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등산을 다녀왔다. 도봉산 마당바위까지.
누군가 자신의 품에 쏙 들어오도록 사이즈를 줄이는게 어떠냐고 해서 산에 가기로 결심했다,
는건 농담이고,
어제 마신 술을 땀으로 뽑아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산에 가기로 결심했다,
는건 진담에 가깝지만, 사실 '진실'은 나 혼자 알고 있다. 각설하고,
아침에 등산배낭을 꾸리시는 아빠를 보고 피곤한데도 일어나서 아빠 나도 같이가, 라고 말하고 아빠를 기다리게 하고서는 사실 아빠랑 좀 얼굴을 붉혔다. 나는 뭐 그다지 정치적인 여자사람이 아닌데도, 집에서 정치적인 이야기가 어쩌다가 나오면 아빠랑 나는 생각하는게 완전 달라서 한쪽이 묵묵히 참아내지 않는한 얼굴을 붉히고 큰소리를 치게 되는데, 대부분 그럴경우에 내가 참는다. 왜냐하면 아빠의 고집은 대박... 평생을 그런 사고방식으로 살아오신 분이라서, 또 나는 싸우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가끔 흥분한걸 참을 수 없을때를 빼면 그저 듣고만 있는다.
아빠랑 둘이 버스를 타러 나가서는 어차피 아빠한테 내가 데려가달라고 말한거니 재롱을 떨었다. (응?) 아빠 어깨에 팔을 얹고 내가 함께 가서 기쁘지? 해대니 또 아빠는 금세 기분이 풀어지셔서는 껄껄 웃으신다. 이 얘기 저 얘기 해가며 아빠랑 도봉산 마당바위에 올랐다.
엄마의 등산화를 신고온 터라 오르는 길이 미끄럽진 않았지만, 그래도 돌이 아니라 흙으로 된 곳을 걸을 때는 좀 주춤해서 어어- 하고 소리를 뱉었더니, 아빠가 돌아보시고는 그럴땐 손을 내밀어 자식아, 하신다. 그래야 잡아줄거 아냐! 아, 네-
아빠가 가지고 온 돗자리를 깔고, 아빠가 가져온 김밥을 먹고, 아빠가 잘라준 사과를 먹고, 아빠가 타 준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나는 돗자리 위에 누워서 좀 쉬었다.
내려오는 길은 오랜만의 산행이라 다리가 후달렸다. 경사가 좀 진 곳이 나오니 나는 그만 후달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어휴- 하고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아빠는 돌아보시고는 껄껄 웃고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신다. 그러더니 너는 어릴때도 그랬어, 하신다. 어릴때도 나는 걷다가 힘들면 혹은 높은곳에 올라가면 주저앉아서는 아빠- 하고 불렀다고 한다. 지나가던 어른들이 일으켜주려고 하면 싫다고 하고 꼭 아빠가 일으켜주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하하. 정말? 내가 그랬다고? 나는 웃다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그 어린게 그랬으니, 그때 나 예뻤겠네?"
그러자 아빠가 대답하셨다.
"엄청났지! 넌 동네에서 최고였어!"
하하 무려 동네 최고!
신난 아빠. 어릴적의 나에 대해 계속 말씀하신다. 어릴적에 엄마 등에 업혔을 때, 버스를 타거나 거리를 걷거다 하다가 낯선이들이 엄마의 몸에 좀 닿을라 치면 나는 저리가라고 엄마 등에서 그들을 밀어버렸다고 한다. 하하하하. 나...폐쇄적인 아이었던건가?
내려오는 길에는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에 손을 담갔다. 시원했다.

나의 어릴적 얘기를 듣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와 달라진걸까? 아니면 달라지지 않은걸까? 왜 그 아이는 다른사람의 손길을 거부했을까?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손이 닿는것도 싫어했을까? 그러다가 문득 나는 지금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도 싫다.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더 많이 접근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하는 것들에 질투를 한다. 그러나 어릴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만 삼킨다는 것 뿐.
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빠에게 나는 그때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딸이라는 걸. 물론 "이제는 니가 코끼리같아."라고 말씀하긴 하셨지만(끙;; 코끼리라니 ㅠㅠ) 삼십대 중반의 나는 여전히 아빠에게는 그저 어린 딸이라는 걸.

생각의 끝은 결국 아기였는데, 나는 그러니까, 혹 결혼하게 된다면, 그리고 아기를 낳게 된다면, 딸 둘 아들 둘을 낳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
나랑 딸 둘, 아들 둘 낳아요. 어때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