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으로 옮긴 두번째 날은 헤이그와 델프트를 가기로 했다. 둘 다 그냥 슬렁슬렁 돌아다니기로. 헤이그에서는 유명한 미술관을 비롯해 그 근처를 한바퀴 슬렁슬렁 돌았다. 이준 열사 기념관이야 헤이그에 온 김에 들렀다 가자 하였지만,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는 갑자기 그곳에 잠들어있다던 스피노자를 만나고 왔네??
그 후에는 델프트로 이동했다. 델프트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고 식당 근처의 신교회를 갔다. 사실 여기에 대해서도 딱히 정보는 없는채로 갔는데, 가보니 저기 교회 탑 위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아마 전망대처럼 위에서 아래를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오오, 우리도 여기 온 김에 보자, 했다. 교회지만 티켓을 끊고 들어가야 했다. 교회 안 구경을 선택하느냐 타워까지 가느냐에 따라 요금이 달라졌고, 우린 타워까지 가는 걸로 선택했다. 이 티켓을 사면 신교회 내부와 타워에 올라갈 수 있고 근처의 구교회까지 같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막상 표를 끊고 이 도시의 전망을 볼 수 있겠거니 신났다가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거겠지 설마? 하다가 이모, 이거 그거 아니야? 꾸불꾸불 계단 오르는 거? 이모는 그렇지 않을까? 했는데, 와, 입구로 가 가방과 자켓을 사물함에 맡겨두고 계단으로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후회가 미친듯이 찾아왔다. 좁기도 너무 좁고 경사도 경사인데 그게 둥글게 나선형으로 되어 있어 오르기가 너무 무서운거다. 겨우 한 명만 간신히 오를 수 있으면서 경사가 있고나선형이니 한쪽은 그나마 한 발 정도 디딜 만큼의 너비지만 다른 한쪽은 발끝을 겨우 디딜 수 있을 만큼이라 이걸 오르는게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나도 나지만, 디스크 수술을 여러차례 받으셨고 또 무릎이 여전히 아프신 우리 엄마가 너무 걱정되는 거다. 엄마도 연신 아이고야 이게 뭐냐, 하면서 오르셨다. 낭패였다. 어느만큼을 오르면 되는지 층수가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무작정 올라야 했다. 게다가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이 같은 계단이라서 이미 본 사람이 내려올라치면 간신히 벽에 붙어 최대한 숨을 참아 배를 납작하게 만들어야 했다. 아, 정말 너무 싫었다. 알았다면 선택하지 않을 그런 계단이었다. 엄마 어떡하지, 여기서 엄마 아프거나 넘어지거나 하면 어떡하지. 나는 걱정되어 엄마가 들고있던 티켓과 핸드폰을 모두 달라고 했다. 그럼 너는 어떡해? 해서 일단 줘, 하고는 내 손으로 그걸 다 쥐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계속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조심해, 천천히 조심해, 손잡이 잡아. 어느만큼 왔을까 다 온 줄 알았더니, 여긴 중간에 잠깐 쉬는 곳인가보다.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다시 계단을 올라야 했다. 하아.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컸지만, 이렇게나 올라왔는데 보지도 못하고 내려갈 순 없었다. 엄마 갈 수 있겠어? 내려갈래? 물으니 아니라고 오르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시 그 좁고 습하고 어둡고 경사있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얼마만큼을 가야 하는지 알 수도 없어서 더 긴장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르고 나서는 하아, 일단 다 올랐다 안심을 하고, 그리고 전망을 보기 시작했다.
ㅋ ㅑ ~
위의 사진은 우리가 올랐던 신교회(New church) 이다.
올라오니까 아름답고 좋다고 감탄하긴 했지만, 이런 경험을 또 하고 싶지는 않다. 구교회로 이동하면서 '구교회도 이렇게 타워 있으면 난 안갈거야' 했는데, 구교회는 타워가 없더라. 휴.
엄마랑 무사히 올라갔다 내려왔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고 평소보다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은 이따가 짜파게티랑 비빔면 먹자, 하고서는 씻고 드러누웠다. 일곱시에 저녁 먹기로 하고 나는 잠시 누웠다. 와, 그동안 다닌 것보다 더 힘들었는데, 계단을 오르내리며 긴장을 너무 한 탓이었는가보다. 얼마간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 다같이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일어났는데 앞허벅지에 단단하게 알이 뱄다. ㅠㅠ 걸을때마다 근육통이 엄청났다.
아니, 내가 평소에 걷는 양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이 날이 다른 날보다 많이 걸은 것도 아닌데 이 격렬한 통증은 무엇 ㅠㅠ 지금은 거의 다 풀렸지만, 엄마도 이모도 근육통도 없다 하고 알이 밴것도 아니라 하는데 내가 왜이래. 와 너무 긴장한 하루였다. 그런데 이렇게 찍어둔 사진을 보니 풍경이 멋있긴 참 멋있었어. 그래도 그런 계단은 특히나 엄마랑 같이 오르고 싶지 않다. 나는 몇해전에 타미랑 롤러코스터 탔다가 내린 후에 다리 후달리며 울어버렸던 적이 있다. 타는 내내 타미가 떨어질까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ㅠㅠ 어휴. 생각지도 못하게 쫄리는 하루였다.
그나저나 내일부터 출근이라는 것이 마음이 너무나 무거워.. 퇴직금 받아서 로테르담으로 다시 가고 싶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