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가급적이면 엄마를 쉬게 해드리고 특식을 준비하고자 한다. 특식이라고 해봤자 내가 뭘 요란하게 하는 건 아니고, 밀키트를 사다 준비하는 것. 토요일 일요일 모두 집에 있으면 이틀간의 특식을 준비하고자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일요일의 특식을 준비한다. 지난 주에는 타미 생일 축하차 안산에 다녀오느라 일요일 오전에 집에 왔다. 일요일 오전에 일찍 일어난 사람은 나와 제부 둘 뿐이었는데, 제부는 나보다 훨씬 먼저 일어나서 나 아침밥 차려준다고 계란말이를 하고(나보다 예쁘게 말았..) 부대찌개를 끓이고, 전복을 버터에 구워주었다! 우엉무침과 오이무침 모두 제부가 준비한 반찬. 나는 다른 식구들이 깨기 전, 아침부터 전복 버터구이도 먹고 ㅋㅋ 전날의 숙취로 인해 부대찌개도 맛있게 먹고 서울로 왔다.
토요일, 안산으로 출발하기 전, 베란다 텃밭에 나갔다. 어휴, 방울토마토, 고추, 바질이 남아 있는 텃밭은 위태로워 보인다. 토마토는 괜찮은데 고춧잎은 왜 또 벌레가 생겨. 이번엔 진드기가 아니라 무슨 검정색 벌레인데 잘라주어도 또 생기고 또 생기고, 이걸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걸까. 엄마는 뽑아 버리라고 하시는데 도저히 그게 안된다. 바질은 잘 자라면서도 고춧잎에서 벌레가 옮겨온건지 잎 몇개에 그 검정색 벌레가 있다. 안되겠다, 벌레가 보이는대로 잎을 따주긴 하지만, 이러다가 점령 당하겠어. 바질은 일단 있는대로 다 따서 페스토를 하자! 나는 바질의 잎을 죄다 딴다. 큰 거 작은 거 할 것 없이 죄다 딴다. 물에다 씻으면서 머릿속으로 이전 경험을 떠올리며 재료는 다 준비되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잣? 남은게 있지. 게다가 부족한 부분은 캐슈너트 넣어주자. 그거 있다.
치즈? 있지.
올리브유? 있지.
소금? 있지.
또 뭐가 필요했더라?
앗, 마늘!
마늘은 사둔 게 없다. 마늘은 빻아서 냉동시켜둔 것 밖에 없다.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넣자. 뭐 크게 맛에 영향 있겠냐. 게다가 엄마가 이번에는 절구도 준비해주신 터다. 나는 레서피를 찾지 않고 이전의 경험들을 떠올리며 프라이팬에 잣과 캐슈너트를 볶고 절구에 넣어 빻아준 뒤, 올리브유와 바질, 치즈를 넣어가며 열심히 빻아준다. 혹여라도 밑에층에 들릴까 염려되어 베란다로 나가 빻는다. 그렇게 재료를 넣어가며 빻다 보니 얼라리여, 바질이 부족한 것 같다. 할 수 없다. 이대로 가는거야. 다 빻은 뒤 그릇에 담고 소금을 약간 넣어주어 간을 맞추고 오일을 잠기게 더 부어준다. 맛을 보니 괜찮다. 이렇게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면서 와, 가슴 가득 뿌듯함이 밀려온다.
나,
이제 바질페스토 쯤은 아무것도 안 보고 뚝딱 만들어내는 여자!!
내 가슴속 이 대단한 웅장함 어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 안산에 다녀오느라 그대로 냉장고안에 방치되어 있다가, 오늘 아침 열무김치+고추장에 밥 비벼 먹고 생각난 김에 식빵 한 쪽 구워서 바질 페스토 촵촵 발라 먹었다. 와 세상 맛있어. 견과류 비중이 바질 잎보다 더 많았지만, 그건 그런대로 괜찮았다. 어찌나 꼬소한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좀전에 엄마도 드셨다며 맛있다고 하셨다. 아, 세상 뿌듯해.
나,
이제 바질페스토 쯤은 아무것도 안 보고 뚝딱 만들어내는 여자!!
잭 리처가 어느날 여기저기 떠돌다 찾아오면 바질 페스토 뚝딱 만들어 내어줄 수 있다. 껄껄. 아 세상 멋져. 아니 인간이 시간이 갈수록 멋져지기도 하는고예염??
엊그제 친구랑 만나서 성장에 관한 이야길 했다. 누구나 나쁜짓 혹은 실수를 할 수 있지만, 나이 들어서도 그걸 계속하면 안되는 거 아니냐, 유치한 짓도 어느 선에서 멈춰야지 나이 들어서도 십년전 이십년전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으면 어떡하냐, 그런 얘기를 했다. 나는 확실히 발전했다. 작년의 나는 바질페스토 못하던 나였는데 지금은 바질페스토 뚝딱하는 사람이 되었어. 누구나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서전 쓸까? 누가 평전 안써주나? 껄껄.
지난주 일요일의 특식은 소고기버섯밥 이었다. 내가 모든 재료를 준비한 건 아니고, 밀키트!
시키는대로 쌀을 씻어서 솥에 넣고 사골 육수랑 버섯을 넣어 십분 정도 불린뒤 약한 불 이십분, 불 끄고 오분. 그 후에 구운 소고기랑 쪽파를 넣고 섞어버리는 거다. 비쥬얼 좋쥬?
이렇게 퍼서 아버지 드림.
맛있게 먹었고, 응용해서 다른 거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밥에 고기는 꼭 안들어가도 되니까 사골육수랑 버섯만 준비해서 해봐도 될듯. 그리고 양념간장 만들어 먹으면 세상 좋을 것 같다.
내친김에 된장찌개도 끓였다. 애호박, 양파, 두부, 감자 때려넣고!
된장찌개 진짜 세상 꿀맛인데, 왜냐하면 이것도 된장찌개 소스를 썼기 때문이다.
점심에 해장하려고 라면 끓여 먹으면서 김치를 꺼냈는데 어휴 너무 신거다. 그래서 저녁에 볶아 버렸다. 물에 살짝 헹구고 신맛을 없애기 위해 설탕을 넣고 볶볶. 세상 맛잇는 볶은김치가 되었다.
이번 주말에 김치 좀 더 볶아야겠다. 으하하하.
자, 이 페이퍼 보고 궁금해할 분들을 위한 링크 서비스.
소고기버섯밥 밀키트는 여기 ☞ https://www.kurly.com/goods/5131316
된장찌개소스는 여기 ☞ https://naver.me/G1Ffmozr
먹고 사는 일에 진심인 편 ♡
이번주 일요일에는 가만 있자, 사골육수는 집에 있고, 버섯만 사서 밥을 해볼까 싶다. 후훗.
그리고 나는 책을 샀을까요, 안샀을까요?
안알랴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어제 다이어리에 누군가의 생일을 적으면서 확인한건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왜 생일이 다 7월이죠? 7월에 생일이 네 명인데 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임. 나를 심정적으로 괴롭힌 사람들도 같은 달에 태어났는데 존재 자체로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도 다 같은 달에 태어났네. 아무튼 7월, 좀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7월 만세!!
바쁘지만 만세다, 만세!!
안녕하세요? 요리 블로거 다락방 입니다. 껄껄.
아차차. 젠더 들어가는 책들! 부제목에 젠더가 들어간 건 뺐다. 생각보다 많진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