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의 일이다. 내가 간혹 가서 안면을 익혔던 은행의 기업담당 여직원은 사람들이 자꾸 결혼했느냐, 왜 안했느냐, 남자친구는 있냐 하고 묻는 것들이 너무 귀찮고 신경질이 나서 반지를 사서 끼웠다고 했다.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였는데, 그 반지를 끼고 나서부터는 그 질문이 현저히 줄었고, 혹여라도 그 반지를 보지 못해서인지 혹은 보면서도 묻는것인지, 여전히 그에 대해 질문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지가 끼워진 왼손 약지를 들어 보였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나 결혼했어요' 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 반지는 그 후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그 숱한 질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줬다고 했다. 아, 진짜 왜들 그렇게 남 결혼했는지 물어보는지 모르겠어요. 안했다 그러면 왜 안했냐고 묻고 말이지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참 좋은 방법이라고 대답했었다.
이 책의 저자는 고양이를 키우며 혼자 살고 있다. 그리고 서울이 아닌 변두리(라고 저자는 말한다)에 살고 있다. 작은 마을, 어디를 가나 자신에 대한 관심이 끊이질 않고 더군다나 파마를 하러 미장원에 갔을 때 거기 모인 할머니들을 보며 자신에게 또다시 시련이 닥쳐올 것을 알았다.
'결혼을 안 했으니 당연히 애가 없지요. 대신에 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이미 터득하고 있었던 나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물론 그들이 내게 계속 말을 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속으로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결혼한 지는 얼마나 됐소? 왜 아직 애가 없어요?"
"이그, 요즘은 일부러 안 갖는 젊은 부부들도 많다더만."
"아무리 그래도 애는 낳아야지."
할머니들은 나를 재료로 놓고 수다를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적당한 타이밍을 찾아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게 ‥‥‥사실은 이혼했어요."
콰광, 할머니들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분위기는 순간 냉랭해졌다. 역시 이 방법이 가장 잘 먹혔다. 이런 비슷한 상황들을 겪으면서 내가 찾아낸 방법이었다. 싱글이라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왜 아직까지 시집을 못 갔냐며, 이 동네 저 동네 생각나는 노총각들을 들먹거리면서 갖다 붙이기 시작한다. (p.215)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만 했던 방법을 저자는 이미 써먹고 있어서. 사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끄집어내면 이보다 더 끔찍한 방법들도 있지만 그건 지나치게 사적이니 적어두었다가 다 지워버리고 만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한 사람에게 혼자가 되라고 말하지 않는데, 왜 결혼한 사람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 둘이 되라고 말할까.
어느 날인가 예의 우정미용실에서 또 저렴한 파마를 했다. 나는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수다를 강요받으며 미용실에 오래 앉아 있고 싶지 않았기에 파마 롤을 만 머리에 많이 바쁘신 분들이 즐겨 한다는 보자기(두건)를 씌워달라고 했다. 미용실 주인이 집에 다녀오려는 거냐고 물었지만 나는 두건을 쓴 머리로 피아노 교습소로 달려갔다. (p.220)
이 피아노교습소 에피소드는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이었다. 머리에 파마 두건을 쓰고 피아노를 치러 간 여자라니. 하하하하핫.
이 영화속의 케이트 블란쳇은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다른 영화들 속의 케이트 블란쳇보다 훨씬 예쁘다. 아, 이 여자가 이렇게 예쁜 여자였나. 보는 내내 감탄했다. 아, 나도 저런 눈동자를 갖고 싶다.
여자는 미술 교사로 일하면서 열다섯살 짜리 소년과 사랑에 빠진다. 남편에게 충실한 아내였고 아이에게 좋은 엄마였지만, 그러면서도 공허하고 텅 빈듯한 느낌이 그녀를 찾아왔을 때, 외로움을 느꼈을 때 그 소년이 여자에게로 다가왔다. 그녀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관계를 끊을 수가 없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의 친구를 자처하며 같은 학교의 나이 든 동료 교사(쥬디 덴치)가 다가온다. 그녀는 자신이 그녀의 친구라고 말한다. 너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나를 믿어도 좋아, 나는 네 편이야, 너를 파멸하게 두지 않아.
고양이와 혼자 살며 늙어가고 있는 쥬디 덴치는 케이트 블란쳇에게 사실, 친구 그 이상을 원했다. 영원까지 함께 할 동반자가 되기를, 자신이 그녀를 전부로 생각할테니 그녀 역시 자신을 전부라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늙은 남편과 다운증후군 아이를 버리고 자신에게 오기를 바랐다. 자신과 함께 하기를. 가족보다 더 소중한 존재로 자신이 그녀에게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랐다. 자신에 보기에 불행한 결혼생활을 끝내고 자신과 함께 있기를 바랐다.
