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란데르 경위가 일하는 지역에서 잔인한 폭력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노인 부부가 살해되었는데 바로 앞집에 살면서 그들과 매일 일상을 함께 나누고 친근했던 다른 노부부는 그들에게는 재산도 전혀 없었고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도무지 용의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수사는 어려워 보였지만, 죽은 노인에게 정부와 아들이 있으며 아내도 모르는 재산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우리는 한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정말 알 수 없다. 나랑 매일 함께 잠드는 남편이 나 모르는 돈을 엄청 많이 쌓아두고 있었다니!! 이 사건은 강도살인으로 보였다가 범인이 외국인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언론에 퍼지는 순간 난민들에 대한 혐오범죄가 시작되면서 복잡해진다. 그렇게 살인은 또 일어나고, 발란데르는 휴가중인 서장 대리로 일하면서 팀원들과 함께 야근도 하고 잠도 조금만 자가면서 피곤하게 일한다. 사건을 해결해야 하니까.
당장 해결해야 할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을 사흘내로 풀지 못하면 또다른 난민 혐오 범죄가 일어날 상황이라 발란데르 경위는 매우 초조하고 복잡하고 두렵다. 업무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고 또 과중한 업무로 인해 몸도 피로한데, 삶이란 것은 업무로만 유지되는게 아니다. 그에게는 화해하지 못한 딸이 있고 이혼한 아내가 있다. 이혼한 아내를 어서 빨리 만나서 다시 돌아오라고 말하고 싶다. 게다가 점점 더 노화가 진행되는 아버지는 이제 치매가 시작되고 있다. 지저분한 옷과 냄새 그리고 고집불통. 다른 지역에 사는 누나에게 연락해 아버지의 일을 같이 해결해야 겠다고 번번이 생각하면서도 아직 전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누나에게 전화해야 해, 이 사십대의 남자는 전화기에 메모까지 붙여놓았지만 그러나 그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아버지의 윽박지름에 아버지를 만나러 가서도 업무 때문에 초조해 얼른 돌아가야 하고, 업무를 하다가도 아버지가 거리를 배회한다는 연락에 다시 또 아버지에게로 가야 한다. 삶은 그런식으로 이어진다. 당장 내눈앞에 닥친, 내가 밥을 먹게 해주는 내 일이 시급해서 그 일에만 매달리는 것도 때로는 벅찬 일인데, 내가 풀어야할 사적인 관계들과 그리고 내가 감당해야 할 가족이 있다.
나 역시 나의 노화로 인해 최근에는 친구들을 만나 노안이 진행된 눈에 대해 얘기하는 일이 빈번하고 그런 한편 늙어가는 부모님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나의 아버지는 여전히 병원에 계시고 매일 상태를 체크하며 때로는 장기간의 입원으로 인해 우울해하셔 그런 아빠를 달래야 한다. 약으로 인한 부작용인지 지금은 또 피부병이 발생해 간호사쌤과 전화해 상황을 체크해야 한다. 당장 노동하지 않는 부부가 된 부모님을 생각하다가 매달 드리는 자동이체의 금액을 올렸고 이번 설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돈을 넣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하루에도 이천번 삼천번 생각하지만, 그러나 내가 그만두면 나는 어떡하고 우리 부모님은 어떡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만 둘 수도 없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다. 조금 더 버텨야 한다.
그러다가도 통통통통 뛰어다니는 아가 조카를 보면 삶이 희망차게 느껴지고 아가가 주는 그 생동감 때문에 절로 웃음이 난다. 시간이 흐른다는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 씁쓸함과 희망이 동시에 차오르다니, 이것이 바로 인생이 아닌가 싶다. 중학생이 되는 조카에게도 졸업 축하한다고 용돈을 주고 초등학생 조카가 새로 시작한 운동에 대한 얘기도 듣는다. 어린 조카들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 기쁨이고 행복이다. 자꾸만 보고 싶고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경이롭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 힘과 빛을 잃는게 인간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그 힘과 빛을 채워가는 것도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때면 도대체 신은 어떻게 인간을 이렇게 만들었나 싶고, 그러다가도 그것이 내 앞에 놓인 물론 다른 사람 앞에도 놓인 복잡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연민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젊음을 생각한다.
