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성적 방종에 대해 유독 분노하는 사람은 성적으로 도덕적인 사람이겠지만 그의 내면에도 바람둥이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다. 수다스럽고 경솔한 사람을 경멸하는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도, 거짓말하는 사람을 경원시하는 정직한 사람도, 저마다의 내면에는 바로 그들이 인정하지 못한 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바로 그 부정적인 측면이 억압되어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비난할 때 그 행위는 곧 자신에 대한 비난이 되는 셈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비난할 때 그 행위는 곧 자신에 대한 비난이 되는 셈이라면, 아메리칸 뷰티가 그 점을 가장 잘 드러내지 않았는가 싶다.

아메리칸 뷰티에는 아름다운 여고생이 등장한다. 그녀는 화려한 외모로 모든 여성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으며, 인기도 많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얼마나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경험이 많은' 사람인지를 얘기한다.

그런 그녀가 친구의 아버지와 소파 위에서 정사를 벌이기 직전 "저 처음이예요" 라고 얘기한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인 것을 친구의 아버지에게 말하지만, 친구들에게는 처녀가 아닌 척, 경험이 많은 척을 해왔다. 그렇게 화려한 외모를 가지고, 그렇게 인기가 많으면서 자신이 사실은 남자관계가 전무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

또한 이 영화에는 자신의 아들이 게이임을 의심하며 혐오하는 아버지가 나온다. 옆집 남자와 자신의 아들이 연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남자는 굉장히 분노하며 화를내고 아들을 혐오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옆집 남자의 창고를 찾아가 자신의 연애상대가 되어주기를 갈망한다. 자신이 게이여서 아들이 게이라고 의심하고, 자신이 게이여서 게이일것 같은 아들을 혐오스럽게 생각한다 말했다. 그런 그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것은, 가장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 자신이 게이 였다는 것.



 

 

 

 

그러고보니 [앰 아이 블루?]라는 책에서도 그랬다.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보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이 사실은 동성애 코드를 가지고 있다고.



[모나리자 스마일]은 어떠한가. 더 배우는 것 대신 결혼을 선택한 제자 조앤(줄리아 스타일즈)에게 교수(줄리아 로버츠)는 찾아가서 심히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러자 조앤은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 이라며 '결혼을 하고 정착을 하는 것이 어리석은 여자들의 선택이라 생각하는 것은 선생님의 편견'이라 말한다. 한편, 모두에게 결혼하면서도 완벽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던 베티(커스틴 던스트)는 완벽해 보이기 위한 연기를 했던것임이 드러났고, 유부남과 연애중이었던 친구에게 경멸을 보내고, 프리섹스를 즐기는 친구에게 조소를 내던진 그녀가 사실은 남편에게 전혀 사랑받지 못하고 남편이 '건드리지조차 않는'다는 이유로 오열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진학을 하려는 친구에게 여자의 일생 목표는 결혼이라 끊임없이 조언하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강요하지만 자신의 결혼에 종지부를 찍고 진학을 선택한 것 역시 그녀였다.

다른이에게 '나처럼 살아'라고 강요하는 것은 결국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아, 그러니 니가 행복한 꼴을 볼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를일이다.

 

그리고,

[퀸카로 살아 남는 법]에서는 사소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다른사람이 뚱뚱해진다고 해서 내가 날씬해지는 건 아니라는 걸. 다른사람이 불행해진다고 내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걸. 퀸카든 아니든 고등학생이 깨달은 사실을-고작 10대일텐데!- 나는 이제서야 깨달아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해도, 나는 아직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에 위로받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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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10-06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성애에 대한 혐오감이 전혀 없는 이성애자인 저로서는, 가끔씩 동성애자로 오해받기도 하는 개인적인 경험이 마냥 신기할 따름입니다. 가끔씩 제게서 그 자신의 어떤 '다른' 부분들을 발견하고 있는 타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이른바 인정투쟁의 '역전된' 버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락방 2008-10-07 14:45   좋아요 0 | URL
람혼님. 말씀하신 경우에 대해서는 본인의 '다른'부분이라기 보다는 타인들이 잘못 보는 경우인게 아닐까요? 저의 경우 실제로 온라인상에서 다른이들의 성별을 착각하곤 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착각하지 않는데 저 혼자 착각하는 경우가 생기더라구요. 그 사람들이 다른게 아니라 제가 잘못 보는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저의 어떤 부분들에 대해서는 타인들이 그야말로 '먼저' 발견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지만 말입니다.

람혼 2008-10-07 15:41   좋아요 0 | URL
아, 제 이야기도 바로 그겁니다. "그 자신의 어떤 '다른' 부분들"에서 "그 자신"이란 뒤에 나오는 "타인들"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쓴 건데, 제가 읽는 분들을 조금 헷갈리게 만들었나 봅니다.^^

다락방 2008-10-07 16:40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뜻이었군요! 제가 완전 다른 버전으로 해석했네요. 하하 ^^:;

2008-10-06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7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8-10-07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생각속을 골몰히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도 말못할 사악함들이 그득그득 도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요.
사실은 그렇게, 자기 자신에 기반한 타인 비난을 일삼는 일이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일이 될지도 모를텐데 말이죠

다락방 2008-10-07 14:52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네, 그렇죠.
그런데 타인에 대한 비난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자기 자신에 기반한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타인을 비난할 때의 기준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잖아요. 나와 달라서 비난하든, 나와 같아서 비난하든, 어쨌든 중심은 자기 자신이죠.

