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제일 사랑하고 누구도 나를 나만큼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나만 사랑하기'의 끝판왕은 남자들인 것 같다. 주변 돌아보기도 안하고 그저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챔피언 이라고나 할까.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잘못된 건 없어 보이지만, 자기 자신만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면 세상에, 그건 민폐도 그만한 민폐가 없다. 그런 놈들끼리만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은 지경이다. 자, 너 자신'만' 사랑해? 그런 사람들만 사는 나라로 보내줄게. 슝- 그런 곳에서 과연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아리요시 사와코'의 《황홀한 사람》을 읽기 시작했다. 노인 돌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읽다 보니 진짜 답답하기 짝이 없다.
소설은 아키코의 시어머니가 죽으면서 시작한다. 아키코의 시부모는 아키코와 노부토시가 부부로 사는 집 마당 한 켠에 별채를 짓고 살고 있었다. 아키코가 결혼 후 같이 살면서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너무 심하게 해서 더이상 한 집에서 사는게 힘들어져 별채를 짓고 따로 살게 된거다. 시아버지는 포악한 사람이고 잔소리만 하는 사람이며 차려주는 밥만 먹는 사람인지라 시어머니도 아주 힘들어했다. 아키코도, 노부토시도, 그리고 아키코의 시누이 교코 도 시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실 줄 알았지 시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내내 포악한 아버지를 받아주기만 하던 시어머니였기에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고생만하다 돌아가신 게 안타깝다. 자신도 결혼해 살고 있는 딸인 교코는 어머니에게 과부의 시간이 필요했었다고 너무 아쉬워한다.
"우리 시어머니는 과부가 되더니 정신이 어떻게 되셨는지 노상 웃고 다니셨어요. 남편이 죽어서 행복하셨나 봐요. 해방감이란 게 진짜 있긴 있나 봐요. 그래서 난 우리 엄마가 더 불쌍해 죽겠어요. 과부란 여자 행복의 궁극이니까." -p.75
아직 이 책의 절반도 읽지 않은 지금, 아키코의 시어머니는 갑자기, 그리고 편하게 돌아가신 걸로 보이지만, 내심 자살하신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사는 내내 고생했는데, 남편에게 치매가 찾아온 거다. 책에서는 '망령'이라고 표현되는데, 시어머니는 멀쩡한 남편으로부터도 고생했는데 그 남편이 치매까지 걸려버리니 그걸 감당할 생각이 미리 지쳤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거다. 시아버지는 지금 아마도 치매 초기인 것 같은데 자꾸 먹을걸 달라고 하고 자식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바깥으로 뛰쳐나간다. 그런 와중에 며느리만은 알아보지만 자신의 며느리로 알아본다기 보다는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란 걸로 인식하는 것 같다. 항상 아키코를 찾으며 밥을 달라고 하니까. 아키코=밥 주는 사람. 살아 생전 그렇게 구박을 해놓고 그러면서도 아키코, 밥 줘요, 한다. 그런 시아버지를 아키코는 아기 같다고 표현하지만, 아키코의 아들 사토시는 동물 같다고 표현한다. 자기한테 가장 필요한 상대는 본능적으로 잊지 않는, 주인은 알아보는 개나 고양이 같다는 거다.
"엄마가 할아버지 주인이란 뜻이야?"
"비슷하지. 아빠를 알아보신다고 해도 아빠는 할아버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잖아. 본능은 살아남기 위한 지혜야. 할아버지가 살아남으려면 아빠보다 엄마가 더 필요해." -p.152
사토시가 이렇게 말하는 건 이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사실이며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신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챙기는 건 그의 아들 노부토시가 아니라 며느리 아키코인 것이다. 맞벌이 부부인 이들에게 이제 망령든 할아버지를 돌봐줄 가족이 없고, 남편인 노부토시는 은근히 아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봐주기를 바란다. 그 말이 나올까봐 아키코는 너무 초조하다. 일을 계속 하고 싶은데 말이다. 마침 노인 클럽이 있다고 해 그곳에 평일 낮에 아버지를 모실 수 있고 이웃 할머니가 챙겨주시기로 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똑같이 돈을 버는 부부이지만 아키코는 일주일치 반찬을 만드는 일과 집안 청소를 하는 일에 이제 망령든 시아버지를 챙기는일까지 맡게 됐다. 그동안 별채에 살고 계셨기에 시어머니가 시아버지를 챙기셨고 아키코는 가끔 반찬을 해서 가져다드린다던가 했는데, 이젠 아버지의 식사를 전적으로 챙겨야 하며, 잠자리도 봐드려야 하고, 옷도 갈아입혀드려야 하고, 무엇보다 새벽에 소변을 자꾸 보시는데 그 때도 함께 해야 한다. 이 일에 정작 망령든 시게조의 아들은 빠져있다. 억울하고 화가 나서 욱하는 마음에 '너 왜 다른 사람 보듯 하는거야, 네 아버지야' 아키코가 말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노부토시는 '나도 심란해!' 한다. 노부토시는 그렇게 늙어가는 아버지를 보는게 심란하고, 자기도 아버지처럼 될까봐 너무 걱정이 되는거다. 자신도 늙어가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으니까. 그래, 부인할 수 없다. 우린 모두 늙어간다. 내 부모가 늙어가고 힘이 없어지고 점점 사회에서 소외되는 걸 본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게다가 병까지 걸려 온전치 못한 걸 보게 된다면,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 할텐데 라는 생각이 찾아드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그 당연한 생각 을 노부토시만 하는게 아니다. 아키코도 하는 거다. 그 생각은 누구나에게 찾아들지만, 그러나 어쨌든 현실에서 생활을, 일상을 유지해야 하고 누군가는 망령든 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데, 왜 노부토시는 자기 상념에 괴로워하기만 하며 아버지 돌보기에서 뒤로 물러나는가. 자기만 더 심각해? 자기만 더 고민이 많아? 자기만 심란해? 나는 여기에서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만 돌보고 사랑하는 징그러운 남자를 본다.
