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가 자란 곳은 노던일리노이로, 아버지는 그곳에서 사료용 옥수수 농장을 성공적으로 경영했다.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는데 늘 부산스러웠지만 다정했다. 그들의 성은 나이슬리였고, 린다를 포함한 세 자매는 프리티 나이슬리 걸즈로 통했다. 그녀는즐거운 유년기를 보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린다에게는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그녀가 학교에 있는 사이 어머니가 집을 나가 작고 지저분한 아파트로 옮겨가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그 일은 린다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 어머니가 죽은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었다. 몇 달 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했지만 아버지가 받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후 어머니가 작은 주택 - 지저분한 아파트에 이어에서 혼자 살아간 것, 딸들에게 신의를 요구한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와 딸들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 그뿐 아니라 자유를 얻고자 한 어머니의 시도가 불치의 전염병이라도 된다는 듯 어머니의 친구 모두가 보인 공포반응에 어머니가 친구들과의 관계마저 포기한 것, 그 모든 것이 린다의 삶에서 - 지금까지는 가장 강렬한 사건이었다. 린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그 다음주에 빌 피터슨이라는 이름의 동네 청년과 결혼했고, 일 년 뒤 이혼했지만 그의 성은 유지했다. 그리고 위스콘신의 어느 대학에서 제이를 만났다. 똑똑하고 굉장한 부자인 그가 제공하는 삶이, 추방되어 혼자 살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무섭고 끈질긴 이미지로부터 그녀를 멀리 떼어 놓아줄 것만 같았다. -<금 간>, P118-119
왜 '신의를 요구'한 것이 어머니를 만나는 일을 해서는 안됐었는지, 그것을 딸들에게 신의라는 이름으로 강요한 아버지에 대해서라면 그것은 아버지의 잘못이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것은 아이에게 상처였겠지만 어머니랑 관계가 소원해지게 했던건 아버지의 잘못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왜 집을 나갔을까. 자녀들이 즐거이 유년기를 보냈다고 생각할만큼 가정주부로서 충실한 삶을 살던 어머니가 왜 집을 나갔을까. 아직 어렸던 린다에게는 학교에 다녀와보니 엄마가 집을 나간 것, 혼자인 엄마를 아빠도 받아주지 않고 친구들조차도 모두 외면했던 것, 그래서 작고 지저분한 아파트에서 혼자 늙어간 것을 목격하는 일은 충격이었고 강렬했다. 그 일은 린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쳐 린다로 하여금 삶에서 '혼자 늙어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같은 경험을 해도 다른식으로 반응하게 되고 또 다른 영향을 받는다. 린다의 자매들 역시 같은 엄마의 딸이었지만 그 삶의 형태는 제각각이며, 또한 린다의 남편과 같은 남편을 만났을 때도 혼자인게 두려워 차라리 그런 선택을 하게될지는 알 수 없다.
린다의 남편 제이는 자신의 집에 민박하러 며칠 묵게되는 젊은 여자들을 불법촬영한다. 욕실에도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본다. 린다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때로는 옆에서 다른 젊은 여자들의 몸을 자신도 보기도 한다. 그런 남편의 노트북에는 그런 여자들의 영상들이 많다. 남편은 자신의 집에 머무는 여자들의 파자마를 훔치기도 하고 강간을 시도하기도 한다. 린다는 알고 있다. 모르는 바가 아니다. 린다도 그런 남편이 싫다. 남편이 없는 다른 여자들을 부러워한다.
린다는 캐런-루시 토스에게 질투를 느꼈는데-그녀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은 억압된 감정이 아니었다- 캐런-루시가 유명하고 아이가 없고 여전히 예쁘기 때문이어고, 남편이 없기 때문이었다. 린다는 한때 남편의 똑똑함에 그토록 감동받았으나, 지금은 그저 그가 사라져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금 간>, P92
심지러 린다 부부의 딸도 이 일에 대해 알고 있다. 어느날 아버지의 노트북을 보고 이 일을 알게된 딸은 이 사실을 너무 끔찍해하며 다시는 집에 오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가 더 나쁘다고 소리지른다(왜 엄마가 '더'나쁠까. 범죄를 묵인한 건 물론 나쁘지만 범죄를 저지른게 더 나쁜데.) 그러니까 자녀로부터 외면당하고 나쁜 사람이라는 욕을 얻어먹고 심지어 남편이 끔찍해서 같은 침실을 쓸 수 없는데도, 그녀는 남편의 죄를 잠자코 받아들인다. 남편이 저지르고자 했던 강간에 대해서도 모른척한다. 왜? 그녀는 '추방되어 혼자 사는 삶'이 너무나 두렵기 때문에. 차라리 각방을 쓸지언정, 저 방에서 범죄를 저지를지언정, 그녀는 혼자 살아가는 일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절대로 자신에게 혼자 늙어가는 일을 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린다는 자신이 앞으로도 남편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안다.
