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의 말》을 읽고 있다.
책의 제목은 아니 에르노의 말 이지만, 그보다는 아니 에르노와 로즈마리 라그라브 의 대담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둘다 프랑스 출신 여성이며 계급 탈주를 했다는 공통성을 가지고 젠더와 계급, 무엇보다 사회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한쪽이 질문하고 한쪽이 답을 하는 형식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그리고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것. 그 대화의 깊이도 그렇지만 용어들도 사회학 쪽이라고 해야할까, 다소 전문적이며 어려운 것 같아서, '만약 내 친구랑 내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눠도 이런 식은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아마 아니 에르노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탄, 교수라는 직업을 가졌던 소설가, 라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녀에겐 그녀를 지원해줬던,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그들의 부모가 있었다. 그에 대해서 아니 에르노는 《남자의 자리》를 통해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데, 나는 남자의 자리가 그간 읽었던 아니 에르노의 책 중에서 제일 좋다.
아니 에르노의 말도 절반까지 읽은 현재, 계급과 사회 그리고 젠더에 대한 이야기가 이루어져서 아주 즐겁게 읽고 있고, 아니, 이 지적인 여성들의 대화를 보노라니 너무 짜릿해져서, 그간 아니 에르노가 했던 말을 내가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거나 놓쳤을까봐 그녀의 작품들을 죄다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는 게 아닌가. 나는 이 책을 절반도 채 읽지 못했던 어제, 집에 돌아가자마자 집에 있는 아니 에르노 책들을 죄다 꺼내놓기로 했다. 읽었던 책은 다시 읽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은 이제 읽어봐야 할 것 같아서!! 가만있자, 남자의 자리 너무 좋아서 팔지 않은 거 확실한데, <산책> 앱에도 있다고 나오는데, 그런데 책장에서 도무지 보이질 않네? 내 서재방 책장에서도 내 침실 책장에서도 보이질 않아. 아 안버렸는데 ㅠㅠ 어디있지 ㅠㅠ 아, 혹시 거실 책장에 있나? 나는 거실로 가 살핀다. 저기, 저 꼭대기 위에 있다! 그렇게 남자의 자리도 한여자도 꺼내온다.
두 책 다 너무 낡아서 다시 사야겠어... 《세월》은 새것이다.
아니 에르노의 말을 읽다가 《얼어붙은 여자》랑 《사건》은 내가 딱히 좋아하진 않았지. 이건 딱히 다시 보진 않아도 될것 같고, 아니 《빈 옷장》? 이건 한 번 사서 읽어봐야겠네.
오늘 아침 빈 옷장을 사려고 장바구니에 넣고, 자, 이 책을 누구한테 땡투할까, 하고 책 링크를 하고 들어갔다가, 얼라리여~ 나는 이런 구매자평을 보게 된다.

나다..
이거 나야..
이 평 내가 쓴거야.
나...
빈옷장 읽었어? 2020년에? 헐...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 저 구매자평 보면 뭔가 제대로 읽고 쓴 것 같긴 한데, 그런데 기억이 하나도 안나. 집에 책도 없어. 읽자마자 바로 팔았나봐요? 내가 읽은 아니 에르노, 내가 기억 못하는 부분?????
하아-
그래서 내가 읽은 아니 에르노를 알라딘 나의 서재에서 태그로 검색해 보았다.

