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좋아하는 상대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내가 원하는 부분은 아주 작고 사소해서, 사실 좋아한다고 생각해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조금 더'의 관심을 갖기란 그다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그걸 해주는 사람은 어느정도는 그런 다정함과 배려를 타고 나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이런거다.
말레나는 말(horse)을 사랑한다. 말과 교감을 느낀다. 말과 함께 관객들 앞에서 서커스를 한다.
나는 말레나를 사랑해. 말레나 없이는 안돼. 그녀를 쳐다보는 놈들은 가만두지 않겠어. 말레나는 말을 사랑하지. 말과 대화를 하는 특별한 여성이야.
라고 생각하는 건 그녀의 남편이다. 그러나 제이콥은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 말레나가 사랑하는 말을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하는 그 순간, 말에게 총을 쏘기 전. 제이콥은 말레나를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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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나도 찾아봐요."
"말레나도 안다고 자네가 그러지 않았어?"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총소리가 날 때, 말레나가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안 그래요?" (pp.174-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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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제이콥은 알고 있는거다. 말레나는 사랑하는 말이 죽어가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을거라는 걸, 그 순간 혼자 있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이건 누가 알려준다고 되는게 아니니까. 그러니 당연히, 말레나를 가졌다고, 말레나를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남편은 제이콥을 예쁘게 봐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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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트는 나를 오랫동안 노려본다. 그러고는 화가 난 듯 킁킁대며 발판을 내려간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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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트(말레나의 남편)는 자신이 먼저 말레나를 배려해주지 못했음을, 배려해주는 선수권을 제이콥에게 빼앗겼음을, 자기는 차마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음에 스스로 분노했을거다. 죽일듯 제이콥이 밉겠지. 그러나 말레나는, 말레나는 어쩌나. 이런 제이콥을 대체 어떻게 밀어내나.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순식간에 돌변하는, 최고의 남자였다가 최악의 괴물로 변하는 남편과 함께 억지로 참아가며 살아가야 했던 말레나에게, 대체 제이콥은 왜 이토록 다정하게 나타났을까. 말레나가 제이콥을 좋아하는 걸 대체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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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제 말은.......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말한다. 당신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이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나도..... 그래서 생각했어요. 혹시 당신도....."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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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욕나온다. 제이콥에게 혹시 당신도, 라니 묻다니! 이것은 천국일까 지옥일까. 제이콥은 이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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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참 그녀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녀에게 입맞추고 싶다. 그녀에게 입맞추고 싶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토록 뭔가를 간절히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p.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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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관객들이 큰소리로 환호성을 울리지만, 귓가에서 피가 도는 소리가 들린다. 사랑에 빠져버렸다. 가슴이 사랑으로 넘친다. 터질 것만 같다.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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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도, 라는 말레나의 그 말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혹시 당신도, 라고 말하는 말레나의 모습이 애틋하다. 혹시 당신도, 라고 묻는 말레나의 심장은 일분에 몇번을 뛰었을까.
당신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혹시 당신도.....
제이콥이 다정함으로 나를 흐물거리게 만들었다면, 이 영화 『아이 엠 러브』의 큰 아들 '에도아르도' 는 타고난 우아함과 옷빨(;;)로 나를 사로잡았다. 영화의 첫 장면, 에도아르도가 큰 저택의 2층 계단을 내려오며 양복 마이의 단추를 채우는 모습은, 와- 순간 숨쉬는 걸 잊게 만들었다. 세상에. 저렇게 무심한듯 그러나 저렇게 우아하게 양복의 단추를 채우는 모습이라니!! 기절하겠다, 진짜. 내 앞에서 제발, 부디 양복 단추를 채우지 말아요. 쓰러지겠어요.
게다가 그는 매너까지 완소남. 사랑하는 여자와 거리를 걸을 때는 자연스레 자신의 한쪽 팔을 내어준다. 그가 한쪽 팔로 만들어준 공간에 여자가 무심한듯 자신의 한쪽 팔을 넣으면 그들은 팔짱을 끼고 함께 걸을 수 있다. 그 모습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아, 정말 근사한 남자다!! 쑝간다 진짜 ㅠㅠ
저 위에, '새러 그루언'의 『코끼리에게 물을』은 버벌님의 페이퍼로 알게 된 소설인데 올 4월 영화로 개봉 예정이란다. 말레나는 '리즈 위더스푼'(아, 내가 생각한 캐릭터랑은 정말 거리가 멀다 ㅠㅠ) 제이콥은 무려 '로버트 패틴슨' 이다.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로 연기했을 때 말고는 로버트 패틴슨을 한번도 멋있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영화 속에서는 어떨까? 아, 보고 싶어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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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아치님께 댓글로 말했던 '옥수수와 섹스'에 관한 부분 인용이에요. 아흔살 혹은 아흔세살 이 된 제이콥의 생각이죠.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옥수수 한 자루와 섹스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옥수수를 고르겠다. 인생의 마지막 섹스가 싫다는 얘기가 아니다(나는 아직 남자고, 세상에는 결코 죽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러나 치아들 사이로 터지는 달콤한 옥수수 알갱이, 생각만 해도 군침이 흐른다. 물론 모든 것은 환상이다. 나도 알고 있다. 앞으로 내게는 옥수수를 씹을 일도, 섹스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느쪽을 고를까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 솔로몬의 판결을 기다리는 기분이다. 마지막 섹스냐 옥수수 한 자루냐. 얼마나 달콤한 딜레마인가.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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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제이콥과 에도아르도를 닮은 남자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지금보다 아주 많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덧. 아차차, 지금 새러 그루언의 『코끼리에게 물을』은 반값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