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누이 얘기해왔지만, 로맨스 소설이 재미있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특히나 이성애 로맨스 작품이라면 내 경우엔 남주가 매력적이어야 한다. 나로 하여금 같이 그 남자랑 사랑에 빠지게 해야 로맨스 소설은 본격적인 재미를 줄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샐리 쏜의 이 작품은 아주 맞춤한 작품이었다. 여자를 성적 대상화 시키거나 도구화하는 게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존중한다. 물론 이것이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조건이지만, 이 정도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기본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 게다가 그는 진지하다. 자신이 관심을 둔 여자를 상대할 때 진지하고, 그리고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진지하다. 매일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고 땀을 흠뻑 흘렸기 때문에 지금처럼 아주 근육질의 단단한 몸이 되었고, 그 hard body는 호감을 가진 여성으로 하여금 커다란 만족을 준다. 단단한 육체는 단단한 정신을 뜻하고 뭐 순서가 바뀐다 해도 단단한 정신은 단단한 육체를 가져온다. 뭐가 됐든 단단한 게 최고다. 그렇게 육체가 단단한 남자주인공 '조슈아'는 좋아하는 여성 '루신다'와의 관계도 단단하기를 바란다. 성인 남녀가 서로에게 성적인 호감 혹은 긴장을 느끼는 것이야 색다른 것은 아니지만, 그럴 때 바로 기분이 내키는대로 자자, 고고씽!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 식으로 한 번 자고 어색해지는 사이는 싫다고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한다. 나는 원나잇스탠드가 되고 싶지 않아, 내가 너랑 자게 된다면 최선을 다할거고 네 옆에 있고 싶어, 라고 하는 거다. 세상에.. 이런 남자가 있다니, 역시 로맨스 소설이구먼 싶다.
진지한 관계, 다정한 성격, 게다가 무엇보다도 하드 바디, strong muscle은 너무 매력적이어서 나도 루신다처럼 조슈아와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나도 사랑에 빠져버려서 로맨스 소설 더 헤이팅 게임은 세상 재미있는 로맨스 소설이 된다.
원서로 읽기 위해 일단 번역서를 먼저 읽었고 또 다 읽은 후에는 번역서를 옆에 두고 번갈아 가며 보기도 했는데, 그러다보니 아쉬운 점이 있었다.
조슈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의사이고 형도 의사이다. 그러나 조슈아는 의대를 다니다 의사 되기를 포기했고, 이 일은 아버지로부터 그를 '중도포기자'로 생각하게 만든다. 애초에 장남에게 더 큰 기대를 건 아버지였지만 그렇다해도 둘째인 조슈아에게 너무나 무심했던 것. 무심했으면서 그가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고 무시하고 또 그가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역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조슈아는 항상 포기된 남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남자, 뒤로 내팽개쳐진 남자 쯤으로 여겨졌었고, 조슈아의 형 패트릭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게 뭐든 성공하는 사람이었으며 아주 잘 나가는 남자였다. 게다가 성격도 착해서 조슈아는 형을 미워할 수가 없다. 형은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하는 사람이었고 동생 조슈아를 사랑하는 거다. 그런 조슈아가 사귀었던 여자친구 '민디'는 조슈아의 무뚝뚝한 성격에 힘들어하다가 그의 형 패트릭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하게 된다. 공부에서도 성공하고 일에서도 성공하고 게다가 결혼까지 아름답게 성공한 패트릭은 누가봐도 'nice guy' 였다.
