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은 항해하는 사람이다. 한 번 배 타고 나갔다 돈을 벌면 그 돈을 다 쓸 때까지는 육지에 정착해있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항해하는 마틴은 육체적으로 매우 튼튼하고 근육이 울끈불끈 나근육 너근육 하지만, 청결하지 못하고, 교육을 받지 못했고, 가난하다. 어쩐 일인지 여자들이 그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여성들은 모두 그와 비슷한 계급이다. 아마도 연인이 되거나 결혼하게 된다면 매일 없는 살림을 아등바등 살아가게 될법한 그런 상대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거나 여자 잘만나 팔자를 고쳐보자는 생각을 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왜 저렇게 구두쇠이며 옹졸한 매형과 함께 살며 자신의 빛을 꺼뜨려야만 하는건지, 누나를 보며 안타까워 하기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루스를 만난다. 자신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지점, 닿을 수 없는 지점에 있는 루스. 교양있고 우아하고 돈도 많고 지금도 여전히 대학에 다니며 교육을 받고 있고, 청결한 루스. 그녀의 남동생을 불량배로부터 구해준 까닭에 마틴은 그 집에 식사를 초대받게 되었고, 거기에서 루스를 보게 되는거다. 마틴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틴이 본 적 없던, 와본적 없던, 경험해본 적 없던 공간이나 분위기 탓에 주눅 들어 있었고, 게다가 루스 가족의 우아함은 그로서는 만나본 적도 없었던 터다. 이 많은 식기류를 식사할 때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는 자신이 지적 수준도 한참 루스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예의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은 루스에게 반했고, 루스에게 닿고 싶은데, 그런데 자신이 루스에게 닿기에 한참 모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루스와는 완전히 다른 격임을 다 드러내주는 것 같아서 긴장해있다. 그러나 헤어질 때 루스는 그에게 또 방문해달라 말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돈이 없다는 그래서 항시 빈곤했다는 열등감부터 시작해서 배움이 짧다는 열등감, 좋은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열등감, 못생기고 키가 작다는 열등감 기타 등등. 어떤 부분에서든 열등감을 가질 수 있지만 그러나 열등감을 갖고 살아가는 태도는 다를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텔레비젼 프로그램 중에 <사랑학개론> 이라고, 시청자들의 사연으로 극을 꾸며 보여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남자는 배움이 짧았고 여자는 대학 교육까지 받은 커플이 사연을 보내왔었다. 처음에는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이 아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 뉴스를 들으면서 여자는 알아듣지만 남자는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남자가 폭력적이 되었던 거다.
자신의 열등감을 폭력으로 바꿔버리는 것이 지금 우리가 매일 한국 뉴스에서 보는 경우들이다. 왜 나랑 안사귀는거야? 왜 나랑 헤어지자고 해? 왜 나를 안만나줘? 왜 나한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는 여자를 향한 혹은 동물을 향한 폭력으로 바뀐다. 때리고 감금하고 죽이고 학대하면서. 육체적 폭력 대신 언어 폭력으로 상대를 지배하기도 한다. 너는 구려, 너는 후져, 나나 되니까 너를 만나주는거야 등등으로 나를 떠나면 너를 사랑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세뇌함으로써 자신의 관계를 지켜가려는 것. 아마 많은 한국남자들은 루스를 만났다면 루스를 납치 감금하거나 폭탄을 만들거나 죽이거나... 했겠지. 그리고 감옥에 갔겠지. 왜 그랬어요? 나를 안만나줘서요..........
열등감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안의 열등감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열등감을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열등감이 다 내 노력으로 극복되는 건 아니다. 만약 내가 재벌집 막내아들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로 인해 열등감을 갖게 됐다면, 아무리 아무리 노력해도 재벌집 막내아들만큼의 돈을 가질 순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의 월급으로 그리고 투잡을 뛰면서라도 재벌집 막내아들의 경제적 수준에 다가갈 수 있을까? 와인 대신 소주만 마시고, 소고기 대신 대패삼겹살을 먹고, 책을 사는 대신 도서관에만 다닌다면, 물론 내 전재산 4천만원이 7천만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벌집 막내아들의 경제수준에는 못미칠 것이고, 그것-그만큼 돈을 가지지 못한 것-이 나의 열등감이었다면 그 열등감 극복은 실패... 그렇지만 만약 내가 요가로 다져진 탄탄한 몸을 가지고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를 할 줄 아는 남자를 만나 그런 몸과 기술에 대해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열등감을 가졌다면, 그것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가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고기 열번 먹을거 두 번 먹고 술 열 번 먹을거 한 번 먹고, 매일 요가 수련을 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비슷해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만난 남자가 박사 학위를 가졌는데 내가 가지지 못해 열등감을 가졌다면 그것 역시도 어느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쌍코피 터뜨려가면서 공부를 한다면(별로 안그러고 싶지만) 이 역시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겠지. 그러나 내가 그렇게 노력해서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질 못한다면, 나는 내 열등감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내 안에 가지고 있으되, 그러나 그러지 못한 부분이 있는 내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내가 가진 장점들 만으로도 살아가면 된다. 나는 그 누구보다 계절을 몸으로 느끼면서 행복을 받아들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나는 내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고, 그럼으로써 또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까 먄악 내가 가진 열등감이 극복 불가하다면, 그리고 딱히 극복하고자 할만큼의 어떤 것이 아니라면, 그냥 살면 된다.
