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는 자신의 책,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에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독자들은 어떤 작품에 대해 자전적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모든 소설은 궁극적으로 자전적이다. 작가는 여러 권의 책을 통해 한 편의 자서전을 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작가다. (p.25)
나는 이 부분에 밑줄을 그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건 굳이 '작품'이라 이름 붙이지 않는 개개인의 블로그에 적용해도 맞는 말이지 싶다. 나의 블로그 같은 경우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다보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정도는 다 파악이 될테니까. 최근에 읽은 그의 소설 『生의 이면』에도 자전적인 경향은 강하게 드러나는데, 그건 그의 아버지나 신앙에 대한 고백들 때문에 느낀것은 아니었다. 내가 아! 하고 놀란 곳은 바로 이 부분.
「슬픈 일이지만, 내게는 동심이라는 단어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어요. 내가 혹시 그 단어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에 추상적으로 학습된 것이지,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은 아니에요.」 (p.21)
작가가 이렇게 언급함으로써 작가의 어린 시절을 유추해볼 수 있다면, 나 역시 이 부분에 밑줄을 긋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렇게 페이퍼로 적으면 나의 자전적인 경향도 드러나게 되는게 아닌가. 나 역시도 동심에 대한 개념이 없다. 나는 그림책을 그리고 동화책을 읽은 기억이 없다. 부모님이 읽어준 기억도 없다. 내가 처음 글을 알게 되었을때부터 시작한 건 그림 없는 글들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전의 기억들을 내가 전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어린이용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잘 볼 줄 모른다. 대체 그것들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는거다. 알라딘내에 많은 분들의 동화책이나 그림책 리뷰를 보고 좋다고 할만한 것들을 사서 조카에게 선물해주고, 그것을 조카에게 읽어주거나 보여주면서, 이게 뭔가...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이 책이 말하려는건 뭔가... 나는 다른 많은 서재인들이 좋다고 하는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읽어도 대체 아무런 감흥을 받지를 못하는거다. 아마도 이런 내가 앞으로도 절대 할 수 없는 일은 '동화책 쓰기'가 아닐까. 만약 죽기전에 꼭 소설 한편을 써야하는 미션이 주어진다면 나의 경우 동화책을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에로소설이라면 몰라도.
나의 이런 생각들은 이 승우의 이 문장과도 통한다.
기억은 사실의 편이 아니라 편들고 싶은 자의 편이다. (p.139)
나는 내가 정확히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시절을 내 지금 상황에 맞게 기억하는걸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라고는 쓰지만 사실 나는 내가 어릴때 그림책을 읽지 않았음을 거의 확신한다. 지금도 그림책이 싫어...사진 들어간 책도 싫어...
이 책에는 예상외로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아니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아, 이 남자 때문에 나는 어제 침대에서 이 책을 읽으며 한숨이 자꾸 나왔다. 그의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혹은 애정 결핍의 증상이 너무도 애절하게 또 찌질하게 드러나버려서.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저절로 떠나게 만들어서. 내가 그의 사랑을 받는 여자였어도 떠났겠지만, 막상 여자가 떠난 후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를 보니 또 미치겠는거다. 그러니까 그의 찌질함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렇다.
가령, 이런 식이다. 만나기로 한 찻집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진을 치고 앉아 기다리면서 남자는 안달을 한다. 1분에 한 번씩 시계를 보고, 공연히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시종 입구 쪽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다. 대체로 여자는 남자의 인내심이 극에 달할 즈음에 이르러서야 문을 열고 나타난다. 여자가 굉장히 늦어서가 아니다. 남자에게 그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항상 너무 늦다. 남자는 여자의 형편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다. 그럴 여유가 그에게는 없다. 그는 조급하고 불안하다. 때문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의, 평상시와 같은 얌전하고 차분한 걸음걸이에 씩씩거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침착한 음성에 또 화를 낸다.
「늦었어, 또. 왜 빨리 나오지 못하지요?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해요?」
「미안해요. 겨우 오 분 늦었는걸 뭐. 빠져나오느라고 힘들었어요. 알잖아요. 성가대 연습하느라고 그랬어요. 빠질 순 없잖아요.」
「빠질 수 없다고? 왜? 내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인가요? 다른 일이 있으면 나를 만나는 것쯤은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그거예요? 고작 그 정도였어요? 당신에게 내가 그 정도의 의미밖에 아니었어요? 정말로 내가 소중하고, 우리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모임이든 빠질 수 있지 않아요? ‥‥‥ 나는 한 시간도 더 기다렸는데, 뭣 때문에 늦었다고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까짓 성가대 안 하면 또 어때요?」 (pp.220-221)
아, 약속시간에 오분 늦은 여자에게 쏟아지는 저 가열찬 비난과 미친 비약..을 어떻게 할것인가. 만약 저게 사랑이라면, 그러니까 그것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부를거라면, 오, 부탁하건대, 너무 사랑하지 말지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박부길의 손톱깎이에 대해 꼭 한번 말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가진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감히 언급할 수가 없다. 내가 그것을, 그 어린 아이에게 손톱깎이가 가져다 준 그 죄책감을 잘 표현해낼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국내작가의 명단, 그 맨 꼭대기에 이승우를 올려둔다. 정미경님, 미안합니다. 이승우님이 이기셨어요. 한창훈님, 미안합니다. 이승우님이 진짜 짱이네요.
