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괜찮은 여자인가 하는것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읽다보면 금세 알 수 있다.그 책엔 무려 이런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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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그녀가 고상한 예법을 단 한가지도 어기지 않으면서 송아지의 엉덩이 고기를 먹어치우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저렇게 섬세하고 매력적이고 식욕이 왕성한 코끼리 같은 여자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이상적인 여자라고 말했다. (2권, pp.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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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여자, 즉 나 같은 여자를 '이상적인 여자'라고 알아주는 남자가 없다는 것, 쯤이라고 해두자. 뭐, 사실 하려고 했던 얘기는 이게 아니었으니까 바로 다음 얘기로 넘어가자면,
남자와 여자사이의 에로틱함은 옷을 벗기고 안벗기고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조건 짧은 치마에 가슴이 보이면 섹시한거라고, 에로틱함을 느낀다고 한다면, 그런 에로틱함과 내가 생각하는 에로틱함과는 꽤 먼 거리가 있으므로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고, 내가 생각하는 에로틱함은 그러니까, 둘 사이의 숨 막히는 긴장감 쯤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인 마치'의 영화 『연인』에서의 에로틱함은 제인 마치가 빈 집에서 남자랑 섹스를 하기 위해 옷을 벗었던 순간 보다는, 차 안에서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기 위해 망설이던 바로 그 순간 이었으며,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의 영화 『엘레지』에서의 에로틱함은, 남자가 여자에게 니 가슴이 예쁘다고 말하는 순간 보다는, 집으로 초대해서 손목을 잡기 전까지의 바로 그 시간이었던 것 처럼, 남자가 피아노를 치고 그런 남자를 여자가 보고, 여자가 그림을 보고 그런 여자를 남자가 보고, 바로 그런 순간 순간이었던 것 처럼, 아직 뭔가를 하기 전, 그러나 그 뭔가를 하고 싶은 욕망을 가까스로 견디고 있는 바로 그 시점, 바로 그때가 에로틱함이 터지는, 그 순간인 것 같다. 하나만 더 예로 들자면, 영화 『브로큰 잉글리쉬』에서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남자 단 둘이 있었을 때, 남자는 키스를 하려고 하고 여자는 이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때, 그때가 결정적인 순간인 것이다.
물론 이것들은 내 생각이지만.
이 책속의 에로틱함은 많은 사람들이 내게 얘기했던 것처럼, 서로의 몸에 꿀을 바르고 섹스를 하는 꿀섹스 장면이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그런 장면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그 장면은 대수롭잖게 넘어갔다. 그런데 내가 숨막혔던 장면은 아무것도 하지 않던 바로 그 때, 그 때였다.
아우렐리아노는 이모인 아마란따 우르슬라를 욕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결혼까지 한 이모에 대한 욕망은 해소해서는 안될 것임을 알기에 다른 여자를 찾아 그 욕망들을 풀어낸다. 심지어 이모인 아마란따 우르슬라는 조카인 아우렐리아노를 '당연히'욕망하고 있지 않다. 또 당연히, 그의 욕망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이모가 조카의 방에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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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가스똔이 비행기의 도착을 기다리기 시작했을 무렵에 일어났는데, 아마란따 우르술라는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어느날 아침 그의 방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봐, 식인종. 또다시 동굴 안에 있구나」그녀가 말했다.
스스로 디자인한 의복을 입고, 송어 척추뼈로 직접 만든 길다란 목걸이를 걸치고 있는 그녀는 저항하기 어려운 매력을 갖추고 있었다. 남편의 충실함을 믿고 남편의 목에 걸어놓았던 낚시줄을 풀어준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한가한 시간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우렐리아노는 그녀를 바라볼 필요도 없이 그녀가 방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느낄 정도였다. 그녀는, 뼈마디가 움직이는 소리를 아우렐리아노가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서 힘없이 작업대 위에 팔꿈치를 괴더니 양피지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리려고 애를 쓰면서 자꾸만 사그라드는 목소리와, 자기를 저버리려고 하는 삶, 가루처럼 되어가려는 기억을 붙들어맸고, 산스크리트어에 드러난 종교적 운명과, 종이 뒷명에 씌어진 것을 역광으로 읽을 수 있듯이 시간 속에 투영되어 있는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과학적 가능성과, ....(중략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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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아노는 그녀에 대한 욕망을 감추기 위해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지껄여 대고 있는데, 그의 욕망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그녀는 그에게 지독하게 잔인할만큼, 천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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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아노는 얘기를 계속 이어가면서, 태어났을 때부터 자기 내부에서 잠자고 있던 충동에 이끌려 자기손을 그녀의 손 위에 포갰다. 하지만, 그녀는 어렸을 때 자주 그랬듯이 스스럼없고 다정하게 그의 검지손가락을 쥐었고, 그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쥐고 있었다. (p.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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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의 검지손가락을 쥔 행동은 사실 그녀에겐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그의 검지손가락을 쥔 행동은 그에게는 폭풍같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 순간의 긴장에 숨이 막혔을 것이고, 그 순간에 모든 자제력을 끌어 모았을 것이며, 그 순간을 아마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며, 물론, 그 순간을 때때로 기억하며 헉, 할 것이다. 참, 힘든 순간이다. 어휴....거지같은 세상.
유쾌한 영화를 보았고, 즐겁게 술을 마셔도, 그러니까 즐거운 일들이 이백개가 연속해서 일어나도, 때때로 하나의 슬픔이 그 모든 것들에게 닥치라고 말하는 순간이 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한 20년 전쯤의 드라마중에 [도시인]이라는게 있었는데, 그 드라마 속에서 음정희는 최수종을 사랑하고 최수종은 음정희와 배종옥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런 스토리였다. 음정희는 최수종에게 정중하고 배종옥은 사무실 동료라 좋아하지만 꽤 허물없이 지냈는데, 그런 모습을 본 음정희는 최수종에게 그런 얘기를 한다. 왜 나에게는 한없이 어렵고 잘해주고 싶은 사람인데, 저 사람은 당신에게 함부로 하는거죠? 라고.
오늘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역시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우동집에 들어가버렸다. 우동이 절실한 순간이었다. 우동집의 텔레비젼에서는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축구경기가 한창이었다. 역시 모두 아저씨들이었다. 나는 또 우동면은 절반만 주세요, 라고 말한뒤에 자리에 앉아서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눈을 뜨면』을 들었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먹는 우동은 사실 별로 맛이 없었다. 나는 대부분의 모든 시간, 모든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는 편인데, 그 노래를 듣는 순간의 우동은 결코 게걸스럽게 먹을 수가 없었다. 혼자 우동먹으러 들어왔다고 친구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더니, 옆에서 단무지를 챙겨주고 싶다는 친절한 답장이 왔다. 그런데 만약 친구가 옆에서 단무지를 챙겨줬다면, 나는 우동국물에 내 눈물을 섞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하나의 슬픔이 이백개의 웃음을 무찔러 버린 날이었다.
우동집에 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우동을 먹기 시작한 시간은 23:44 였다.
토요일 밤 열한시 사십사분, 그때 내겐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