성범죄자의 아내들이 남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저게 어떻게 가능할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나라면 그런 남편 너무 끔찍해서 바로 갈라설 것 같은데, 라는 것이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나의 심정이었다.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단편을 읽으면서 어쩌면 그런 남편과 함께하기를 선택한 사람에게는 '이 끔찍함' 보다 더 큰 '다른 끔찍함'이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서는 차라리 혼자 사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아니 그건 너무 끔찍해, 견딜 수 없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거다. 엄마가 혼자 살고 늙어가는 걸 보는게 너무 그녀에게 컸으므로. 물론 이같은 상황에 같이 놓였다고 해서 모두가 이같은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이만큼의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다 다른 사람이라서, 살인현장을 목격하고난 뒤 경찰이 될 수도 있고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 혼자사는 게 너무 끔찍해서 성범죄자의 동조자가 되어버리길 선택하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이 가장 끔찍하다고 생각한 '혼자되기'에 놓이지 않을 수 있었지만 대신 성범죄자의 옆에 내내 있어야 한다.
그런 한편, 도티는 어떤가.
도티는 어른이 되기 전에 엄청 가난하게 살아서 그뒤로 오랫동안-필요 이상으로 오래-옷가게건 정육점이건 빵가게건 백화점이건, 어느 가게에 들어가든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다가 나가달라고 말하는 순간이 오리라 예상했다. 도티는 그 수치감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고, 누구든 자신의 민박집을 찾는 사람은 결코 그런 느낌을 받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도티의 민박집>, P256
수치감을 간직하고 자신은 그런 수치감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같은 환경에서 자란다고 했을 때 모두가 다 도티같은 마음을 먹는건 아니다. 오히려 세상에 대한 미움으로 수치심을 더 주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각자에게 내재된 성질이 있고 또 자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이런 것들은 자기들끼리 결합하여 지금의 나를, 지금의 이런 선택을 만들어낸다. 만약 혼자인 집에서 초라하게 늙어가는 엄마를 보는게 도티였다면, 그런데 도티가 제이를 만났다면, 그랬다면 도티는 어떤 삶을 선택했을까. 만약 린다가 가난하게 살아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랬다면 린다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어쩌면 이런 가정들은 모두 무의미할지 모른다.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선택은 없었을테니.
2주연속 주말마다 정신적으로 지쳐있었다. 걱정하던 일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임을 알게된 토요일에는 나를 완전히 풀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책도 읽히질 않아 그래 기쁘자, 즐거운 걸 선택하자, 했고 나는 그렇게 와인을 따라 마셔가면서 내한공연 떼창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외국가수들이 내한공연 왔다가 한국 관객들의 떼창에 크게 감명받는 걸 보는 게 진짜 너무너무 좋다. 나라는 사람의 노래를 듣기 위해 시간을 내고 돈을 내고 여기까지 온 것만도 감사한데 내가 부르는 노래를 죄다 따라부르다니, 게다가 내 노래는 이들에게 외국어인데 그걸 다 외워서 부르다니, 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심지어 나는 '미카'의 공연에서는 그 현장에 있기도 했다. 나는 가사를 다 외워가지 않았었는데(그 때까지는 떼창문화를 몰랐다) 그 공연장의 그 많은 사람들이 미카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걸 보고 와- 진짜 어메이징하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 뭐지? 우리나라는 영어교육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로 영어를 시키면 모두 천재가 되어있을지도 몰라! 여기에 와서 미카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부르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학교에서 영어 점수가 높은 사람들인건 아닐터였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에미넴의 노래를 혹여라도 따라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감히 따라부를 수 없는 속도의 노래다. 나도 한 번 해봐야지 하고 가사 보면서 따라부르다가 어버버하며 포기했더랬다. 대체 이걸 우리나사 사람들이 어떻게 따라부르는거야. 대단하다. 그러니 에미넴이 왜 감동받지 않겠는가. 에미넴이 우리나라 관객에게 하트를 해준 것은 매우 유명하고 그의 팬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이게 무슨일인가 다들 놀란다고 한다.
