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긴 휴가라는 게 없었다.

고등학교까지는 학교를 다니느라 열심이었고 대학때는 학교를 많이 빼먹었지만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다. 

취업은 대학 졸업 하자마자 했다. 한 출판사 사장님이 친구인 나의 전공 교수님께 직원으로 학생 추천을 해달라 하셨는데, 교수님은 나를 추천하셨다. 나는 성적이 엉망진창이었지만(학고~ 학고~) 열심히 아르바이트 한 걸 알고 계시다며, 성실함은 너를 따를 자 없을 거라고 추천하셔서 면접을 보러 갔는데, 보러 가자마자 뽑혀버린 것이다. 회사에서 언제부터 출근 가능? 이러는데 '내일' 이래가지고 또 바로 일을 시작해버린 나여.. 그렇게 열심히 근무하다가 퇴사를 해서 백수로 한 2~3개월 지낸 것 같다. 쉼 없이 일했으니 놀아야지 생각했지만, 그 쉬는 동안 나는 1종 운전면허를 따버렸다. 껄껄. 그리고 다시 취업해서 지금까지 계속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나에게 긴 휴가는 없었고, 내가 가진 휴가라고는 회사의 여름휴가나 명절 연휴 뿐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긴 휴가는 로망이었다. 입에 달고 사는 말이 '퇴사하면 베트남 한 달 살기'인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쉼 만으로 한 달을? 캬- 개꿀.. 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걱정도 된다. 어떻게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살지? 하고 말이다. 지금도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몸을 재게 움직이는 편이다. 산책을 한다든가 파김치를 담근다든가 서점을 간다든가... 그래서 걱정이다. 퇴사 후 갑자기 휴가가 주어지면 내가 도대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어쨌든 나는 뭐가 됐든 다시 일을 할 생각이고 돈을 벌 생각이지만, '일하지 않는 시간'은 내게 얼마나 이어질까? 나는 얼마간을 일없이 보내다가, 오로지 쉬기만 하다가 다시 일을 하게 될까? 나는 좀 길게 쉴 수 있기를 바라는데 내가 그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일하는 몸에 너무 길들여져 버렸달까.. 자, 그런데 나에게 일과 일 사이에 1년의 휴가가 갑자기, 예정에도 없이 주어진다면? 그러면? 그 1년간 나는 무엇을 하게 될까?



아마도 일단은 신나서 여행을 가려고 할테고 아마도 늘 마음 먹었던 한 달 살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책도 더 읽으려고 시도하겠지. 그러나 책이란 것은 원래 바쁠 때 더 잘 읽히지 않던가. 잘 모르겠다. 갑자기 주어진 1년은 나에게 어떤 시간으로 남을지. 짐작하자면, 그중의 얼마만큼은 분명 지루해할 것 같기도 하다. 파김치나 만들어 팔아볼까... 자, 나는 아직 이 1년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고, 막상 주어진다고 해서 내가 잘 썼다고 해도 뭐 그렇게 대단하게 썼을까 싶은데, 그런데, 여러분, 뉴턴은 이 1년을 어떻게 썼을까요?




166년 스물세 살의 뉴턴이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학생이 됐을 때 흑사병이 돌았다. 그래서 뉴턴은 자신이 태어난 외딴 고향 마을 울즈소프Woolsthorpe에 내려가서 어떤 의무에도 얽매이지 않고 1년의 세월을 편히 보낼 수 있었다. 뉴턴은 그 1년 동안에 미분과 적분을 발명했고 빛의 기본 성질을 알아냈으며 만유인력 법칙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p.155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떤 의무에도 얽매이지 않고 '보내는 1년 동안, 미분과 적분을 뭐 어쨌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뉴턴.. 왜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 보자. 그러니까 이렇게 된 일이다.



케플러와 마찬가지로 뉴턴도 그 시대를 풍미하던 미신을 완전히 멀리 하지 못했고 신비주의와도 자주 접촉했다. 사실상, 뉴턴이 지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도 상당 부분 이 같은 이성주의와 신비주의의 대립과 긴장 덕분이라 할 수 있다. 1663년 스투어브리지Storubridge에서 박람회가 열렸다. 당시 스무 살이던 뉴턴은 그곳에서 "안에 무엇이 씌어있는지 궁금해서" 점성술 책을 한 권 구입했다고 한다. 그는 그 책을 읽다가 도면을 하나 이해하지 못해 계속 읽어 나갈 수가 없었다. 이것은 그가 삼각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각법에 관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그 책의 기하학적 논의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Elements of Geometry』을 구해다가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뒤에 뉴턴은 미적분학을 발명하기에 이른다. -p.154