먼저 읽은 번역서에서는 이 nice guy 를 '착한 남자'로 번역해두었고, 그래서 계속 착한 남자로 읽다 보니, 그가 전애인 민디에게 못되게 굴었다는건가, 그래서 그녀가 형에게로 간거고, 그래서 그는 착한 남자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는건가 싶었는데, 원서를 읽다보니 nice guy 는 내가 생각하는 '착한 남자'보다 훨씬 더 깊은 컴플렉스를 드러내고 있었다. 실패자, 루저, 뒤쳐진, 감춰진 것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인싸 개념이라고 해야할까. 사람들은 nice guy 를 좋아하지만 나는 nice guy 가 아니지, 라는 생각을 조슈아는 갖고 살았던 것. 그런 그는 그래서 일도 사랑도 잘 해내고 싶었던 거다. 뒤로 밀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조슈아는 조슈아대로 멋진 근육을 가진 남자라 멋지지만 루신다는 루신다대로 또 개매력적이다. 덩치가 작아서 언제나 귀여움으로 어필해야 한다는 컴플렉스를 가지고 그 역할에 충실한듯 보이며 살아가지만, 사실 그것이 루시의 본질적인 면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조슈아를 만나 처음엔 원수처럼 지내다가 점점 호감을 갖고 사랑하게 되었고 성적 매력도 무지하게 느끼게 되었는데, 그녀는 전혀 숨김없이 그에게 말한다. 널 원해, 와 너 어쩌다 이렇게 멋진 몸이 되었어?, 와 너는 지치지도 않나봐, 너는 너무 멋져, 너랑 자고 싶어, 우리 자자.. 이런걸 계속 얘기하는거다. 아무리 조슈아가 오늘은 안돼, 이러지마, 라고 해도 자신이 그에게 성적으로 끌리고 있음을 숨기지 않고 그의 몸냄새를 대놓고 맡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다 저마다의 변태끼를 가지고 있고, 루신다의 변태끼는 아마도 이 냄새를 맡는 데에 있지 않았나 싶다. 킁킁, 그는 조슈아의 몸에 대고 냄새를 맡는다. 물론 조슈아는 그런 그녀를 전혀, 싫어하지 않고. 사실 조슈아 역시도 조슈아 나름대로의 변태끼를 가진 사람이니 서로의 변태끼가 조화를 이뤘다 하겠다. 그래, 이 변태끼는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조슈아의 변태끼는, 왜냐하면, 루신다가 아니라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 눈동자 색깔에 맞추어 벽지를 바르는 사람? 내가 오늘 치마를 입었는지 수첩에 체크하는 사람? 그것이 루신다도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일이 되는 것이고 너의 변태끼 좋아! 가 되는 것이지, 만약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그랬다고 하면 너무 소름돋잖아. 뭐, 여하튼 이들의 로맨스는 뜨겁고 무자비하게 펼쳐지는데, 그것은 다 조슈아가 운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운동, 운동이 중요하다. 남자들이여, gym으로 가라! 단단한 머슬이 단단한 바디를 만들도 단단한 육체를 가져오며 결국 단단한 관계를 가져온다. 이것은 섭리...
저렇게 단단한 근육맨이라니, 루신다 너무 좋겠다, 루신다가 매일 좋다좋다를 외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면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아마도 그동안 읽은 로맨스 중에 가장 흡족한 남주가 아닌가 싶지만(남자들이 읽었응면 좋겠다. 증맬루..),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분명히 깨달았다. 이성애 로맨스는 본질적으로 페미니즘적일 순 없다는 것을.
