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에 대구에 다녀왔다. 그동안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면 옆에 젊은 남자가 앉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옆에 앉은 남자와 로맨스가 싹트는 일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존재하는 일이었다. 혹은 젊은 남자들은 모두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걸까? -나는 고속버스는 타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 대구로 가는 기차안, 3분전에 가까스로 탑승했는데, 오! 젊고 잘생긴 남자가 옆에 앉아있었다! 감동 ㅠㅠ 그러나 그는 두시간 내내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내가 대구에서 내리는데 따라 내리지도 않았다! 어떻게 내가 가는데 그냥 보내지? ㅠㅠ
- 친구 한명과 나는 가방에 책이 두권씩 담겨 있었다. 읽던 한권이 조금 남아서 두시간 걸리는 기차안에서 다 읽을 것 같아 다른 한권을 더 챙겨온 것. 그냥 새 책으로 한권 챙겨올까 서로 고민했지만, 그 친구도 나도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싶은 마음에 무리해서 두권씩 가져온건데, 대구에서 만나 우리는 서로 책 한권을 오는 동안 다 읽었느냐고 물었는데, 오, 둘다 아니라고 답했다.
"다 읽을 줄 알았는데...잤어요."
그랬다. 우리는 기차안에서 잤다. 책을 들고 잤다. 대체 왜 두권씩이나 들고 탄걸까. 왜 이 미친 어리석은 욕심이 자리잡았던 걸까. 한권도 다 읽지 못할거면서, 잘 거면서! 가방만 무겁게!!!! 나는 서울에서 대구로 가며 잤고, 그 친구는 창원에서 대구로 오며 잤다.
내가 읽던 책은 『전태일 평전』이었다. 다 읽지도 못한채로 대구에서 친구들을 만나 흥분해서 얘기를 했다.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고. 모두가 같은 환경에서 이런것이 삶이구나 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그 와중에 '이것이 잘못됐다'는 걸 스스로 깨닫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일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나였다면 원래 이런거 아니야? 라고 그저 고통스러움을 받아들였을 것 같다. 그러나 전태일은 이것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공부하고, 그리고 잘못됐다고 모두에게 말한다. 그는 스스로 깨닫는 사람이었고, 용기를 가진 인물이었다. 읽는 내내 힘들었는데,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뒷부분을 읽으며 자꾸만 울컥거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어제 만난 친구로부터 문자메세지가 왔다. 『전태일 평전』주문했어요, 라고. 앗! 말도 잘듣네! 괜히 꽃청년이 아니구나.
-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안에서 이 책을 다 읽을 것 같은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리고 또다시 젊고 잘생긴 청년이 내 옆자리에 앉게된다면, 나는 이 책을 그에게 주고 내리겠어요! 라고 친구들에게 말했더랬다. 이 책은 좋은 책이니까 이 책을 주는 사람도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서울로 가는 기차안, 내 옆자리에는 젊은 여자가 앉았다. 나는 이 책을 마저 읽고 내릴때까지 잤다. 내릴때까지 한번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당연히 이 책은 내 가방속으로 들어갔고, 지금은 내 방 책꽂이에 있다.
- 그리고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서는 챙겨갔던 다른책을 펼쳤다.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아주 좋아하며 읽었었는데, 오, 이 책도 그럴 것 같은 예감이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제일 첫 페이지에서 나는 이런 문장을 발견했거든!
여행 때마다 루마는 비행 정보를 출력해서 냉장고 문에 자석으로 붙여놓고 아버지가 비행기를 타는 날짜엔 뉴스를 지켜봤다. 세계 어디선가 혹시 비행기 사고가 나진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서였다. (p.11)
아침에 일어나서 대구를 갔고, 대구에서 여덟시간을 보낸뒤에 서울로 왔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나는 몹시 지치고 힘들었는데 이 문장을 읽고 정말이지 마음이 따뜻해져 버렸다. 아,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다들 나처럼 살고 있어. 나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지는 않을지 다치지는 않을지 종종 걱정한다. 뉴스에서 사고 났다는 기사를 보면, 나는 혹시 저기에 그사람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럴리 없겠지, 라고 생각하고 염려하며 때때로는 그런 뉴스들을 보며 연락을 취해보기도 한다. 거기에 살아 있느냐고. 열번 걱정하면 그중에 한번 밖에 연락을 못한다. 지나치게 걱정한다고 지청구 들을까봐. 걱정한다는 것 조차 표현하기가 힘든데, 이 책속의 루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살고 있다니. 어쩐지 내가 이대로, 그러니까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잠깐, 사람들이 '함께' 사는 이유도 이런게 아닐까 싶어졌다. 내 눈앞에 두고 싶은 마음. 먼 곳에 두고 손톱 깨물며 걱정하는 건 힘드니까.
- 어제 만난 친구 중 한명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았다. 손가락도 얇았고 반지도 얇았는데 정말 예뻤다.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나는 그 친구의 손을 보며 나도 반지를 살까 싶어졌다. 나도 반지를 끼면 예쁠까?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는 내게 스마트폰을 사줄까 했었다. 그런데 트윗도 안하고 카카오톡도 안하는 나는 사실 스마트폰이 크게 필요도 없다. 게다가 전화번호를 바꾸기도 해야하고. 무엇보다 바꾸기를 망설이게 되는건, 지금 내 핸드폰에 저장된 200개의 문자메세지 때문이다. 그걸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가 친구의 반지를 본 것.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는 나에게 반지를 사주는 건 어떨까? 다이아몬드는 살아생전 사지 않기로 스스로 결심한 바 있으니, 그렇다면 다른 보석으로 -아마 내가 알지 못하는 아주 많은 보석들이 존재하겠지!- 사서 내 두꺼운 손가락에 끼워볼까? 그래볼까?
크리스마스에는 혼자 백화점에 나가 내 손가락에 끼워줄 반지를 사야겠다고, 어쨌든 지금은 생각해본다. 음, 그런데 비싸려나? 비싸면 곤란한데.....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건,
운명일까?
어제 이 영화를 같이 본 친구들에게 물었는데 한명은 운명이라고 말했고, 한명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사랑에 운명 따위는 없다고 믿었었는데,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고 요즘은 종종 생각한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다시 말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건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걸거라고.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건 이미 정해진 걸 거라고, 그래서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몸부림쳐도 별 수 없다고.
- 2010년이 다 가고 있는데,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았는데, 나는 아직도 『율리시스』를 한장도 읽지 못했다. 어휴, 답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