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올리브의 뒤척이는 밤

어제 만나 영화를 본 친구와 맥주를 앞에 두고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면서, 나는 친구에게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지난번에 교보 같이 갔을때 락방님이 추천해준 책 산거, 그거 읽어요, 라고 했다. 내가 뭘 추천했죠? 라고 하자 친구는 『올리브 키터리지』라고 말했다. 

 

아, 그거 좋죠? 정말 좋죠? 라고 물으니 친구는 아직 초반을 읽고 있다고 했다. 올리브의 남편의 이야기. 그래서 나는 마구 멜랑콜리해져서는, 거기, 그 얘기 나오잖아요.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라는 말이요. 

친구는 아직 그부분을 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멈추지 않고 말한다. 그런 말하는 부분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 여자가 또 그래요. 

미안해요,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서요, 라고 말이죠. 아, 정말 미치게 좋지 않아요?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서 미안하대요. 

 

 

이 책 이야기 하기 전에는 우리는 우리가 본 영화가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 하고 있었다.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영화속에서 남자는 머릿속에 여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건넬 말을 세시간이나 생각해보지만, 결국 그녀의 얼굴을 맞닥뜨리고 나면 아무말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는 그녀를 보자마자 천사가 온 줄 알았다는 멘트를 한다. 남자는 그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나는 몇시간을 준비해도 말할 수 없는데, 너는 어떻게 그녀를 보자마자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고. 그러자 그가 대답한다. 

"당연하지.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거든." 

사랑하고 있는 남자에게는 한마디 말을 건네는 것이 몹시 힘들기만 하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는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자는 다른남자와 약혼을 한 상황이고,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고있다. 그녀는 그에게 제안한다. 내가 선택한 삶에 이의를 제기해 달라고. 그러나 그는 그녀로부터 그런 엄청난 제안을 받아놓고서도 결국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야 만다.  

아, 물론 이 영화가 좋은 이유는 남자와 여자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는 도무지 감상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를 정도로 좋다.

 

월요일에 본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는 마치 나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영화같다. 

그저 주변인물로, 눈에 띄지 않는 인물로 살아가고 있던 여자에게 유일한 취미라면 독서일뿐이다. 그녀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고, 까페에서도 책을 읽는다. 일주일에 두번 작문수업을 듣고, 공항 설문조사팀에서 일한다. 그녀는 혼자 살고, 어쩌다 데이트를 하게 되도 그 다음단계로 발전하질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남자가 다가온다. 그를 만나 함께 하루를 꼬박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그녀의 눈에는 기대가 가득하다. 정오에 다시 그곳으로 가면 그가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으니까. 만나지 못하고 오해하고 변명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때에, 그녀가 그에게 말한다. 

 

나는 포기하고 단념하는게 더 편한사람이에요. 그런데 당신 때문에 힘들어요. 

 

포기와 단념이 더 편한 여자라니, 그녀가 눈물 흘리며 앉아있는 벤치로 가서 옆에 앉아 있어주고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충고도 하지 못하고 어떤 조언도 못하겠지만, 이렇게는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나도요, 나도 그래요. 나도 포기와 단념이 더 편해요. 그런데 나 대신 하비가, 그러니까 그녀를 힘들게 한 그 남자가 그녀에게 다시, 다가간다.  

 

 

 

 

요즘,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유로, 정신을 집중하는데 애를 먹고 있는 나는, 그러니까 정신이 오로지 딴 데 팔려있어서 자꾸만 멍때리는 모습을 보이는 나는, 어제 하루 온종일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 생각났다. 딱, 이 마음이 되어서. 

 

 

 

   
  "아주 아주 조심하겠다고 약속해요. 당신이 길을 건너기 전에 길 양쪽을 다 살핀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당신이 한 번 더 길을 살폈으면 좋겠어요, 내 부탁이니까." (p.184)  
   

 

나는 이 말을 자꾸만 자꾸만 머릿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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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0-11-29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조심하겠다고 꼭꼭 약속할게요. 그리고 오늘 아침은 기분이 참 좋네요.

