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이란 근거 없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금세 무너지기도 한다.
중,고등학생적에는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했지만 대학시절부터 처참하게 무너져버려 지금은 두려움을 갖게 됐다.
번역본 없이 잭 리처를 한 번 읽어보겠다, 하고서는 우습게도 다음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두려워하고 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모르는 단어가 수두룩 해 간신히 종이와 글자만 구분할 수 있다면 어떡하지? 괜찮아 그럴 땐 번역본 보면 돼, 라고 하면서도 두렵다. 두렵고 떨린다. 그래서 책을 펼치기가 다음 페이지를 펼치기가 겁이 난다. 쫄지마, 라고 하면서도 쫄고 있다. 그러다가 이런 대화가 나오기도 한다. 책이 없어 정확한 구절들은 아니고 대략 이런 대화였다. 잭 리처가 늦은 밤 기차에서 내려 근처의 모텔에 찾아가 숙박하려는 장면이다.
"오늘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데"
"60달러."
"내가 그동안 모텔 많이 다녔어."
"그래서?"
"너무 비싸."
"너 여자랑 잘 거 아니야?"
"아니야 나 혼자 자."
"윗방은 다 그래."
"나는 윗방 아니어도 돼."
"그럼 1층 줄게. 40달러."
"20 달러."
"30 달러."
"20 달러."
"25 달러."
"딜."
아 진짜 눈물나게 좋지 않나. 백프로 해석됐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겁나 쫄아가지고 으으... 나는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펼쳤다가 저렇게 딜! 로 마무리 되는 대화라니. 이해하지 못할 바가 전혀 없어서 기뻐서 눈물이 났다. 흑흑 ㅜㅜ
많은 부분들을 놓치고 가겠지만 앞부분만 읽은 지금 흐름은 파악할 수 있었고, 큰 덩치의 시체를 파묻으며 이정도면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놈들이 있는 곳에 우연히 잭 리처가 내렸기 때문에 '니넨 이제 다 뽀롱났다~'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전에 번역본 잭 리처를 읽어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 방금 번역본 뒤졌더니 '본능을 관장하는 뇌와 이성을 관장하는 부위'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나는 이걸 이대로 해석하지 못했지만 brain 나오는 순간 눈치챘다. 잭 리처 시리즈 읽다 보면 이쪽 뇌와 저쪽 뇌가 싸우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러는데... 한쪽 뇌가 '책 사지마!' 라고 하고 다른 뇌가 '사두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돼!' 하는 것... (응?)
게다가 잭 리처 맨날 커피 마시면서 잔뜩 밥 먹는 장면 나오는 것도 내가 잭 리처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다. ㅋㅋㅋ 이번에도 초반부터 에그, 베이컨, 팬케익 먹고 커피 리필 계속 먹는다. 으하하하. 많이 먹어, 잭 리처! 언젠가 만난다면 내가 밥 한끼 사줄게요. 삼겹살 먹어봤어요? 후훗.
2022년의 목표를 이 책 한 권 스스로 완독으로 잡았는데 이렇게 매일 펼치기가 두려워서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뜻밖에 짧은 대화들이 나올 수도 있으니 용기를 내서 도전해봐야겠다. 한 권이 어렵지 그 다음은 좀 더 수월하겠지.
마침 어제 날 따라 잭 리처 읽겠다던 분도 있어, 언제고 한 번 해보려고 했던 잭 리처 시리즈 정리를 한 번 해볼까 한다. 나도 네이버 검색해서 누군가 정리해둔거 보고 알게된거다.
우와.. 생각했던 것보다 시리즈가 더 많다. 나는 한 열권쯤 되려나 했는데 번역안된걸 포함하면 스무권이 넘네.
리 차일드는 은퇴준비중이며 그래서 2020년 출간작부터는 동생인 앤드류 차일드와 잭 리처 시리즈를 함께 쓴다고 한다. 그러다가 앤드류 차일드 혼자 쓰게 될거라고. 위의 리스트는 ONLY 리 차일드 작품. 일단 리 차일드 만의 잭 리처를 다 읽어보고 그 후에 앤드류와의 합작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오늘 아침의 캐나다 뷰(프롬 양재동..)
잭과 로리, 내가 잊지 않았어. 아직 이번주 분량을 다 못읽었는데 어휴 마음이 바쁘다.
오늘 트윗에 친구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oh william> 을 살짝 번역해 일부분 올려두었는데, 그걸 보니까 그것도 너무 읽고 싶고. 오늘 아침 퍼뜩 생각난건데, 내가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영어본으로 안읽었다는 것도 생각났다. 그것도 영어로 한 번 읽어봐야지. 와 세상에 읽을 거 왜이렇게 많아. 내 몸뚱아리는 하나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읽고싶은게 너무 많아서 미치겠다. 올 한해 make me 한 권을 완독 목표로 잡으면 속도가 너무 더디겠는걸? 그래도 욕심 내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오늘 아침 출근길에 필리스 체슬러 읽었는데, 이건 따로 페이퍼 쓸거다.
여러분, 씨 유 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