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과 치즈가 잔뜩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샌드위치 안에 들어간 양파를 원피스에 흘리면서, 에잇 구질구질하게, 왜 꼭 이모양이야, 라고 중얼거리면서 책을 보고 있었지. 커피를 마시면서 샌드위치 정말 짱 맛있다고 생각하면서 책장을 넘기는데, 친구가 도착했다. 당신이 안먹는다고 해서 나머지 반쪽도 내가 다 먹었어요, 라고 말했다. 친구는 괜찮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다. 친구가 도착하기 전에 나는 샌드위치 반쪽을 먹겠냐고 물었고 친구는 안먹겠다고 했다. 친구가 먹는다고 할까봐 조마조마했던게 사실이다. 너무 맛있어서 친구 주기 아까웠다.
친구는 내게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내가 읽고 있던 책을 들어올려 친구에게 건넸다. 이책 짱이라고 말하면서.
얼마나 글을 잘쓰는지 모른다고.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얼마나 시를 쓰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다고.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그의 평론을 한번만이라도 받아보고 싶다고. 어떻게든 그에게 각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각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미치겠다고. 정말 모든 글들이 너무 좋다고. 서점에 들러 그가 말한 시집을 살까 했는데 이 동네는 어떻게 된게 서점도 없냐고(군자역에 나는 있었다) 신경질을 내면서 이 책을 친구로부터 돌려받고 품에 꼭 안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친구는 내게 굉장히 행복해보인다고 말했다. 그래, 나는 정말 행복했다. 정말 행복했는데, 신형철에게 각별해지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느낄 수 없는, 내가 느껴서는 안되는, 너무 과한 행복이 되겠지. 극으로 치닫는 행복. 아마 나는 기절할지도 몰라. 그러나 누군가에게 각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아주아주 오랜만에 찾아와서, 이 기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황인숙의 시집을 사야지,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를 사야지. 내가 그에게 각별해질 수 없다면, 그가 나에게 각별한 이 상태를 유지해야지.
신형철은 이 책의 [책머리에] 에서 이렇게 썼다.
각 매체의 담당 기자 및 편집자 분들께 안부를 여쭙는다. 특히 3년 넘게 나와 함께해준 『한겨레21』구둘래 기자님께는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있다. (p.13)
아, 정말 좋겠다. ㅠㅠ 굳이 각별하다는 단어를 쓰게 만드는 사람이라니. 나도 각별해지고 싶다. 너무나도.
각별해지고 싶어서 돌아버릴 지경이다.
하아-
영화속의 여자는 대학교수이다. 남편은 방안에 처박혀서 포르노나 보고 있고 자신의 강의는 대체 한 학생에게라도 도움이 되는건지 의심스러워서 그녀에겐 지금의 일상이 지리멸렬하다. 그녀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집에 돌아가 머리가 띵해질 정도의 술을 마시는 순간이다. 일단 집에 돌아가면 그녀는 힐을 벗고 술 두 종류를 꺼낸다. 나는 이 술의 이름이 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녀는 두개의 술을 믹서기에 넣고 얼음도 넣고 갈아서 커다란 잔에 따라마신다. 그 순간을 그녀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 술의 맛을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그 시원한 술을 들이켤때를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기분은 짐작할 수 있다. 나도 그런 순간들이 있으니까.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나 혼자만의, 나만의 각별한 순간. 누가 해주는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내는 완벽한 순간, 행복한 순간.
문득, 사랑은 얼마나 좋은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간의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남자에게도, 지루한 삶이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여자에게도, 그 둘다 앞으로의 삶에 딱히 희망을 갖고 있는건 아니었는데, 사랑, 그것 때문에 그들은 다시 웃게되고 다시 열정이 생긴다. 요리를 해주고 싶고, 맛있는 걸 먹을 의욕도 생기고. 이제 나이들어버린 내가 여태 해놓은 것도 없이 실패한 삶을 마무리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때 사랑이 펑- 하고 나타나 다시 힘내서 살아보게 하는 기운을 준다. 사랑은 그래서 대단하다. 삶에 의욕을 주고 기쁨을 주고 열정을 줘서. 그러나 그무엇보다 사랑이 대단한 이유는 그것이 사람을 가려가며 찾아오지는 않는다는거다. 이십대에게도 사십대에게도 차별하지 않고 찾아온다. 교수에게도 학생에게도, 예쁜 사람에게도 못생긴 사람에게도.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의 그 유명한 문장이 있지 않은가.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증조할아버지가 되어서도 20년 전 어느 날 오후, 치허 거리에서 스쳤던 한 낯선 소녀를 가슴에 간직한 채 계속해서 그녀만을 사랑할 수도 있다. 목사가 타락한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 받는 사람은 배신자일 수도 있고 머리에 기름이 잔뜩 끼거나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분명히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이는 그의 사랑이 점점 커져 가는 데에 추호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디로 보나 보잘것없는 사람도 늪지에 핀 독백합처럼 격렬하고 무모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pp.50~51)
그나저나, 나, 스쿠터 타고 회사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