나도 별자리 책 읽었고, 그거 보면서 '악 나 사자자리 이거 맞네 맞네 딱맞네!' 이런것만 했었는데 ㅋㅋ 뉴턴은 도면.. 삼각법, 기하학, 유클리드... 그러다가 미적분학.......후훗. 역시 뉴턴과 나는 탄생부터 다른 것인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점성술 책 샀다가 기하학으로 넘어가던 그 스무살, 나는 만화방에서 라면 먹고 있었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미적분학을 발명이라니. 나도 미분은 학교때 초큼 했었지만 어느 순간 손 놔버렸는데. 지금은 '미분' 하면 '그건 수학!' 이렇게밖에 몰라. 헤헷. 와 뉴턴 대단한 줄 알았지만 너무 대단했네요? 아니, 코스모스.. 우주 얘기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뉴턴의 깨알같은 천재삶 보여주고 증맬루 재미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나에게 1년이 주어진다면 내가 뭘 할지 아직은 모르지만, 내가 미적분을 발명하진 못할거란 건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건 이미 뉴턴이 발명했으니까.



그럼 이만.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3-10-31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뉴턴이 잘못했네....
해외에서 한 달 살기하면서 전완근남 발명...은 아니고 발견하는 한 해 기원! ㅋㅋㅋㅋ

다락방 2023-11-01 09:58   좋아요 0 | URL
문제는 전완근 남도 이 물렁살녀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 (먼 산)

단발머리 2023-11-01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슨 책인든 다락방님 앞에 가져다 놓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려운 책, 심오한 책, 까다로운 책 ㅋㅋㅋ
이렇게 재미지게 읽어줍니다!!

전 1년 내내 놀거에요. 뒹글뒹글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1-01 09:5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제가 읽는 책 보다 제가 책 읽고 쓰는 글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역시 알라딘, 다락방을 놓지 마라! 잘 지켜. 절대 사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니 2023-10-3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 후에도 지금 만큼의 수입이 보장되는 직장이 기다리고 있다면야,
1년 휴가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게 천지 삐까리! 이지 않나...ㅎㅎ 라고 생각하며 괜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봅니다.
한편, 제주는 대부분 월세가 아닌 연세 단위로 집을 빌려주기 때문에 한달살이 말고 아예 1년살이 하러 오는 분들도 꽤 있어요!

다락방 2023-11-01 10:00   좋아요 0 | URL
돈벌이가 보장되어 있는 휴가라면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그런 한편 이제 일은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그만하면 내 입에 들어갈 밥을 누가 구해다 주는가. 이런 생각의 고리를 반복하고 있지요. 저는 노는 걸 좋아하지만 그런데 정말 좋아하는가, 잘 노는 사람인가 다시 물으면 딱히 그런 것 같지가 않아요. 늘 뭔가 바쁜 사람... 이것도 다 팔자인가 합니다 ㅠㅠ

독서괭 2023-10-31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뉴턴을 뉴턴이게 한 건 한 권의 점성술 책이었다.. 놀라운데요?? 마틴 에덴 공부하던 거 생각납니다 ㅎ 아무 의무 없이,, 아무도 안 시키는데 미적분 만들어내고.. 뭐하는 거임. ㅜㅜ 우리나라 고3들 일년 동안 머리에 집어넣는 양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데, 그 에너지를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그나저나 일년의 휴가, 저같은 경우 육아 없이 일년 휴가라면 뭘하면 좋을까요!! 지금으로선 영어욕구가 뿜뿜해서 미국가서 일년간 영어공부 열심히 해보고 싶은데요. 같이 가시죠. (응?)
애들 학교랑 돌봄 등등에 맡기고 9~6 일과시간 휴가를 1년동안 받을 수 있다면?? (사실 육아휴가 쓰면 애들 일찍 하교시켜서 데리고 놀아야하기 땜에 이역시 판타지지만..돈도..돈.. ) 우왕.. 매일 운동하고 영어공부하고 전공공부도 하고..와.. 너무 건전하다.. ㅋㅋㅋ
우린 뉴턴이 아니니까 열심히 일하기로 해요. 흑.
그나저나 <코스모스> 재밌겠네요! 저도 갖고는 있습니다 ㅋㅋㅋ 다락방님의 코스모스 격파 파이팅!

