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또다른 나 (아니고요)
여성 교육의 최종 산물을 불안한 자기 부정임을 브론테는 암시하고 있다. 캐서린, 혹은 모든 소녀들은 자기 이름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될 운명인지 알 수 없다는 것만을 배운다. -p.502
다락방의 미친 여자 8장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다루고 있다. 집안에서 아빠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캐서린은 한 번도 기대한적도 예상해본적도 없는 소년을 맞닥뜨리게 된다. 아버지가 길에서 데려온 소년. 이 소년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절친한 사이가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이 소년을 만난 것은 우연이면서 동시에 강제로 주어진 것이었다. 캐서린이 뚜벅뚜벅 걸어가 어딘가에서 만난게 아니라, 가만히 집에 있었는데 훅- 소년이 나타난 것이다. 캐서린은 그날까지 아빠와 오빠 말고는 다른 남자를 본 일이 없다가 이제 낯선 소년이 집에 들어온 것. 그 소년이 아빠와 오빠와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 캐서린이 히스클리프와 친하게 지내고 사랑에 빠진것 같았지만, 저기, 6킬로미터를 건너가서 나타나는 저택의 소년 '에드거'를 만나게 된다. 에드거의 집은 부자이고 교양이 있었고 캐서린을 극진히 대한다. 캐서린은 에드거와 사랑에 빠졌고 그와 결혼하기로 한다. (자세한 줄거리는 먼댓글 참고하세요.)
"그렇지만 세상에 잘생기고 돈 많고 젊은 사람은 많아요. 어쩌면 그분보다 더 잘생기고 돈이 많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왜 그런 사람들은 좋아할 수 없나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내 눈앞에는 없잖아. 난 에드거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거든" -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P130
에드거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고 에드거 같은 남자는 처음인데, 사실 캐서린은 에드거 외의 다른 남자는 본 적도 없다. 세상에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들이 아마도 더 있겠지만, 캐서린은 본 적도 없고 만날 가능성도 없다. 이 집 아니면 저기 멀리 걸어가서 저 집에 사는 남자들만 본 그런 한정적 공간 안에서 어떻게 다른 남자를 만나거나 꿈꿀 수 있단 말인가. 너같은 남자는 너가 처음이라는 말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러나 너 말고 다른 남자를 본 적이 없는 것 역시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남자라고는 가족 외에 몰랐던 캐서린에게 히스클리프가 나타났고 그는 운명의 상대 같았으나, 조금 더 자란 캐서린 앞에 에드거가 나타난다. 당연하게도 에드거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 후의 캐서린에게는 더이상 남자가 나타날 리 없고, 결혼 후 몇 년이 지나서야 '다시' 히스클리프가 등장한다. 캐서린의 인생에 등장한 남자는 히스클리프와 에드거 둘 뿐이었는데 히스클리프와 에드거 둘 다와 치명적 관계가 된다. 너무...
어처구니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딱 이정도 뿐이고 그래서 그들과 함께 산다니.. 인생 너무 답답하지 않나. 물론 이건 지금 여기를 사는 내 기준이지만, 세상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캐서린이 다른 곳을 갈 수 있었다면, 다른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면 히스클리프와 에드거가 아닌 다른 남자들이 더 있다는 걸 보고 또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히스클리프보다 그리고 에드거보다 더 나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또 더 못난 남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많은 선택지들 중에서 인간이란 그리고 남자란 이런 족속들이구나, 깨닫고 '그렇다면 바로 이 사람' 하고 선택한 게 아니라, 이 사람만 볼 수 있었고 이 사람만 선택 가능한 삶.. 이 되어버린 거다. 게다가 결혼하고 나면 출산하고 출산은 곧 감금이다.