이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여러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그들이 아직 섹스를 하기 전이다. 조슈아 형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먼 길을 운전했고 차 안에서 그들의 분위기도 좋았고, 그들은 그렇게 호텔방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래서 서로 끌어안고 키스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조슈아는 바로 그 자리에서 섹스를 하려고 하진 않는다. 루시는 하기 싫으냐고 물어보고 조슈아는 그렇지 않다는 걸 자신의 hard body를 통해 표현한다. 루시는 나로 인해 그가 이렇게나 흥분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그가 나를 원한다는 걸 알게 되어서 좋아하지만, 그러나 어쨌든 이 날의 섹스는 조슈아 엄마의 전화로 인해 성사되진 않는다. 그런데 만약, 조슈아 엄마의 전화가 아니었어도, 그런데 조슈아가 하기 싫다고 거절했어도, 루시는 '그럼에도불구하고' 자기 뜻대로 섹스를 할 수 있었을까? 그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루시는 조슈아와 같은 직장에 다니고 같은 직급을 가지고 있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그리고 진급을 위한 경쟁자의 상태에 놓여있다. 루시는 자신의 욕망을 말하기를 꺼려하지 않고 조슈아는 자신이 혹시 선을 넘는건 아닌지 매사 신중한 사람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걸 말할 수 있고 싸우기도 하고 또 배려하기도 하는 성인 남녀, 그냥 보면 어느 모로 보나 평등한 여자와 남자가 거기 있다. 그러나 그것이 로맨스로 들어가버리면 평등이 유지되기가 힘들다. 루시는 160도 안되는 작은 키를 가지고 있고 어릴때부터 너무 작았던 자신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조슈아는 키가 190이 넘고 운동을 해서 엄청난 근육질의 몸이다. 그는 한 팔로도 루시를 들어 올릴 수 있다. 물론 섹스의 기본은 서로 합의하에 하는 것이지만, 조슈아가 아니라고 말하면 안해야 하는게 당연히 이치에 맞는 말이지만, 루시의 입장에서는 조슈아가 아니라고 했을 때에 어떻게든 자신이 섹스를 더 해나갈 순 없다. 강제하고자 하는 의지나 생각이 없지만 설사 있다해도 그것을 할 수 없는 위치라는 거다. 그러나 조슈아는 그렇지 않다. 조슈아의 성격이나 책에서의 타입으로 보면 조슈아 역시 원하지 않는 관계를 억지로 이끌어 나갈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루시에게 더 나은 기회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가게 하려고 하고 또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면 거부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혹여라도 루시가 섹스를 원하지 않을 때, 조슈아가 그게 싫다고 짜증내면 조슈아로서는 강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거다. 이 책에서 루시가 욕망에 솔직한 여성이라고 해서 먼저 섹스를 말하고 혹은 여성 상위로 아무리 접근을 한다 해도, 분명한 사실은 루시는 강제로 할순 없다는 거다.
나는 조슈아가 강간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정말 아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이성애 로맨스로 들어가버리면 그 안에서 온전한 평등이 자리하기 힘들다는 거다. 루신다의 그동안 삶은 지금의 루신다를 만들었다. 조슈아는 (당연히 소설이니)'그럴 남자가 아니지만' , 조슈아가 질투로 화를 낼 때 루시는 의자 뒤로 숨고 싶어한다. 똑같은 질투로 루시가 화를 냈을 때, 조슈아는 그 어디로도 숨지 않는다. 어느 한쪽은 숨고 싶어하고 어느 한쪽은 숨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불평등이 그 안에 있는 거다. 실제로 조슈아가 루시를 위협하느냐 안하느냐와는 다른 문제다. 어쨌든 내 앞에 있는 저 남자가, 좀전까지 나랑 무엇을 했고 어떤 말을 나눴든 간에, 나를 위협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피하게 되는 것. 그것이 이성애 로맨스 안에 있는 거다. 이것은 신체적으로 한쪽은 삽입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삽입을 하는 입장에서는 강제적으로 당할 확률이 아주 낮다. 특히나 사회적 조건이 얼추 비슷한 경우라면 강제적으로 당할 일은 없다고 봐도 된다. 우리는 모두 그걸 알고 있지 않은가.
또한 이 소설에서처럼 아무리 균형감각을 가져가려고 해도, 이성애 로맨스 안에서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젠더롤에 충실해지려는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상대 역시 젠더롤에 충실하기를 바라게 되고. 나만 해도 이 소설 읽으면서 강인한 근육을 가진 조쉬에게 반하지 않았는가. 네가 좀 더 단단하기를, 네가 좀 더 근육질이기를, 네가 좀 더 나를 보호해주기를, 기타 등등. 내가 온전한 한 사람의 인간이며 나는 혼자서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관계 안으로 들어가면 젠더롤에 나를 자꾸 맡기고 싶어지게 되는거다. 왜일까. 그게 더 편하니까? 어쩌면, 그게 더 이 이성애 로맨스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니까?
