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어쩌면 이렇게 제목도 이쁠까? 원서의 제목은 북풍 뭐 어쩌고라는데, 어쩜 이렇게 번역을 예쁘게 했을까?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벌써 재작년의 일이다. 나는 내 홈페이지에서 낯선 이름을 발견하고 그와 친해지게 된다. 글쎄, 뭐가 통했던걸까. 혹은 무엇이 그토록 상대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던걸까. 우리는 꽤 친해지게 됐고, 온라인으로 시작하게 되는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우리도 서로를 만나고 싶어하는 그 지경에까지 이르른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겐 수많은 쪽지가 있었다. 우리는 아직까지 메신저에 등록되어 있지도 않다. 순전히 내 홈페이지의 쪽지.
-만남을 제안했던게 아니다. 나는 그의 글에서, 그리고 그는 나의 글에서 우리가 같은 극장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게된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우리는 언젠가 그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보게 되지 않을까요? 라고 운을 띄웠다. 그렇다면 우리 의식적으로 거기에 같이 있지 않을래요? 라고 내가 먼저 말했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이 책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서 처럼 '후버까페' 만남을 제안한다. (후버까페 만남은 따로 설명하지 않겠어요. 읽은 사람만 알 수 있어요.)
-그는 내가 말하는 만남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부랴부랴 그 책을 사서 읽었고, 그리고 그 책을 꽤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그 책을 읽고나서부터 지금까지, 그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할 자신이 없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대자면 수없이 많지만, 그를 좋아했던 그 많은 이유들 중의 하나는 그의 추진력이었다. 나는 우리가 좋아하는 그 극장에서 보자고 했으면서, 딱히 흥미를 끌만한 영화가 상영하지 않으니 한달뒤쯤에 만나는게 어떨까 했더니, 그는 우리가 좋아할만한 영화를 상영하는 다른 극장의 정보까지 내게 다 링크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내 예정보다 그를 빨리 만나게 됐고, 그렇게 영화를 한 편 보게 됐다.
-그 영화는 『천국의 가장자리』였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서로 집에 들어가서 쪽지를 보냈다. "나 , 알아 봤어요?"
-또 당연하게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 보지 못했다. 그는 다시 내게 쪽지를 보냈다.
-"나 오늘 가장 예쁜 옷을 입고 갔는데 왜 못알아 봤어요!!"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기로 하고 만.났.다. 올림픽공원을 좋아하는 나를 알고 그는 올림픽공원에서 만나자고 했다. 우리는 차를 마셨고, 공원을 좀 걸었고, 술을 좀 마셨다. 나는 배터리 파크를 얘기했고 그는 목도리에 얽힌 첫사랑 얘기를 했다. 우리는 술을 가지고도 얘기를 했고 화장품에 대한 얘기도 했다.
-첫만남후 헤어질때, 그는 자신이 읽고 있던 '고종석'의 『도시의 기억』을 건넸고, 아주 조금 내리는 비에 자신의 우산을 건넸다. 나는 집이 가까우니 이 우산은 필요없다고 하자 그는 "우산을 받는다는 핑계로 다음에 또 볼 수 있잖아요."라고 얘기했다.
-나는 고종석의 책을 그때 처음 읽었고, 그리고 그것이 유일했다.
-그가 내 막내동생과 같은 나이라는 것은 만나기전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사실, 좀, 서운했다.
-그후에도 우리는 만났고 그는 내게 커피를 사주었고, 스테이크를 사주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 '부르면 언제든 달려나갈 수 있는 상대'라고 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미국엘 갔고, 그가 가기 전날은 보름달이 떴다. 나는 집에 들어가는길에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내일은 친구가 긴 비행을 해요. 무사히 비행하게 해주세요.' 내가 빈 소원이라곤 그게 다였다.
-그는 작년에 잠깐 한국에 들렀다. 나는 그를 또 만났고, 우리는 또 맥주를 마셨다. 그 먼 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는 그에게서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언제나 나를 생각하게 한다. 그런 그에게 나는 가끔 책을 선물하곤 한다. 어떤책에 대해서는 '당신의 어머니도 좋아할거에요'라는 멘트를 붙이기도 한다. 그는 내게 가족에 대해서도 얘기했고, 나는 책을 선물할때 언제나 상대가 좋아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려한다.
-그는 내가 선물한 책을 허투로 읽지 않는다. 오히려 책보다 더한 감상을 써내기도 한다. 그리고는 '그분은 책을 허투로 선물하는 분이 아니시다'라고 얘기한다. 그걸 알아주다니!!
-그를 남자로, 다시 말해서 이성으로 좋아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에 그를 이성으로 그리워하고 있다면, 그를 남자로 사랑하고 있다면, 그가 멀리 있는 지금, 나는 그를 향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은 담백한 그가, 언제나 솔직하고 과장됨이 없는 그가, 인생을 진지하게 보고 있는 그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있는 그가, 그립다. 담백한 그가 그립다. 자꾸만 생각이 난다.
-정말로 그가 그립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애정이 존재한다. 가족에 대한 애정, 친구에 대한 애정, 이성에 대한 애정, 삼겹살에 대한 애정, 일에 대한 애정, 돈에 대한 애정, 책에 대한 애정, 닭에 대한 애정, 한라봉에 대한 애정 등등. 나는 그 '어떤' 애정들중에 일부를 조금 덜어내고 싶다. 덜어내지 않으면 자꾸만 더 힘들어질것만 같다. 이럴때 후버까페의 그 친구가 있다면 나는 푼수처럼 조잘댈 수 있었을 텐데. 나 지금 좀 힘들어요, 하고.
-나의 후버까페는 당신이 유일해요. 나에게 다른 후버까페는 없어요. 나는 앞으로 후버까페 만남은 다시는 하지 않을거다. 그것이 후버까페에 대한, 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알라딘에 새로운 페이퍼를 올리지 않은게 고작 며칠인데, 새로운 글을 올려달라는 문자메세지를 받았다. 나는 그분이 준 어떤 선물보다 그 메세지가 고마웠다. 내 글을 , 기다리나요? 그 기분은 어쩐지 근사하다.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처럼 느끼게 해준다.
-새벽 세시에 올리고 싶었는데, 젠장, 이제 거의 두시다.
-나는 이제야 루시드폴을 좀 좋아할 수 있을것 같다. 루시드폴의 시디를 하나쯤 사서 들어봐야겠다.
-와인도, 맥주도, 다 떨어진 밤이다. 케이블에서는 동호의 [빙글빙글]이 나온다. 아! 저 아이를 어쩌면 좋아!! 노래부르고 춤추는 동호는 별로 안이쁘다. 세바퀴의 동호가 짱이다. 만쉐이~
-대체 왜 이토록 긴 글을 쓰고야 만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