출산은 캐서린이 자기를 주장함으로써 워더링 하이츠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던 가부장적 질서를 소생시키고 있다. 출산은 결국 자아가 겪을 수 있는 최종적인 분열이다. 마찬가지로 '해산'이란 여자에게 결국 감금과 동의어다. -p.519
여성에게 한정적인 공간만 주고 한정적인 사람들만 만나게 한 상태에서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결혼하게 만든다면, 그런 시야가 좁은 여자들을 다루는 것은 얼마나 쉬웠을까. 내가 보는 세계가 이게 전부인데 어떻게 그 다음, 더 멀리를 꿈꿀 수 있단 말인가. 폭풍의 언덕 결말이야 우리가 다 아는 것이지만, 만약 폭풍의 언덕이 아닌 이야기였다면, 이렇게 캐서린이 결혼해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가 살고 있었다면 그녀가 죽을 때까지 만날 수 있는 다른 상대의 가능성은 없다. 어쩌면 레이디 맥베스 처럼 집에서 일하는 일꾼에게 반할 수도 있고 채털리 부인처럼 사냥터지기와 눈이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작해야 그런 가능성. 아, 그 뭐지.. 손님이 와서 가능해질 수도 있겠다. 그 뭐냐, 플로베르 소설 보바리 부인 처럼. 집에 찾아든 마을의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이 또 하나의 가능성이겠지. 캐서린은 기차를 타지도 않기 땜시롱 브론스키를 만날 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한정된 공간에서 주어진 조건으로만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만족할 수도 있고 크게 불만을 갖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 삶을 답답하다고 생각한 적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 한정된 공간 한정된 사람은 치명적으로 답답함을 안겨준다. 샬롯 퍼킨스 길먼이 결혼 후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것처럼 캐서린이 한정된 공간에서 아프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딱히 교육도 여행도 허락되지 않는 삶에서 그녀가 하는 게 사랑밖에 더 있나. 인생에 사랑이 제일 중요해져 버리는데, 이거 너무 거시기하지 않나...
'버지니아 앤드류스'의 《다락방의 꽃들》에는 사춘기 시절 다락방에 감금되는 4남매가 나온다. 그들은 몇 년간 다락방에 감금되어 주는 음식만 받아 먹으면서 서로밖에 알지 못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그 안에서 근친상간이 일어난다. 사랑과 섹스가 남매들에게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해야 했느냐, 라는 물음은 있을 수 있겠지만, 다른 가능성을 주지 않고 주어진 공간 내에서 심지어 하지 말라는 제약까지 가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불공정하고 가혹한 게 아닌가.
히스클리프에게 반해버리는 이사벨라도 마찬가지. 이쪽 집에 살면서 저쪽 집의 청년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는데, 히스클리프 말고 다른 청년이 없다......................................................게다가 교양있고 점잖은 자기 오빠만 보다가 갑자기 어떤 거침과 난폭함을 가지고 뚜벅뚜벅 나타난 히스클리프 라니.. 이사벨라에게 그는 얼마나 멋진가. 그렇게 히스클리프랑 결혼해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가서 사는데, 와 그냥, 에휴.... 나가라, 여성들이여. 일단 그 지역을 벗어나고 그 나라를 벗어나라. 그들이 남자의 전부가 아닌데 그들이 남자의 전부인 줄 알고 사는게 나는 세상 답답한 부분 ㅠㅠ 주어진 공간안에서 살다가 그 공간안에서 만난 남자랑 결혼하는 거, 진짜 너무 혹독하다. 히스클리프도 캐서린도 어느 정도 미쳐있는데, 그렇게 살면 미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 같다. 넌 여기에만 있다가 이 사람만 만나, 라고 해서 만나게 된 상대가, 과연, 나의 운명적인 사랑인가. 그것이 운명인가. 어휴..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 다루는 책들을 일전에 몇 권 읽었었고 그래서 나는 새로운 독서 없이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시작했다. 그런데 8장 폭풍의 언덕 부분 읽다 말고 충동적으로 폭풍의 언덕을 읽기 시작했고, 내친 김에 다 읽고 다시 펼쳐든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진짜 너무 재미있는 거다!! 아니, 이거 관련 책을 읽고 보면 훨씬 더 재미있잖아?! 다른 분들은 관련 책 열심히 읽고 계시던데, 이게 다 이유가 있고 이미 앞서 가신 분들.. 여러분, 정말 잘 하고 계신겁니다. 관련책 읽고난 후에 다락방의 미친 여자 펼쳐드니 세상에, 내용이 온 몸에 골고루 스며드네요. 여러분이 잘하신 겁니다. 그래서, 나도 관련 책들을 읽고난 후에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고 싶은데, 시간은 벌써 12월 12일이고,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아직 절반도 못읽었고, 읽어야 할 책들을 쳐내고 쳐내도 빌레뜨와 교수가 남아, 게다가 빌레뜨 두 권인데... 나는 이것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아. 왜 진작 관련책들을 읽어두지 않았나. 후회가 뼈에 사무친다.
퇴사하고 싶다. 퇴사한 후에 아주 그냥 미친듯이 빌레뜨 읽고 교수 읽고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으면 좋을텐데. 퇴사가 너무 급하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