- 나는 싫어하는 음식은 있을지언정 못먹는 음식은 없다. 나는 회를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회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더 잘먹는다. 생선구이를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생선구이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많이 먹는다. 내게 모든 음식은 '못먹을 이유가 없다'의 생각을 갖게 하는데, 가끔 사람들은 내게, 싫어한다면서 잘 먹네, 라고 얘기한다. 나는 그럴때마다 좀 당황스럽다. 싫어한다는게 못먹는다는게 아닌데 왜 다들 먹지도 못할거라고 생각하는걸까. 나는 조개를 싫어한다. 그러나 내가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 표류하고 있고 지천에 깔린게 조개 외에는 다른게 아무것도 없다면, 별수 없잖은가? 조개를 먹어야지. 먹고 살아야 할게 아닌가. 아, 근데 내가 이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고, 오늘 아침 밥상에는 호박 볶음과 오이지무침 열무김치 등등 반찬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가지볶음도 있었다. 나는 채소로 치자면 정말 못먹는게 없다. 마늘과 파는 거의 흡입수준이다. 그런데 이 가지, 가지가 너무 싫다. 쳐다보기도 싫고 먹기도 싫다. 그렇다고 비빔밥이나 김밥에 들어가있으면 골라내느냐 하면(물론 김밥에 넣지는 않겠지요) 그렇지는 않고 그냥 먹기는 하는데-골라 빼버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다른 반찬들 사이에 가지가 있으면 가지 쪽으로는 젓가락 한번 가질 않는다. 가지는 정말 싫다. 느낌도 진짜 싫어...그냥, 가지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난 가지가 싫어요.
- 추석 연휴동안 조카가 와있었는데, 난 이 어린 아가가 가끔 너무 걱정스럽다. 그러니까 이제 아주 잘 걷는 아가는 소파 위로 혼자 올라가고 혼자 내려올 수도 있다. 혼자 내려올때는 뒤를 돌아 엉덩이를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다리를 먼저 땅에 대는 식인데, 이 아가가 그런데, 소파 근처에 사람이 있을때는 그렇게 내려올 생각을 안한다. 소파에서 걷다가 소파 바깥에 마치 투명한 다리라도 있는양 다리를 뻗는 것. 너무도 자연스럽게. 소파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물론 알아서 잘 잡아주니까 아가가 다치지는 않지만, 하아- 나는 아가가 그러는게 너무 무서운거다. 얘 어쩔려고 이러지. 내가 하도 걱정되어서 물어보니 여동생과 제부는 사람이 없으면 자기 혼자 내려오는데 사람이 있으면 저런다는거다. 누군가 자기를 잡아줄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는거다. 아, 저 작은 아가의 '절대적인 신뢰'는 대체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소파 주변에 어른이 있어도 다른데를 보고 있으면 잡아줄 수 없을텐데. 아가에게 그렇게 '절대적인 신뢰'를 갖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러나 언젠가는 저 혼자 스스로 깨닫게 되겠지? 동생네 집에서도 그러다가 몇번 머리를 찧은적이 있고 이마에 혹이 난 적도 있다는데, 그래도 아직 아가는 절대적 신뢰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고 한편으로는 그 신뢰에 끝까지 부응해주고 싶기도 하다. 어쩌지를 못하겠네.
- 아침 출근길에는 회사 근처의 빵집에 들렀다. 서울 여자의 출근길은 제법 고된터라, 아침을 먹고 나와도 사무실에 오면 배고프기 마련. ( '') 빵집에 들어가서 어떤 빵을 고를까 하다가 '마늘버터토스트'가 맛있게 보여 그걸 사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오늘 아침 버스안에서 읽던 책에서 '일하기 전에는 마늘 먹지마' 라고 윽박지르던 주인공이 생각났다. 동업자의 입에서 마늘 냄새가 났던 것. 그래서 그 옆의 '허니버터토스트'를 골랐다. 그리고 계산을 마치고 가방에 넣으려는데 빵이 따뜻한거다. 오!
빵이 따뜻하네요.
라고 내가 말하자 빵집의 직원분은 방금 나왔어요, 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라고 얘기한뒤 빵집을 나오면서 헤죽헤죽 웃고 있었다. 방금 구운 빵이라니. 으흐흐흑. 행복해 ㅠㅠ 사무실에 오자마자 동료 직원에게 이 빵을 만져보라고 했다. 그리고서는 서로 따뜻하다며 꺅꺅 거렸다. 나란 여자는 따뜻한 빵 하나에 금세 행복해지고 마는구나. 사람이 참..소박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