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있다. 100쪽 가까이 읽었는데 계속 읽을까 말까를 고민중이다. 모두가 좋다고 말하는데 이 책은 읽을수록 내 취향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난 내가 이 책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걸 깨달으며 패닉에 잠깐 빠졌었다. 그러고보면 추천마법사가 이 책을 추천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는걸까! 아직 절반도 채 읽지 않았으니 다 읽고나면 글쎄, 팔짝 뛰면서 역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라고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아니다. 2010년에 책을 그만사기로 마음 먹어 놓고 사버린 유일한 책이었는데, 웁쓰, 한창훈 책 살걸. 내가 받은 느낌이 어떤건지 장황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그것은, 다시 말하지만 다 읽고 나면 바뀔지 모르니, 일단 보류하고.
이 책에서 작가가 사귀는 남자와의 영역 분리를 잘하지 못한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게다가 나는 남자와 사귈 때 영역 분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건 온당하지 못한 것 같다. 영역 문제가 있으려면 우선 내 영역이 있어야 맞겠지? 하지만 난 그냥 내가 사랑하는 사람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어가 버린다. 쉽게 침투할 수 있는 얇은 표피나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은 내 모든 걸 가질 수 있다. 내 시간, 헌신, 엉덩이, 돈, 가족, 개, 내 개의 돈, 내 개의 시간, 이 모든 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나는 그를 위해 그의 모든 고통을 짊어진다. 그의 모든 빚(어떤 의미에서든)을 떠맡는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그를 지켜준다. 실제로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온갖 좋은 면까지 그에게 투사시키고, 그의 가족 전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준다. 그에게 태양과 비를 준다. 만약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든 다른 식으로 보상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퍼주고, 또 퍼준다. 마침내 내가 완전히 지치고, 소진되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만이 내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때까지. (pp.104-105)
사람이 사랑하는 상대도 제각각이듯이 사랑하는 형태 또한 제각각이다. 그러니까 어떠한 사랑의 형태를 보고 넌 이상해, 넌 왜그래? 라고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위의 글에서 여자에게 사랑은 자신의 모든걸 내어주고 상대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는 것이다. 이런 미치도록 헌신적인 사랑이 반짝반짝 빛나고 유지되려면 받아들이는 상대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내 고통을 짊어져주는 너같은 사람을 만나다니, 너는 나의 여신이야, 라고 말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는게 가장 적합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상대는 그걸 원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나는 니가 가진 모든걸 가지고 싶지도 않고,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을 니가 대신해주는 걸 원치 않아, 라고 했을 때.
이건 반드시 남녀의 사랑에서만 존재하는 관계는 아니다. 때로 어떤 사람들의 호의는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는데, 그것은 베푸는 쪽은 호의와 선의였어도 받아들이는 쪽은 내 영역을 침범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위의 구절들을 읽으면서 며칠전에 읽었던 『사랑 받을 권리』의 한 부분도 생각나 인용해본다.
적절한 처신 또한 '관계 맺기'의 한 부분이다. 대화를 나눌 때는 상대의 욕구에 신경 써야 한다. 상대방이 서두르거나 그럴 만한 기분이 아닌 듯 보일 때는 속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 상대가 거절하거나 꺼리는데도 선물을 주거나, 호의를 베풀거나, 껴안거나, 도와주겠다고 고집 피워서는 안 된다. 적절한 처신은 그 자체로 상대를 존중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준다. (pp.170-171)
특히 더 자신의 사생활이나 자신만의 영역에 민감하게 반응 하는 사람이라면, 상대가 무턱대고 도와준다고 들이댔을 때 입장처리가 곤란해진다. 심지어 불쾌해지기 까지 한다. 사람이 다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게 아닌데, 이건 분명 도와주는 행위니까 칭찬받겠지, 좋아할거야, 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다시 남녀 사이의 영역 문제로 돌아가자면,
개인적으로 나는 남자의 고통을 '대신' 짊어질 생각이 없다. 남자의 빚도 갚아줄 수 없다. 게다가 내 모든 걸 다 내어줄 수도 없다.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 나를 사랑한다면 너의 돈을 모두 내게 줘, 라고 말하는 남자라면 차라리 외롭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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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조카에 대해서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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