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린제이' 의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는 참으로 흥미진진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바로 '연쇄살인범을 연쇄 살인하는' 덱스터! 그는 자신의 살인본능을 억누르지 못하고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데, 그의 양아버지는 그런 그에게 그렇다면 이 세상에 죽어 마땅한, 즉, 다른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계속해서 빼앗는 사람을 처벌하는게 어떻겠느냐고 한 것. 그래서 덱스터는 그렇게 한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다. 경찰에서 혈흔분석가로 일하는 그는, 연쇄살인범을 찾아 죽인다. 그가 이 책에서 죽인 남자들로 말하자면 어린이를 추행하고 살인하는 신부, 소녀들을 죽여서 매장한 학교 관리인 등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계속해서 빼앗는다는 건 결코 '착한 일' 혹은 '바람직한 일'은 될 수 없을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로 말하자면, 덱스터가 '발각되지 않기를' 바라는 쪽이 될 것 같다. 그가 하는 일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그가 하는 일에 눈 감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지지하게 되고야 마니까. 누군가는 그런식의 응징을 해줘야 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는 하기도 하니까. 나는 피켓을 들고 덱스터 지지라고 광장에 나가 시위를 하지는 않겠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채로 '잡히지 마' 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캐릭터이고 응원해주고 싶은 캐릭터이긴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큼 재미있거나 하지는 않다. 어릴적의 트라우마로 생긴 살인 본능, 그것으로 인해 연쇄살인범이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할 지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 뭐랄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고 몰입하지 못하게 한다고 해야하나. 그러니까 툭하면 이런식이다. 왜그러냐고 물으면 이유는 없지만 나는 그냥 안다, 이런 식. 본능적으로 그런 피가 흐른다면 글쎄, 그럴 수 있기도 하려나 싶으면서 그래도 자꾸만 본능을 갖다 들이대는 건 무책임한 소설 진행이 아닌가 싶어지는거다. 흥미로운 캐릭터이니만큼 더 촘촘하고 빈틈없게 쓰여졌다면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이 내내 남는다. 덱스터는 마음에 드는데 책은 별로야, 라니. 좀 아깝지 않은가.
그나저나, 이 책을 읽다가 잠을 잤는데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철철. 새빨간 피가 손에서도 뚝뚝 떨어졌다. 맙소사. 잠들기 전에는 피 튀기는 소설을 읽지 말아야겠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에세이라니! 망설일 필요가 없지. 아주 얇은 분량이다. 두 편의 글이 실려있는데 한 편은 추리 소설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챈들러의 에세이고 다른 한 편은 짧은 추리소설이다.
역시나 챈들러답게 에세이도 아주 속시원히 썼다. 만약 챈들러가 쓰지 않았다면 읽지 않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게는 딱히 흥미있는 내용은 아니었는데, 챈들러라니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게다가 역시, 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건, 그가 생각하는 주인공 탐정의 캐릭터가 지독하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아, 필립 말로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구나!
예술이라 불리는 모든 것에는 구원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순수한 비극일 수도 있고, 동정과 아이러니일 수도 있고, 강한 남자의 거친 웃음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이 비열한 거리에서 홀로 고고하게 비열하지도 때묻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남자는 떠나야 한다. 리얼리즘 속의 탐정은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히어로이다. 그는 모든 것이다. 그는 완전한 남자여야 하고, 평균적인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평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진부한 표현으로 그는 진정한 남자다. 그것은 몸에 배어 자연스럽고, 본능적이고, 필연적이지만 남들 앞에서 스스로 떠벌리지는 않는다. 자신이 사는 세계에서는 최고의 남자여야 하며 다른 세상에서도 잘 통하는 남자다. 그의 사생활에 필자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그는 내시도 아니며 호색가도 아니다. 조직 보스의 여자를 유혹할 수는 있지만 처녀를 더럽히지는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면에서 진정한 남자라면 다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비교적 가난한 축에 드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면 탐정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평균적인 사람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야 하기 때문이다. 강한 개성은 그의 직업에 필수적이다. 그는 다른 이의 돈을 부정하게 갈취하지 않을 것이고, 정당하고 계획된 복수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모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나이 또래 사람들과 비슷한 언어로 말할 것이다-거친 재치, 그로테스크에 대한 감각, 위선에 대한 혐오, 비열함에 대한 경멸을 표할 것이다. (pp.34-35)
아. 짱멋져. 챈들러가 묘사하는 이 남자는 리얼리즘 속의 탐정으로서의 캐릭터뿐만 아니라 어느 소설에서의 캐릭터로도 매력적이며 훌륭하다. 내가 바라는 남자는 이런 남자다! 눈에서 하트가 뿅뿅 튀어나올 것 같다. 이 책의 에세이 「심플 아트 오브 머더」는 바로 위의 내용을 담고 있고, 바로 뒤에 실린 소설은 「스페니시 블러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마지막엔 좀 실망했다. 물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지키고자 했던것을 자신도 지켜주고자 했던 남자의 마음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아마 다른 선택은 없었을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한들, 그 일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에게 저질렀다고 누명을 씌운건 좀 찝찝하다. 그는 '어차피 그들은 그사람을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스스로 변명을 하고 합리화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사람이 죄를 짊어진 채 죽게 놔두는 건 비열하지 않나? 어차피 지킬 수 있는게 단 한 쪽 뿐이었다면, 둘 다 지킬 수 없는거였다면, 나라도 그런 선택을 하게 됐을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다 읽고나니 흐음, 찜찜해, 하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이 책을 읽고 자니 또 꿈을 꿨는데(나는 꿈의 여신!), 꿈에서 나는 회사동료 e 양과 함께 마카오에 갔다. 포르투갈 음식점을 찾아 프란세시냐를 시켜 먹었는데, 뭔가 짝퉁스러워서 저녁엔 다른 식당으로 가서 먹어보자는 말을 e 양과 나누며 식당을 나서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e 양이 납치된거다! 오! 나는 그녀를 찾기 위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고 기웃거리다가 잠을 깼다...월요일을 나는 그런 상태로 맞고야 말았다.
이틀내내 무서운 꿈을 꾸고나니 앞으로는 자기전에 절대로 무서운 책을 읽지말자는 결심을 하게됐다. 다음부터는 자기전에 예쁘고 밝고 아름답고 야한 책만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