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불편한 소설이다. 사실은 처음에 이 책을 몇장 읽으면서 읽을까 읽지 말까를 고민했었다. 처음에 그리 쉬이 읽히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읽으면서 수정이 고양이를 학대하는 장면, 으윽, 집어칠까 생각했다. 고양이를 학대하는 장면보다 더 잔인했던 건, 그녀가 이것이 하면 안 될 짓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스스로 멈출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장면.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잔인해지는 건 고양이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이 소설은 불편하고 무섭다. 그리고 기분 나쁘다. (혹시 이 책을 읽고 싶으신 분은 댓글 달아주시면 보내드릴게요!)
그러다 이 영화를 보니 어쩐지 진정이 된다. 달리는 차 위로 '비닐에 담긴 금붕어 한마리'가 얹어져 있다. 이미 달리기를
시작한 그 차가 멈추면 그 금붕어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속도가 좀 높아져 그 금붕어가 앞차의 뒷트렁크 위로 이동한다. 옆에서 달리던 차는 그 앞차의 앞으로 이동해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고자 한다. 일정한 속도로 계속 달리는 것 만이 그 금붕어가 살 수 있는 길이다. 고양이를 집어 던지고, 그보다 더 심한 짓을 하고도 웃을 수 있는 여자애가 나오는 소설을 읽다가, 금붕어를 살리기 위해 차도에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게다가 이 영화는 허무하고 따뜻한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채팅을 하던 남녀가 공원의 벤치에서 만난다. 그 벤치에 나란히 앉고서도 그들은 서로임을 알아보지 못한다. 아, 나는 웃고 있었다. 아, 어떡해, 저 여자, 어떡해. 집 거실에서 혼자 이 DVD를 플레이 시켜놓고 보는 순간,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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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불편한 진실은 몇개나 존재할까? 이 세상에 말도 안되는 부당한 일들은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을까? 타인이 보기에 적합하지 못한 일들을, 그 안의 테두리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현실이고 진실'이라면, 그럴땐 어떡해야 하는걸까? 주인공 '노미'는 '십 대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창피한 종교'라는 메노파다.
메노파-Memmonites, 네덜란드의 종교개혁에 의해 생겨난 기독교 재세례파 중 최대의 교파이며 전 세계에 퍼져 있으나 대부분 미국과 캐나다에 집중되어 있다. (책에서 발췌)
메노파의 금지 목록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된다. 대중매체, 춤, 담배, 온화한 기후, 영화, 술, 로큰롤, 재미로 하는 섹스, 수영, 화장, 장신구, 당구, 도시로 놀러 가기, 밤 아홉 시 너머까지 깨어 있기(p.12)
결국 이 종교는 한 가족을 해체시킨다. 이 종교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모든 자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는 것, 그것이 이 종교가 하는 일이다.
한 마을의 사람들이 같은 마을의 사람을 파문한다. 왜 파문했을까, 대체 그 파문할 자격이라는 건 누가 주는건가!
얼마전 아프락사스님은 『위대한 기업을 넘어 영적 기업으로』라는 책의 리뷰(http://blog.aladin.co.kr/abraxas/2951681)를 쓰셨고 성공한 기업에 대한 얘기를 하셨다. 그들이 하는 짓이 포장되고 미화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 그 리뷰에 스타벅스도 잘하는 짓이 있는 것 같다고 나는 댓글을 달았고, 아프락사스님은 삼성도 좋은일을 하기도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댓글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어려운 사정을 가진 한 개인이 성공한 기업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인생이 조금 더 살기 쉬워졌다고 하다면, 그 개인에게 그 기업은 고마운 기업으로만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기업이 다수에게 정당하지 못한 행위들을, 피해를 주는 행위들을 하고 있다면, 다수에게 옳지 못한 일들을 하고 있다면, 그 '도움을 받은 개인'의 입장은 어떤 것일까. 그러다가 나는 이 책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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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퍼펙트 블루』 그녀의 첫 장편 소설이라고 하는데, 어렵지 않게 넘어가는 책이다. 이 책에는 거대한 제약회사가 아이들을 상대로 신약을 실험하는 사건이 등장한다. 그것은 누가 봐도 옳지 못한, 해서는 안 되는 행위. 그런데 이 회사는 좋은 일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문장들을 마주하게 된다. 뭔가 해답을 주는 듯한 문장. 이 문장들안에 답이 있다.
"인간이 모두 그렇듯 조직 역시 좋은 일도 하는가 하면 나쁜 짓도 합니다. 다이도제약은 폴리오 백신을 만들어 인플루엔자 예방을 연구하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잘 못한 게 있으면 그것을 시인하는 일입니다. 숨겨서는 안 됩니다. 실수로 인해 발생한 희생을 최소한으로 막기 위해 힘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p.338)
그렇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한다. 그러나 좋은 일 열개가 나쁜 일 두개를 상쇄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잘한 게 많으니 이런 나쁜 것 쯤은 하나 눈감아 줄 수 도 있잖아, 라는 식으로 교환할 수는 없다는 거다. 아프락사스님이 말하고자 했던 것도 이런게 아니었을까. 잘못한 게 있으면 그것을 시인하고, 숨기지 말고, 막기 위해 힘을 써야 한다는. 이것이 내가 생각했던 고민의 해답이기도 하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에 미안하다고 말할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벌려 놓고 나서 미안해, 라니 굉장히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미안해할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만약 어쩔 수 없이 그런말을 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거침없이 '미안해'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그 상황과 상대방에 대한 예의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면 미안할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거지, 내가 그동안 잘한 것도 많은데, 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술 마시지 않은, 토요일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