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몇 권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 읽어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읽겠지, 라고 무심했는데 지난주 토요일 경향신문 북섹션에서 그의 책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으응, 그렇구나. 중편 두개가 실려있단다. 오. 그렇다면 이걸로 나는 츠바이크를 시작해볼까? 게다가 제목도 좋잖아?
그래서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오우, 읽자마자 짜증이 샘솟았다. 왜냐하면,
본문이 시작되는 9페이지에 '그의 애틋한 눈길이'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으응, 애틋한 눈길이군, 하며 읽는데 10페이지에 또 '그녀의 모습을 애틋한 눈길로'라는 문장이 나오는거다. 아, 두번이나 연달아..쩝.. 이러고 읽는데 우우우우 11페이지에 또 나온다. '그녀의 애틋한 눈길이' 라는 문장이. 9페이지에서 11페이지까지 세 페이지에 세번. 각 페이지마다 한번씩 '애틋한 눈길'이 나오는 걸 보니 미치겠는거다. 그만 좀 애틋하란 말이다!! 나는 이 책을 그만 읽을까 싶어졌다. 그만 읽고, 이 세상을 죄다 불질러 버릴까? 사무실을 불질러 버리고 빌딩을 불질러 버리고 이 세상을 내가 다 태워버릴까? 하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처음의 애틋한 눈길을 세번 극복하고 나면, 그 뒤로는 괜찮아진다. 그리고 48페이지. 나는 밑줄을 그었다.
그렇다. 그는 자신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믿었지만, 열정이 지탱하던 긴장감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인간은 추억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p.48)
나는 밑줄을 긋고 생각했다. 인간은 추억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걸까? 나는 여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떤 기억들을 결코 잊고 있지 않고, 그것들은 내게 꽤 강하게 기억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상대와 헤어졌어도 가끔은 그것들을 끄집어내어 떠올리며 살아가는게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한 일인걸까? 지금은 가능해도, 조금 더 지내보면 그게 아닌걸까? 인간은 정녕, 추억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걸까? 나는 불과 얼마전에도 '아니야, 나는 지금 괴롭지만 좋았던 기억들로 버텨낼 수 있어'라는 생각을 했는데? 살아갈 수 없을까? 불가능할까? 나는 살아갈 수 있다고 대답하고 싶은데, 확신할 수가 없다.
그 순간, 그는 그녀를 향한 고마운 마음과 함께 뭉클한 감동이 밀려와 곧바로 책상 앞에 앉아 그녀에게 또 한 번 길고 상세한 편지를 썼다. 이리하여 오래전에 중단되었던 그들만의 습관, 편지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일상을 낱낱이 들려주던 습관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세상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지만, 그들의 이 오랜 습관만은 사라지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p.52)
오와- 우- 멋지다. 편지를 주고받는 사랑하는 관계라니. 물론 여자는 독일에, 남자는 멕시코에 있었으니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당연하게 여겨진다고 해서 그것이 쉬운 일인것은 아닐텐데. 그것이 그들의 습관이라니 너무 근사했다. 편지를 보내놓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지금쯤은 상대가 받았을까? 하는 그 마음. 그리고 답장을 기다리면서 또 얼마나 설레었을까. 오늘은 오려나, 내일 오려나. 게다가 '나의 일상을 낱낱이' 적어서 보낸다니. 나는 물론 나의 일상을 낱낱이 적는 일은 할 순 없을 것 같지만 편지를 주고 받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그리고 세상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아도 사라지지 않은 그들의 습관이 정말 근사해서, 나도 그런 습관을 하나쯤 만들고 싶었다. 나랑 편지를 주고 받읍시다, 그것이 우리의 습관이 되도록 합시다, 하고. 세상 모든것이 바뀌어도 우리의 습관을 바꾸지 맙시다,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제일 처음의 중편 「이별 여행」을 다 읽고, 이제 그 뒤의 중편 「당연한 의심」을 읽기 시작했다.
어제는 타부서의 남자직원과 둘이 술을 마셨다. 아직 취하기도 전인데, 그 직원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저는 왜 과장님을 좋아할까요?
(어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나는 뻔뻔하게 이렇게 답했다.
예뻐서?
그러자 순식간에 찾아오는 침묵............................................어색한 공기.................................................빨개지는 내 얼굴...............................................................벗어나고 싶다, 여기서.................................
왜 본인도 해놓고 무안한 말씀을 하세요?
그러게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제길.
어제 1차는 소주에 순대였다. 간도 염통도 맛있었다. 어제 같이 술을 마신 직원이 데리고 간 곳인데, 맛있는 순대를 먹고 나자 나한테 보고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거기로 데려갔다. ㅋㅋㅋ 2차는 육포에 맥주였다. 나이쓰~ 육포 짱! 하아- 그런데 불족발은 언제 먹으러 가나.. 불족발을 먹기 전까지는 편하게 잘 수 없을 것 같은데...
어쨌든 머리가 아프다. 아침 식탁에는 반찬이 여러가지 있었는데 나는 열무김치의 국물을 연신 퍼먹었다. 아우. 머리가 댕댕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