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고 나서 페이퍼를 쓰려고 했는데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비가 펑펑 쏟아지는 토요일 밤,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이 책이 단편집인줄 알았다. 그냥 책 표지가 어쩐지 단편집 같아서..(응?) 이 책이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건 알라딘의 퓰리처상 작품 이벤트(뭐 이런 이름이더라)인 퀴즈를 풀다가 알았다. 참고로, 나 3단계까지 다 푼 여자사람 ㅎㅎ
이 책은 46페이지에서 부터 나를 쓰러지게 만든다.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안경을 썼다. "죄송해요." 그녀가 속삭였다.
"뭐가?"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서요."
"아니, 아니야." (p.46)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라니. 아! 나도 그런데. 나도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하는데! 그녀가 그에게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라고 말한것을 그도 잊지 않는다. 그는 곱씹는다.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그에게 그 말은 잊을 수 없는 말이 된다. 만약 내가 당신에게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라고 한다면, 당신은, 당신도 이 책속의 남자처럼 내가 한 말을 잊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케빈은 아주 오랜후에 고향을 찾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낭떠러지에서 계곡으로 떨어지는 패티를 보게 된다. 케빈은 패티를 구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든다.
소용돌이치며 두 사람을 집어삼키는 바닷물속에 다시 잠겼을 때 그는 패티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녀의 팔을 꼭 붙잡았다. 널 놓지 않을게. 파도가 칠 때마다 햇살이 반짝이는 짠 바닷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케빈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p.86)
케빈은 구조대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매달리는 패티를 놓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그 급박한 순간조차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한다. 누군가로부터 '널 놓지 않을게' 라는 말을 듣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토록 아름답고 소중하고 찬란한 말을 듣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이런 말엔 어떤 말이 어울릴까? 널 놓지 않을게. 아마 나는 그저 네, 나를 놓지 말아요,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것 같다. 도무지 다른 아름다운 응답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나를 놓지 말라는 말에는 진심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아니, 내가 그렇게 말해도 좋을것이다. 당신을 놓지 않을게요. 그러면 당신은 내게 어떤 응답을 할까?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말을 하게 될 때, 그때 우리는 어떤 마음이고 어떤 기분일까?
아주 나이들어 버린 부부. 아내는 남편이 2년전에 내연의 여자를 만나기 위해 외박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말해요." 몹시 침착했다. 그녀는 한숨마저 내쉬었다. "제발, 얘기해줘요." 제인이 말했다.
어두운 차 안에서 가빠진 그의 숨소리가 귀에 들렸다. 그녀의 숨결도 거칠어졌다. 제인은 말하고 싶었다. 이런 일을 겪기엔 우리 심장이 너무 늙었다고. 이런 일을 계속 우리 심장한테 시키면 안 돼. 당신 심장이 이런 일을 견뎌낼 거라고 기대하지는 마. (p.246)
나는 그녀에게 혹은 그에게 아니 그 둘 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아뇨, 그것은 젊은 심장도 견뎌내지 못할거에요. 그것은 그것 자체로 어떤 심장에게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에요. 우리, 젊다고 해도 그리고 늙어서도 그런 일을 우리 심장한테 시키지 말아요.
"그 여자 죽었어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죽었다면 스콧이나 메리한테 소식을 들었겠지. 그러니 안 죽은 모양이야. 하지만 소식은 전혀 몰라."
"당신 가끔 그 여자, 생각해요?" (p.247)
그리고 정말 궁금하겠지만, 그런 질문도 하지 않는게 좋을것 같아요. 그 여자, 생각해요? 하는 그런 질문. 아니라고 한들 믿겠어요? 그리고 그렇다고 하면 그때는 어떡할건데요? 그 대답이 뭐든, 일단 그 질문을 한 이상 당신 가슴은 찢어지잖아요. 그러니 입 밖으로 그런 질문 내지 말아요. 어떤 말들은, 하지 않는게 더 좋은거에요.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p.124)
나는 잠들기 전에 나의 작은 기쁨들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겠다. 아마 그러면 악몽을 꾸지 않겠지. 나의 작은 기쁨은, 차디찬 소주에 곁들이는 맛있는 삼겹살이고, 그것을 함께 해주는 친구이고, 너무 맛있어서 뚝배기를 기울여가면서 먹게 되는 순대국이고, 나와 하루종일 수다떠는 게 로망이라고 말해주는 친구고, 이 책을 읽으면 페이퍼를 쓸 거라 짐작했다고 말하는 친구고, 이 영화는 니가 좋아할거라고 말해주는 친구고, 마음에 쏙쏙 박히는 문장들로 가득찬 책을 읽는 순간이고, 출근 준비를 하며 듣는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 나오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고..
조금 더, 이 책을 읽다가 자야겠다. 왜냐하면 내일은 월요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