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식대를 따로 지급한다. 한달에 한 번, 그 날이 오늘이다. 즉, 책을 샀다는 뜻이다. 아직 식대가 입금되기 전인데 오늘 식대 입금될 거니까, 라면서 방금전에 장바구니를 마구 털었다. 오늘 구입한 책들은 모두 중고인데, 내가 구입한 책에는 이게 있다.
아마 <정희진의 오디오매거진>을 듣는 분들이 여럿 계실텐데 나 역시 듣고 있는 바, 선생님이 커피에 대한 방송을 하실 때 이 책에 대해 언급하셨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커피생산국과 커피소비국이 겹치지 않는다는 이야기, 브라질이 1위 2위가 베트남 3위가 다른 나라들인데 커피 소비 상위권은 미국과 유럽이며 대한민국이 7위라고 한다. 너무 재미있는 현상 아닌가. 게다가 국내 커피 소비량의 90프로는 믹스커피와 자판기 커피라고 한다. 이 얘기를 하면 주변에서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통계적으로 나와있지만 '나는 아메리카노 마시는데?' , '내 주변은 다 아메리카노인데?' , '주변에 카페가 이렇게나 많은데?' 한다는 것.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사무실에서, 일용노동직들 사이에서, 부동산에서 모두 믹스커피와 자판기커피를 마신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 분명하다는 거다. 아무튼 이 편도 다른 편과 마찬가지로 재미있었고 선생님의 말씀 중에 이 책이 출처인게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너무 궁금해져서 검색을 했다. 오, 절판이었다. 개인판매 말고 알라딘 우주점으로는 단 한 군데만 있더라. 상태가 '중'인 것이 못마땅했지만, 도서관에 검색해보니 사서에게 물어야 대출가능한 책이라 어떻게도 낡은 책을 읽는 것을 감수해야 할 터. 남들이 방송 듣고 이 책 사가기 전에 얼른 내가 주문했다. 그래서 굳이, 아침 일찍 주문하고 이 페이퍼를 쓰는 거다. 페이퍼 쓴 다음에 주문하면 누군가 내 페이퍼 읽고 후다닥 주문할까봐. 이렇게나 내가 준비성이 철저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사람이다. 세상 현명한 사람이랄까. 으하하하하.
아무튼 오늘 우주점 세 번 주문했고 각기 다른 우주에서 내게로 책이 배달될 것이다. 왜. 뭐. 왜. 여러분, 다음주 책탑을 기대하세요~
어제는 말일이라 바빴고 야근을 했는데, 어느 순간 정희진 샘 방송이 듣고 싶어서 오디오매거진을 틀어두고 일을 했고, 그러다가 댓글을 좀 보게됐고, 그러다 정희진 선생님과 김혜리 기자가 교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걸 알게 됐다. 팟빵이나 팟캐였던 것 같은데 누군가 친절하게 유튭에도 있다고 알려주더라. 나는 퇴근길에 얼씨구나~ 너무 좋구먼~ 듣게 되었다.
나는 또 세상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라서 그 링크를 여러분과 공유한다. 좋은 건 함께 나누고자 하는 아름다운 마음씨가 내게는 있다. 잘 늙고 있다.
일본은 내가 가보고 싶어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나 여행을 좋아하고 항상 저기 가보고 싶다, 저기도 가보고 싶다 하며 호기심을 가지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조카가 내게 일본에 가보고 싶다고 나중에 이모랑 가자고 하는데, 흐음, 조카를 위해서 내가 한 번 가주긴 해야겠군, 했단 말이다. 그러니까 내 의지가 아니라 조카를 위해 한 번쯤 가기를 생각해보는 그런 나라. 일전에 호캉스 한 친구는 일본을 자주 드나드는데 그 친구가 내게 바람 쐬고 싶을 때 훌쩍 일본 다녀와도 좋아, 너도 좋아할거야, 했더랬다. 그래도 흐응~ 하고 시큰둥 했는데, 정희진 쌤의 이 방송을 듣노라니 교토에 가보고 싶어졌다. 봄과 가을의 교토. 봄과 가을의 교토는 너무 아름답고 낭만적이라서 '봄과 가을에 교토에 갈래요?'는 마치 우리나라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 와 맞먹는 프로포즈 같은 것이라고 했다. 골목골목 걷는 재미와 그곳의 깔끔하고 정돈된 풍경 묘사를 듣노라니 그래? 그러면 나도 한 번? 이렇게 된것이다. 그래서 친구에게 '나중에 우리 봄이나 가을에 교토 한 번 가자' 하고 메세지를 보내두었고 친구로부터 '그러자'는 대답을 들었던 어제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특유의 지식을 마구 풀어내셔서, 일본이 단지 보기 좋아 가신게 아니었다. 일본에 연고가 있기도 했고(동생) 그곳에서 학회가 열리거나 강연등이 열리면 초청강사로 가기도 했던 거다. 큰 강연이 아니라 작은 소모임에도 많이 참석하셨는데, 일본 사람들에게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토론이나 공부에 초대되어 간다는 게 너무 대단하고 근사했다. 와, 어떻게 살면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살면 외국에서 내게 같이 공부하자, 가르침을 다오 연락해올 수 있는걸까. 대단하다. 아무튼 유익한 지식과 앎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 내내 흘러나왔는데, 관광지의 여성젠더화에 대한 말씀도 하셨다. 관광지는 여성화가 된다고. 교토의 가게에 미모순으로 여성들이 진열(?)되어 있는 얘기도 해주셨다. 그러자 일전에 보았던 책 제목이 떠올랐다. 이런거, 이런거 있었는데. 관광.. 철학.. 나는 부랴부랴 검색했다. 이 책이었다.