영화속에서의 쥬디 덴치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꼿꼿한 노인이었지만, 외로움으로 인해 정신이 붕괴되어 있는것 같았다. 그녀는 아무도 필요하지 않은것처럼 보였는데 실상은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결속될 누군가를 원했다. 그래서 집착을 했고 상대의 삶을 자신이 휘두를 수 있기를 바랐다. 이건 상대에게 시간이 지나면 구속과 집착으로 닥쳐오게 되고 결국은 그녀를 끔찍하게 여기게 만든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 소년이 '둘은 너무 부족하다' 라고 말했던 것처럼, 다른 단 한명과의 깊은 관계는 상대를 그리고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다시 『어바웃 어 보이』에서 휴 그랜트가 말했던 것처럼 사람에겐 여분의 관계가 더 필요하다. 깊고 진실한 관계는 분명 위로와 힘을 가져다주지만 그것만으로 살 수는 없다. 나는 끔찍하게 나만 좋아하게 될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너무 깊지 않은 관심을 원한다. 어제 중학교 동창과 긴 시간 통화를 하면서 내 잘못을 늘어 놓으며 '나는 썅년이야'라고 욕했다. 이게 어떻게 안돼. 친구는 내게 그래, 너는 그런걸 못견디지. 라고 말했고, 어떤것에 대해 내게 고마워하며 '너밖에 없어' 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친구에게 '야 다른애 찾아' 라고 말하고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여튼 멘탈이 강해야 된다.
주말에는 친구들을 만나러 창원에 다녀왔다. 어제 오후 서울역에 도착해서는 친구와 돈까스를 사 먹었다. 서울역의 푸드코트에서 나는 아주 여러번 식사를 했는데, 서울역의 푸드코트는 역시 돈까스와 라면이 진리다. 라면은 좀 짜긴하지만 면발이 꼬들꼬들하다. 돈까스는 진실되게 크고 적당히 두껍다. 정신줄 놓고 후루룩 라면을 빨아들이고 돈까스를 씹어댔더니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배가 터질듯 불렀다. 아씨..또 많이 먹었네. 문제는 집에 도착해서 발생했다. 친구가 정성스레 내려준 커피를 토요일새벽과 일요일 오전에 먹었지만 내 입맛엔 영 부족하게 느껴졌던거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내 커피를 내렸다. 그 향과 맛에 아, 바로 이거야, 하고 만족감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난 몇년째 이커피를 마셔서 길들여져버리고 말았다 ㅠㅠ). 그런데 한 모금 물고 눈물이 날것 같았다. 입천장이 아파..돈까스 먹다가 입천장이 다 까져버렸구나, 흑흑. 이런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데, 너무 급하게 먹었나보다. 흑흑. 커피때문일까, 몹시 피곤한데도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책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다. 새벽 한시반쯤 자려고 불을 끄기전에 거울을 보니 거기엔 다크써클이 시커멓게 내려앉은 내 얼굴이 있었다.
입천장은 금세 회복됐다. 오늘 아침에는 오징어제육볶음을 아주 맛있게 슥슥 밥에 비벼 먹고 출근했으니까.
Same bed, but it feels just a little bit bigger now
Our song on the radio, but it don't sound the same
When our friends talk about you all that it does is just tear me down
Cause my heart breaks a little when I hear your name
And it all just sound like uh, uh, uh
Hmmm too young, too dumb to realize
That I should have bought you flowers and held your hand
Should have gave you all my hours when I had the chance
Take you to every party cause all you wanted to do was dance
Now my baby is dancing, but she's dancing with another man.
My pride, my ego, my needs and my selfish ways
Caused a good strong woman like you to walk out my life
Now I never, never get to clean up the mess I made
And it haunts me every time I close my eyes
It all just sounds like uh, uh, uh, uh
Too young, too dumb to realize
That I should have bought you flowers and held your hand
Should have gave all my hours when I had the chance
Take you to every party cause all you wanted to do was dance
Now my baby is dancing, but she's dancing with another man.
Although it hurts I'll be the first to say that I was wrong
Oh, I know I'm probably much too late
To try and apologize for my mistakes
But I just want you to know
I hope he buys you flowers, I hope he holds your hand
Give you all his hours when he has the chance
Take you to every party cause I remember how much you loved to dance
Do all the things I should have done when I was your man!
Do all the things I should have done when I was your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