Just live well.
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혹은 끌어안고 살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힐 필요도 없고, 그것은 정말이지 방법이 아니다.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서 주인공은 학교의 퀸카의 인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그녀에게 먹으면 급속하게 살이 찌는 과자를 준다. 그러나 그녀는 깨닫게 된다. '퀸카를 살찌게 한다고 해서 내 살이 빠지는 건 아니다'라는 것을. 나에게 마음 주지 않는 사람을 납치하거나 감금한다고 해서 내가 사랑받게 되는 게 아니다. 나보다 공부 잘하는 사람을 죽여버린다고 해서 내가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나일 뿐이다. 세상 찌질한 거, 제일 못난 게 열등한 자신의 열등감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상대방에게 나좀 사랑해줘~ 네가 사랑해줄 때까지 징징댈거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열등감 극복을 타인에게 위탁하는 것이다.
-널 만나기엔 내가 너무 부족해.
-무슨 소리야, 널 모르고 만난게 아닌데. 그러지마.
(한달 후)
-널 만나기엔 내가 너무 부족해.
-그렇다면 좀 바꿔봐, 너를.
(두달 후)
-널 만나기엔 내가 너무 부족해.
-그러면 꺼져 이새끼야.
이거 너무 당연한 수순이잖아?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든가 아니면 극복하든가.
우리의 마틴은, 오 마틴이여!
변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루스에게 맞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관찰해보니 저 계급의 사람들은 바지 무릎 밑으로 주름이 잡혀 있네? 그건 어떻게 하는거지? 다림질이구나! 그는 자신의 무릎 튀어 나온 바지를 주름진 바지로 바꾸고자 한다. 오 저사람들은 청결하네? 그는 매일 샤워를 하는 사람이 된다. 내가 예의에 어긋나면 어떡하지? 그는 온 가족의 이름으로 회원권을 만들어 도서관에 틀어박힌다. 예의에 관한 책을 읽고, 루스가 읽는 시집을 읽고, 심리학도 읽고, 그러니까 온갖 책을 다 읽는다. 그런 루스는 그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워낙 건강했던 육체에 청결함이 더해지니 빛이 난다. 거기에 지적임이 더해진다. 이렇게 그가 루스에게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루스가 받아주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사랑을 이루고 싶지만 그러나 그 사랑은 불발일 수 있다. 이거봐, 이정도면 나는 너에게 맞는 남자가 되었지? 라고 반짝이게 루스 앞에 서도 마틴은 루스에게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고 '나는 널 사랑하지 않아' 로 거절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마틴의 이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걸까? 무의미한걸까?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허송세월 보낸걸까? 등신머저리짓을 한걸까?
아니다.
설사 루스와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한다 해도, 그는 이제 그전보다 청결해진, 그전보다 예의를 아는, 그전보다 지식이 많아진 사람이 되었다. 그전보다 '모든 면에서 모든 걸 더 갖춘 내' 가 마틴에게 남는다. 아니, 근사하잖아? 멋지잖아? 이것만으로도 인생 겁나 잘 살고 있는 거 아녀?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내가 1권의 고작 82페이지까지만 읽고 쓴거다. 실상은, 루스도 마틴에게 반했다. 울끈불끈 저 거침.. 저 근육질.. 루스는 지적인 여성인데 육체미 뿜뿜하는 마틴에게 반해버려. 사실 루스의 지적임과 청결함에 대한 묘사에 마틴의 육체미 뿜뿜 묘사 읽는데, 잭 런던, 그리고 순수문학이여, 미안합니다. 나는 잘만 킹을 떠올렸어요. 너무.. 잘만 킹 스럽잖아요. 지적이고 도시적이며 화려한 여성 그리고 육체적이고 다소 짐승적인 으르렁 맨... 으르렁- 너무 잘만 킹 떠올라서 그만.. 제가 그 클리셰 좀.. 좋아했어요. <우리도 사랑일까> 에서 인력거꾼 나올 때, 아니 현대물에 인력거가 웬말이야, 라고 하면서도 인력거를 몰다니 그렇다면 전완근.. 이렇게 되어버리는 뭐 그런 지점이 내게 있음에, 잭 런던이 그린 잘만 킹 스러운 상대 묘사에 제가.. 조금 휘청였어요.
어떡하죠.
내 심장이 고장났나봐.
와, 내가 어제 그러니까 존 밀턴의 《실낙원》꺼내려고 서재에 가 책장 앞에 똭- 서가지고, 실낙원 똭- 들고 나오는데 왜 마틴 에덴 눈에 똭- 띄어가지고 격렬한 내적 갈등 벌어져버려.