텔레비젼에서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부부를 보고 그에 대해 엄마랑 궁시렁거리면서, 왜저렇게 늙은 남자들은 뻔뻔하게 젊은 여자들을 좋아하나 몰라, 라는 얘기를 했지만, 그러나 거기에 모를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젊음을 사랑한다. 물론, 늙은 남자의 젊은 여자에 대한 욕망은 단순히 젊음을 사랑한다는 것과는 다른 좀 더 복잡한 사정(과 여성 혐오!)이 숨어있지만, 표면적으로 인간은 그리고 본능적으로 젊음을 사랑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에서 나보다 더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내 안에 있는 것이 무언지도 모른채로 우리는 나보다 늙은 사회구성원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질 않으면서 그러나 나보다 젊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자주 하고 또 표현한다. 젊은 직원들에게 쓸데없는 농담을 건네는 것도 대표적인 증상이 아닐까. 나만해도 할머니보다 조카들을 더 사랑한다. 이것은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단순한 명제-그러나 세상 정확한 말-를 넘어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젊음이 주는 특유의 생동감과 희망을 사람들이 보고 또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길을 지나다가 혹은 식당에서 혹은 대중교통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웃고 또 그 아이를 웃게 하려고 장난도 치고 하는 것들은, 그 특유의 젊음에 대한 회환과 그리고 사랑이, 기대와 희망이 있는 것이라고 나는 보는 것이다.
돌봄은 어떠한가. 시간이 흐르면 어느 순간 자식은 부모를 돌보아야 한다. 그러나 자식은 내가 언제까지 부모를 돌볼 순 없지, 나도 내 생활이 있는데, 하면서 부모 돌보기를 소홀히 하거나 돈을 주고 다른 식으로 맡기려는 일이 일어나지 않나. 나도 그렇다. 왜 나보다 늙은 존재를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힘들고 고되기만 한걸까. 그 일에 대해 나는 요즘 자주, 오래 생각한다. 이것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인데도 왜 그 마땅함에 뭔가 부정적인 감정이 끼어들까. 답답함 혹은 억울함. 분명 부모가 우리를 돌볼 때도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야 했을텐데, 그렇다면 이제 내가 같은 일을 부모에게 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그런데 왜 이 돌봄에는 한숨과 답답함이 끼어들까. 왜 당연하게 내가 받아온 것을 내가 당연하게 돌려 주는 것이 힘든걸까. 그리고 왜 늙은 부모는 그렇게 온 몸 바쳐 키운 자식에게 이제 혹여라도 신세를 지게 될까봐 전전긍긍할까.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부모의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만큼 골칫거리가 없죠." -p.236
발란데르 경위는 짐을 싸들고 이탈리아로 가는 것이라고 길을 방황하는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이제 누나에게 전화를 한다. 누나는 왜 진작 알리지 않았냐며 동생이 일을 하는 동안 아버지를 돌보고, 퇴원 후에 아버지를 돌보아줄 요양사도 구한다. 아버지의 일은 그런식으로 차츰 해결해나가면 될 것 같다. 딸아이는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라는데 곧 발란데르를 만나러 오겠다고 한다. 이혼한 아내와 약속을 잡고 돌아와달라고 얘기했지만 이혼한 아내는 얄짤없다고 한다. 그녀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른 남자의 차를 타고 돌아갔다. 그리고 검사대리로 일하게 된 여자, 예의 젊은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 아름다움과 단호한 성정에 사랑을 느끼면서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 반지 때문에 서운하다. 그러나 서운할망정 '그녀는 결혼한 여자니까 나랑 어떻게 해볼 생각은 하지말자'는 결심 대신, 어떻게든 그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같이 밤을 보내려고 한다. 나는 여기서 또 좀 빡이 쳐버리는데...
