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저튼 시즌2> 를 다 보았다. 책으로 이미 읽었었는데, 책과는 많은 부분에서 내용이 달랐다. 일단, 인상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책에서는 결코 언급되지 않는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옹호>가 책에 잠깐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급진적' 이라는 약자를 대변하는 쪽에 서는 입장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하는 영상들에 대해 현재 시대를 반영해 페미니즘을 녹여 넣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물론 내 썽에는 안차지만, 그래도 여성의 권리옹호 나온거 보고 오옷? 했다. 브리저튼의 시대적 배경이 1800년대 초반인데, 여성의 권리 옹호는 1792 년의 책이다.
앤서니는 8남매의 큰아들이고 이 가문을 이끌어가야 한다. 이 가문, 이 가족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맏이인 자신에게 있다. 책에서는 앤서니가 자신이 일찍 죽을 것이고 자신이 죽으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퍼할 것이므로 사랑 없는 결혼을 하겠다고 설정하는데, 드라마에서는 그 죽음에 대한 부분 대신 그에게 맏이 컴플렉스가 엄청난 걸로 나온다. 그는 동생들이 한없이 부족하고, 그런 동생들에게 자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뒤를 봐준다'고 해야할까. 둘째가 입학하고 싶은 학교에 입학하게 힘써주고, 셋째가 투자를 하노라면 그건 어리석은 투자가 될것이라 염려한다.
그가 결혼하기로 마음 먹은 여성은 '에드위나'인데 사교계의 다이아몬드. 마침 현명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니 아내로 맞춤하겠다 했는데, 웬걸, 사사건건 자기에게 시비를 거는 에드위나의 언니 '케이트'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녀만 보면 막 미칠것 같은 감정이 된다. 미워 죽겠는데 막 욕망하는. 이건 마치 최근 읽고 있는 책 <헤이팅 게임>의 조슈아와 루신다 같다. 어쩌면 많은 연인들은 극렬한 증오로 시작해서 뜨거운 사랑으로 이어지는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욕망을 증오로 착각한다던가. 밥통들...
아무튼, 이 케이트도 진심으로 동생이 잘되기를 바라고 동생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동생이 남편감을 잘 찾기를 바라서 동생의 남편 찾기에 눈에 불을 켜고 이 놈 쳐내고 저 놈 막아내고 막 그런다. 동생은 앤서니 괜찮은것 같은데 자꾸 언니는 안된다 그런다. 동생이 함께 살아갈 동생 남편 찾는데 언니가 나서서 그는 너를 행복하게 해줄 남자가 아니야, 라고 한다.
물론 언니에게는 언니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그가 좋은 남편이지 않을 근거. 그러나 동생은 알지 못한다. 언니가 가진 그 근거는 굉장히 단편적이어서 언니 조차도 앤서니를 만날 때마다 이 남자가 그남자인가 혼란스럽다. 어쨌든 그래도 안돼! 하게 되는 것. 동생의 결혼에 개입하는 것은, 언니의 뜻이 아무리 동생 잘되라는 거였다 해도 '과하다'. 지나치게 과하다. 나 역시 맏이이고 동생들이 잘됐으면 좋겠지만, 그래서 내게도 앤서니나 케이트가 가진 면들이 충분히 있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보기에 앤서니와 케이트는 지나치게 과한 통제욕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은 사랑이라 부르는 통제욕. 이 길이 더 안전해, 이 길이 더 좋아, 이 길이 상처 받지 않아, 라는 자기들 나름의 기준으로 동생들을 자신들이 정해준 길로 들여보내려고 한다. 그건, 과하다. 그것은 나와는 다른 남, 결과적으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드는 것밖에 안된다. 결국 동생들은 동생들대로 상처 받는다. 형과 언니의 그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나를 사랑하고 생각해서 한 것이라 할지라도, 나라는 인간이 온전히 혼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내 판단과 내 의지로 살아갈 사람이라는 것을 불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니까.
'쥴리아 스타일즈' 주연의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도 그런 언니가 나온다. 언니는 공부를 잘하고 까다로운 사람이고 여동생은 언니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다. 여동생은 학교 내에서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데, 그런 동생과 데이트 하려면 이 까다로운 언니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언니가 보기에는 동생이 데이트 하려고 하는 학교의 킹카가 질이 안좋다. 그놈과 데이트 안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놈과의 데이트를 반대한다. 하지마, 그 놈 나빠. 그런데 동생은 자기에게 들어온 데이트 신청을 거절하지 않고 하려고 한다. 언니는 아무리 말려봤자 안들어서 결국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걔랑 사귀어봤단 말이야, 그 놈 진짜 쌍놈이야."
사실 여기까지는 나는 언니에게 크게 이입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도 맏이니까, 나도 이런 마음이니까. 내가 보기에 나쁜길로 가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막지 않고 있단 말인가. 그런데 동생이 언니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언니도 사귀어봤으니까 알게 된거잖아. 나도 내가 사귀어보고 깨닫게 좀 내버려두라고."