다락방 2023-11-01 10:0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점성술 책은 다락방을 다락방으로 만들고 뉴턴을 뉴턴으로 만들었다. 책은 잘못이 없다. 그 책을 읽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문제일 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님, 휴가 동안 영어 공부 좋은데요? 그렇지만 .. 공부.. 그것이 먹고 사는 일에 굳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휴가의 쉼에 포함해도 되는 것이겠지요? 영어, 증맬루 정복되지 않는 그것입니다. 포기했다가도 다시 잡게 되고 포기했다가도 또 들여다보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것이 되지 않는.. 하아- 나쁜 영어 ㅠㅠ

맞습니다. 우린 뉴턴이 아니니까 열심히 일합시다. ㅠㅠ
코스모스, 꼭 격파 하겠습니다!!

yamoo 2023-10-31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1달, 아니 1년이 주어진다면 큰 그림을 주장창 그릴 듯해요..ㅎㅎ
구상해 놓은 그림들을 마구 그리고, 여러 재료를 탐구도 해 볼 듯합니다...ㅋㅋ
쟁여 놓은 책과 영화도 마구 보고...쉰날듯!!ㅎㅎ

다락방 2023-11-06 11:20   좋아요 0 | URL
1년이 주어진다면 저도 책을 마구마구 읽고 싶긴 합니다. 어려운 책들을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앉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여행도 길게 가보고 싶고요. 음, 사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1년도 아주 짧을 것 같네요. 그 시간이 금방 갈 것 같습니다. ㅎㅎㅎ

감은빛 2023-10-31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동네에서는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을 자주 해요.
누군가 일을 쉬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온갖 동네 일들이 다 몰리거든요.
저도 예전에 출판사에서 짤리고 한 반년 동안 취업을 안 하고 있었는데
(편집 알바 일을 조금 했고, 지역 녹색당 위원장 역할을 하긴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백수였죠.)
그때 정말 바빠서 죽을 정도로 동네 온갖 일들이 제게 몰렸어요.
최근에도 일을 쉬는 사람이 제 주변에 한 두어명 계신데, 그 분들도 같은 말을 하시더라구요. ㅎㅎ

저는 한 몇년 후에 아이들 양육비 걱정을 덜면 일을 그만두고 어디 조용한 곳에서 은둔생활을 해보고 싶은데,
언제나 걱정은 돈이죠.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 ㅎㅎㅎㅎ

다락방 2023-11-06 11:21   좋아요 0 | URL
백수가 과로사한다 ㅋㅋ
어쩌면 저도 그런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도 주말에 침대에 누워있기를 못하거든요. 그래서 집에서도 저한테 가만있지를 못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다 제 팔자려니 합니다. ㅋㅋ 그런참에 1년간의 휴가라니, 저도 저에게 한 번 줘보고 싶네요. 그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보낼지 말예요. 물론, 그 다음 일자리는 보장되어 있어야 제가 쉬어도 편히 쉴 것 같긴 합니다. ㅠㅠ

나중에 조용한 곳으로 옮겨 사시게 되신다면 제가 한 번 술 사들고 찾아가겠습니다!! ㅎㅎ

꼬마요정 2023-11-05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 때는 발견한 게 많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우리는 이제 초정밀 기계가 없으면 발견 못 할거예요. 다 발견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로 해요 우리 ㅋㅋ 대신 다락방 님은 아주 재밌게 리뷰 써 주실 수 있으니까요. 1년이 긴 것처럼 보여도 또 짧잖아요. 계절도 즐겨야 하고, 계절별로 놀러도 가야 하고, 계절별로 먹거리도 먹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생각만 해도 좋네요. 바쁘지만 행복할 것 같아요. 물론 소득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말이죠. 결국 돈이 문제입니다. 아주 어려운 문제요ㅠㅠ

다락방 2023-11-06 11:23   좋아요 1 | URL
맞아요, 꼬마요정 님. 결국은 돈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가 휴가를 즐거이 보내려면 돈벌이가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보장이 되어 있어야 하죠. 내가 이 휴가의 시간을 보내도 어쨌든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를 확신해야 휴가를 휴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뉴턴의 저 미적분 발명 읽고 진짜 그 뒤로 계속 생각해요.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어떤 인간은 미적분을 발명하고 어떤 인간은 미적분을 풀 수조차 없는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 풀 수조차 없는 인간이 바로 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인간은 이렇게나 다른가, 이렇게나 다양한가... 인간은 참 재미난 존재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