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시작하지 말 것
나는 '존 카첸바크'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어서 고맙다. 결국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부분이 따뜻한 부분이라서. 어제도 읽으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그러나 존 카첸바크는 『어느 미친사내의 고백』에서도 그랬고 이 소설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다. 나는 그런 존 카첸바크가 고맙다.
사람은 한 개인으로서 동물을 좋아할수도 있고 식물을 좋아할수도 있다. 환경을 생각할수도 있고 지구를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은 조금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얼마만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사랑하든, 그들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좀처럼 그들을 사랑할 수 없다. 나는 우리가 결국 최종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함께 가게 되는건 인간이라고 믿는다. 악을 저지르는게 인간이고 선을 보여주는것도 인간이다. 전쟁을 일으키는것도 인간이고 그 전쟁에서 다친 사람들을 돌봐주는 것도 인간이다. 무기를 만드는것도 인간이지만 반전시위를 하는것도 인간이다. 자연은 그대로 있고 인간은 무수히 많은것들을 그 안에서 만들었다 없앴다 반복한다. 인류의 멸망을 앞당기는게 인간이라면, 그 시간을 늦추고자 하는것도 인간이다. 나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건 인간이라고 믿는다. 시니컬할수도 있고 자기 희생적일수도 있지만,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고 싸우고 토라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나는, 최종적인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건 인간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존 카첸바크가, 이 소설로서, 역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확인시켜줬다. 이 책은 소설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나는 이것이 단지 소설속에서만 일어나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캐리비언의 해적』에서 인어의 눈물을 받기 위해 인간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파고 슬퍼도 울지만 감동해서도 운다고. 울어야한다면, 아프고 슬픈것 보다는 감동해서 우는게 낫지 않을까.
이틀 내내 잘 시간을 넘겨가며 읽었더니 어젯밤에는 눈알이 빨개졌었다. 남동생이 그만 읽고 자라 눈 빨갛다, 라고 말했지만 나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너나 가서 자라고 했다. 하핫.
시간이 흘렀고, 오랜 시간 은인이라고 혹은 가장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가 죽었다. 그 친구는 죽기전에 토미에게 자신의 장례식에서 추도문을 읽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토미는 어떤 글을 선택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좋은 글을 그에게 읽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집에 찾아갔다가 너덜너덜해진 책을 발견한다.
필립의 침대 옆 탁자에서 토미는 많이 읽어서 너덜너덜해진 오래된 케네스 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The Wind the Willows] 초판본을 발견했다. 필립의 책의 제본 면지에 헌사를 적어놓았다. 그 책은 필립이 아들에게 준 선물이었다. 헌사의 내용은 간단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무리 나이를 먹고, 슬기로운 사람이 되려고 아등바등하게 되더라도, 항상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청춘의 즐거움이란다. 네게 그런 때가 오면 이 책이 그 사실을 기억하게 도와줄 거야. 너의 아홉 번째 생일이라는 경이로운 이 순간, 최고의 사랑을 전하며, 아빠가 ‥‥‥.'
토미는 그 책에서 밑줄을 그어놓은, 색이 바랜 두 단락을 발견했다. 마치 아이가 끊임없이 되풀이해 읽은 것처럼 그 부분이 닳아 있었다. 첫 번째는 '새벽녘의 피리 부는 목신' 이라는 제목의 장에 있었다. '친절한 목신은 도움을 주려는 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마지막으로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 그 선물을 바로 망각이었다. 무시무시한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점점 커져 환희와 기쁨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잊히지 않는 기억이 어린 동물들의 앞날을 망치지 않고, 계속해서 예전과 마찬가지로 행복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어려움을 이겨내게 해주었다 ‥‥‥.'(pp.677-678)
나는 이 부분이 무척 좋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는 필립. 그리고 밑줄이 그어져 있는 책. 나 역시도 책에 밑줄을 긋기 때문에 이 부분이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밑줄을 긋는건 그 당시 나의 내밀한 감정이 겹쳐져있기 때문이다. 책속의 등장인물들(주연이든 조연이든)에 감정이입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들을 나 대신 작가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은 밑줄을 누군가가 읽는다는 것은 부끄러우면서도 자랑스럽다. 내가 그은 밑줄이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읽어주었으면, 할 때도 있다. 이 밑줄을 내가 그었을 때 어떤 감정으로 그었을지, 내 책을 읽을 누군가가 그것을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문득, 내가 절실한 마음으로 밑줄을 긋고, 그 밑줄들을 가끔 꺼내어보는 책들이 떠올랐다. 그 책들중 어떤 책들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있기도 했다. 또 어떤 책들은 내가 밑줄그은걸 선물하고 새로운 책으로 사두기는 했는데, 새로운 책은 어쩐지 '내 책'같은 느낌이 아니다. 다시 읽으며 밑줄을 그어도 어째 예전같은 맛이 나질 않는다. 정말 아끼는 책, 정말 아끼고 내가 밑줄그은 책은 다시는 누구에게도 주지 말아야지. 내 곁에 오래오래 두어야지. 언젠가 나는, 내가 너에게 줬던 책을 돌려줘,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입밖으로 나오려는걸 간신히 참아야했다. 감정을 정리할 때 제일 아까운게 내가 내 책장에서 뽑아줬던 책이었다. 나는 요즘 대부분의 책들을 내보내고 있지만, 내가 아끼는 책들은 두고두고 여러번 꺼내볼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후에 나의 벗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내 책들을 책장에서 꺼내어보고는, 아 이 책을 너는 정말 여러번 읽었구나, 하는걸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책에다 밑줄을 긋는다는 건 정말이지 낭만적이다. 내 감정이 남겨지고 그 감정이 말없이 남에게도 보여질 수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하기 전 그 책을 펼쳐 '당신을 사랑해요'에 빨간줄로 밑줄을 그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만약 너가 나와 같은 감정이라면 그 구절에 너도 밑줄을 긋고 싶겠지, 하는 무모한 생각으로. 물론, 그건 정말 무모한 일이었다. 참 쓸데없는 일이었다. 바보같은 짓이었다. 나이를 헛먹고 있다.
아, 밑줄 그은 책이 나오는 부분 때문에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버리고 말았네.
이 책, 『하트의 전쟁』은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로도 나왔다고 한다. 와우- 브루스 윌리스라니! 꺅 >.<
장바구니에 DVD 를 넣었는데 8,800원이나 하는구나! 굿다운로더를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오늘, 브랜디 칼라일의 스펠링을 확인하기 위해 검색하다가 오, 새로운 앨범이 나왔다는 걸 알게됐다.
참...자켓도 근사하네. 근사한 여자가 앨범을 만들면 자켓도 근사하게 만드는구나.
이전의 앨범에서 내가 좋아했던 그녀의 노래, late morning lullaby.
부지런히 장바구니에 담는다. 어제는 '도니도니돈까스'를 담았는데(응?), 오늘은 브랜디 칼라일의 시디를 담고, 존 카첸바크의 다른 책들을 담는다. 세상엔 살 게 엄청 많구나.
오늘은 일찍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