이성애 로맨스는 본질적으로 페미니즘적일 순 없겠구나, 그런데 이 사회는 거대한 이성애 로맨스 사회다, 그래서 이렇게나 페미니즘이 가는 길이 멀고도 험난한건가, 하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 자, 이쯤에서 우리 '에바 일루즈'의 말을 들어보자.
평등은 원래부터 혼란스럽다. 평등을 기본 전제로 깔면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갈등이 불거진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평등이 불안함과 애매함을 낳는 원인이라 말할 수 있다. 불평등을 편안하게 여기게 만드는 두 번째 측면은 권력관계를 보호관계로 바꿔주며, '자연스러운' 상호의존성과 강한 감정적 접착성을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반대로 평등은 어떤 의무감도 낳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욕구와 권리의식을 강화함으로써 상대방과 갈등을 빚도록 조장한다. 불평등이 지닌 세 번째 편안한 측면은 역할 문제를 놓고 서로 협상을 벌이지 않아도 좋다는 점이다. 이로써 관계 당사자들은 좀 더 자발적이고 직접적인 감정을 가짐으로써 골치 썩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즐겨 보는 드라마 시나리오가 그려내는 사회적 역할을 보라. 고민하고 자시고 할것 없이 그저 감당하기만 하면 되는 역할이지 않은가. -《사랑은 왜 불안한가》, 에바 일루즈, p.82-83
에바 일루즈는 그러나 우리가 불평등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바로 그 지점은, 그것이 우리가 누군가의 지배를 원해서는 아니라고 덧붙인다. 그게 아니다. 우리는 그런식으로라도 상대와의 결합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논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가부장제를 갈망하는 태도는 페미니즘의 반작용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런 갈망은 여성이 지배당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감정적 결합을 갈구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물론 감정적 결합에는 피치 못하게 남성의 지배가 뒤따르기는 한다. 혹은 이런 지배를 드러나지 않게 숨기거나 교묘하게 정당화 하기도 한다. 마치 남성의 보호자 역할을 봉건체계로부터 떼어내 보호만 보장해주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어쨌거나 그 본질은 남성의 지배다. 다시 말해 오늘날 여성은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영역에서 남성의 지배와 직면해야만 한다. 물론 여성에게 낮은 신분을 강요하며 남자에게 보호의 의무를 안기는 봉건적 규칙이 사라지기는 했다.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지만, 여성은 감정을 나눌 짝 혹은 배우자를 갈망하는 탓에 여전히 남성에게 휘둘리고 만다. -《사랑은 왜 불안한가》, 에바 일루즈,p.84
사소한 모든 것에서부터 우리는 자기 자신의 모순과 맞닥뜨리게 된다. 주체적인 나를 원하면서도 이성애 로맨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상대가 나보다 더 강하기를 원하는 거야말로, 대놓고 말하지 못해도 상대가 나를 보호해주길 원하는 것도, 나로서는 언제나 모순을 만나는 순간들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내 안의 모순을 만나는 것도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것도 끔찍하게 싫다. 그렇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그래서 누군가와는 좀 더 특별하게 좀 더 단단하게 결합하고 싶은 욕망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그렇게나 로맨스를 읽어온 게 아닐까. 그러나 그동안 나의 삶은 나를 여기로 데려왔고, 그래서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비판적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숙명일지도.........
어쨌든,
여섯번째 원서를 완독했다. 훗.
:)
로맨스 소설 읽으면서 에바 일루즈 가져오는 나, 대천재... 사람들이 나 대천재인거 모를까봐 너무 초조하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