이중에서 《탐닉》은 도저히 못읽겠어서 중간쯤 읽다가 팔아버렸다. 하아- 《집착》도 너무 읽기 힘들었고.. 아무튼 내 생각보다 내가 아니 에르노 많이 읽었네? 그렇지만 아니 에르노의 말 읽다보니, 다소 읽기 힘들겠지만 《여자 아이 기억》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다른 책들도. 아니, 아니 에르노 님, 책 엄청 많네요??? 아니 에르노 전작 해줘야겠다. 그렇지만 탐닉은 빼고.. 흠흠. 탐닉도 다시 도전해보자!!
이들의 대화에서 초반에 아주 많이 언급되는 작가가 크리스틴 델피다. 여성학 책을 관심있게 지켜봐온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크리스틴 델피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최근에 봄알람 에서 책이 나왔더랬지.
프랑스 의 여성들에게 크리스틴 델피는 여성학으로도 사회학으로도 아주 따를만한 사람인가 보았다.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크리스틴 델피의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시리즈를 나도 앞에 두 권 가지고 있는데, 이걸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서 어떻게 같이 읽을 수 있을까? 이렇게 지금 출간된 것들 네 권을 한 달 안에 읽기 해볼까? 한 권당 분량이 정말 적다. <서문> 의 경우 100페이지도 안하고 가격도 1만원을 안한다. 네 권 합쳐 400페이지쯤 될텐데, 같이 읽기 시도를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야겠다.
아니 에르노와 로즈마리 라그라브 의 대화를 읽다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리스트에 한 권을 더 추가해두었다. 미셸 페로의 《여성의 역사》가 그것.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자.

그리고 개인적으로 읽고 싶어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은 둘다 강하게 영향을 받았던 '부르디외'의 책이다. 아 너무.. 부르디 外 쓰고 싶지만 참을게요. 꼰대가 되면 자연적으로 아재개그를 하게 되나요? 하아- 미안합니다.
아니 에르노의 말은 분량이 많지도 않은데 읽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책 얘기할 때마다 뭔데, 뭔데 이러면서 검색하느라고 시간을 대단히 잡아먹어. 게다가 프랑수아즈 에리티에 책도 좀 찾아보고 싶은데 딱히 눈에 띄는 책이 없단 말이야? 로즈마리 라그라브 의 책도 읽어보고 싶은데 국내에 번역된 게 없는 것 같다.
어제 회사 동료랑 얘기하면서 아니 에르노를 내가 언급했다. 남자의 자리 언급하면서 자신을 멸시한 세계에 딸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던 것, 그 딸은 교육을 받고 계급이 달라지면서 부모님을 무시하기도 했던 것에 대해서. 그 책이 나에게 정말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동료에게 얘기했는데, 내 말을 듣고 동료는 '네 얘기네?' 했다. 아, 내가 나랑 비슷해서 그 책을 그렇게나 좋아했던 거구나. 아니 에르노가 했던 생각 그리고 행동이 내 것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물론 아니 에르노는 그 뒤에 무럭무럭 자라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고 나는 다락방이 되었지만..
나는 배움과 지원이 충분치 못한 집에서 자랐고 본보기가 되는 어른도 보지 못한 채로 자랐으며 아이일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여성이라는 성별로 인한 성적 희롱에 자주 노출되었었다. 여성이라는 인식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나는 아주 크게 계급에 분개할 때가 많다. 그건 아마도 내가 모시는 분-그러니까 깨어있는 시간 중에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나와 완전히 다른 계급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계 하나를 사는데 우리 회사 부장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을 쓰는 계급, 거주하는 아파트 관리비가 사회 초년생 월급인 그런 계급을 바로 옆에서 보면서 나는 수시로 분개하고 수시로 한탄한다. 그리고 만나는 친구들이나 동료에게 그리고 가족에게도 열을 내며 토로하는 거다.
이상하지 않아? 너무 이상하지 않아? 어떤 사람은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고 노동하지 않아도 부자이며 어떤 사람은 아무리 뼈빠지게 일해도 자기 집이 없다는 것이? 너무 이상하지 않아? 저기, 3,600만원짜리 가방이 존재하고 누군가는 들고 다닌다는 것도 아는데, 그런데 누군가의 연봉은 그 가방 값도 안된다는 것이? 존재하는 거 알지만 결코 내것이 될 순 없다는 생각을 하고 사는 거, 그거 너무 이상하지 않아?
그런데 나의 이 분개가, 이 이상함에 대한 인식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라그라브 '당신은 주변부에서 고치려고 시도해보지만, 결국 그 어떤 것도 고치지 못한다.'
에르노 고치지 못하죠. -P.60
아주 짜릿해하며 읽고 있다.
처음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보다, 이 책을 읽는 지금, 그녀가 노벨상 수상자인 것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