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열여섯살이다. 천명의 국민들이 멕시코로 팔려나갈때, 그들과 함께 배 안에 있던 이정은 동갑의 소녀 연수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연정을 품는다. 이정은 배 안에서 일본인들로부터 주방일을 배우는데, 그 중에 이정에게 이것저것 많은걸 알려주고 도와주는 요시다씨는 이정에게 욕망을 느낀다. 그러나 이정은, 동성의 남자가 다가오는 것이 낯설고, 더욱이 이정은 요시다씨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정에게 요시다씨는 고마운 사람. 처음 요시다씨를 거부하고 나서 한달이 넘도록 요시다씨는 이정에게 손을 대지 않았으나, 그날, 그날은 참지 못했다. 여느날처럼 창고 안에서 사과를 먹던 이정, 감자상자가 쓰러짐과 동시에 요시다가 튕겨일어나 이정에게 입을 맞춘다.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이토록 간절히 원하는데, 잠깐이다. 이것 말고는 그에게 줄 것이 없지 않느냐. (p.84)
요시다씨는 이정을 품는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간절히 원해왔던 일. 한달이 넘도록 이정을 바라보기만 하며 몸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 욕망을 분출하는 쾌감은, 언제나 그렇듯, 모든 쾌감이 그렇듯, 지극히 짧다. 순간이다.
미안하다, 고 말하는 요시다에게 이정은 '나는 멕시코에서 내릴 것이고 조선인들과 함께 갈 것'이라고 한다.
요시다는 무릎을 꿇고 이정의 손을 잡았다. 돼지기름으로 미끌거리는 손을 이정은 매정하게 뿌리쳤다. 당신의 도움은 고마웠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다. 항구에 닿으면 나는 본래 가려던 곳으로 갈 것이다. 요시다는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쥐었다. (p.85)
85페이지의 요시다는 상처받았다. 그리고 이정,
그는 미친 듯이 일했다. 천명이 먹어야 할 음식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아주 잠깐 이정은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라나 일이 끝나자마자 장옷 속에서 빛나던 연수의 검은 눈동자와 뽀얀 살결이 생각나 가슴이 설렜다. (p.85)
85페이지의 이정은 요시다가 자신을 품는 걸 허락했지만, 그러나 85페이지의 이정이 가슴 설레게 떠올리는 사람은 연수였다. 요시다가 아니었다. 85페이지의 요시다는 이정의 몸을 품었지만, 쾌락에 몸을 떨었지만, 그의 매정한 이별의 말 앞에 머리를 감싸쥐어야 했다. 그가 느낀 그 순간의 쾌락은, 그러니까 이정을 안고 싶었던 그 욕망에의 실현은, 그와의 이별 앞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 남자를 품에 안는것은 정말이지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연수를 떠올리는 이정, 욕망하던 이정을 품었지만 이별통보를 받은 요시다. 그들 모두에게 슬픈 85페이지.
이정과 연수는 배 안에서 짧은시간 사랑을 나누지만 멕시코에 도착해서는 헤어지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3개월후에 다시 재회하게 된다. 서로가 같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 그러나 아직 그 둘은 만나지 못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상대가 바로 이곳에 같이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
그날 밤, 연수와 이정은 피로를 모르고 밤새 뒤척였다. 지난 석 달은 피가 뜨거운 청춘들에겐 너무 긴 이별이었다. (p.190)
아니, 피가 뜨거운 청춘이 아니라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사흘이든 석달이든 길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놓여있는 그 먼 거리는 그래서 그토록 괴롭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야 한다. 떨어진 거리를 처음에는 닿지 못할 사랑과 그리움이 채우겠지만, 그러나 거기에 하루하루 시간이 더해지다보면 마음을 추스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던져줬던 마음을 다시 회수해올지도 모를 일이다. 먼거리는, 나쁘다. 좋지 않다. 떨어져 있지 말자. 좋아한다면.
하아- 이렇게 진지하게 써놓고 또 이러면 안되는건데, 참을수가 없어서 또 써야겠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를 본것이다. 보고야 만것이다. 하아- 진짜 이러면 안되는데, 얼마전에 누군가로부터 "다락방님의 글엔 성적인 메타포가 가득해요."란 말을 들어서 이제 당분간은 순수하고 청초하며 해맑은 글만 써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드가 끓어올라서 참을수가 없다.


보이는가, 저 날개뼈! 건장한 남성들이 백조옷을 입고(그러나 상체는 벗은채로!) 무용을 한다. 그러니 그들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들의 무용은 힘차다. 특히 그들이 뒷모습을 보이며 움직일때, 그러니까 날개뼈를 보일때, 아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가슴이 얼마나 뛰는지! 나는 그들의 그 젖은 날개뼈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쓸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 땀에 흠뻑 젖은 날개뼈에 입맞추고 싶다. 회사도 알라딘도 다 때려치고, 책을 읽는것도 페이퍼를 쓰는것도 다 집어 치우고, 그냥 평생을 그들 곁에서 그들의 날개뼈만 쓰다듬으며, 가끔은 그 날개뼈에 입 맞추며, 가끔은 양 날개뼈 사이의 척추를 타고 흐르는 그 땀들을 ..(이 뒤는 생략. 야하다.) 암튼 그렇게 살고 싶다.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나는 평생을 다른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는채로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로또를 사본적이 별로 없는데, 다음주부터는 로또를 좀 사야겠다. 로또를 좀 사서, 당첨이 되면, 5월30일까지 한다는 이 백조의 호수를 매일매일 보러 가야겠다.
나는 날개뼈에 미치는 경향이 있다.
시장에는 달디단 참외가 가득한데, 나는 참외는 싫다. 참외보다는 역시 날개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