'앤 마리'의 떼창 역시 아주 유명하다. 앤 마리가 내한공연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콘서트 당일에 주최측에서 갑자기 취소를 한다. 그리고는 티켓을 예매한 사람들에게는 '앤 마리가 취소했다'고 말했고, 앤 마리는 자신의 SNS 를 통해 결코 자신이 취소한게 아니라고 (주최측의 거짓말이란다), 여러분이 내 콘서트를 기다렸을텐데 급하게 자신이 호텔을 빌렸다고 했다. 그러니 시간 되는 사람은 그저 와서 즐겨달라고, 티켓값은 없다고 말했다. 그녀로서는 미안한 마음에 급하게 결정한 거였고 게다가 그 시간이 밤 늦은 시간이라(아마도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보다 많이 왔고, 게다가 그들이 떼창을 해주는거다.
하나를 보기 시작하고 다음 영상 다른 영상을 보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가수들의 공연 영상까지 보게 됐고 그렇게 인류에 대한 사랑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그 어느 순간, 나는, 오, 맙소사, 이 영상을 보게 된다.
아니, 저 좋아죽을라고 하는 남자는.. 뭐지? 크리스토퍼? 내가 모르는 가수, 모르는 노래다. 나는 검색해본다. 1992년생의 덴마크 가수란다. 와. 이렇게 잘생긴 가수가 있었어? 공연 분위기에 감동해서 좋아 죽는 표정도 너무 좋지만 후렴구에서 뭔가 재간둥이처럼 발 움직이는 거 왜케 좋아...
나는 이 공연 영상 말고 다른 영상을 찾아보았다.
이 무슨 .. <잘생긴 개자식>을 영화화한다면 어울릴법한 비쥬얼.. 어쩔것이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랜만에 나의 심장이 요동치네... 요동이여....
번역된 가사를 보노라니 그러니까 이 <BAD> 라는 노래는 '너는 나쁜 사람인데 그래도 나는 너를 놓을 수가 없네' 뭐 이런 가사인가보다. 나쁜 사람.. 나쁜 사람을 사랑해? 놓을 수가 없어? 그거... 나니? 나도 나쁜 사람인데..... 크리스토퍼, 혹시 영화 찍을 생각은 없니?
일요일에는 오랜만에 일자산에 다녀왔다. 흙길을 밟는 건 꽤 오랜만인데 생각보다 더 좋았다. 이어폰에서는 크리스토퍼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는 크리스토퍼를 상대역으로 상황극에 들어갔다. 무더운 여름의 하노이 한 까페. 나는 책을 읽고 있는데 그 까페에 아이스아메리카노 사러 들어왔던 크리스토퍼가 나를 보고는 안녕, 하더니 무슨 책을 읽느냐 묻는다. 나는 표지를 보여주면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야... 혹시, 아니? 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누는데 한참을 얘기하다 헤어지며 그는 내게 '내일도 여기 올거니?' 묻는다. 나는 '흐음, 아직 잘 모르겠어. I don't know.' 라고 말하고, 그는 내게 내일도 와, 우리 만나서 또 얘기하자, 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오케이 여기에서 내일 열시에 만나, 라고 하고 우리는 see you tomorrow 하고 헤어진다.
다음날 같은 곳에서 만난 우리는 각자의 음료를 시켜두고 나는 '그런데 널 어디서 본 것 같아, 혹시 너 스타니? Are you a star?' 라고 물어보고 그는 껄껄 웃으며 응 맞아 가수야, 라고 말하고는 너같은 여자는 처음이야..라고 말한다.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to be continued...
그나저나 어제 북플앱에서 독보적 체크하는데 책 검색을 <모든것이 가능하다> 로 쳤다니 대뜸 이렇게 되었다.
읭?? 이게 뭐야? 나 모르는 책인데? 왜 이게 뜨지? 이 책이 스트라우트 책보다 더 많이 팔려서 그런가? 하고 스트라우트의 책을 다시 살펴보니 제목은
무엇이든 가능하다
였다. 흠흠.