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춧잎에 벌레가 잘 생긴다는 말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나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나는 어차피 아주 작은 베란다 텃밭일 뿐이고, 게다가 고춧대 네 개? 정도 있는 작은 화분 하나일 뿐인데.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은 내 일이 되었다. 미쳤나봐.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도대체 왜 베란다 텃밭의 고추 화분에 벌레가 생기는거야? 아주 작은 검은색 움직이는 벌레도 있었고 으, 징그러운 진딧물도 있었다. 진딧물은 참 이상한 특성이 있는게 모든 잎에 전체적으로 한두마리씩 있는게 아니라, 하나의 식물에만 다닥다닥 붙어 있더라. 보일 때마다 가위로 잘라주긴 했는데, 여간 징그러운 게 아니다. 이게 내내 고민이었던 터. 이모에게 말하니 입장에서 포도 농사중인 이모부를 통해 약을 주겠다는 거다. 아니, 무슨 약? 베란다 텃밭은 유기농을 자랑해야 하는게 아닌가. 게다가 이 작은 식물들에 무슨 약? 안될말이다. 나는 필시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검색을 해봤는데, 역시나 찾아냈다. 유튜브를 통해 보니 물+베이킹소다+주방세제를 섞어 뿌리면 생긴 진딧물도 다 죽는다는 게 아닌가! 게다가 이것은 딱히 유해한 것 같지도 않잖아? 나는 분무기에 시키는대로 넣어 흔들어 잎들에 뿌렸다.
뿌리는 김에 옆의 바질들에도 뿌리고 방울토마토 잎에도 뿌렸다. 벌레가 옮겨갈까 무서웠기 때문에. 특히나 바질 절대 지켜! 그러나 내가 시키는것보다 더 많은 세제를 넣은걸까. 벌레는 생기지 않았지만 잎들이 검정색으로 죽어가기 시작했다. 오, 신이시여. 이것이 바로 시행착오란 말입니까. 아니, 잎들 왜 죽어 ㅠㅠ 나는 세제가 남아있기 때문인가 싶어, 이젠 분무기에 깨끗한 물을 넣고 그 뒤로 틈날 때마다 뿌렸는데, 잎들이 하나씩 둘씩 죽고 있었다. 죽지마, 살아!! ㅠㅠ 내가 잘못했어!!
게다가 콩은, 약을 뿌린 것도 아닌데, 그냥 시름시름 앓다가 다 죽어버렸다. 역시, 우리 집에서 서울대는 무리였니? 너는 노력했지만 집안 환경 너무 너무였어? ㅠㅠ 지난 주말, 다 죽어간 콩의 줄기며 잎들을 화분에서 치워내고 다 뽑으면서 콩 네 알을 수확했다.
아니, 나는 분명 검정콩을 심었는데 왜 이런 색깔의 콩이 나온거지? 엄마랑 들여다보며 왜 검정콩인데 이런색이지? 덜자란건가? 의아해했다. 그리고 밥할 때 넣어먹자, 하고는 그릇에 담아 두었는데, 아니, 나는 다음날 이런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내가 처음 심었던 바로 그 검정콩이 되어버림. 시간이 지나니 콩이 살이 빠지면서 색이 변하고 이렇게 검정콩이 되어버리는거다. 이거슨 무슨 매직인가 … 엄마랑 신기하다고 들여다보고 그냥 두고 있다.
아무튼 내게 남아 있는 고추야, 바질아, 토마토야 … 병들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렴 ㅠㅠ
토요일에는 아가 조카를 볼 겸 남동생 집에 갔었다. 내가 남동생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조카는 막 잠들었다고 하길래, 옳거니, 그렇다면 까페에서 책 좀 읽다가자, 하고는 남동생 단골 까페로 가 커피를 한 잔 시켜두고 책을 펼쳐 읽었다. 그런데 요가를 한 후 샤워를 하고 왔기 때문인지 자꾸만 졸린거다. 꾸벅꾸벅 졸면서 아, 책 못읽겠다 치워두고 나는 샤워를 마친 남동생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후, 남동생이 도착해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이러는 게 아닌가.
"누나 코에 코딱지 있다."
