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여동생네에 다녀왔다. 둘째 조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먼 길이었고 오전에 운동을 한 터라 힘들어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려고 펼쳤다가 꾸벅 졸았다. 여동생네 집에 도착해서는 둘째 조카 침대에서 낮잠을 좀 잤다.
일어나서 다같이 저녁을 먹으러 다녀오고, 돌아와서는 케익을 놓고 축하노래를 부르고, 조카가 바이킹 타러 가고 싶다고 해서 조카를 데리고 나갔다. 세상에, 아파트에 장이 섰는데 거기에 바이킹이 있는 거다. 이게.. 믿어지세요? 처음보는 광경이었는데 많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줄을 서서 바이킹을 타고 있었다. 아파트 한복판에서. 물론 놀이공원의 바아킹처럼 사이즈가 크진 않았는데, 제법 재미있는지 바이킹 안의 아이들은 꺄악꺄악 소리를 질러대며 웃었다. 둘째 조카는 엄마가 아니라 이모랑 나가고 싶다고 해서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바이킹을 태워주고 들어왔다.
다같이 축구를 보고 수다를 떨다가 너무 졸려서 이제 자야겠다고 들어갔는데, 타미가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는 내 옆에 누워서 그간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수다 떨기 시작했다. 옆에 누워 이야기 하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나는 옆으로 돌아 누워 수다 떠는 아이를 가볍게 안고 있었다. 이 시간이 영원하기를 바랐지만, 아무리 정신 차리고 있으려고 해도 너무 졸렸다. 자정이 지나 있었다. 나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좋아서 잠이 오는 걸 참고 참고 참았다가, 결국 말할 수밖에 없었다.
타미야, 이모 졸려..
그러자 타미는 벌떡 일어나서 응 이모 잘자, 이러고 방을 나섰다. 잠이 드는 내 마음은 사랑과 행복으로 폭발할 것 같았다. 타인이 내 옆에 누워서 잠들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준단은 것에서 궁극의 행복이 찾아온 것 같았다. 나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잠드는 것에서 이 정도의 행복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인가, 그 마음이 게속 내게 남아 있다.
책을 샀다.
[코스모스]는 회사 동료1 와 함께 읽으려고 샀다. 아니, 이 동료가 [세계 끝의 버섯]을 다 읽어낸 거다. 그리고는 이제 자신이 고른 책을 읽자는 게 아닌가. 그게 코스모스 였다! 마침 여동생 집에 가니 깨끗한-사놓고 안읽은- 보급판 코스모스가 있어서 가져왔다. 내가 집에서는 책을 잘 못읽으니 가지고 다니면서 읽어야 되는데 하드커버 코스모스는 무거워도 너무 무거웠다. 사이즈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그래서 내심 보급판으로 사야지, 했는데 여동생 집에 있는게 보급판이었을 줄이야!! 그러니까 이건 산 건 아니고 가져온 거. ㅎㅎ
[걸리 드링크]는 회사 동료2의 선물이다. 일전에 이 동료에게 김혜리 기자의 팟빵을 선물한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그걸 열심히 들으면서 세상에, 거기에서 듣고 알게된 책을 사서 읽기도 하는 거다. 내가 선물한 것보다 팟빵을 더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했는데, 내가 선물한 구독권 3개월이 지나자 자신이 스스로 정기구독을 신청했다고 한다. 너무 좋은 걸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하며 이 책을 선물해주었다. 이것도 김혜리 기자의 팟빵에서 알게된 건데 들으면서 계속 내 생각이 났다고. 이 동료와 나는 퇴근 후 술한잔도 자주 하는데, 자기가 읽기 위해서도 한 권, 나를 주기 위해서 또 한 권을 샀다고 했다. 으하하하하하
[블랙 박스]는 안그래도 내 장바구니에 있던 책인데 다정한 알라디너로부터 선물 받았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지난 주에는 이렇게 내가 사지 않은 책들이 많이 생겼는데,
[무법의 바다]도 그 중 하나다. 이 책 신간에서 보고 궁금하지만 너무 두꺼워서 내가? 과연? 이러고 사지 않았었는데, 선물로 똭- 아하하하하하하하
[고통에 관하여]도 역시 사르고 벼르고 있었다. ‘뭄’과 ‘고통’에 관한 얘기라면 누구나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꼭 사서 읽어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마침 리뷰대회가 있다는 게 아닌가! 좋았어. 1등 상품 10만원은 내 거얏!! 하고 읽던 책 제쳐두고 이걸 읽기 시작해서 다 읽긴 했는데, 읽고나니 백자평도 못쓰겠다. 백자평도 못쓰겠는데, 리뷰가 과연? 잠정적 포기. 음, 굳이 여기에 한 줄 쓰자면, 나는 [저주 토끼]로 정보라를 먼저 만났고 작가 자체에 대한 호감은 있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을 꼭 찾아 읽어봐야지, 하진 않았더랬다. 이번 책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정보라 나오는대로 다 읽어주겠어! 하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누가 좋아하는 작가를 물을 때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작가는 아니다.