나는 이 지점이 심해지면 범죄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스토킹 범죄, 데이트 폭력이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고 본다. 상대가 싫다거나 헤어지자는 말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그들의 항변대로 '상대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나'를 견딜 수 없는 거다. 거기에는 무엇보다 열등하다는 마음도 있지만 자기자신'만' 사랑하는 그들이 있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나, 거부당하고 싶지 않은 나, 기분 나쁜 나, 마음 아픈 나.. 그것만 생각하다 보면 다른 사람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상황에 공감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나 마음이 너무 아파, 나 고민이 너무 깊어, 나 감정이 너무 상해, 나 지금 너무 슬퍼... 여기에 푹 빠져가지고 상대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주게 되는 거다. 나는 너랑 계속 사귀고 싶단 말이야!!! 진짜 이렇게 자기 자신만 사랑하기에 급급한 인간들은 그 인간들만 사는 나라에 몰아넣고 싶다. 늬들끼리 살아봐라. 이 사회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건줄 아니? 너같은 놈들 대신 뭔가를 해주는 사람들, 너같은 놈들 대신 뭔가를 참는 사람들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이 씹새들아..
고등학생 사토시는 할아버지가 가끔 귀찮았노라 얘기한다.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준 적도 없었던 사람. 그런데 아들인 자기의 아버지보다 손주인 사토시를 할아버지가 그래도 기억하는 건,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보다 자신이 더 약간이나마 쓸모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진심으로 잘 대해주셨어. 근데 할아버지가 날 위해 뭘 해주셨는지는 생각이 안 나. 방을 어질러놓았다고 구박하신 거랑 마당에서 오줌 싸다 걸린 기억밖에 없어. 그것도 유치원 다닐 때 일이야. 그땐 아직 어렸는데도 할아버지가 엄청 심하게 화를 내셨어. 혼자 내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게 된 날부터 할아버지하고 말해본 기억이 없어. 그런데도 어떻게 나를 기억하시는지 몰라. 틀림없이 생물학적인 본능이 작용했을 거야." -p.152
사토시는 맞벌이 부부인 부모님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자신이 열쇠로 문을 따고 집에 들어와야 했다(열쇠 아이 key child). 나도 몇번 언급했지만 부모님 두분 다 돈을 벌러 나가셔야 했기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동생들과 함께 집에 있었다. 동생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했다. 엄마가 두고 가신 돈으로 간식을 사다 먹기도 했다. 식빵을 사오면 계란후라이를 하고 케찹 뿌려서 동생들에게 토스트라고 주기도 했고, 떡볶이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나는 아직 국민학생이었고, 어린 우리들만 놔두기 불안했던 엄마는 가끔은 친할아버지에게 우리 집에 좀 와계셔 달라고 부탁했는데, 할아버지가 오시면 나는 할아버지의 밥도 차려야 했고 설거지를 해야 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오셔서 내가 뭔가 덜하게 되거나 편해진 건 없었다. 심지어 내 인생 가장 큰 트라우마도 그 시절 할아버지로 인한 것이었다. 내가 살아생전 상담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그 시절 할아버지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할아버지란 존재가 싫다.
그러나 외할머니가 오시면 달랐다. 외할머니는 우리에게 밥을 해주셨고 설거지를 해주셨고 엄마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방도 다 치우셨다. 다쳐서 돌아온 남동생의 무릎에 약을 발라주기도 하셨고, 우리가 씻는 것도 챙겨주셨다. 나는 외할머니가 우리를 봐주러 오시면, 그제야 바로 그 나이의 아이가 되었다. 아, 쓰다 보니 외할머니에게 잘해야지, 새삼 다짐하게 된다. 아흔이 넘으신 우리 외할머니.
사토시에게 다정했던 할머니 대신 할아버지가 남아있다. 아키코에게 좋았던 시어머니 대신 시아버지가 남아있다. 심지어 사소한 것 하나까지 다 봐주고 챙겨줘야 하는 시아버지가. 공교롭게 좋은 기억을 주지 못한 가족 구성원이 돌봄이 필요하다. 살아있으니 어떻게든 돌보아야 한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언젠가부터 노인, 돌봄, 질병, 노화.. 등의 단어를 보면 내 부모를 떠올리는 대신 나를 떠올리게 된다. 내 일이 될 것이다, 바로 내 일이다. 나는 앞으로 몸이 지금보다 더 약해질 것이고 신체의 모든 기능이 약화될텐데, 그런 채로 살아가는 건 지금보다 힘들겠지. 그런데, 그럴 때라도 살아가는게 힘들지 않게끔 하는게 나라가, 국가가 하는 일 아닌가. 나라는 그러라고 있는 거 아니냐? 아, 모르겠다. 지금은 아흔 넘은 할머니를 들여다보는 일을 예순 넘은 우리 엄마가 하고 있다. 일흔 넘은 아버지가 퇴원하시면 예순 넘은 어머니가 챙기시겠지. 그러다 예순 넘은 어머니가 여동생 집으로 손주들 봐주러 가면, 일흔 넘은 아버지를 돌보는 건 바로 내 일이 될것이다.
아직 황홀한 사람의 절반도 채 못읽었는데 답답하다. 아키코에게 일어난 현실이 답답하고 이 일이 비단 아키코만의 일은 아닐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아서 답답하다. 그래서 소설은 어떻게 끝나게 될까?
이 소설의 뒷표지에는 '일본의 노인복지제도의 근간을 바꾸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써있다. 덧붙이자면, 1972년에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