자기 자신에 기반한 타인 비난이라고 한다면야, 저 역시 발뺌할 수 없는 부분이예요.
전 짠돌이같은 사람을 흉보지만 사실은 돈을 아껴쓸 줄 모르구요,
전 돈을 펑펑 쓰는 사람을 흉보지만 사실은 펑펑 쓸 돈이 없어요. orz

네꼬 2008-10-07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 보면 가끔 우리, 비슷한 생각해요. 난 요즘 "남의 행복이 커진다고 나의 행복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차범근 감독님의 명언(정말 그런 글을 쓰셨다오)을 생각해요. 다락님, 많이많이 행복해줘요. 보는 나도 행복하게. (팽- 이 페이퍼 정말 좋다.)

다락방 2008-10-08 08:48   좋아요 0 | URL
네꼬님. 저만 행복할 수 있나요. 우리 같이 행복해야죠. 벌써 10월이고, 벌써 겨울(가을은 어디갔냐 -_-)인데, 우리 이제 정말 행복할 때가 됐잖아요. 그치요? 우리가 다음에 만날 땐 서로 얼마나 행복한지 자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쓰는데 쪼금 슬프구나. 흑 ㅜㅡ)

순오기 2008-10-09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페이퍼만 쓰는 다락방님~~~ 좋아요!
코는 좀 좋아졌어요~ 식염수는 지속적으로 했는지도 궁금하고~~~~ ^^

다락방 2008-10-10 12:55   좋아요 0 | URL
아 순오기님.
식염수를 지속적으로 하지 못했어요. 아, 그거 은근 귀찮더라구요. 처음엔 약통 얻어오고 자기전에 꼭 넣어주고 이러다가 한 3일 지났나...이젠 그 약통이 어딨는지도 모르겠어요. -_-

저는 왜 이모양일까요 ㅜㅡ

순오기 2008-10-15 10:05   좋아요 0 | URL
식염수 꾸준히 하는게 어렵긴 해요. 그래도 살만하니까 소홀한 거죠~ㅎㅎㅎ
어떤 방법이든 치료가 되었다면 됐지요. 괜찮은거죠? ^^

다락방 2008-10-16 08:38   좋아요 0 | URL
네, 괜찮아요. 아침마다 코를 풀기는 하지만 지금은 아예 쌀쌀해져서 그나마 좀 나아졌답니다.
맞아요, 순오기님. 살만하니까 소홀한것 같아요. 후훗.

곰탱이 2008-10-1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찔리는 이 마음 금할 길이 없군요 ㅡ,ㅡ 스산한 저녁이예요

다락방 2008-10-19 19:15   좋아요 0 | URL
차라리 비라도 시원하게 내렸으면 하는 밤이예요. 스산한 저녁인건 스산한 마음이기 때문일까요? 저도 스산한 저녁이라 느끼고 있거든요..

무스탕 2008-10-18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이 동성애자이건 이성애자이건 삼겹살을 바짝 구워 먹든 대충 익으면 먹어 치우든 그런거 신경 안쓰고 사는 저는 뭘까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저 처럼 누가 뭘 하든 신경 안쓰고 살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눈이나 말을 의식하는건 그 사람이 뭔가가 고프거나 뭔가가 넘치는 사람일거라 생각해요.

엉뚱한 이야기 하나 하자면 전 동성도 좋고 이성도 좋아요.
동성은 동성이라서 좋고 이성은 이성이라서 좋아요.
또 하나 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거 하나는요, 전요, 이성한테만 팔짱을 껴요. 친구들한테도 팔짱을 안껴요. 하하하-

신랑이 친구들이랑 놀러가서 마냥 편안한 무스탕이에요~
아름다운 밤이에요~

:D

다락방 2008-10-19 19:14   좋아요 0 | URL
네, 그래요 무스탕님. 누군가의 눈이나 말을 의식하는 건 그 사람이 뭔가가 고프거나 넘치기 때문이겠죠. 그리도 저도 대체적으로 이성한테만 팔짱을 껴요. 친구들한테도 언제 팔짱을 꼈는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간혹 아주 가끔 친구들한테 팔짱을 꼈던 적도 있긴해요. 어떨때는 말이죠 무스탕님, 팔짱 한번 껴보는 걸로 위로가 되는 그런 날이 있거든요.

마냥 편안하고 아름다운 밤을 충분히 즐기셔요!
:)

야클 2008-10-19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그럴듯한 이론이네요. ^^

다락방 2008-10-20 08:36   좋아요 0 | URL
호오...그런가요! 야클님의 오랜만의 페이퍼도, 그 음식들의 사진도 잘 보고 왔는데 여기서 이렇게 뵈니 또 반갑네요! 후훗.
:)

2008-10-21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