이거 출간당시에도 내가 한 번 읽어봐야지 찜해두었다가 여태 안샀는데 이젠 사서 읽어봐야 하나, 이 책은 내가 기대하는 그런 내용을 줄것인가... (그래서 사버렸다.)
일전에 예스에서 정희진 쌤 인터뷰를 읽었을 때 나중에 일본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얘기도 하셨는데 선생님은 일본이 인문학적으로 우리보다 훨씬 앞서있다 하셨다. 교토란 도시에 대해서 선생님이 보고 느낀 것 그리고 알게된 것에 대해 풀어놓는 걸 듣노라니, 하나의 도시에 대해 이렇게 알게되는 것이 너무 짜릿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공부한 것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여기에서 듣고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는구나. 그런 한 편 이런식으로 한 도시 한 도시를 공부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책으로 나와 있으면 좋겠다고, 당연히 생각했다. 한 도시에 대해 책으로 이렇게 나와있다면 좋을 것 같다. 교토에 대해서도 책으로 한 번 읽어보고 하노이에 대해서도 읽어보고. 그러니까 여행책자같은 간단한 설명이 아니라, 그 도시에 대해 저자가 보고 느낀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들어가있는 그런 책. 그렇다면 나는 교토를 보고 싶어질 것 같았다. 이왕이면 정희진 쌤이 써주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오늘 아침에도 이어지는 부분들을 들으면서 오다가, 세상에 정희진 쌤은 어쩌면 이렇게 많이 알고 계실까 싶었다. 어제도 나는 동생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인은 정희진 쌤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 그리고 역사를 알고 본인이 공부한 평화학, 여성학, 인문학에 대한 지식이 쌓인 상태로 다른 나라를 그리고 다른 도시를 방문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확연히 더 볼 수 있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게 많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으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으면 머릿속에 저렇게 뭐가 많은걸까. 저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걸까. 어떻게 저 많은게 저 안에 다 들어있는걸까 싶으면서 새삼 대단해졌다. 저정도의 지식을 나도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 정도의 앎을 그리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면 진짜 멋질것 같은거다.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늘 하던 생각이 역시 들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나는 아무리 아무리 해도 한계치가 있을 터였다. 내가 여기서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공부해도, 설사 내가 대학원에 가서 밤을 샌다고 해도, 나는 정희진 쌤처럼 될 순 없을 것 같다. 내 영역 밖의 일, 내 능력 밖의 일이여.. 그렇다면, 너는 지금 저렇게나 정희진 쌤의 뇌가 부러워서 정희진 쌤의 뇌와 너의 뇌를 바꾸고 싶니? 라고 물었는데, 고민할 필요없이 답은,
"아니"
라고 나왔다. 내 머릿속에 지식은 정희진 쌤을 감히 따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지극히 적지만,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나만의 고유한 기억이 있으니까. 나는 어떤 기억들이 너무너무 소중해서, 내 머릿속에 더럽고 나쁜 기억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머리와 바꾸고 싶지는 않다. 어느 정도 멍청함을 감수하고서 나는 그냥 나로 살고 싶은거다. 그 기억과, 그 기억과, 그 기억과, 그 기억.. 을 가진 나로 살고 싶다.
그런 한편, 왜 내가 세상 부러워하는 사람, 혹시라도 바꾸게 된다면 이라는 조건을 거는 사람은 왜 정희진 선생님일까 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왜 '로지 헌팅턴 휘틀리'가 아니라 '정희진' 일까? 자본주의에 찌들어서 돈이 중요하고 돈 세상 사랑하고 노동하고 돈 벌어야 되고 돈이 있어야 먹을거 다 먹고 마실 거 다 마시고 여행한다!! 고 부르짖으면서, 자기 이름으로 디자인이 있고 화장품과 속옷을 만들어 팔며 인스타에 광고하는 세계적인 모델인 로지 헌팅턴 휘틀리가 아니라,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도 않고 글 쓰고 책 읽고 강연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정희진 처럼 나는 되고 싶은걸까. 누가봐도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삶을 살고 인기도 많은 화려한 사람이 아니라, 어째서 그렇지 못한 쪽의 사람을 나는 닮고 싶어하는가. 왜 꼭 그렇게 되고 싶은가. 왜. 왜 내가 세상 제일 멋지게 생각하는 사람은 꾸밈 노동도 하지 않고 부자도 아닌 사람인 것인가. 왜. 나는 이게 나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책을 겁나 많이 샀다는 거다. 뭘 샀는지도 모르게 막 샀다. 언제나 그렇듯이... 진짜 그러지말자, 나여...
나는 항상 내가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내가 회사를 안다닌다고 해서 결코 엄청난 똑똑이나 지식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회사 안다녀도 나는 딱 요만큼일 것이다. 그럴바엔 돈도 벌고 먹고 마시면서 요만큼이 되는게 낫겠지. 껄껄.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