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에 입국하자마자 첫날과 두번째날까지 너무 힘들었는데, 와, 오늘은 역대급으로 힘들었다. 싱가폴에 온 이후로 가장 멘탈이 찢어진 날이었다.
드디어 오늘 집 계약을 했다. 와.
집 계약이라는게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렇게 복잡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여긴 뭐 이렇게 싸인할 게 많은지, 그렇다면 그 서류들은 또 다 어떻게 읽고 해석한단 말인가. 나는 며칠전에 안되겠다 싶어 채경이를 유료로 구독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계약서 사진을 찍어서 채경이가 해석해준 걸 보며 계약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집주인인 싱가폴인 부부도 좋은 분들 같았고 중개인인 에이미도 좋은 사람 같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을 내가 백프로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빨리 이사람들 나가고 나 혼자 있고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강해졌다. 막판에는 백프로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알았다, 오케이, 이런 식으로 했다. 그들이 빨리 가고 혼자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내 표정을 본 집주인 여자분은 '노 스트레스 노 스트레스' 라고 말했다. 그분들은 새로 입주할 나를 위해 물도 사오고 과일도 사와서 감사했지만, 그런데 나는 영어로 진행되는 이 시간 내내 너무나, 너무나 힘들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한시간 가량을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얘기했던 것 같다. 대충 알아들은 것 같지만, 아 잘 모르겠다.
그들이 가고 나서 완전 멘탈이 찢어져서 정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내가 여기 왜 와있지?
내가 왜 이러고 있는거지?
그냥 어학연수 오는 다른 많은 학생들처럼 한국인이 하는 집의 방 한칸 얻어 살면 간단했을것을, 돈도 덜 들것을 왜 굳이 혼자 살려고 해가지고 이 고생을 하는거지? 사이트에서 집을 검색하고 매니저에게 연락하고 이렇게 계약에 이르기까지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에너지 소모도 상당했다. 한국인이 하는 집이었으면, 한국인이 집주인 이었으면 훨씬 편했을텐데, 그런데 내가 왜...
늦은 오후였고 일단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그리고 짐을 좀 정리하자.
나는 근처의 쇼핑몰로 가 저녁을 먹는데 밥이 잘 먹히지 않았다.
아 힘들어. 나 어떡하지. 진짜 멘탈이 너무 찢어질 것 같아서 ㅠㅠ 신경안정제 먹을까? 생각하다가, 신경안정제 복용하는 횟수 늘어나면 의존하게 된다던 닥터의 말이 떠올라서, 이겨내자, 이겨내자 혼자 계속 되뇌었다.
짐 다 풀고 씻고 나면 와인 한잔으로 축하해야지 싶어, 처음에 장 본 것들을 풀어두고 다시 바로 쇼핑몰로 나가서 와인을 샀다. 직원은 중국말로 내게 뭔가 물었고 나는 아 임 낫 차이니즈 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웨얼 아 유 프롬이냐고 해서 아 임 프롬 사우스 코리아 했더니 슬로리, 슬로리, 하면서 이 와인은 원래 얼마인데 이만큼 프로모션 들어가서 이 가격이고, 하면서 정말 천천히, 천천히 말해주었다. 뒤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는데도 그랬다. 나는 알겠다고 달라고 했다. 고맙고 친절한 분 ㅠㅠ
내가 이사한 콘도는 수영장과 짐을 가지고 있다. 콘도 주민 모두다 이걸 이용할 수 있는데, 문득 수영장을 지나치면서 여기에 수영장이 있구나, 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는데 내가 디스 이즈 수영장,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 이렇게, 바로 이렇게 사람이 바뀌어버리는구나. 혼자 있는데도 디스 이즈 수영장이 대체 뭐야?
여러가지 언어를 하는 사람들이 대화 도중에 그 언어들을 막 섞어서 대화하게 되는걸 종종 보게 되는데, 지금 내가 그러고 있었다. 아, 이게 그냥 이렇게 되는거구나. 왜 나는 디스 이즈 풀 이라고 하지 않고 이게 수영장 이구나 하지 않고 디스 이즈 수영장.. 이러고 있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큰누나 왜 조용하냐
언니 오늘 집 계약하고 들어간다 했는데
라고 톡방에 올라오길래 지금 계약 다 끝났고 나는 내가 지금 뭐하러 여기왔나 싶다고 말했다. 와. 나 오늘 멘탈 완전 나갔어.
그리고 음악을 틀어두고 짐을 정리하면서 멘탈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뭐 하여간 깨끗하게 아껴쓰면 되는거잖아?
아 진짜 힘들었다.
멘탈 완전히 나가서 정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여태껏 쓴 돈 다 냅두고 그냥 한국 가고 싶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걸까.. 하아.
이제야 짐 다 정리하고 와인 한 잔 마시고 있다.
영어 공부하러 싱가폴 와서 아직 학교 수업 시작도 안했는데 나는 일주일간 살이 20kg 는 빠진것 같고(아님) 어제까지는 인생 개꿀잼이다! 했다가, 흑흑 졸라 힘들어 멘탈 찢어져.. 이러고 있다. 그래도 도시야경뷰 집이다. 내가 그렇게나 살고 싶었던 도시야경뷰. 이 집 보러 왔다가 이 뷰에 첫눈에 반해버렸고, 그러다보니 내가 멘탈이 찢어져가며 이 집에 들어와있다.


근데 너무 힘들다.
한국인 만나서 한국어로 수다떨고 싶다.
영어 하려고 왔는데 정말 계속 영어만 하니까 미쳐버리겠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내가 아까는 혼자 장보고 오면서 스스로 물었다.
'만약 다음에 외국에 공부하러 간다면 그 때는 걍 한국인이 하는 집 방 한칸 얻을거야?' 라고. 그러자 '아니'라는 답이 왔다. 하 쉬바.. 고생할 팔자야 뭐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앤드류는 안만나고 있어가지고 앤드류 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