잠에서 깨니 열시반이었나... 화장실에 다녀와 다시 자자 싶어 일어났는데 남동생이 내 손을 잡고 할 말이 있다며 내 방으로 나를 이끌었다.
누나 나 이력서 냈어.
헉. 아니, 이력서 낼거라고 한 번도 말한적이 없었는데 뜬금없이 이게 뭐람? 싶어 물어보니 우연히 알라딘 중고서점 매니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는 거다. 그런데 마감이 9일까지였다고, 그걸 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부랴부랴 급하게 냈다는거다. 너 거기 지금 니가 다니는 회사보다 월급이 많이 적을텐데 그래도 괜찮겠어? 라고 물어보니 그래도 '된다면' 알라딘 중고서점을 택하겠다는거다. 아...놀랐다. 정말 놀랐다. 내가 아니라 내 남동생이, 알라딘에 입사원서를 넣다니... 자기소개서에 누나가 다락방이라고, 책을 낸 작가라고 썼어야 뽑힐텐데 그걸 못썼다고 아쉬워했다. (읭?)
잠시후, 나는 친구와 내 방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데 제방에 있는 남동생으로부터 메세지가 왔다. 읽어보니 이렇게 써있었다.
(그 일을)존나 하고 싶다
아....갑자기 많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도..낼까? 지난 금요일,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었는가, 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내가 알라딘 중고서점 매니저가 되면 그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될텐데, 마음이 더 편할텐데, 월급을 적게 받아도 그 스트레스 대신 이걸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등등. 나도 원서 내볼까? 그러자 남동생으 그래보라고 했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빨리 내라고. 부랴부랴 노트북을 켰다. 되든 안되든 선택은 나중문제고 일단 원서를 내보자, 그런 생각으로 피씨 화면을 열고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알라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자유양식이었고, 나는 이력서며 자기소개서를 써 놓은게 없어 새로 쓰기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이메일 화면을 열어두고 그냥 메일로 보내자 싶어 작성하기 시작했다.
연락처와 희망연봉을 적고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일곱 줄 쓰고나니 더이상 쓸 말이 없었다. 그나마 일곱줄도 내가 왜 지금 앉아서 이 이력서를 쓰고 있는가에 대한 얘기였다. 한 줄을 더 쓰게 된다면 그건 남동생은 분당점에 지원했고 나는 강남점에 지원한다는 얘기가 될 듯 했다. 십몇년만에 써보는 자기 소개서는 멘붕을 가져왔다. 커서는 깜빡이고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깜빡이는 커서를 아무리 들여다보았자 한 줄도 더 써지질 않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젠장, 너무 충동적이었어, 포기하자. 아, 그렇지만 한동안 계속 머릿속에서 이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몇 시간 후면 출근을 해야하고, 출근을 하면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그동안보다 조금 더, 나의 회사가 싫어질 것만 같다.
새벽 한 시 삼 분, 내가 아직 깨어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