세상에 불륜은 커피콩만큼이나 많다. 그리고 그 불륜을 대하는 자세는 물론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불륜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부정적이고 어딘가 숨겨야 할 것 같고 손가락질 받을 것 같지만,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 책에서 그토록이나 빈번하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그 일이 정말로 자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알면서 불륜 속으로 빠져들지만 어떤 사람들은 모르면서 빠져든다. 사랑이라는 것은 혹은 상대에게 매혹당한다는 것은 상대가 미혼이냐 기혼이냐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 일단 '안되는 거잖아'라는 거름 없이 직진해버리는 것에 대해서 참으로 거시기한 마음이 든다. 일전에 소피 마르소 주연의 프랑스 영화를 보았는데 소피 마르소는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었고(이혼인지 사별인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유부남을 만나 완전 끌리는거다. 이 일에 대해 소피 마르소가 친구에게 얘기했는데 친구는 '도전해!!' 라고 하는게 아닌가. 사랑에 빠지고 관계가 진행되는거야 어쩔 수 없지만 친구가 '그남자와의 사랑에 도전해!' 라고 하는것이 나는 .. 그러니까 사랑에 이미 빠져서 연애중이라면 딱히 거기다 대고 내가 뭐라 할 말은 없을 것이지만(남들 연애에 끼어드는 거 극혐), 내가 반한 남자가 유부남이래, 라고 하면 '으으... 피하자' 가 일단 나와야 하는게 아니란 말인가. 내가 너무 도덕군자인 것인가... 그런데 이 소설 속에서 발란데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때문에 아쉬워하면서, 그래도 어쩌면 결혼반지 아니지 않을까, 라고 기대했다가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다는 말에 실망하면서 그러나 러브 다이브!!!
...
뭐 그렇습니다. 네, 뭐...
그런 한편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검사 대리로 온 여자, 업무상 만나게 된 여자가, 그러나 발란데르 보다 나이든 여성이었다면, 과중한 업무와 치매 걸린 아버지와 나를 떠난 아내와 화해를 바라는 딸이 있다고 해서, 그 여성과 사랑에 빠졌을까? 물론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더 적다는 것은 확실하다. 발란데르가 이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된 수많은 심리적 동기가 있을 것인데, 그러나 어쨌든 부인할 수 없는것은, 우리는 젊음을, 젊은이를 사랑한다는 것.
우리는 부모보다 자식을 사랑하고 우리는 늙은 사람들보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한다.
아마 내가 다시 사랑에 빠진다면 그것은 나보다 훨씬 젊은 남자가 아닐까. (닥쳐!!)
최근 남동생에게 빌려줬던 책들이 남동생으로부터 좋은평을 받지 못했고 ㅋㅋ 아니 심지어 어제는 '이 소설 주인공이 누나 같아서 싫어!' 하는 것도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부랴부랴 다른 책 읽을게 많은 바쁜 와중에도, 도대체 뭘 읽으라고 줘야 하나 빨리 읽어야 되는데, 하다가 집어든 헨닝 만켈의 소설이었는데 재미있게 읽었다. 읽으면서 이건 남동생도 모처럼 재미나게 읽겠군! 생각하였다. 책장을 넘기다가 남동생도 자신과 자신의 아이 그리고 아버지까지 두루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오늘 아침 일어나면서 어제 와인에 만두 먹은거 후회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만들어둔 카레에 밥 비벼먹고 회사 출근해서는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잔뜩 쳐발쳐발해두었다. 아, 나는 베이글에 크림치즈 바르는 내가 너무 좋다. 이런거 왜 좋은지 모르겠는데, 그냥 베이글에 크림 치즈 잔뜩 바르면서 이런 내가 너무 좋네!!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느해 여름, 베이글에 크림 치즈 발랐던 낭만적인 때가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간식 챙기는데 있어서만큼은 세상 근면성실한 나는 오늘의 페이퍼를 이만 마치도록 한다.
세상에 헨닝 만켈의 살인범 잡는 소설 읽고 이런 글을 써내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겠지. 껄껄.
이만 총총
부자와 오만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발품을 시켰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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