나는 경악해서 그럴 리가 없다고, 얼른 스마트폰의 화면에 내 코를 비쳐보았다. 내 코의 형태는 보이지만 코딱지는 안보이는데? 그리고 코딱지가 있으면 느낌이 있을거잖아? 안보이길래
"그럴 리 없지, 안보이는구먼."
했는데, 남동생이 보더니 으휴, 하고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손가락 내 코에 넣어가지고 ㅋㅋㅋㅋㅋㅋ 코딱지를 떼주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렇게 자기 손에 묻은 좁쌀보다 더 작은 코딱지를 보면서 아 드러 하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휴지 가져다 자기 손을 닦았다. 에잇 더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그런 남동생을 보고 깔깔 웃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세상 천지에 내 코의 코딱지까지 떼줄 사람 누구인가. 얘 밖에 없지 않나.'
어제 회사 동료와 순대국밥 먹으면서 이 얘기를 했더니 동료가 그랬다.
"찐사랑이네요."
그렇다, 찐사랑. 내 코의 코딱지까지 떼주는 내 남동생. 내가 이런 남동생을 가지고 있다. 문득, 얘가 아기 아빠가 되었기 때문에 이걸 해줄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육아 하면서 아가 똥 싼것도 다 치우고 씻기고 그러다보니 누나 코딱지까지 떼줄 수 있었던 거 아닐까? 아무튼 남동생의 큰사랑, 빅사랑 느끼고 왔다.
저녁에는 다같이 갈비를 구워 먹으러 가기로 했다. 고깃집으로 걸어가는데 남동생이 올케 손을 잡았고 올케는 아가 손을 잡았고 아가는 내 손을 잡았다. 결국 네 명이서 손잡고 나란히 걷는데, 그 순간이 어찌나 좋은지. 아가 조카의 작은 손이 내 손안에 느껴지는데 이거야말로 찐행복 이었다. 난 이 아이가 정말 너무 좋다.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다.
주말에 책을 읽으면서 투비에 간단히 사진 올렸는데 ㅋㅋ 올리고나니 ㅋㅋ 아, 이거 못참는 사람들 있겠다 싶었다. 그 사진은 바로 이것.
독서대 뒤의 포스트잇 플래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저게 그러니까, 책을 다 읽고 팔려고 하면 거기 붙어 있는 거 떼야 되니까, 떼서 그냥 되는대로 아무데나 붙이는 게 바로 나란 사람이다. 책장, 책상, 독서대 … 그래서 저 지경 된건데, 나는 분명 '간식이 있는 독서 타임' 이런거 보여줄라고 찍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리고나니 저 포스트잇 어쩔 ㅋㅋㅋㅋㅋㅋㅋㅋ정리정돈 잘하고 깔끔한 사람들이 보면 뒤로 넘어가겠다 싶은 거다. 저는 괜찮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저 사진에서 내가 '사람들이 못참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포스트잇 뿐이었건만 ㅋㅋ 케찹도 지적 당했다. 정갈하게 못하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저는 머릿속에서 정갈했거든요? 저라고 머릿속에서부터 '세상 난잡하게 뿌려야지' 이러겠습니까? 머릿속에서는 분명 '정갈 정갈 단정 단정 깔끔 깔끔 심플 심플' 이런다고요. 그런데 그런 것이 나의 손을 거치면서 저렇게 되어버리는 …
괜찮다.
나는 혼자니까.
혼자니까 괜찮다.
내가 저렇게 한다고 해서 누구도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나는 혼자니까.
이게 바로 내가 혼자여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어. 이런 내가 괜찮은 건 세상에 나 뿐이다!!
책살거다.
왜 책 살거라고 새삼스럽게 쓰냐면,
알라딘에 페이퍼 쓰는데 책 한 권도 안넣을 수 없잖아요?
이거 정희진의 오디오 매거진 들으면서 장바구니에 넣어뒀는데,
아니 정기구독 기간이 끝나버렸 …
어쩌겠나. 1년 다시 재구독 했다.
선생님, 오래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친애하는 ㅈㅈㄴ 님의 서재에서 알게된 책인데,
이거 산 다음에 집에서 '젠더'가 제목에 들어가는 책 모두 꺼내서 사진 찍어보고 싶어졌다.
이거 내가 꼭 한 번 해볼게요, 얘들아 …
여러분은 코딱지를 떼주는 누군가를 갖고 있습니까?
아무튼, 찐사랑 받고 사는 나는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