안돼 실낙원만 가져가
마틴 에덴 그냥 가져가기만 하는거야
안돼 실낙원 읽어
마틴 에덴 그냥 꺼내기만 하는거라고
이러면서 두 권을 침대 위로 똭 가져왔는데(침대에 책 몇 권이나 꺼내져있다, 헤드도 아니고 베드에...), 또 싸움이 벌어져.
실낙원 읽어
그건 내일 아침에 읽을게 지금 잠깐만 마틴 에덴
내일 아침에 다락방의 미친여자 읽어야 되잖아 실낙원 들어
그러면 퇴근때 읽고 잠깐만 마틴 에덴..
이렇게 되어가지고 마틴 에덴 펼쳤다가 잘만킹 만나가지고 내가 지금 혼란스러워서 오늘도 마틴 에덴 갖고 나와버린...
어떡하죠
내 심장이 고장났나봐..
마틴 에덴, 아니 잭 런던.. 이런 사람이었어요? 잘만 킹 좋아해요? 아ㅏㅏㅏㅏㅏㅏㅏㅏ 진짜 어쩜 이렇게 대비되는 걸 여자는 지적이고 청결한 상류층에 남자는 하층민에 육체미 개터지는 걸로 만들어놨어. 와... 아무튼 우리의 루스.. 너같은 남자는 너가 처음이야 어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거친데 그런 근육.. 루스는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밥먹는 내내 그의 목을 만져보고 싶고 그의 몸에 손대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여러분 그거 알아? 마틴 스무살이고 루스는 마틴보다 세살 많지롱~ 아니, 어쩐지 너무 좋지 않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왜 좋아? 아니, 그런데 내가 이정도로만 하고 끝내려는 게 아니라, 내 긴히 할 말이 있다. 아 마틴.
마틴이 루스에게 맞는 사람이 되고자 이 모든 노력을 하는 것들 중에는 양치, 양치가 있는 것이야. 네??
우선 이 책이 1909년에 나온 책이라는 걸 알고 가는게 중요하다.
마틴은 거울을 보면서 자기의 얼굴을 관찰한다. 대체적으로 만족스럽다.
압박을 받을 때마다 이를 악물고 입을 꽉 다무는 버릇만 없었다면 두툼하고 육감적인 그의 입술은 천사의 입술처럼 완벽해 보였을 것이다. 때때로 그 입술은 너무 굳게 닫혀 있어서 엄격하고 모질며 심지어 금욕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투사의 입술이자 연인의 입술이었다. 그 입술은 삶의 달콤함을 음미할 수 있었고, 달콤함을 제쳐 놓고 삶을 호령할 수도 있었다. 강한 턱과 공격성을 암시하는 각진 하악이 입술의 호령을 보조했다. 힘이 감각과 균형을 이루고 그것을 북돋우면서 그로 하여금 건강한 아름다움만 사랑하도록, 온전한 느낌에만 공명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두 입술 사이에는 치과 치료가 전혀 필요 없는 치아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를 보면서 희고 튼튼하고 가지런하다고 생각했다. -p.58
여기까진 참 좋쥬? 저도 개인적으로 얇은 입술보다는 두툼한 입술을 선호합니다.. (안젤리나 졸리 뽀에벌!!)
자, 계속 보자.
그런데 볼수록 걱정되기 시작했다. 매일 이를 닦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 희미한 기억이 그의 마음속 후미진 구석 어딘가에 존재했다. 저 위의 사람들, 즉 그녀의 계급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그녀도 틀림없이 매일 이를 닦을 것이다. 그가 평생 동안 이를 닦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는 칫솔을 사서 이 닦는 습관을 들이겠다고 결심했다. 곧바로, 내일 시작할 것이다.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다순히 뭔가를 이룬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모든 면에서, 심지어 양치질과 자유의 포기나 다름없는 풀 먹인 칼라에 이르기까지 개조해야 했다. -p.59
아... 이십년을 살면서 한 번도 양치를 안한... 그러니까 1900년대에는... 그 전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양치도 못하고 살았던 겁니까?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아니, 마틴, 인기도 많던데... 그러면서 여자들하고 키스도 막 하고 그런거야? 그 여자들도 평생 양치 안해본 여자들이고? 너의 세균이 나의 입 안에 나의 세균이 너의 입안에, 서로 충치 나누며 살고 있었던거야? 흑흑 ㅠㅠ 아 마틴의 근육에 몸부림칠 정도로 반했다가 양치 한 번도 안해봤다는 거에 짜게 식었지만, 그러나 이제 매일 양치하는 마틴으로 거듭날 것이기에 괜찮다. 칭찬해, 응원해, 마틴. 그 개조, 나는 찬성합니다.
아, 마틴 에덴 개재밌어.. 극재미, 빅재미, 잭 런던, 당신 내가 한 번 천천히 접근해보도록하겠다.
이만 총총.
비포 아담은.. 또 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