먼저 경험한 것은 아직 경험해보지 많은 사람에게 좋은 안내가 될 수 있고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단, 상대가 그것을 요청했을 때에만 그렇다. 동생의 저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러게, 내가 해보고 내가 깨달았잖아. 근데 왜 내 동생은, 다른 사람들은 그러면 안돼?
결국 여동생은 자신의 의지로 착한 남자를 선택하게 된다. 동생은, 동생 나름대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그 자체로 혼자 설 수 있는 존재였던 것. 내가 그것을 너무 몰랐던 것 같다.
맏이 컴플렉스로 똘똘 뭉친 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 가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영화 볼 때 동생을 구하기 위해 형이 미치는데 나는 그런 형의 마음이 너무 이해가 돼서 막 울었단 말야? 저 동생 새끼, 철없이 형이 하지 말라면 하지 말지, 그 위험한 걸, 형 말 좀 듣지.. 막 이러면서 봤는데 저 동생은 어찌나 형에게 맞서는지.. 그런데 이 영화를 본 다른 친구랑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그러는거다. 그 친구는 둘째였는데, 그 영화에서 형 너무 싫다고, 지가 뭔데 자꾸 동생의 결정에 끼어들고 잔소리하냐는 거다. 오?! 둘째는 둘째에게 이입해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가 더 나은 길이다, 여기가 더 안전한 길이다, 여기가 더 좋은 길이다, 여기가 더 옳은 길이다, 하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기준이다. 왜 이 좋은 길로 가지 않아? 왜 이 현명한 선택을 하지 않아? 라는 것은 철저히 나의 기준이고, 나에게 그것이 나의 기준이라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라고 그동안 이렇게 영화들이 말해줬고, 친구가 말해줬고, 그리고 이 책도 말해줬다.
<에코페미니즘>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로 선정할 때만 해도, 이 책도 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맞춰 읽어야 할 것 같으니 정한 책인데, 그런데 읽다가 와, 내 뼈를 때리는구나, 했다. 이 책에서도 더 좋은 세상, 더 편한 세상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원한다고 왜 네맘대로 생각하느냐고 끊임없이 나오는거다. 자동화, 문명화가 정말 더 나은 것인가? 그 낫다는 것은 누구의 판단인가? 내가 더 살기 편한 세상에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더 살고 싶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철저하게 나의 기준이 아니었나? 나는 이렇게 영화를 보고, 친구들과 얘기하고, 책을 읽으면서 내 안의 맏이 컴플렉스를 점차로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건 맏이 컴플렉스 라기 보다는 통제욕에 가깝다고 느끼지만.
앤서니와 케이트는 과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한 사람의 인생에 지나치게 크게 개입했다. 우리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거리를 가져야 한다. 앤서니와 케이트는 과했고, 앤서니와 케이트는 내가 친구하기 싫은 사람들이다. ㅋㅋㅋ 그런데 참 이상하지, 맏이는 주로 맏이들과 친구한다는데 앤서니와 케이트 둘다 맏이인데 나는 별로...
대부분 맏딸들의 가장 친한 친구가 맏딸 출신으로 조사되긴 했지만 막내 출신과 각별히 친해지는 맏딸도 적지 않다.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진 않았지만>, 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 비스 엔트호번 지음, p.147
그런데 현실에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다 맏이이긴 하다 ㅋㅋㅋㅋㅋㅋㅋ샹그릴라 다 맏이이고 더덕단 다 맏이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다 맏이인 건 진짜 무슨 일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맏이하고만 친구해야지 한게 아니라, 친구가 되고보니 다 맏이였어. 맏이에겐 맏이를 부르고 맏이는 맏이의 부름에 응하는 뭐 그런 촉이 있는걸까.. ㅋㅋㅋㅋ
아, 그리고 이 말을 꼭 들려주고 싶다. 꼭. 꼭. 잘 봐라.
다시 말해 이성애자인 맏딸은 누나 한둘과 함께 자란 막내아들과 가장 잘 맞는다. 형들이 있는 막내아들도 괜찮지만 더 좋은 것은 누나들이 있는 막내라고 한다.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진 않았지만, 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 비스 엔트호번 지음, p.183
나는 맏딸이다. 알았냐? 잘 알아둬라.
아무튼 앤서니랑 케이트, 영 별로였어.. 동생들이 상처 받은 걸 보았으니 이제 그들도 달라지겠지. 그래, 어떤 것들은 현실에서 부딪치고 깨지며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은 또 뭐 어쩔 수 없지. 그것이 인생이다. 디스 이즈 더 시티 라이프.. 가 아니라 디스 이즈 더 맏이 라이프...
나는..
내가 너무 좋아요... 샤라라랑~ ♡
나는 내가 너무 좋은데, 이런 나를 좋아하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진짜 사람 보는 눈 있는 엄청 똑똑한 사람들인 것 같다. 인생 잘 산 사람들이야..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잘 보고 그래?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높이 산다. 아무튼,
오늘 점심은 쌀국수에 넴 먹어야징. 이렇게 1인 2메뉴.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빨빨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