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고 자식들은 본인들의 생활에 바쁘고 말 상대도 없이 허전하고 외로운 날들에 '딸의 연인'이 친구가 되어준다면, 나 역시도 그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지 않을까. 까페에서 빵을 포장하고 쨈과 버터를 준비하고 예쁘게 선반에 담아 그에게 건네는 일이, 저절로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제는 나를 만져주는 남자가 아무도 없을거라고, 나는 축 늘어진 늙은 살덩어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를 만져주고 옆에 누워주고 비명을 지르게 해준다면, 대체 내가 어떻게 그 남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포스터의 카피처럼 여자는 딸의 남자를 사랑했다. 그러나 딸의 남자는 여자를 사랑한 건 아니었다. 그녀가 해달라는대로 해주었을 뿐. 그러나 그가 해주는 것이 바로 그녀가 원했던 것. 그녀는 자신의 나이에도 자신이 여자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기뻐한다. '엄마도 여자다' 라는 명제는 기정 사실이고 물론 우리들이 그걸 평소에 잊고 지내는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는 그런 사실들을 다시 일깨워주면서 꽤 좋은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다. 심지어 남자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아닌가!
그러나 뻔하고 재미없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어리석어 진다는 것,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것만큼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어리석음은 거의 집착으로 변하기도 한다는 것. 그러나 사랑에 빠짐으로서 나를 어리석게 만들어버리는 남자라면, 내가 자꾸 어리석어지고 멍청해지고 형편없어 진다면, 사랑하지 않는 쪽이 훨씬 더 낫다는 것. 그 남자는 내 남자가 아니라는 것.
내가 반한 남자가 나보다 젊고 나보다 잘생기고 나보다 매력이 넘쳐도, 그 앞에 무릎꿇고 당신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게요, 라고 말해야 한다면, 글쎄, 나는 반댈세.
친구가 연극표가 생겼다고 같이 보러 가자고 했을때,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게 바로 어제. 그러나 나는 대학로로 가면서도 젠장, 연극은 무슨, 술이나 마시고 싶다, 보지 말자고 말할까, 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연극은 내가 좋아하는 매체도 아닐뿐더러 요즘의 나는 ... 뭐 암튼 술이 더 땡겼기 때문이다. 남자주인공이 텔레비젼에 나왔던 유명한 사람이래요, 라고 하는데도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맹- 했는데, 오, 오, 이런 젠장! 마음의 준비를 할 걸! 연극이 시작한 후 등장한 남자 주인공이 짱 멋진거다! 그래, 나 저 남자 어디서 봤어, 봤단 말이야!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았었다. 남자가 연극을 하면서 흘리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게 그대로 보였다. 무대와 나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다. 아니, 남자와 나의 거리가 가까웠다고 하는게 지금의 나에게는 더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맙소사. 영화로 봤다면 나는 이 남자를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연극에서의 이 남자는 달랐다. 윽 맙소사. 이렇게 키가 크고 잘생기고 튼실한(!) 남자를 내 눈앞에서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되다니! 이건 뭐 감동의 도가니. 게다가 연극의 장르가 '섹시 코미디'이니 만큼 그가 몇차례나 드로즈팬티(몸에 딱 붙는 사각쫄팬티-예전에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이거 입은거 보고 쑝갔었는데!)입은 모습을 보여준다. 아 씨.......................................
더 얘기하고 싶지만 예술을 보고 성희롱한다고 손가락질 당할까봐, 나의 천박한 본성이 드러날까봐, 그것이 두려워 참겠다. 그러나 나는 지하철역으로 가는 내내 친구에게 침을 튀겨가며 흥분해서 그 남자를 찬양했다.
그래, 키 크고 젊고 잘생긴 남자들을 그동안 봐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건 대체적으로 영화나 드라마등 간접적 경험이었다. 아 자꾸 욕이 나올라고 해...그런데 오랜만에(아니, 어쩌면 처음일지도 몰라) 두 시간 동안 키 크고 젊고 튼튼하고 잘생긴 남자를 아주 가까이서 본거다. 아주아주아주아주 훈훈했다.
연극의 내용은 뻔했다. 뭐, 남녀가 만나서 섹스를 하고 사랑이란 감정이 생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하는 일이 뻔하지 않겠는가. 물론 당사자에겐 특별한 사랑이야기지만 타인에겐 그거나 저거나 다 똑같다. 게다가 이 연극은 종종 웃게 만들긴 하지만 진짜 뻔하다. 굳이 또 이런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 무엇하나 싶을만큼 뻔하다. 그런데 재미있다. 아니, 재미있다 보다는 좋다. 그 좋은건 연극의 텍스트 때문이 아니라 훈훈한 남자가 튼튼한 육체를 드러내며 내 앞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뛰다가 그러기 때문에.....................
연극은 참 좋은거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이 주연 남자배우를 검색해봤다. 이름은 여욱환.
몇해전 시트콤에서 봤을때는 비호감이었는데, 브라운관으로 보는것과 실물로 보는건 정말 차이가 있는건가. 이 얼굴이 실제로 보니 잘생겼더라. 1979년생에 189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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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랄라~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남자를 사귈 때 키따위는 관심도 없었는데, 이 남자가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걸 보고 있노라니, 이래서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완전 짱 멋지네 ㅠㅠ 눈이 부시구나 ㅠㅠ 팔다리도 길쭉길쭉하고 흑흑 ㅠㅠㅠㅠㅠ 청바지를 입어도 멋지고 트레이닝복도 멋지더라. 헤롱헤롱~ 수트를 입어도 멋지고 벗어도 멋지고. 연극을 보는 내가 더이상 연극의 관객이 아니라 사심품은 음탕녀가 된 것 같아서 스스로 부끄러웠지만, 뭐, 내 안에는 여자도 있고 사람도 있고 관객도 있고 독자도 있고 .....뭐 그런거 아닌가. 그 많은 내 안에 있는 것들중 음탕한 여자라고 왜 없을까.
이 남자를 보고 훈훈해하고 황홀해했던게 너무 요란스럽다 보니, 문득, 영화 [마더]에서 '다니엘 크레이그'를 보는 그 엄마의 심정이 바로 이런게 아닐까 싶어졌다. 거봐, 사람은 다 똑같다니까. orz
정말정말 매우많이 훈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