다락방 2010-11-29 10:08   좋아요 0 | URL
네, 아치, 조심조심 살아요. 오래오래 살아서 오래오래 친구해야죠. 오늘 아침에 아치가 왜 기분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계속 좋았으면 좋겠어요.

깐따삐야 2010-11-29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서재에 오면 꼭 책을 사고 싶어져요. <올리브 키터리지> 클릭!

다락방 2010-11-29 10:08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이 좋아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내 커피 취향을 아는 던킨 종업원' 부분에 대해서는 깐따삐야님은 조금 행복해질지도 모르겠어요.
:)

자하(紫霞) 2010-11-30 11:0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커피취향에 대해 급 궁금해졌어요~

다락방 2010-11-30 11:09   좋아요 0 | URL
대부분의 커피숍에서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던킨에서는 오리지널블랙을 마십니다. 던킨 오리지널블랙은 1,900원 이거든요! ㅎㅎ
별로 취향이랄건 없어요, 베리베리님. ㅎㅎ

2010-11-29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9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0-11-29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비..' 봐야겠군요. 제 얘기 같아요...ㅜ

다락방 2010-11-29 10:34   좋아요 0 | URL
비연님.
여자가 울먹이며 나는 포기와 단념이 더 편한사람이에요, 라고 하는데 아! 정말이지 내 얘긴줄로만 알았어요. 이별은 상처에요,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데, 아 이 세상에는 나처럼 사는 여자가 또 있구나, 하고 생각해버리고 말았어요. 감정이입 백프로였죠.

치니 2010-11-29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북 퍼스널 쇼퍼 다락방님, 나는요? 나는 올리브 카터리지를 좋아할까요?

다락방 2010-11-29 10:45   좋아요 0 | URL
네, 좋아할거에요!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네, 좋아할거에요, 치니님! 확신해요!
치니님은 올리브가 아주 나이 들어서 만나게 될 사랑 부분에 대해서 특히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어요.

꿈꾸는섬 2010-11-2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 읽고 싶네요. 전에 다락방님 글도 생각나고, 나비님의 추천도 생각나고...오늘 머릿속으로 말을 해요...이 부분이 또 끌리고 그러네요.

다락방 2010-11-29 11:52   좋아요 0 | URL
저도 토요일에 친구에게 그부분 얘기해주는데, 얘기하다가 또 막 좋아지더라구요. 그때 아마 저는 흥분했었을 것 같아요. 그 부분이 너무 좋아서요.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아, 정말 좋지요?
책도 좋아요, 꿈꾸는섬님.

moonnight 2010-11-2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같은 영화를 봐도 다락방님이 느끼는 감성을 저는 아마도 못 느낄 듯 ^^;;;;

다락방 2010-11-29 13:30   좋아요 0 | URL
괜찮아요, 문나잇님. 내가 이렇게 다 써주잖아요. 히히 :)

레와 2010-11-29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다락방 2010-11-29 13:30   좋아요 0 | URL
레와님은 늘,
안전운전!!

2010-11-30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11-30 08:41   좋아요 0 | URL

Kir 2010-11-3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도 지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누르고 있었는데, 어흑...ㅠㅠ

다락방 2010-11-30 13:31   좋아요 0 | URL
Kircheis님, 이 책이라면 Kircheis님도 좋아하실 거에요. 추천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씨익 :)

새초롬너구리 2010-11-3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락방님이 추천해준 책 읽고싶다. 저 요즘에 좀 슬픈거 읽었더니 아, 기분이 다운되요. 뭔가 너구리 기분 업되는거 추천해주세요.

다락방 2010-11-30 14:33   좋아요 0 | URL
새초롬너구리님, '한창훈'의 『나는 여기가 좋다』읽어 보셨어요? 단편집인데, 그 중에 [올 라인 네코]라는 단편이 있어요. 그거 읽어보세요, 새초롬너구리님. 씨익, 하고 웃게 될거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