[컬티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어맨다 몬텔의 책이다. 이번에는 ‘광신’에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아니 이런 거 너무 흥미롭지 않나. 마침 고통에 관하여에서도 사이비 종교 얘기가 나오는데 연결지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아, 어제 읽은 소설 [까만 머리의 금발 소년]에서도 능력 있는 프로 파일러가 나와 자신은 종교를 믿지 않는마뎌 그러나 불교의 ‘선’은 믿는다고 했다. 그건 왜냐고 물으니, 서양의 종교는 타인을 믿는 거지만 동양의 선은 나를 믿는 거라고 하더라. 이건 정확한 구절을 한 번 인용해야겠다. 어맨다 몬탤의 [워드 슬럿] 읽고난 뒤에 어맨다 몬텔을 내가 또 읽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광신이라니, 너무 흥미로워 사고 말았다.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나는 타인과의 약속을 아주 잘 지키는 사람이다. 친구를 만나기로 한 시간 약속이 정해져 있다면 집에서 출발하여 약속 장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그것보다 20~30분 정도 먼저 나가서 대부분 먼저 나가 기다리는 편이다. 나는 약속 시간을 안지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약속 시간 못지키는 상대에게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병원이나 미용실등 예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내가 언제까지 가겠노라 상대에게 얘기를 했다면, 그걸 반드시 지키려고 한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서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서 잘 지키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시간을 정하지 않았다면 나는 게을러진다. 그러니까, 내가 원래부터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오늘도 두 시 미용실 예약이 되어 있는데, 그 전에 한의원 가서 어깨에 침을 좀 맞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의원에 대해서는 예약을 하지 않은 거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의원 가야지, 하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일찍 나가서 한의원 갔다가 까페에서 책 읽고 점심도 먹고 미용실 가야지~ 생각했는데, 집에 있으니 자꾸 내가 딴짓을 하는 거다. 읽은 책 저쪽에 치워놓고, 베란다에도 나가 보고, 서재방에도 가서 무슨 책들이 있나 보고.. 그래서 사실 내가 일어나서 ‘나가야지’ 했던 시간보다 훨씬 늦게 집을 나섰다. 그렇게 집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만약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았다면, 아침 출근과 저녁 퇴근하는 삶을 강제적으로 살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게으르고 게으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밥을 먹는 시간이 규칙적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낮밤이 바뀌웠을 확률도 크다. 그렇게 게으르고 살이 찌면서 점점 모든게 귀찮아져서 밖에 나가는 일도 줄었을 것이고, 어쩌다 잡히는 약속도 시간을 지키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을 그만 하고 싶다고 언제나 생각하지만,
그러나 직장 생활이 사실 나를 많이 구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먹고 살 돈을 벌게 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부지런한 사람도 아니고 근면한 사람도 아니다. 다만, 타인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고, 그것이 나를 그나마 보통의 인간으로 살게 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싫어도 억지로 다니고 있는 직장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일년만 더, 일년만 더 하면서 지금도 직장생활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고, 지나친 야근으로 인해 어깨와 뒷목이 뭉쳐 한의원에 가 침을 맞았을 지언정, 나는 이 회사를 그만둬도 다른 루틴을 반드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뭐가 됐든 돈을 벌기 위해서도, 그리고 그보다 크게는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한없는 게으름의 바다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시간에 나가서 일정한 시간에 돌아오는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제, 똠양꿍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치밀한 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